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카락이 필요한 곳에 뜻 깊게 쓰이길 바랍니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무려 14년 동안 자신의 머리카락을 기부해 온 경찰관이 있다. 안양동안경찰서 범계지구대 소속 김선경 경사(36·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9년 경찰관의 꿈을 키우던 ‘청년 김선경’은 우연히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시청했다.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린 김 경사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돕고 싶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 소아암 환자를 위해 가발을 제작하는 데 머리카락을 기부 받는다는 내용을 발견하게 됐다. ‘이거다’ 눈이 번쩍 뜨인 그는 자신이 아끼던 머리카락을 망설임 없이 잘라냈다.
기부 이전까지 비교적 길지 않은 머리 길이를 유지했던 김 경사는 그날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때로는 예쁜 파마도 해보고 싶고, 봄날에는 산뜻하게 염색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가발을 필요로 할 아이들을 떠올리며 머릿결을 관리하는 데 애를 썼고, 머리카락이 더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김 경사는 2년간 25㎝씩 기른 머리카락을 어머나 운동본부(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본부)에 기부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난 2014년 2월, 그는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갑작스러운 머리 스타일의 변화는 심경의 변화라고 했던가. 내내 긴 머리를 유지하던 막내가 어느날 불쑥 단발머리로 등장하자, 선배와 동료들이 그를 걱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단발머리에 담긴 김 경사의 따뜻한 기부를 알게 된 동료들도 이젠 김 경사의 마음과 노력을 응원하고 있다.
김 경사의 집 한켠에 하나 둘 쌓여가는 기부증서는 어느덧 6장이 됐고, 그만큼 단단한 자부심이 됐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부분은 자신의 작은 선행이 주변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료 경찰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나서 머리카락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어느 새 김 경사와 함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들은 10명이 됐다. 지난해 10월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기부를 한 김 경사는 다음 기부를 위한 길이가 만들어질 2023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 경사는 “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더욱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비록 작은 행동이지만, 병마와 싸워나갈 아이들에게 큰 행복과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카락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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