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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팬 사인회

함신익   2018년 10월 11일(목)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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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후에 팬들과 종종 갖는 사인회는 외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고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바람직한 일이다. 외국에서는 주로 지휘자나 협연자들을 연주자 접견실 (Green Room) 또는 연주자 대기실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콘서트 홀 후면에 있는 연주자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악수를 하는 정도이다. 

무대에서 청중에게 감동을 전하는 연주과정에서 청중의 관점에서 볼 때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정장을 갖춰 입은 연주자들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대’들이 직접 로비에 나와 청중과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좁히는 것은 연주회장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기억에 남을 일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의 팬들과의 만남은 흥미롭다. 한국 청중과 여러모로 다른 면이 있지만 그 중 콘서트홀 뒤편 출입구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년남성들이었던 것이 신선하게 기억된다. 일본의 팬들은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깊은 지식을 갖기 위해 꾸준한 준비를 한 후 연주회장에 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클래식 마니아들이 연주회장을 찾아 깊이 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며 느낀 바가 많다. 일본의 오케스트라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오케스트라들도 팬들의 높은 수준의 연주와 청중들의 교육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튼튼한 팬층의 확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내게도 이런 열렬 팬들이 많다는 것은 복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중 이맘때면 떠오르는 한 팬이 있다. 1992년 예술의 전당 데뷔연주부터 한 60대 초반의 신사는 젊은 팬들이 주축인 나의 사인을 기다리는 긴 줄의 맨 뒤쪽에 서 있었다. 내게 사인을 받을 때 바라본 그의 붉어진 얼굴은 분명 연주회를 통해 진한 감동을 받았음이 분명하였다. 그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작고 큰 도시에서 내가 지휘하는 연주회장 객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그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연주회장에 나타났다. 점점 연약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우려하였고 그는 나의 염려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연주회장에 나타나 기립박수와 함께 사인을 받으러 긴 줄에 동참한다. 그는 다른 청중들이 받는 감동까지도 직접 체험하고 깊었을까? 다만 그가 연주회장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를 바란다.

몇 년 전부터 그를 연주회장에서 볼 수 없다. 지팡이에 의존하며 늦은 시간까지 기차역, 버스터미널, 또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가 연주하는 전국의 연주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 무리에 섞여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서 있을 필요도 없다.

나의 아버지는 아주 평범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지속적인 팬으로서 아들의 연주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젠 더 높고 편안한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나의 연주를 즐기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립다. 나는 오늘 연주에서도 그를 만난다. 소록도의 병동 앞에서, 탈북자를 교육하는 하나원 운동장에서, 가파른 정릉3동의 고갯길에 걸쳐있는 초등학교에서, 아버님이 매일 가꾸던 텃밭이 있던 동두천의 군부대 연병장에서 나는 연주를 계속한다. 아버지는 그곳의 청중에 섞여 뜨겁게 나의 연주를 응원하고 있다. 그가 열망했던 일들을 내가 대신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아버지는 나와 연주생활을 함께 한 행복한 팬이자 파트너였다. 그가 내게 남긴 말 중 기억나는 것은 두 마디다. “사랑한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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