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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화성 건설에 얼마나 기여했을까-성설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발명엔 뛰어났으나 건설엔 서툰... 천재의 탁상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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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화성 기본계획인 성설을 만들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다산 정약용은 화성 기본계획인 ‘성설’과 ‘도설’을 수원화성에 남겼다. ‘성설’은 화성 축성 기본계획이다. ‘도설’은 성 이외 시설에 대한 기본계획이다. 오늘은 이 중 성설에 대해 평가할 예정이다. 다산에 대한 국내 최초의 평가일 것이다. 방법은 계획과 실시를 비교해 평가한다. 계획은 ‘어제성화주략’을, 실시는 ‘화성성역의궤’를 기준으로 한다.

 

어제성화주략이란 무엇일까. 다산은 정조의 지시로 화성 축성 기본계획인 성설을 만들어 보고한다. 정조는 이 보고서에 머리말과 마무리 말을 붙여 어제성화주략이란 이름으로 공포한다. 공포와 동시에 화성 성역의 지침이 된다.

 

다음 화성성역의궤는 무엇일까. 성역 과정을 기록한 수원화성의 준공 보고서다. 공사에 관한 의궤로는 국내 최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용은 사업 개요, 시일(일정), 좌목(조직), 도설(설계), 재용(공사비), 그리고 관련 공문서다. 지금부터 다산의 기본계획 성설을 항목별로 평가해 본다.

 

제1항 ‘푼수(分數)’다. 푼수는 성의 길이와 높이, 즉 규모를 말한다. 다산은 화성 규모를 3천600보(4.2㎞)로 계획했다. 그러나 실제로 4천600보(5.4㎞)로 준공됐다. 성의 높이도 25척(7.8m)으로 계획했으나 실제는 평균 17척(5.3m)으로 쌓았다. 계획보다 길이는 1천보, 높이는 8척이나 변경이 됐다. 비율로는 28%, 32% 차이가 났다. 이는건설에서 심각한 변경으로 본다. 요즘이라면 배상도 요구할 변경이다. 다산은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규모 관리부터 실패했다. ‘하’로 평가된다.

 

제2항 ‘호참’이다. 호참은 성 밖에 설치하는 장애물을 말한다. 넓고 깊은 웅덩이를 말한다. 해자라고도 한다. 성으로 접근하는 적을 지체시키는 역할로 다산은 성을 둘러싼 호참을 제안했다. 호참을 팔 때 나올 흙을 성의 내탁공사에 사용하면 일거양득이라 했다. 실제로 호참공사는 전부 삭제했다.

 

“사방에 자연 상태의 깊은 도랑이 있다”는 정조의 판단 때문이다. 호참 공사 여부는 공사비와 공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은 전쟁 시설물이라 성의 품질과도 관련이 있다. 다산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으로 사업비 관리, 일정 관리, 품질 관리 모두를 놓친 셈이다. 호참은 탁상공론이었다. ‘최하’로 평가된다.

 

제3항 ‘축기(築基)’다. 축기는 성의 기초를 말한다. 다산은 성 기초 너비를 10척, 깊이를 4척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재료는 “수원천의 흰 자갈”을 쓰라고 제안했다. 실제는 너비 20척, 깊이는 대부분 6척으로 했다. 팔달문 기초는 최대 14척까지 팠다. 그리고 자갈은 전혀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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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북암문 좌우의 원성은 벽돌 성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실제는 큰 돌을 길게 떠서 성곽과 직각으로 배열해 깔았다. 밑에는 두툼한 박석을 한 겹에서 세 겹까지 깔았다. 이유는 수원지역 동결심도(凍限)와 성의 자중(石限)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탁상공론이다. 구조 안전에는 0점과 100점만 있다.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제4항 ‘재료’다. 성에 쓰이는 자재를 말한다. 다산은 흙과 돌을 계획했다. 실제로 토성은 없었다. 장기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벽돌은 제안하지 않았으나 실제로 일부 구간에 벽돌 성을 쌓았다. 이로 인해 벽돌 제작기술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판단이 미흡했다. ‘보통’으로 평가된다.

 

제5항 ‘조차(造車)’다. 조차란 운반 수레 만들기를 말한다. 다산은 운반을 중요하게 보고 유형거를 발명해 제시한다. 유형거는 튼튼한 바퀴, 돌 싣고 내리기가 편하고, 앞뒤 균형으로 힘이 덜 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실제 투입은 대차 8대, 평거 76대, 유형거 11대, 발차 2대, 동차 192대다. 동력은 대차가 40마리, 평거가 다섯 마리, 유형거가 두 마리, 발차는 한 마리의 소가 끈다. 이 자료에서 1대당 동력과 투입 대수를 종합해 보면 유형거의 활용 비중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돌 운반에 유용하게 쓰였다. ‘보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6항 ‘성제(城制)’다. 성제는 성 쌓는 방법을 말한다. 다산은 성을 쌓을 때 아래로부터 3분의 2까지는 매 1층에 1치(寸)씩 안쪽으로 들이밀고 나머지 3분의 1은 바깥쪽으로 3푼(分)씩 내미는 홀형 쌓기를 제안했다. 실제로 계획대로 했다.

 

만일 수직형 성 쌓기를 했다면 구조 측면과 디자인 측면 모두에서 수준 낮은 화성이 됐을 것이다. 비록 함경도 경성의 성을 벤치마킹했을지라도 다산의 제안 중 가장 잘된 계획이다. 아주 높게 평가된다.

 

제7항 ‘벌석’이다. 벌석은 성 쌓는 돌의 준비를 말한다. 채석장 인근에서 치석소를 운영해 돌을 1차로 다듬어 부피와 무게가 줄이면 운반에 유리하다고 제안했다. 좋은 제안이지만 특별한 제안은 아니다.

 

제8항 ‘치도(治道)’다. 치도는 운반용 도로 만들기다. 도로를 새로 만들 경우 노선은 직선으로, 도로 면은 수평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바로 여지여시(如砥如矢)다. ‘화살처럼 곧게, 숫돌면처럼 평평하게’다. 이 또한 의미 없는 제안이다. 당시 장인들에겐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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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화성을 3천600보로 계획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정리하면 다산의 기본계획은 중요한 항목은 실제 채택이 안 되거나 대폭 변경됐다. 전체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이유다. 계획안의 분량을 분석해도 나타난다. 전체에서 호참, 축기, 조차 3개 항의 분량이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중요한 항목보다 중요도가 낮거나 채택되지 않은 항목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다산은 건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계, 장비의 발명 분야에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건설은 발명과 다르다. 건설은 직접 경험을 해야만 터득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건설 경험이 없는 다산의 기본계획은 계획을 위한 계획일 뿐이다. 오늘의 평가는 다산에 대한 국내 최초의 객관적 평가일 것이다. 유배 기간에 남긴 업적을 평가한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낮은 수준의 계획안을 정조는 왜 ‘임금이 만든, 어제’란 이름을 붙여 공포했을까. 많은 신료의 반대에도 어떻게든 화성을 착수하고자 하는 정조의 고뇌 때문임을 이해해야 한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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