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뉴스] 구멍난 유통법 사이로 몸집 불린 중형마트들

‘식자재마트’, ‘중형마트’. 통칭일 뿐 법적으로 규정된 사안은 아니다. 이런 탓에 식자재마트 혹은 중형마트(이하 중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적용되는 대형마트와 달리 의무휴업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대형마트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다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회에선 이와 관련한 법적 정의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지나친 규제라는 여론에 부딪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더욱이 꼼수 건축 논란도 남아 있는 만큼 본보는 중형마트 현황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 대형마트 부진 속 중형마트 고공행진 유통산업발전법상 매장 면적 3천㎡ 이상의 유통시설은 대형마트로 분류돼 월 2회 휴무, 영업시간 제한, 전통시장 반경 1㎞ 내 입점 제한 등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해당 기준 미만인 중형마트는 이에서 제외돼 각 매장의 상황에 따라 24시간 영업 중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등에 따른 대형마트의 부진 속에서 중형마트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2018년 -2.8%, 2019년 -5.1%로 감소한 데 이어 2020년 -2.3%, 지난해 -3%로 떨어지는 등 온라인 유통 활성화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를 받고 있다. 반면 중형마트는 활짝 웃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조회 결과, 마트킹의 매출액은 2018년 약 315억원, 다음 해 444여억원, 2020년 약 497억원으로 치솟았다. 지난해는 436여억원으로 주춤했다. 세계로마트는 2018년 1천7억9천여만원, 2019년 약 989억5천만원, 2020년 1천247억2천여만원, 지난해 약 1천259억원으로 집계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형마트 수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교수가 지난해 8월 발간한 ‘식자재마트 출점이 주변 점포와 전통시장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매출액 50억원 이상의 슈퍼마켓(논문상 중형마트로 정의)은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3.9%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매출액 10억원 미만(0.99% 감소)과 10억~50억원(2.91% 감소) 슈퍼마켓과는 다른 양상이다. 조 교수는 이러한 추세가 현재까지 이어졌다고 내다봤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나고자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됐으나 이에 따른 실익은 정작 중형마트가 가져가고 있다”며 “골목상권까지 들어온 중형마트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큰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회선 개정안 발의됐지만...“논의 필요” 국민의힘 최승재 국회의원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중형마트(개정안상 식자재마트)를 정의, 규제 대상에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최 의원이 제안한 중형마트 규정은 음료품, 식료품을 주로 판매하면서 도·소매업을 병행하는 점포로서 총 매장면적이 1천㎡를 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 이상인 매장이다. 지난 2020년 11월 발의된 해당 개정안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중형마트는 중소기업 혹은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인 만큼 이러한 규정은 과도한 규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식자재유통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가운데 중형마트만 규제에 들어가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옳지 않다. 더욱이 온라인 시장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형마트들도 있다”며 “전통적인 중형마트의 고객 50% 이상은 외식업 등 소상공인들로 충분한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가 시행되면 오히려 소상공인의 선택권이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논란이 있기에 국회에서 이를 논의해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 “명확한 규정 만들어야” 이런 가운데 건축 분야에 대한 제도 보완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일례로 마트킹 서수원점은 비교적 건축 규제가 덜한 제1종 근린생활시설(매장 면적 1천㎡ 미만)로 건축허가를 받아 놓고 추후 연결통로 개설로 판매시설 규모(1천㎡ 이상)로 매장을 확장한 바 있다. 꼼수 건축 논란이 제기된 이 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연결통로는 도시화가 가속화 되면서 시민들의 보행권을 보장하고자 건축법 제59조에 명시된 사안이다. 결국 규모와 소방시설 등 일정 요건만 맞으면 연결통로 개설이 허용되는 만큼 이와 관련한 고민도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춘한 교수는 “중형마트가 연결통로를 개설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며 “통상적으로 중형마트의 최소 매장 면적이 2천㎡이기에 이와 관련한 기준을 세우는 등 출점 제한 조치 역시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민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건축규제 피해… 소매점으로 건립 후 매장확장 ‘꼼수’

대형마트 수준의 중형마트가 의무휴업 등 규제를 피한 채 소상공인들을 울리고 있다. 비교적 쉬운 건축허가로 건물을 지어놓고 추후 대형마트 수준으로 매장을 확장하는 등 편법마저 발생하고 있으나 행정 당국의 제재는 전무한 실정이다. 더욱이 중형마트 입점에 따른 소상공인의 매출액이 감소하는 등 골목상권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마트킹 서수원점의 사례를 통해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쉬운 건축허가, 턱걸이로 피한 의무휴업 유통시설인 마트킹이 대형마트 규제에다 건축법의 까다로운 조건을 꼼수로 피해 지역 소상공인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19일 수원특례시와 권선구, 마트킹 건축물 대장 등에 따르면 마트킹은 지난 2019년 11월 서수원점(권선구 고색동 492번지 일원 등)의 A·B·C동 건축허가를 받은 후 다음해 5월 문을 열었다. 건립 당시까지만 해도 A동의 매장 면적은 997㎡, B동은 999㎡, C동은 998㎡ 등 세개 동 모두 1천㎡ 미만으로 구성됐었다. 건축법 시행령상 매장(바닥)면적이 1천㎡ 미만인 경우에는 근린생활시설(소매점)로, 그 이상이면 판매시설로 분류된다. 판매시설은 특별피난계단, 방화구획 등 소방시설이 설치돼야 하는 데다 불연재 마감재가 사용돼야 하는 등 근린생활시설보다 더 강한 건축 규제를 적용받는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마트킹 서수원점은 매장 오픈 후 세개 동의 1·2층을 각각 잇는 4개의 연결통로의 사용허가를 받지 않은 채 조성됐다. 이후 지난 2020년 6월 권선구로부터 이 같은 불법 사실이 적발됐다. 현장 확인 결과, 이 연결통로로 고객들은 각 동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결국 허가는 근린생활시설로 받아 놓고 실상은 판매시설로 돼 있는 등 마트킹이 쉬운 건축 허가를 받고자 편법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사실상 한 건물이 된 마트킹 서수원점은 월 2회 휴무, 영업시간 제한과 같은 유통산업발전법마저도 피했다. 세개 동의 매장 면적의 2천947㎡(연결통로 포함)로 집계, 해당 법의 대형마트 분류 기준인 3천㎡를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편법 건축과 턱걸이로 피한 대형마트 규제로 지역 소상공인들은 마트킹에 대해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마트킹 관계자는 “연결통로의 경우 예전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 고객 편의를 위해 개설했으며 사용 승인 허가를 받았다”며 “매장 면적은 유통산업발전법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등 법적인 문제가 없으며 정기적으로 물품을 기부하는 등 지역과 상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상공인 비난 산 꼼수에도 행정 당국은 “제재 수단 없다” 버젓이 보이는 편법에도 마트킹의 이러한 실태는 법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지난 2020년 6월 건축법 위반 당시 마트킹은 권선구로부터 한 차례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았을 뿐 연결통로에 대한 사용 승인 허가를 받아 지난해 8월 불법 건축물에서 해제됐다. 권선구 관계자는 “자재, 안전기준 등 요건만 맞을 경우 행정기관 입장에서 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통산업발전법 분야도 마찬가지다. 건축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020년 8월 수원특례시 지역경제과는 권선구 건축과, 자문 교수 등과 함께 현장 실사를 나갔으나 마트킹 고색점의 매장 면적이 3천㎡ 미만인 점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마트킹은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로 분류되지 않아 의무휴업 등에서 자유로운 실정이다. 이충환 경기도상인연합회 회장은 “마트킹과 같은 사례가 경기지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 전문가들 “협의체 구성해 중형마트 평가…법률 개선도 고민해야” 대형마트의 경우 의무휴업과 같이 소상공인 피해를 일부 상쇄하는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마트킹처럼 통상적으로 식자재마트, 중형마트로 불리는 유통시설은 제한 없이 들어서 골목상권이 위축되고 있다. 일례로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6월 서울시 구로구의 소상공인 3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형마트 입점 후 소상공원의 일평균 매출액은 33만9천원에서 30만1천원으로 12.5%포인트 감소했다. 하루 평균 38.98명의 고객도 34.70명으로 12.3%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마트킹 사례처럼 건축법과 유통산업발전법의 괴리가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동욱 부천대 IT융합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대형마트는 법령을 준수하는 반면 중형마트는 교묘한 편법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 창고로 허가를 받아놓았다가 매장으로 바꾸는 사례도 있다”며 “유통 전문가, 지역 소상공인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매년 이러한 사안을 점검하는 한편, 법률적 개선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정민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사회 인식 전환과 민관 복지망, 벼랑 끝 시민 돕는다

생활고,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등진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복지 사각지대 해소라는 과제를 남긴 가운데 전문가들은 사회 분위기 전환으로 ‘제2의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민관 통합 형태의 복지망으로 위기에 처한 시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 역시 피력했다. ■ 김근홍 강남대 교수 “‘가난이 죄’ 인식부터 바꿔야” 김근홍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가난이 죄’라는 사회 인식에 따라 이번 사건이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굶어 죽게 생겼는데 알아서 수급자 신청을 해야 한다’ 등 복지 사각지대를 두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자신이 어렵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게 현재의 사회 분위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세 모녀처럼 사회 취약 계층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 교수는 “가난을 죄나 부끄러운 일로 만들어 놓은 사회 분위기 탓에 어려운 시민들이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생활고를 겪는 시민들은 국가의 손길을 받는 수급자들과 달리 도와달라는 요청을 쉽게 하지 못한다”며 “가난을 구제하는 것이 좋은 사회이나 현재 국가는 위기가구 발굴보단 부정수급자 적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교수는 국가의 본연 역할과 더불어 사회 인식의 전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공무원이 모든 위기가구를 발굴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발견된 사회 소외 계층이 기준에 맞지 않아 결국 수급자에 선정되지 않은 상황도 벌어진다”며 “그럼에도 국가는 어려운 시민이 사는 동네로 찾아가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는 혜택이 아닌 권리를 찾아주는 개념으로 봐야한다. 또 복지가 개인의 무능을 묻어주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 역시 모두가 인정해줘야 한다”며 “이러한 대원칙을 전제로 국가는 국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가난한 사람을 죄악시 여기는 행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 강기태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민관 통합 정책 필요한 시점” 주소지는 화성시, 실거주지는 수원특례시 등으로 인해 세 모녀의 존재 여부를 몰랐던 지역 사회는 이웃과의 단절된 사회 분위기에서 촉발됐다는 게 강기태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의 설명이다. 강 회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제도 등 관련 체계가 구축돼 있는 상황에서 세 모녀는 이를 모르거나 알았어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다. 과거와 다르게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두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있는 가운데 우리가 세 모녀를 알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관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국가는 신청주의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도입했으나 정보의 접근성이 약한 사회적 약자들은 이를 높은 관문으로 느낄 것”이라며 “인력과 예산이 적절히 수반된 복지 정책을 토대로 민간에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사회 소외 계층이 발견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복지 공무원의 업무 과중 해소에 대해서도 그는 촘촘한 민관 통합의 복지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 회장은 “복지 분야 공무원들은 업무난을 겪고 있다. 이들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관 통합의 돌봄 체계에 대한 정책적 연구가 시행돼야 한다”며 “공공은 공공분야에서, 민간은 민간분야에서 각각 맞춤형 복지를 고안하는 등 통합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수당보다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통장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이들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역시 병행돼야 할 것”이라며 “국가와 지자체는 행사처럼 보여주기 위한 사업보단 조직과 단체들이 이웃과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세상에 묻힐 뻔한 수원 세 모녀 - 떠나간 사람, 남겨진 사람들

■ ‘세 모녀’ 동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따뜻했던 예전의 동네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4일 수원특례시 권선구 권선동.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던 세 모녀가 살던 집은 현재 폴리스 라인도 걷히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사건 당시만 해도 경찰과 기자들이 몰려와 동네는 한바탕 떠들썩했지만, 한 차례 파도가 밀려간 뒤 동네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대다수 주민들은 취재진의 질문을 회피하거나 대답을 거부했다. 질문에 답한 일부 주민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잊힐 권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주민 A씨는 “그 집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경찰이 출동하고 기자들이 하나 둘 오고 나서, 보도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니 충격적이었다”며 “문득 그 때 생각이 나는데 하루빨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그 분들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게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살 동네’란 낙인이 찍힌 것 같다”며 “지금 사는 집에서 계약이 끝나면 기간 연장을 하지 않고 바로 이사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주변 이웃들에 대한 사후관리 절실 ‘세 모녀’ 사건과 같은 고독사 발생 시 지자체가 사건 현장 주변의 이웃들에 대한 심리적 트라우마 지원 등 선제적 사후관리에도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4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정신질환자 치료비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각 시군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심리적 외상에 따른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해 정신건강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고독사 사건을 겪은 주변 이웃들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 이를 이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사후관리 등 선제적 지원체계는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에서는 ‘자살사망 사후관리 지원체계 구축사업’을 실시해 극단적 선택 사건을 겪은 주변 이웃이나 임대인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 영도구는 올해부터 주변의 극단적 선택 사건으로 심리적·경제적 피해를 입은 영도구민의 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시범적으로 해당 사업을 실시 중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비는 자살 위험성 평가 등 내부 심의를 거쳐 소득기준과 무관하게 1인당 30만원 한도로 지원한다. 이와 함께 사후관리 측면에서 특수청소 지원도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무연고자의 경우 집주인 등이 후 처리 책임을 지게 돼 사후 처리가 지연되는 문제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앞서 수원남부경찰서는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집에 대해 특수청소 지원을 내부적으로 논의했지만, 이 같은 지원은 범죄피해자지원제도 상 범죄 피해자에게만 지원이 가능해 불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원시도 특수청소 등은 지원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이곳에 대한 특수청소는 집주인이 남은 보증금으로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독사는 한 번 치르게 되면 주변 이웃들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고독사 사건 발생 시 심리치료나 특수청소 등의 과정을 지원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같은 지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구 구조상 고독사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라도 주변 이웃들에 대한 심리·경제적 지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원특례시 관계자는 “정신 건강 및 특수청소 지원 등 고독사 사건을 겪은 주변 이웃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시 차원에서도 주변 이웃이나 임대인 등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지자체마다 통장 구인난에… 촘촘한 복지망 ‘구멍’

■ 코로나19와 단절된 사회 분위기에 보폭 좁아진 통장들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수원 세 모녀’ 사건 발생 직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민간 자원을 활용한 촘촘한 복지망 구축을 공언했다. 지역 여론 수렴 등으로 ‘도시의 이장’이라 불리는 통장이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와 이웃과 단절된 사회 분위기로 통장들은 위기가구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일 전·현직 통장들과 일선 시·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월 국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그동안 통장들이 직접 건네주던 민방위 훈련 소집 통지서를 우편함에 넣어놓는 등 전달 방식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주소지를 이전한 시민들이 해당 장소에 실제 살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보는 전입신고 사후확인 절차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중단 조치를 내린 실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삭막한 사회 분위기가 이들의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새로 이사 온 가구의 문 앞에 방문 쪽지를 남기면 “빈집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냐”는 면박에, 전화를 걸면 “내 번호 어떻게 알았느냐”는 불쾌한 반응에 통장들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 모녀처럼 주소지 등록을 안 한 경우, 통장들이 이들의 존재를 더욱 알 수 없다.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권선구 권선동에 통장이 있어도 이들의 존재 여부를 몰랐던 것도 이러한 이유도 한 몫 한 것으로 추측된다. 수원특례시 장안구 통장 A씨는 “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새롭게 주소를 등록한 주민에게 제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등 상호 합의로 연락망을 구축하지만 전입신고를 안 한 주민들은 알 길이 없다”며 “결국 주인세대와 안면을 터 이사 온 사람들을 파악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건물주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통장 활동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 지자체, 조례까지 바꾸며 통장 모시기 혈안…한계도 통장들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나도 모자랄 판에 이들에 대한 구인난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31개 시·군 전체 통장 정원은 1만3천513석으로 이 중 약 10%(1천262석)가 공석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파트보단 단독·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에서 뚜렷하다는 게 시·군의 설명이다. 아파트와 달리 입주자대표회의와 같은 단체가 없어 일일이 주민들을 만나야 하는 데다 활동 범위가 넓은 등 버거운 업무에 기피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시·군은 조례에 단서조항까지 넣어가며 통장 찾기에 나섰다. 수원특례시(전체 1천613석 중 95석 공석)는 지난해 중순 1년 이상 공석인 통장에 대해 해당 통(統)이 아닌 인근 지역의 주민도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임기를 3년, 한 차례 연임으로 규정한 성남시(1천353석 중 93석)는 지난 4월 조례안의 단서 조항으로 2회 이상 모집 공고에도 적임자가 없을 때에는 한 차례 더 연장(1년)을 가능토록 했다. 화성시(976석 중 70석)는 주민 총회 추천에도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읍·면·동장 직권으로 통장(임기 2년)을 임명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는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도내 전임 통장 B씨는 “같은 동네에 산다는 유대감이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다른 지역에서 통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며 “누군가를 시켜서 통장을 하라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통장은 자발적인 사명감 하나로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수당보단 명예 중시…사기 진작 방안 모색해야” 전문가들은 통장제도와 같은 민간 자원의 적절한 활용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수원특례시 장안구에선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채 월세가 밀린 한 대학생을 발견한 통장들이 식료품을 전달하는 등 이들의 활약상이 곳곳에서 들리는 만큼 이러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최준규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장 한 명이 동네 모든 일을 처리하기에는 버겁다. 중장기적으론 주민자치회의 활성화로 지역의 일에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또 통장은 수당(월 30만원)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들의 성과를 온 동네에 알리는 등 이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사회 복지 분야에 대한 통장들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며 “지자체가 위기가구 발굴에 대한 매뉴얼을 개발하고 이를 통장들이 숙지하고 휴대하게끔 하는 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또 다른 ‘세 모녀’ 막겠다지만… 인력 확충 없인 ‘공염불’

■ 두 달마다 내려오는 ‘공포의 발굴 명단’ 31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위기가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인 ‘발굴 조사 대상자’ 등의 명단을 두 달에 한 번씩 일선 지자체로 하달한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내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은 복지부를 비롯해 시군구에서 받은 명단까지 포함해 이를 토대로 일정 기간(통상 한 달) 동안 가정 방문 등을 실시해야 한다. 현장에 나간 공무원들의 상담 후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면 이들에게 생계비·주거비 등 긴급지원이 이뤄지는 구조다. 앞서 지난 8월29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세 모녀 사건의 원인이 인력 부족 문제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현장에선 고질적 인력난으로 ‘공포의 명단’이란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 소속된 인원은 총 2천163명에 불과했는데, 복지부가 평균 18만명(도내 약 4만명 추정)의 명단을 내려보내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1인당 담당하는 대상자 수는 2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던 권선1동은 중앙 정부 등을 통해 하달된 명단 104명에 대해 지난 한 달 동안(7월11일~8월26일) 방문해야 했는데, 현장에 나갈 인력은 단 2명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인당 52명의 대상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셈이다. 도내 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다른 업무도 하며 틈틈이 현장에도 나가야 하는데 있으나 마나 한 인원으로 어떻게 모든 집들에 대한 현장 방문을 할 수 있겠느냐”며 “또 정작 현장에 방문해도 관리인이나 집주인을 통해 알음알음 겨우 만나기 때문에 열 집을 가면 실제 대면하는 경우는 1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털어놨다. ■ 타 부처 업무까지 떠맡게 되는 ‘깔때기’ 구조 이번 ‘세 모녀 사건’이 일선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게 ‘깔때기’처럼 업무가 몰릴 수밖에 없는 공공사회복지조직 전달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이날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소득이나 재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내 조회 권한이 주어진다. 소득과 재산을 조사해 대상자의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정된 복지 재원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문제는 해당 시스템 조회 권한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게만 있는 상황에서 타 부처의 복지 업무까지 결국 이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 등과 같은 사회적 흐름에 맞춰 복지부 외에도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개별 부처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사업이 아니더라도 타 중앙 부처에서 시행하는 복지 정책도 급여 지원 등에 앞서 소득이나 자산조사가 필요하고, 결국 이는 조회 권한이 있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손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복지부 외 중앙 부처나 지자체는 복지사업을 신설 및 변경할 시 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복지부와 협의하는데, 2018~2020년 3년간 ‘사회보장 신설·변경 협의제도’를 통해 협의가 완료된 건수는 중앙 부처가 총 148건이었고 경기도가 45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의 완료는 중앙 부처나 지자체의 수정 권고 내용이 동의된 경우를 의미한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일선 지자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업무 과다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 이미 1인당 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만 해도 2020년 기준 도내 70.2명(공무원 4천709명·수급자 33만848명)에 달할 정도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2020년 이후엔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코로나19 보건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인력 확충 및 전달 체계 개편 절실”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인력 확충과 더불어 이 같은 확충이 효과를 거둘 수 있게 전달체계 개편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이번 ‘세 모녀 사건’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며 “위기가구를 발굴했다 해도 이들을 찾아가 마주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력 부족 등 여러 문제가 얽혀 발생한 사건이 실무 담당자 입장에선 자의든 타의든 그 사람 책임이 돼 버리는 부분도 있다”며 “인력 및 복지예산 확충 등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더 꼼꼼히 설계하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명선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사무총장은 “기존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토대로는 되레 대상자를 발굴할수록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며 “일선 사회복지공무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달체계를 세부적으로 손봐야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휴대폰 초기화 가능성 없어… 지독히 외로웠던 ‘세 모녀’

■ 전화번호와 문자 몇개가 고작…백지나 다름없는 휴대폰 지난 21일 오후 권선구 권선동의 연립주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수원 세 모녀 비극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은 세 모녀에 대한 통신조회를 요청했다. 이들 가족이 소유했던 휴대폰은 2대. 모두 막내 딸 명의로 된 휴대폰들이었다. 암 투병 중이던 60대 여성 A씨와 희귀병을 앓고 있던 B씨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 왔던 사실을 방증하듯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흔한 휴대폰도 없었다. 사인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찰은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2대의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 작업에 착수했다. 30일 밝혀진 포렌식 결과는 지독하게 외로웠던 이들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추출된 내용물은 고작 몇개의 전화번호와 스펨문자를 포함한 소량의 메시지들뿐. 하얀 도화지처럼 세상에 드러난 세 모녀의 휴대폰은 우리 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꼭 봐주길 바랐나”… 유서와 동일한 내용의 문자 기록 나머지 1대의 휴대폰 역시 초기화 상태를 연상케 하듯 몇개의 통화목록과 문자메시지 말고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양 손에 셀 수 있을 정도로 희박하게 드러난 추출물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장문으로 작성돼 있는 문자메시지 기록 1개.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A4 용지 9장에 남긴 유서와 동일한 내용으로 쓰여진 문자메시지였다. 세 모녀가 이 문자를 먼저 작성했는지, A4 용지에 수기로 쓴 유서를 토대로 후에 이 문자 기록을 남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서면과 문자메시지 2가지 방식으로 유서를 작성한 세 모녀를 생각하면, 이들이 삶을 포기하기 전 남긴 유언만큼은 세상이 꼭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나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만 해볼 뿐이다. ■ 공장초기화 가능성 없어…지독히도 외로웠던 삶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에 담긴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 밝혀내는 포렌식 작업도 세 모녀의 휴대폰에는 통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세 모녀가 사망 전 해당 휴대폰들을 공장초기화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디지털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세 모녀 휴대폰 포렌식 결과에 의문을 제시했다. 휴대폰을 공장초기화 시킬 경우 기기 안에 저장돼 있던 모든 기록들은 삭제된다. 이 같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NO. 경찰은 2대의 휴대폰 모두 공장초기화 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결론졌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남편의 일탈과 남겨진 빚…사망신고도 하지 않았던 수원 세 모녀

■ 한국의 집시(방랑자) 자유 찾아 캠핑 떠난 남편, 방치된 수원 세 모녀 암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린 채 월셋집을 전전하며 한줄기 희망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수원 세 모녀에게도 가장은 있었다. 남편 A씨는 2000년 초반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 부도를 포함해 2차례 사업에 실패하며 큰 빚을 지게 된다. 이후 세 모녀 가정은 빈곤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런 와중에 돌연 A씨는 캠핑카를 타고 전국 일주에 나섰다. 중년의 호기로운 방랑생활이 입소문을 탔는지 A씨는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해 얼굴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의 일탈에 그 공백을 메운 것은 A씨의 장남이었다. 택배일 등 궂은 일을 도맡으며 암 투병과 희귀병을 앓는 세 모녀의 생활을 책임져 왔던 장남은 2019년께 사망했다. 이후 A씨는 술에 취해 용인의 한 계곡에 입수한 상태로 사망했다. 사인은 저체온증. 본격적인 추위가 불어닥친 2020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A씨는 삶의 벼랑 끝에 놓여 있던 세 모녀를 남겨두고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 부인 명의로도 사업 실패하고 떠난 남편…사망신고조차 할 수 없었던 수원 세 모녀 A씨 사망 이후 당시 용인동부경찰서는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A씨를 변사처리했다. 이 같은 비보는 곧바로 세 모녀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세 모녀는 A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편이 남기고 간 빚 상속 문제가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A씨가 남긴 빚의 구체적인 규모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총 2차례의 사업 부도 가운데 1차례는 A씨의 아내 명의로 사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 모녀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복지 사각지대에서 빚더미 위에 놓인 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이어오다 지난 21일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늘어나는 금융 복지 상담…피상담자에 의존하는 체계 빚더미에 발목이 잡힌 세 모녀처럼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 등 금융 복지 서비스의 제도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신청서 작성,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은 관련 서류만 제출되면 빚 상속 포기가 이뤄지는 등 채무와 관련한 절차가 생각보다 간단하기에 이러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29일 경기복지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빚 상속 포기, 개인 파산 신청 등 채무와 관련한 상담을 진행하는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센터(이하 서금복)의 이용자 중 수급자 비율은 지난 2015년 11%에서 다음해 20.7%로 점차 오르더니 지난 2020년에는 38.8%로 집계됐다. 이처럼 수급자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으나 서금복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서민의 금융 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적용 받는 신용회복위원회 등과 달리 경기도의 보조금 사업인 서금복의 경우 피상담자의 복지 서비스 수급 내역 등을 조회할 권한이 없다. 채무에 따른 죄의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기 꺼리는 피상담자가 본인 얘기를 하지 않는 이상 위기 가구로 인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기복지재단은 피상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상담을 요청하는 이용자들이 서금복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서금복 관계자는 “민간단체인 롤링주빌리지가 복지 서비스 내역 조회 등 권한 확보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마다 함께 동참하고 있다”며 “이와는 별도로 서금복 차원에서 지하철 게시물 부착 등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근홍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이제는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복지체계가 개편돼야 한다”면서 “학부형 자세를 지닌 상담사가 역량 강화로 위기에 처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동시에 복지 서비스 내역 조회 등 권한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스토리가 있는 뉴스] 수원 벼랑 끝 ‘세 모녀’…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은 먼 친척뿐

지난 21일 수원특례시 권선구 권선동의 한 연립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일보의 최초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수원 세 모녀 사건’의 발단이다.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이번 사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이를 언급하는 등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경기일보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세 모녀 사건을 재점검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조명해본다. ■ 유일한 ‘키다리 아저씨’였던 ‘먼 친척’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외면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가 유일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사람은 먼 친척인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세 모녀는 A4 용지 9장 분량의 유서에 세상과 주변 지인들에 대한 원망과 한탄을 기재하면서도 유일하게 자신들을 도와줬던 먼 친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상과 이별한 세 모녀의 시신을 수습하려 한 그는 세간의 관심과 집중에 부담을 느껴 시신 인수를 취소했지만 고인들 생전에 금전적 지원을 비롯한 많은 도움을 주며 이들의 고단한 삶을 곁에서 위로한 유일한 사람인 것으로 전해졌다. ■ 유족의 배웅도, 영정 사진도 없이 영면에 들어간 세 모녀 세 모녀는 지난 26일 수원중앙병원에서의 발인식을 거쳐 영면에 들어갔다. 앞서 예정됐던 시신 인도가 취소된 사실이 경기일보 최초 보도(24일 인터넷자)로 알려지면서 수원특례시는 지난 24일 오후 2시 긴급 회의에 돌입, 30분 만에 시장 직권으로 공영장례를 결정했다. 수원특례시 공무원에 의해 수원시연화장으로 옮겨진 이들은 화장 절차를 통해 이곳 봉안담에서 힘겨웠던 삶을 뒤로 한 채 먼 길을 떠났다. 영정 사진도, 유족의 배웅도 없이 떠난 세 모녀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화성시에 주소지를 둔 세 모녀는 정작 수원특례시에 거주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런 탓에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기가구를 인지한 화성시는 이들의 주소지를 방문했으나 세 모녀를 만날 수 없었고, 수원특례시는 주소지가 화성시인 탓에 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더욱이 세 모녀는 복지 서비스에 대한 상담 및 신청도 하지 않았다. ■ 국민 10명 중 2명 “주변 도움 원치 않아” 전문가들은 세 모녀와 같은 경제·정서적 위기 가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만 19~59세 성인 8천1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도움을 받을 곳도 없고 도움도 원치 않는다’는 응답은 13%, ‘도움 받을 곳이 있지만 원치 않는다’는 응답은 8%로 각각 집계됐다. 또 ‘방법을 몰라서’, ‘신청해도 선정되지 않을 거 같아서’ 등이 기초생활수급자 미신청 사유로 조사(보건복지부 2020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된 만큼 전문가들은 따뜻한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계량적으로 산출되지 않을 정도로 음지에 있다”며 “정부는 촘촘한 복지망을 구축해야한다. 그럼에도 복지망에 걸러지지 않은 취약계층에 대해선 이웃 등 지역사회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송파 사건에도 또…정부 “보완대책 마련하겠다” 한편 경기일보의 최초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복지체계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행정복지센터 전담 조직 신설 ▲긴급복지 지원요건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또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자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개선 등을 주요 골자로 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취약계층 연락처 연계 등 보완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양휘모·이정민·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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