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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당선인 이재명 그는 누구인가] 공정한 세상 꿈꾸던 ‘無수저’… 경기도 정권교체 이뤄내다

송우일 기자   2018년 06월 14일(목)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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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촌 어린시절 공장 다니며 공부… 사법고시 합격
판검사 버리고 가난한 민중 위한 인권변호사 길 택해
8년간 성남시장으로 부채 청산, 복지 등 수많은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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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를 누르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던 중 정계에 입문, 민선 5·6기 성남시장을 지냈다. 특히 이 당선인은 임창열 전 지사 이후 보수진영에서 차지해온 경기도에서 승리, 16년 만에 ‘경기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탄핵 정국과 지난해 대선 경선을 거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난 이 당선인은 초반부터 ‘이재명 대세론’을 형성했다. 특히 선거 막판까지 쏟아진 경쟁자들의 십자포화 속에서도 선두 자리를 당당히 지켜내며 경기도 탈환에 성공했다.

■ 칠남매와 자란 산골짜기
이 당선인은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이 당선인 스스로 “‘흙수저’도 못 되는 ‘무수저’의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지난 1964년 경북 안동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래 5남4녀지만 누이 둘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탓에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이 당선인이 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연 집을 떠났고, 어머니와 일곱 남매는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터무니없이 가난했다. 그는 이때부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 상처로 얼룩진 소년공 시절
이 당선인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과 함께 성남의 가파른 언덕 꼭대기 빈민촌에 정착했다. 나이가 어렸던 그는 다른 이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 여러 공장을 전전하는 등 소년공 생활을 했다. 특히 거친 공장생활 중 많은 사고를 당했다. 그의 손가락에는 아직도 고무 조각이 박혀 있고 후각 세포가 55% 이상 괴사했다. 비록 냄새는 잘 못 맡지만 사회적 후각이 발달한 덕에 부패의 악취는 잘 맡는다고 이 당선인은 자부한다.

프레스기에 팔이 눌리는 큰 사고도 입었다. 당시 노동법에 산업재해 보상조항이 있었지만 그 사고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기계보다 값싼 노동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치료받지 못한 팔은 멋대로 비틀어졌고 굽은 팔을 가리려 사시사철 긴소매만 고집하게 됐다. 이로 인해 훗날 병역이 면제됐다. 그는 학교도 못 다녔는데 군대조차 갈 수 없다는 게 또 하나의 좌절이었다고 털어놨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며 차별받지 않는 것이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공장 관리자가 고졸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관리자가 되면 매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부에 매진,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처참한 상황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고졸 신분이 됐지만 기회가 차단된 환경에서 다시 공장 신세를 이어나가야만 했던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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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이재명 당선인.
■ 우연이 빚은 운명, 법대생 이재명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단행했던 교육개혁 조치가 이 당선인의 인생에 전화위복이 됐다.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게 됐고, 과외가 금지되면서 장학금 제도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생계를 위한 공장 일과 공부를 독하게 병행해 마침내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3천등 이내에 드는 고득점에 성공했다. 인권이 유린된 삶에서 벗어나고픈 지독한 갈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서울대 입학도 가능했지만, 그는 고심 끝에 전액장학금에 매월 생활비 30만 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내건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중고교 시절 정상적인 학창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는 교복도 입어보지 못한 한을 풀고자 대학 입학식 날 아무도 입지 않는 대학 교복을 맞춰 입고 참석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 일부를 다달이 셋째형에 보내 공부를 도왔다. 7남매 중 대졸자는 그와 셋째형 둘뿐이다. 훗날 그와 부당한 시정개입 등을 이유로 갈등을 빚었던 바로 그 형이다.

1982년 그는 우연히 유인물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접했다. 매스컴의 말대로 광주시민은 폭도라 믿었던 이 당선인이었다. 권력과 언론에 속아왔다는 분노는 이내 정의구현을 향한 의지로 바뀌었다.

■ 판검사 버리고 택한 인권변호사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갈등을 거듭한다. 군사정권의 주구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안형편 사이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그의 철학에 매료된다.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던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1987년 7월14일 이 당선인은 일기장에 이러한 결의를 남겼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나의 지식과 자격을 필요로 한다. 역사가, 민족이, 노동자가 핍박받고, 가난한 민중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는 마침내 변호사 개업을 결심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법고시 최종합격 한 달 뒤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어머니에게는 성적 때문에 변호사를 하게 됐다고 둘러댔다. 차마 판검사 자리를 제 발로 차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였다.
부인 김혜경씨와 큰아들.
부인 김혜경씨와 큰아들.

■ 치열했지만 한계 느꼈던 시민운동
변호사 이 당선인은 성남에서 주로 노동과 인권사건 변호를 맡으며 민변 활동을 했다. 시민들과 뜻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하며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쳤다. 정치권력, 언론, 돈, 조직 등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웠지만 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 앞에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들이 문을 닫으며 의료공백이 심각해졌다. 이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의 뜻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는데 시의회로부터 47초 만에 날치기를 당하고 만다. 한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던 그는 시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한 순간이다.

■ 시민이 주인인 성남
이 당선인은 2010년 51.2%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이 된 그가 처음 마주친 것은 6천500억 원이 넘는 부채였다. 그는 이를 청산하기 위해 곧바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부채 청산 및 복지의 비결은 이른바 ‘3+1원칙’이다. 부정부패, 예산낭비, 세금탈루를 없애고 그렇게 아낀 예산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장실도 2층으로 옮겨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아방궁’이라 비난받던 기존 9층 시장실에 아이사랑놀이터와 북카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또한 SNS로 시민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시정을 알리고 보완해나갔다. 2013년 마침내 정치 입문의 계기이자 공공성의 상징인 시립의료원의 첫 삽을 떴다.

2014년 그는 득표율 55.1%로 재임에 성공한다. 이때 보수가 우세한 분당에서 오히려 득표율이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실적과 실력만으로 불리한 정치지형을 극복해낸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시의회 돌파는 녹록지 않았다. ‘청년배당·산후조리·무상교복’으로 대표되는 3대 무상복지 역시 시민들과 손잡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룬 결실이었다.

이 당선인은 성남시장으로서 살림, 소통, 복지, 공약이행 등 수많은 성과를 일궈냈지만 시민의 주권의식을 공고히 한 것에 가장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이 주인인 성남’이라는 슬로건처럼 그는 언제나 시민이 주권자고 정치인은 대리인일 뿐임을 강조했다.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하고 참여를 독려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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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변호사 시절 모습

■ 나침반은 오직 공정함
무수저로 태어나 가혹한 환경을 경험한 이 당선인을 이끌어온 나침반은 언제나 공정을 향해 있었다. 지난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그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민과 가장 가까운 촛불의 선봉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부르짖었다. 진정성을 알아본 국민은 그를 단숨에 대선 경선후보로까지 불러냈다. 이때 이 당선인은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명을 분명히 했다.

이 당선인은 “이제 도민들은 경기도에서 그 쓰임을 다 하라고 명했다”며 “이재명이 경험과 실적, 성과를 바탕으로 도민 누구나 자긍심을 느끼는 새로운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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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0월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재명 당선인.

학력
-삼계초등학교 졸업
-중고교 검정고시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경력
△(전)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
△(전) 민선 56기 성남시장
△(전) 민주통합당 기초자치단체장협의회 의장
△(전) 국가청렴위원회 성남부패방지신고센터 소장
△(전)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
△(전) 성남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
△제28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18기)

송우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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