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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13. 허준의 묘소와 동의보감

김영호   2018년 05월 18일(금)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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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최고의 名醫 ‘집념 결정체’… 백성 살린 ‘생명의 책’

동의보감.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동의보감.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어떤 책일까. 바로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이 책의 저자가 허준(許浚, 1539~1615)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책을 들추면 허준이 이 책을 편찬하며 쏟은 정성과 예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611년 4월, 내의원 제조 이정구가 왕명을 받아 지은 동의보감의 서문에서 이 책의 강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의술 전반에 걸쳐 수록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내용도 조리가 정연하니, 비록 병자의 증후가 백 천 가지로 다를지라도 각각의 증상에 따라 적절히 처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옛 서적을 상고하고 가까이 주변의 의원을 수소문할 필요 없이 그저 병증의 종류에 따라 그 처방을 찾으면 온갖 처방들이 곳곳에서 나와 증상에 따라 투약하면 어김없이 들어맞으니, 참으로 의가의 보감이요 세상을 구제할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은 25권 25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과 내용으로 일반인들이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분량과 명성에 걸맞게 책값도 엄청났다. 

1780년 연암 박지원이 북경을 방문했을 때 중국에서 펴낸 동의보감을 구입하고 싶었으나 책값이 너무 비싸 발길을 돌려야 했다. 누구나 이 책을 집안에 소장하고 싶어 했으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런 사실을 안타까워하던 조선 22대 국왕 정조(正祖, 1752~1800)는 동의보감을 백성에게 널리 보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정조의 뜻에 따라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새롭게 편찬한 의학책이 <제중신편(濟衆新編)>이다. 동의보감 다이제스트 판이라 할 제중신편의 편찬으로 동의보감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 동의보감의 철학… 몸은 곧 우주다
동의보감 내경편 첫머리에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라는 인체 그림과 이를 풀이하는 흥미로운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을 통해 사람의 몸을 우주로 이해하는 허준의 의학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영귀한 존재이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진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하늘에 사시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다. 하늘에는 오행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는 육극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다. …하늘에는 음양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한열이 있고, 땅에는 초목과 금석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으니, 이러한 것은 모두 사대, 오상이 묘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성립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허준은 의성(醫聖)이다. 허준을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꼈던 의사로 기억하도록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1990년에 발간되어 400만 부가 팔린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다. 이 책의 독자는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병든 이웃부터 돌보는 허준의 따뜻한 품성에 감동하고, 제자의 의술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부하도록 당부하는 위대한 스승 유의태의 결단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빗어낸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허준의 개인사는 너무나 소략해 고개를 갸웃할 정도다. 심지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밝힐 수 있는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편찬에 관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과 이정구의 서문을 통해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허준묘소. 파주시청 제공
허준묘소. 파주시청 제공
■ 동의보감의 숨은 공로자는 선조·양예수 그리고 정작
임진왜란의 참화로 대다수의 의학 서적이 사라졌다. 1596년 선조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수의(首醫) 허준에게 새로운 의학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다. 이때 허준과 함께 왕명을 받아 편찬에 참여한 인물들은 어의 양예수(楊禮壽, ?~1597)·이명원·김응탁·정예남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던 유의(儒醫) 정작(鄭, 1533~1603)이다. 

역대 의학자들의 전기인 <의림촬요>를 저술해 의원들의 존경을 받았던 양예수는 허준의 스승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인물이다. 또 한 사람 주목해야 할 인물은 정작이다. 정작은 포천 현감을 지낸 형 정렴과 함께 도교 양생술의 대가로서 의학에 밝다는 평판을 얻었던 인물인데 동의보감에도 그의 의학사상이 짙게 들어 있다.

이명원은 침술의 전문가였고, 김응탁과 정예남은 신예 어의였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은 처음부터 정부가 기획한 국가사업이었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참여한 인물들이 흩어지고 편찬도 중단되었다.

전쟁이 끝난 1601년 봄, 선조는 허준을 불러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금의 의서 100여 권을 내주면서 동의보감을 단독으로 편찬할 것을 명했다. 이 무렵 허준은 어명으로 <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언해두창집요>을 지었다. 책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세 권 모두 한글로 풀이한 의서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과중한 업무 때문에 동의보감 편찬은 지진 부진했다.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하자 허준은 어의로서 책임을 지고 의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의서 편찬에 골몰하던 허준은 광해군의 특명으로 1609년 말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와 편찬에 전력을 다해 1610년 8월에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책을 받은 광해군은 선왕의 유업을 완성한 허준의 노고를 치하하고 좋은 말 1필을 상으로 내렸다.

“양평군(陽平君) 허준은 과거 선왕조 때 의서를 찬집하라는 특명을 받고 여러 해 동안 깊이 연구했다. 심지어 이리저리 피난 다니는 와중에도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제 편찬을 완수해 책을 바쳤다. 한편 생각해 보면 선왕께서 찬집하라고 명하신 책을 이 우매한 과인의 대에 와서 완성했으니, 나는 비감(悲感)을 이길 수 없다. 허준에게 좋은 말 한 필을 하사해 그 노고에 보답하도록 하고, 속히 내의원에 명하여 국청(局廳)을 열고 이 책을 간행해 서울과 지방에 널리 유포하도록 하라.”

■ 허준이 잠든 파주에 남북합작 동의보감연구소 건립하자
의성 허준이 잠들어 있는 묘소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 있는 허준의 묘소는 1992년에 경기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 재미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씨가 <양천허씨족보>를 바탕으로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이 부근을 샅샅이 탐색한 끝에 허준의 묘소를 찾아냈다. 허물어진 묘소 주변에서 허준의 이름자가 새겨진 비명을 기적처럼 발견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책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동의보감은 목차(2권)와 의학 내용(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내경편(내과)(6권)과 외형편(외과)(4권) 그리고 잡병편(내과/외과질환 및 부인과, 소아과)(11권)과 탕액편(3권)과 침구편(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내경편에,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 배치하고, 각종 병 이론과 병 내용은 잡병편에 다루었다. 탕액편은 약에 관한 이론과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을 실었고, 침구편은 침과 뜸의 이론과 실재를 다루었다.

동의보감은 병의 치료는 물론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양생을 함께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각각 전해지던 의학과 양생의 전통을 하나로 합했던 점도 주목된다. 허준은 중국문헌과 <향약집성방> 같은 조선의서를 참고한 내용을 자신의 학식과 경륜에 결합해 책에 녹여내고, 다양한 학설과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목차 2권은 백과사전의 색인처럼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고, 참고자료의 인용처를 모두 밝혀 원저작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이런 강점을 두루 갖춘 동의보감은 출간 직후부터 조선을 대표하는 의서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18세기 이후에는 국제적인 책이 되었다. 동의보감은 출간 출판된 지 115년이 지나 일본에서 먼저 완질이 출판되고, 1763년에는 중국에서도 출판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200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5년에는 국보로 제정되어 있다. 국보 제319-1호는 국립중앙도서관, 제319-2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제319-3호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하고 있다.

북한의 한의학도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북의 학계와 문화예술계에서도 다양한 협력과 상생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의학계가 나서서 허준의 묘소가 있는 비무장지대 파주에 남북공동으로 동의보감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하면 좋지 않을까.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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