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민통선은 이미 준비돼 있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민간인통제구역(CCZ)을 낡은 안보의 관념이 아닌 ‘실재(實在)’하는 공간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썼다. 거창한 상징을 걷어낸 철책 너머의 공간은 한번도 비어 있던 적이 없다. 민북지역의 하루는 오히려 기묘한 중첩 속에서 시작된다. 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면서 군의 철저한 통제 아래 놓인 안보 공간이다. 농민에게는 땀 흘리는 생업의 현장이고 방문객에게는 까다로운 승인을 거쳐야 닿을 수 있는 제한된 관광지다. 거주와 영농, 관광과 안보가 한 공간에서 부딪치고 조정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바깥의 잣대로 보면 이는 정돈되지 않은 혼란이다. 그래서 흔히 이곳을 통일이 와야 비로소 의미가 생길 유보된 공간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얽힌 중첩 속에서 오히려 이 공간의 ‘준비된 상태’를 읽어낸다. 고 신영복 선생이 말한 ‘변방’은 단순한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의 낡은 질서가 놓친 가능성이 먼저 움트는 창조의 자리였다. 민북지역도 그렇다. 이곳의 혼돈은 결핍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질서가 부딪치며 축적해 온 경험의 층위다. 척박한 경계 속에 이미 다음 질서를 만들 생존의 감각이 쌓여 있다. 정전 직후의 대성동, 1973년 조성된 통일촌, 2001년 들어선 해마루촌은 이 땅이 한번도 멈춘 적 없음을 증명한다. 사람은 계속 살아왔고 일상과 통제는 끊임없이 대립하면서도 끝내 공존해 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척박한 땅에 무엇이 준비돼 있다는 것인가. 첫째, 70여년을 묵묵히 버텨낸 ‘사람의 시간’이 있다. 둘째,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생활과 생산을 유연하게 굴려온 ‘운영의 감각’이 있다. 셋째, 인간의 발길이 통제된 자리에 스스로 생명력을 틔운 ‘생태 자원’이 있다. 화려한 인프라나 건물이 없을 뿐 출발에 필요한 삶의 방식과 운영의 질서는 이미 이 땅에 축적돼 있다. 필자가 참나무 숲을 솎아내고 척박한 마사토에 이끼를 심으며 사람을 맞이해 온 일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없던 기적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이 이미 품고 있던 자원들을 치유와 일의 언어로 번역해 세상에 증명해 내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준비된 조건만으로 미래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사람의 시간과 운영의 감각, 생태 자원이 축적돼 있어도 이를 새로운 삶과 일의 구조로 돌려낼 주체가 없다면 이 땅은 다시 유보된 공간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 필요한 것은 연민의 시선이나 일회성 보조금이 아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건강한 욕망’이다. 통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여기서 살아보고, 일하고, 자연과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보려는 단단한 의지다. 한번에 소비하고 떠나는 탐욕이 아니라 공간의 결을 읽고 오랫동안 지속하려는 주체적인 욕망이다. 이 욕망이 현장에 축적된 삶의 규칙과 결합할 때 민북지역은 비로소 다음 시대의 자산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통선은 막연히 통일을 기다리는 땅이 아니다. 이미 생동하는 질서가 축적된 공간이며 새로운 기획과 삶을 실제로 받아낼 수 있는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