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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소음(騷音)

강종권   2018년 03월 14일(수)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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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아침에 요란한 드릴 소리에 잠을 깼다. 늘 자동차 소리, 오토바이의 굉음, 술 먹고 질러대는 주정들에 익숙한 터라 별스럽지 않은 소리였겠지만 습관적으로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중얼거리다가 몇 달 전 교회 내부 공사한다고 민폐 끼친 것이 생각이 나 얼른 꼬리 내려 버렸다. 하필이면 그날이 새 학기 개강하기 전에 척추 디스크 시술하겠다고 예약한 터여서 MRI 검사를 하는데 그 소리는 또한 얼마나 요란했던지 아예 귀마개를 끼워 들이더라.

세상은 온갖 소리로 뒤덮여 있다. 들을만한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듣기에 불편하고 심히 민망한 소리도 있다. 아름다워 감탄하는 소리가 있고, 괴상망측하여 괴로움을 주는 소리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의 귀는 적당한 한계까지만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더 이상 허용했다간 감당하지 못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창조의 신비이고 인간에 대한 창조주의 특별한 배려이며 은혜라고 하겠다.

그러니 세상에는 듣지 못할 소리는 없다.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 없기에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면 넘어갈 수 있고, 과거 행적을 돌이켜 보면 부끄러워서라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소리들이다.

아파트 문화로 인해 생겨난 층간소음이 심각하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목회를 하다 보니 가끔 불편을 하소연하는 교우들이 있다. 그런데 아랫집이 불편해서 호소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윗집에서 아랫집을 향해 항의하는 사례를 들을 때는 괜히 시비하기 위해 시비하는 것 같아 실소(失笑)하기도 하지만 참으라 하고, 그래도 억울함이 들면 교회에 나와서 마음껏 소리 질러보라고 권면한다.

우리 사회는 마치 아파트 생활과 같아서 층간소음 시비처럼 시비가 끊일 새가 없다. 자기는 아닌 것처럼 타인의 소리와 행동에 극도로 민감하다. 돌아보면 윗집에 살 때도 있었고 아랫집에 살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자기들은 뒤꿈치도 들지 않고 쿵쿵거리면서, 심지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까지도 요란하면서 자비라고는 조금도 베풀 수 없듯이 살벌하다.

예수는 종종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경고하였다. 2000년 전 유대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이었던 바리새인(Pharises)들은 ‘분리주의자’라는 뜻에 어울리게 율법의 규칙을 내세우면서 세속과 차별하며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의(義)를 내세웠다. 이로 인해 예수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0)고 경고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원하는 ‘의’는 배려하지 않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과 불통(不通)하고 자신의 목소리만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평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세상은 온갖 소리로 뒤덮여있다. 화음(和音)이 아니라 불협화음(不協和音)이어서 소음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극복하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내 소리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여 행동할 때 더불어 평화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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