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스님 불암사 교무국장
어느덧 봄을 지나 햇살이 화사로운 5월이다. 5월은 설레고 푸르른 이미지이며 여러 휴일과 기념일이 있어 다소 들뜨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불교에서는 5월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다 보니 어느 때보다 분주하면서도 감사함을 느끼며 보낸다.
부처님 오신 날은 정확하게는 깨달음을 얻기 전의 태자 고마타 싯다르타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다는(死) 괴로움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민하고 사유한 것이기에 이날을 부처님 오신 날로 여기는 것이다.
불교 설화에 따르면 태자 싯다르타는 산통을 느낀 마야부인이 근심을 없앤다는 무우수(無憂樹)를 잡고 있을 때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옆구리에서 태어난 이유는 태자의 신분이 크샤트리아였기에 인도의 최고신 브라흐만의 상반신에서 태어난 신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태자는 동남서북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씩 걸으며 탄생게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읊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탄생게는 이것만이 아니라 그 뒤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즉,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깨달을 법이) 가장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내가(태자) 마땅히 안락하게 하리라’는 중생제도의 선언이다.
이 탄생게를 두고 앞부분을 태어난 자신으로 해석하면 ‘자신만이 오직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가 돼 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서 신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는 태어난 자신이 아닌 장차 부처로서 얻을 깨달음의 법만이 가장 존귀하고 그 법을 통해 자신이 부처가 돼 모두를 안락으로 이끌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이유는 바로 불교에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가 영원토록 겪어야 하는 육도윤회의 여섯 가지 굴레에서 벗어난 한 걸음을 의미한다.
법을 깨달아 부처가 되면 해탈과 열반을 얻는다. 열반은 모든 업의 힘이 식어 더 이상 윤회시킬 에너지가 없어진 상태이며 해탈은 바로 그 윤회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 탄생게와 일곱 걸음은 바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전법의 선언이며 우리의 삶을 자신의 걸음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모두는 존귀한 존재다. 그러나 그 태어남이 존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인연들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삶의 모습이 존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해 만든 것이며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고 또한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5월의 문턱에서 지금 나 자신은 자신답게 살아가며 어떤 방향을 향해 일곱 번째 걸음을 내딛고 있는지 다시금 사유하는 시간으로 맞이하자. 지금 나의 행(行)이 나의 삶(生)을 만드는 나침반이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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