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당시 25세였던 청년은 작게 사업을 하며 그해 2월 태어난 딸의 아버지로, 이제 막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별일 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던 그의 삶은 5월18일 이후 모든게 달라졌다.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 김장덕 지부장은 그 시절을 “아픔과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우연히 전남대 앞을 지나다가 곤경에 빠져있는 학생을 도왔고 군인들이 휘두르는 대검에 허벅지를 찔렸다. 다리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여전히 그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더한 상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노라 말한다.
김씨는 “개머리판으로 머리 깨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충격으로 일상으로 제대로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이라고 토로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 또는 단체가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55세까지 갚아준다’는 호프만식 계산으로 일시 보상을 끝냈지만 정신적 피해, 이후 삶에 대한 생활비·치료비 등 제반 비용에 대한 ‘배상’은 전무하다. 기초연금을 지급하듯 유공자연금이 일부 지급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지자체별로 들쑥날쑥이다.
1990년대 초반 5.18 피해자, 유공자, 부상자 등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92년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 초대회장을 역임한 김씨는 사무국장 등 부상자회 최전선에서 일했다. 지난 4월15일 지부장으로 재취임한 뒤 안형기 사무국장과 손발을 맞춰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2003년 공법단체로 인정받은 부상자회도 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동안은 김 지부장과 안 사무국장이 십시일반 사비를 털어 근근히 운영을 이어왔다.
올해 5월은 그 어느 때 보다 각별하다. 부마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이 7일 이뤄지기 때문이다.
39년 만에 추진되는 개헌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20회 국무회의 겸 제7차 비상경제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이 맡긴 권력, 국민이 맡긴 나라를 지키라고 준 총칼로 국민을 살상하고 헌법 질서를 파괴한 광주 5.18과 같은 일은 다시는 벌어져선 안된다”며 “반대할 이유가 없는 헌법 개정안 표결”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지부장은 “‘부마’와 ‘오월’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수 있는 역사적 결단에 동참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두 항쟁의 정신을 헌법에 새기는 날 피해자들의 아픔도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다시 부상자회 경기도지부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 지부장은 “각자가 겪는 고통과 아픔의 크기가 다 다른 만큼 회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일이 지부장의 역할인 것 같다”며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장으로서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서 앞장서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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