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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상, Today] 가정 대신 시설로, 아이들은 다시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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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상, Today] 가정 대신 시설로, 아이들은 다시 버려진다

첫 번째 이야기 : 베이비박스 그 후, 시설로 향하는 유기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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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법은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갖은 고난에도 지원 한 푼 받지 않고 베이비박스를 운영해온 군포 새가나안교회 이기동 목사(62)가 강조하는 바는 한결같다. 아이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 비단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지난 1993년 체결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주요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3년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네덜란드까지 날아가 협약에 서명했다. 이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국가의 외면과 방치 속에 아이들은 가정 대신 시설로 향하고 있다.

■하루 반나절에 1명씩, 아이들이 버려진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2020년 국내 유기아동은 2천595명에 달한다. 연평균 260명, 1.4일에 1명씩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경기도에선 412명이 유기됐다. 경기지역 유기아동 비중은 지난 2013년 285명 중 10명(3.5%)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꾸준히 2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엔 172명 중 38명(22.1%)이 경기도에서 버려졌다.

올해 6월에도 부천시 소사동의 한 수녀원 앞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발견됐다. 탯줄만 엉성하게 잘린 채로 구조된 아기는 신체 일부가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을 보이며 엄마의 품 대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밖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길가에 버려지거나 비정한 부모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다.

■가족의 품 떠난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홀로 세상에 놓인 아이들은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다. 서류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복지부는 아동복지법 개정에 따라 지난 6월30일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 사례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조치를 심의하는 기구다. 도내 유일하게 베이비박스가 있는 군포시의 경우 시 공무원, 시의원, 경찰, 변호사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유기아동이 발생하면 사례결정위는 성본창설부터 진행한다. 이후 일시보호소로 보내진 아동에 대해 위탁ㆍ입양을 진행할지, 보육원 등 시설로 보낼지 여부를 결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기준으로 꾸준히 개정되고 있는 아동복지법은 아동이 가정환경에서 자라야 한다고 명시한다. 복지부도 원가정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되 입양 또는 가정위탁,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순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환경이 아닌 집단시설로 보내진다.

■가정 대신 시설로, 아이들은 다시 버려진다

감사원의 보호대상아동 지원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14~2018년 베이비박스 유기아동 962명 중 929명(96.6%)은 시설로 갔다. 위탁을 비롯한 가정보호 조치는 33명(3.4%)에 불과했다. 국내 베이비박스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교회, 군포 새가나안교회 2곳에 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태어난 가정에서 자라기 곤란한 아동에게 다른 가정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시설보다 가정을 우선하는 게 기본원칙이고, 특히 애착형성 시기인 2세 미만 아동은 가정위탁 등에 먼저 배치해야 한다. 권고가 아닌 의무다.

그러나 부모를 알 수 없는 유기아동은 ‘손쉽게’ 시설보호로 연계된다. 가정보호로 변경하기 위한 절차도 마땅히 없다. 사례결정위를 각 지자체마다 운영한다고 하지만, 수치로 나타난 결과는 100%에 수렴하는 아이들이 시설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도입 19년째, 뒷걸음질치는 ‘가정위탁 제도’

가정위탁 제도는 ‘모든 아동은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 하에 지난 2003년 도입됐다. 시행 첫해 위탁아동은 7천565명, 이후 1만2천명까지 늘었지만 최근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엔 9천923명까지 줄며 도입 초창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경기지역도 2018년 2천46명, 2019년 1천961명, 2020년 1천860명으로 감소세가 나타났다.

위탁 형태별로 나눠보면 허수까지 드러난다. 8촌 이내 혈족, 조부모 등에 의한 위탁을 제외하면 혈연관계가 없는 가정에서 양육하는 ‘일반 가정위탁’의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기지역 일반 가정위탁은 159명(8.5%)으로, 혈연이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유기아동은 시설로 갈 수밖에 없는 가정위탁 제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친족 중심의 가정위탁을 탈피하기 위해 예비 일반위탁 부모를 양성하고 있다”며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에 대해서도 전문 가정위탁 보호체계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베이비박스 아동 따뜻하게 품는다 

#. 아동은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유기아동이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보다 서울시가 먼저 변화의 첫발을 뗐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8월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을 맡아줄 위탁가정을 확대하고 그에 대한 재정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위탁가정에 대해서는 하루 3만원씩 월 9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지급하고, 관할 자치구는 아이가 위탁가정으로 보내진 뒤 사흘 이내 방문점검을 실시하는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한다.

다소 경제적인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논란의 베이비박스’를 인정하고 유기아동의 가정위탁 연계까지 지원한다는 점에선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재원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의 예산을 활용하는데, 시 여성가족정책실에 편성된 예산은 지난해 1조7천885억원에서 올해 2조7천95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관계자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찬반은 익히 알고 있지만, 아동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며 “유기아동이 위탁이나 입양 기회를 얻지 못한 채로 민간시설에 보내지는 관행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 논란보다 아동의 생명 우선

유기아동이 민간시설로 가는 관행 깰 것

경기도는 이보다 앞선 2016년 3월 도의회에서 ‘건전한 입양문화 조성 및 베이비박스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일주일 만에 무산됐다.

당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효경 전 도의원은 “10대 미혼모 등 출생신고의 어려움으로 인한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조례를 준비했지만, 친부모의 기록이 남지 않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항의를 받고 조례 추진을 포기했었다”며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고, 그게 어렵다면 국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가정위탁 제도는 지방이양 사업이다. 보건복지부의 권고에 따라 각 지자체가 예산을 부담하는 구조이다 보니 강제성도 떨어지고 지역별로 지원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현재 도내 지자체는 일반 가정위탁 기준으로 양육보조금 월 30만원, 아동용품 구입비 50만원(1회) 등을 지원한다. 다만 그 이상의 움직임은 없다.

박다은 아동권리보장원 아동보호기획부 과장은 “지자체에서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일반 가정위탁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의 국고보조금법 시행령에서 ‘가정위탁 양육지원’ 항목이 국고 지원 제외 사업으로 배정돼 있는데, 이 때문에 여러 노력들이 막히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여성가족국 관계자는 “유기아동이나 가정위탁에 대한 책임이 각 시ㆍ군에 일임돼 있어 도 차원의 지원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도 역시 유기 문제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가지고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지만, 국가 차원의 논의로 환원돼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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