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종손 가보 교서 입수·분석 ‘조선 왕조 공식승인’ 증거 판명
조선 중기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조선 왕조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사료가 발굴됐다.
그간 일각에선 십만양병설은 실존 여부에 부정적이었으나 이번 발굴로 국가 통치 이념이었음이 드러나 학계 관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6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파주문화원 부설 파주학연구소는 최근 율곡의 15대 이천용 종손으로부터 ‘문성공 이이 묘정배향공신 교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해당 유물은 1886년(고종 23년) 조선 왕조가 율곡을 선조의 묘정(종묘 공신당)에 배향하며 내린 공식 교서로 26행에 모두 732자로 종이 2장을 이어 붙여 1장의 교서로 만들었다. 어새 종류는 ‘시명지보(施命之寶)’로 교지를 반포할 때 12군데 찍혀 있다. 교서에는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국가가 공식화했다.
해당 교서를 입수해 분석한 차문성 소장(한국전통문화대 겸임교수)은 “율곡의 구국 안보론인 ‘십만양병지의(十萬養兵之議)’라는 문구가 명확히 기록돼 있다”며 “십만명의 병사를 기르자는 논의(十萬養兵之議)를 문정(文靖·송나라 문정공 이항)과 같은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 기록은 그간 민간의 전언으로 여겨졌던 십만양병설을 국가가 공식 문서에 명시, 율곡의 선견지명을 국가 정책의 모범으로 공식 인정한 증거로 판단된다며 해당 교서는 율곡을 최상위 성리학자로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위기를 예견하고 대안을 제시한 ‘실천적 경세가’로 공식 승인했다는 점에서 독보적 가치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율곡이 임진왜란 발발 10여년 전 국가 안위의 위태로움을 예견하고 10만 군사를 미리 길러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십만양병설은 율곡 사후 제자 김장생이 작성한 율곡행장과 인조반정 때 서인들이 주도해 다시 쓴 선조수정실록에는 기록돼 있다. 다만 광해군 때 북인들이 편찬한 선조실록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교서 소장자인 이천용 종손은 “교서는 6·25전쟁 당시 부친이 황해도 해주에서 임진나루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올 때 율곡 및 부인의 신주(神主)와 함께 품속에 소중히 안고 내려온 유일한 가보이자 유품”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파주문화원장은 “최근 완성된 파주시 역사문화사료관 개관 기념 기획전시로 ‘조선의 지혜, 율곡에게 시대를 묻다’를 9월 열 예정”이라며 “우리 시대 위기 대응과 실천적 지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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