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大法院 확정판결도 거부하는 진영논리

로마의 관광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이 아닐까. 사자 모양의 짐승 조각인데 그 벌린 입에 손을 넣으면 거짓말하는 사람은 손목이 잘린다는 것. 물론 전설의 석상이지만 관광객들은 줄을 서서 그 입에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 인기 코스다. 그 옛날 로마 사람들이 공포의 조각상을 만든 것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직’을 로마의 정신으로 확립하기 위해서 였을까. 로마 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정직’은 가장 중요한 신사의 덕목으로 전해 오고 있다. 가령 영국 의회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더라도 ‘거짓말 쟁이’(liar)라고 하면 가장 큰 모욕으로 받아 들여 결투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물러나게 된 것도 그가 한 거짓말 때문이다. 그는 3년 전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금지된 가든파티를 벌인 것이 탄로가 나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이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의회 불신임 투표까지 가게 되었고 겨우 위기를 넘기는가 했지만 결국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하긴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와 냉전체제의 전환이라는 업적을 남기고도 탄핵에 몰리다 사임했는데 그 핵심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국민들과는 신뢰를 잃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영에 따라 거짓말도 진실이 되고 진실도 거짓말이 된다. 심지어 대법원에서까지 최종적으로 판정된 것도 진영에 따라 진실이 결정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자녀입시 비리 등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아직도 그는 무죄라고 주장하며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있다. 대법원은 1~2심에서 판결한 대로 동양대 강사 휴게실PC의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그의 딸이 공주대학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경력이 없다는 등 7가지 혐의내용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는데도 이처럼 반기를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진영의 논리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조국의 江’을 건너지 못하는 현상인 것이다.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씨의 불법정치자금수수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 역시 대법원에서 혐의 모두를 유죄로 확정하고 징역 2년에 8억8천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으나 문재인정부에서 ‘무혐의’를 위한 재심운동이 끊이질 않았다. 역시 진영 논리다. 내 편이 하는 것은 거짓말도 진실이고, 네 편에서 하는 것은 진실도 거짓말이라는 것이 진영논리다. ‘검수완박’ 법안통과를 위해 민주당에서 무소속으로 위장탈당을 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민형배의원 - 그가 민주당 이재명의원의 광주 방문에 동행하고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후보를 지원했는데 그러면 위장탈당이 아니라고 하는 민형배 의원과 위장탈당이라고 하는 국민의 힘, 어느 쪽이 거짓말일까?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다스’ 소유를 강력 부인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 - 그러나 13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이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의 소유이고 따라서 자금횡령죄를 인정한다며 대법원이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했는데 그럼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이 전 대통령일까, 대법원일까. 진영논리에 의하지 않고, 흑을 흑이라 하고, 백을 백이라 하는 날 우리 정치는 신뢰의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준석 대표는 주연인가, 조연인가

최근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브로커>가 계속 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영화 평론가들은 조연배우 강동원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베이비 박스에서 일하는 동수역을 맡은 강동원의 연기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주제를 잘 살려 냈고 ‘발 없는 참새’라던가 ‘태어나 줘서 고마워’같은 명대사의 분위기도 100%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든 연극이든 심지어 TV연속극까지도 주연 못지않게 조연 배우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TV 일일연속극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 TBC(동양방송)의 ‘아씨’ 역시 조연 배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TBC는 삼성의 이병철회장이 설립했다가 1980년 전두환 정권 때 KBS와 강제 통합됐는데 1971년 연속극 ‘아씨’는 방송사에 길이 남을 히트를 기록했다. 아씨의 친정 어머니역을 맡았던 김용림, 진산댁 역의 여운계 등 조연들이 드라마를 살렸다는 것인데 이 드라마가 방영될 저녁 시간대에는 서울 거리가 한산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특히 이병철회장이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고 조연 배우를 중요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데 사실 오늘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것도 이와 같은 조연 배우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정치 역시 주연 못지않게 조연이 잘 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집권당이 된 국민의 힘을 보면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헷갈리게 한다. 분명 당 대표는 이준석이고 그가 주연 배우다. 그런데 다르게 보면 소위 ‘윤핵관’이 주연 같고 이준석 대표는 조연처럼 보인다. 심지어 당 최고회의에서 배현진 의원이 이 대표를 몰아붙이기도 하여 이에 발끈한 이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가 하면 악수를 청하는 배현진 의원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어린이 소꿉놀이처럼 유치한 장면을 보아야 하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런 볼썽 사나운 모습에 국민이 실망하면 그 화살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다. 이 대표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일까. 국회 0선이라는 경력 때문일까. 오히려 그것이 더 강점일 수 있는데 차기 당권을 노리는 안철수 의원을 비롯 장재원 의원 등 반 이준석의 전선(戰線)만 넓히고 있다. 보다 못해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고위원과 당 대표는 경쟁관계가 아니라고 경고를 했다. 배현진 의원을 정치에 발탁한 사람이 홍준표 시장임에도 이런 경고를 날린 것은 그만큼 당 내 소란이 민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준석-배현진 실랑이도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 헷갈리게 하는 사례 중 하나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소위 윤핵관 측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최재형 의원(前 감사원장)을 위원장으로 출발시킨 당 혁신위원회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측도 있다. 이것을 통해 차기 공천 문제 등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도 주연인지, 조연인지 안개 속을 걷고 있는 이준석 대표- 거기에다 ‘성상납’ 혐의로 당 윤리위원회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이준석 대표, 우리 정당사에 처음 경험하는 이 사태는 그 자신이 자초한 것인가. 아니면 성숙하지 못한 우리 정치문화가 만들어 낸 것인가.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그래도 박지현을 변호한다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 지도부는 총사퇴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박지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도 87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대표는 물러났지만 여진이 그치질 않고 있다. 강성 민주당은 박 대표가 선거 막판 당의 쇄신을 요구하고 당내 문제를 사과한 것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식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 사실 그의 행동이 시기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이는 면이 있기는 하다. 민주당 국회의원 64%가 586세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 단체장 17명 후보 가운데 50%가 역시 586세대였다. 더욱이 민주당을 이끄는 지도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 대표, 우상호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 등등, 철벽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 586세대다. 여기다 대고‘586 물러가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그것도 이제 갓 26세의 여성 당직자가 단신으로 돌을 던진 것은 놀랄 일이다. 그는 겁 없이 그렇게 돌을 던졌다. 마치 이스라엘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골리앗에게 돌을 던져 이마를 맞힘으로써 그 거인을 쓰러뜨린 고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블리셋의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한 골리앗은 “꼬맹이가 겁도 없이 덤비느냐”고 다윗을 조롱했지만 결국 그는 다윗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고 쓰러졌으며 블리셋 군대는 장수를 잃고 당황해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박지현 대표는 다윗처럼 586 거물들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586세대의 퇴진을 요구한 지 3일 만에 자신의 돌팔매질을 사과했으며 특히 윤호중 대표에게는 더욱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일단 사태는 봉합됐다. 이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3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고도 했고 강성 당원들은 대표직을 떠나라는 등 1만개의 문자 폭탄을 퍼붓기도 했다. 그렇게 뭇매를 맞는 박 대표를 위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정치인이기 앞서 용기 있는 여성이다. 군함처럼 거대한 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지금까지 감히 누가 그것을 깨자고 주장했던가. 하지만 박 대표는 ‘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청산하고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586세대들의 퇴진을 말했다.(그 이후 586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참 대단한 도전이다. 비록 늦게라도 민주당이 그의 제안을 수용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특히 박 대표의 주장 가운데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 팬덤 정치의 종식이다. 논리도 합리적 명분도 없이 이념의 틀에 갇혀 군대처럼 움직이는 팬덤 정치는 지금도 조국 전법무장관의 사태를 일컫는 소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으며, ‘검수완박’에서 보듯 강성 당원들에 의해 폭주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성 비위사건에도 내로남불의 윤리적 오만함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른바 반지성주의. 바로 이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박 대표의 용기 있는 발언에 공감을 했던 것. 비록 그 목소리가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해도 그 용기마저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좌절하지 말고 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미국의 존F.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명저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진정한 용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라 했고,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용기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 했다. 26세의 앳된 박지현 대표가 순수하게 바라본 정치의 음습한 내면에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산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사권도 없는 식물 총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권, 특히 조국·추미애·박범계 등 전 법무장관들과 맞서 싸우던 윤석열은 오늘 0시를 기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신분이 확 바뀌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그의 이미지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도 하고 핍박도 받던 검찰총장으로서의 ‘윤석열’이 강하게 남아 있다.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것은 위와 같은 이미지에 국민들이 공감했던 때문이며 그래서 결국 총장의 옷을 벗은 지 1년도 못 돼 대통령까지 오른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일생을 다 바쳐도 달성하기 어려운 정상을 단숨에 올라 선 것. 그러니 그 이미지가 쉽게 지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나 당선인의 신분이 되고서 보여준 그의 움직임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인 신분 때와 비교하면 세련되지 못했고 어설프기까지 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선택 과정에서 보여 준 혼선, 대통령 관저를 외무장관 공관으로 결정하기까지의 잡음, ‘검수완박’의 여야 합의, 그리고 파기 과정의 명쾌하지 못한 정치적 소통의 문제점 등....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마저 불안하게 비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양심있는 사회단체와 대법원까지도 반대하는 ‘검수완박’에 대해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지방의회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계속 이어질 텐데 과연 성숙한 솜씨로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가 되풀이 되면 이탈리아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추락한 안토니오 디피에트로 검사처럼 될 수도 있다. 피에트로 검사는 42세 때인 1992년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태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대청소를 실시했다. 이른 바 ‘깨끗한 손’(mani pulite) 운동. 상하의원 945명 중 321명을 수사했고, 619명에게는 국회의원이 갖는 면책특권을 정지시켰으며 현직 총리가 망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집권당의 실세 의원을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마약과 밀수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암살 위협을 받음은 물론 집권당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투쟁했다. 그런 가운데 부패와 관련된 정당 4개가 해산됐고 대기업 총수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자 그는 1994년 검사의 옷을 벗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 유럽 의회 의원을 거쳐 입각도 하고 상원의원에 진출했으며 마침내 그 자신이 ‘가치의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가 만든 새 정당에 큰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점점 열기가 식어 갔다. 피에트로가 검사로서 한창 국민 지지를 받을 때는 T셔츠나 맥주 컵에 그의 초상화를 그려 넣은 것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는 그만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만든 정당은 집권을 못하고 야당으로만 전전하는 등, 검사로서는 영웅이었지만 정치인으로는 실패를 한 셈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 너무 험난하다. 북한 김정은은 공공연히 핵위협을 노골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안보환경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값의 폭등, 그것이 미치는 국내 물가 상승은 국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 노사 갈등, 빈부격차의 심화... 문제는 끝이 없다. 그런데다 취임 초에 누리는 허니문도 없이 민주당은 다수 원내 의석을 무기로 밤낮 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부딪쳤던 개인적인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인가?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그 정부가 땀과 눈물, 그 열정을 쏟으면 못 넘을 산이 없다. 처칠이 2차 대전 때 영국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눈물과 땀이었다. 국민들의 힘이 되어 줄 땀과 눈물-그것이 최선의 무기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여의도에 펼쳐질 ‘내로남불’ 코미디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온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들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을 던져 죽이도록 돼 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예수님 입에서 “돌을 던져 죽여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않고 땅에다 무엇인가 글씨만 썼다. 유대인들이 계속 예수를 다그치자 이렇게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리고 또 다시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돌아갔다. 성경에 나오는 매우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가 땅에 쓴 글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정말 무엇을 썼을까? 이에 대해 요즘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빗대 ‘내로남불’이라 썼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예수님이 보기에도 한국 정치의 큰 병폐가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우리나라의 ‘김치’가 고유명사가 됐듯 이미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고유명사화 되고 있다. 지난해 4월7일 NYT(뉴욕타임스)가 naeronambul로 표기해 한국에서의 그 의미를 소개한 바 있고, 여타 해외 언론도 그렇게 뒤를 따르고 있는 실정.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측이 ‘내로남불’을 선거구호로 내걸자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중앙선관위가 내로남불 이미지를 민주당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정말 문재인 정부 초기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며 민주당은 도덕적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에 거칠 것이 없었다. 가령 2017년 11월1일,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 주사파니, 전대협이니 하며 가시 돋은 질의를 하자 ‘그게 질의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는데, 그만큼 선민의식이 팽배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사태를 거듭하면서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내로남불’의 세상이 돼 마침내 정권을 놓치고 말았다. 심지어 야당시절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옷값과 특활비 공개를 강력히 요구했었는데 지금은 김정숙 여사가 야당으로부터 옷값과 특활비 문제로 공격을 당하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등 ‘5대 인사원칙’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고위공직자 원천배제의 잣대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11월에는 음주운전 등을 추가해 ‘7대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이 잣대를 잘 지켰을까? 조명래 환경부장관 등이 위장전입으로, 김연철 통일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는 등 의혹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국회청문회의 야당 동의 없이 34명의 장관급 임명을 강행했다. 청문회 제도가 시행된 이래 역대 정부 중 최대의 기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했던 ‘7대 기준’을 잣대로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의힘 측에서는 ‘완전한 코미디 내로남불’이라고 비아냥댔다. 이처럼 코미디 같은 정치가 계속되니 정치인들이 존경을 못 받는 것 아닐까. ‘내로남불’로 얼룩진 ‘7대 기준’이 코미디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 이런 판에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가 86세대 은퇴를 주장했는데 갑자기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하자 같은 당내에서까지 ‘내로남불’이라고 반발하는 소리가 높다. 과연 여의도의 봄은 ‘내로남불’로 만개한 것 같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링컨은 人事로 미국을 통합시켰다

시골뜨기, 꺽다리 촌놈, 원숭이.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렇게 그의 정적(政敵)들은 링컨을 무시했고 특히 스탠턴 같은 사람은 앞장서 링컨을 조롱하고 반대했다. 팔이 긴 원숭이라는 모욕적 비난을 했던 사람도 스탠턴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내각을 구성할 때 자기를 조롱하고 반대했던 스탠턴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링컨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통합에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파격적 인사를 한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 된 스탠턴은 링컨에 충성하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 링컨의 인사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링컨은 통합을 매우 중요시 했다. 러시아 영토였던 알래스카를 미국의 영토로 만든 데에도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이 숨어 있다.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알래스카를 사들인 윌리엄 스워드 국무장관을 국무장관에 임명한 대통령도 링컨이었고, 그가 암살되자 부통령이었던 존슨이 대통령에 오르면서 그대로 유임됐다. 특히 스워드는 대통령 지명전 때 링컨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는데도 그를 포용해 국무장관에 임명했고 스워드 역시 알래스카 매입 등 미국에 공헌을 했다. 남북전쟁도 결국 미국의 통합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다. 세계 2차 대전이나 월남전, 6202725 한국전, 그리고 최근의 아프간 전쟁에서 죽은 미군의 숫자보다도 많은 60만 명이 목숨을 바친 남북 전쟁이 아닌가. 이렇게 엄청난 전사자를 내면서 링컨이 이 전쟁을 밀고 나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남북전쟁 하면 노예해방을 생각한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시작하면서도, 그리고 전쟁 중에도 노예해방을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부 주를 점령한 북군 사령관들이 노예를 해방시킨다고 발표하자 그들을 엄하게 경고했다. 한 신문에서 이와 같은 링컨의 자세를 비판했는데 링컨은 그 신문 편집인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전쟁을 하는 것은 미국의 연방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노예해방을 않고도 연방이 유지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남북전쟁의 목적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하나 된 미국을 위한 것이요, 요즘 우리 대통령 선거 때 자주 등장했던 국민통합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 통합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링컨의 정신은 지금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 갈라질대로 갈라져 심한 갈등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 물과 기름 같은 이념의 분열은 초등학교 교실에까지 번져 있고 세대, 젠더, 노동, 문화 예술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이렇게 나라가 온통 분열의 열병에 걸려 몸살을 앓은 때가 일찍이 있었던가.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는 외국 언론이 역대 최악의 선거 또는 비호감들의 선거라고 혹평할 정도로 분열을 넘어 증오의 선거가 됐던 만큼 앞으로의 정국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의 벽을 무난히 넘을 수 있을지, 장관의 국회 청문회는 또 얼마나 시끄러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회 청문회 동의 없이도 23명이나 장관에 임명된 독선을 되풀이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야 선거기간 내내 약속했던 국민통합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힘겹게 정권교체를 이룩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야말로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정파와 이념, 세대, 성별을 초월한 정부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달 내가 지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정치보복을 할 수 있다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한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도 대장동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인 발언이라는 평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후보는 그 다음 날도 대한민국을 미래로 가는 희망찬 나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복수혈전이 펼쳐지는 과거로 갈 것이냐라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복수혈전이니 감옥이니 하는 말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듣기에도 거북한 말이다. 그런데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통령까지 나서 분노를 표시하는 등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하질 않다. 우리 조선 당쟁사가 복수혈전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갑자사화가 대표적 케이스. 1478년 봄 전국에 흙비가 내려 성종 임금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고 어전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사치를 금하고 술을 마시지 않게 하자고 아뢰었으나 비서실장격인 도승지 임사홍만 술을 금하자는 것에 반대했다. 흙비는 재해일 뿐이며 제사가 많은 궁궐에서 어떻게 술을 금하느냐는 것이었다. 급기야 임사홍은 그의 돌출발언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을 간 임사홍은 그날부터 복수혈전의 칼을 갈았다. 귀양살이에서 복귀한 임사홍은 아들 둘을 임금의 사위로 삼는데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성종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연산군이 등극하자 임사홍은 연산군과 밀착해 권력의 날개를 달았다. 연산군의 최측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은 임사홍은 자신을 귀양 보냈던 정적들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결행한다. 1504년에 벌어진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연산군의 생모가 참소 당해 죽은 사실을 연산군에게 고해바침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보복이 일어난 것.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 죽음에 관련된 선비들을 모두 죽이고 이미 죽은 사람은 그 무덤까지 파헤쳐 유골에 칼질을 하는 등 공포분위기가 계속됐다. 임사홍은 연산군을 부추겨 과거 흙비사건으로 자신을 귀양 보냈던 반대파들 역시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등 철저한 보복을 감행했다. 그렇게 권력은 가슴에 맺혔던 흙비의 한도 깨끗이 풀어 주었다. 그야말로 권력의 맛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정의와 공정을 상실했을 때는 여지없이 뒤집어 엎는 속성이 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의 폭정이 종말을 고하자 임사홍 역시 자신이 정적에게 했던 것처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욕 보였다. 이와 같은 보복의 정치가 갑자사회에 끝나지 않고 조선왕조가 망할 때 까지 계속된 것이 부끄럽게도 우리 역사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선판국이 심상치가 않다. 불나비들이 죽는 줄 모르고 불을 향해 돌진하듯, 선거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다. 치졸한 술수가 다 동원되고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진흙탕 싸움을 한다. 마치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다. 그리고 마침내 지면 감옥 갈 것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결국 이와 같은 현상은 선거 자체를 혐오스럽게 하고 있다. 이렇게 추하게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인 끝에 승패가 결정나면 어느 쪽이든 흔쾌히 승복할 것인가? 그 앙금이 보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며칠 전 하루 동안에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MBC를 대검에 고발하는 등 3건의 고소 고발이 있었고, 민주당도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제보자 죽음이 이 후보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데 대해 허위사실유포로 서울지검에 고발하는 등 고발 고소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선거후의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된 이번 대통령선거 보도관련 이의신청 또한 1월말 현재 64건이나 되고 있음도 선거후 분위기를 걱정하게 한다. 정말 선거가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축제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허망한 일일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그러면 神父님이 출마하세요?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이는 10년에 걸친 트로이와의 전쟁을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木馬) 계략으로 승리를 거두지만 멘토라는 교육 용어를 탄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교육이 걱정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자식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춘 젊은이로 제대로 성장할 것인가. 그래서 그는 그의 친구 멘토에게 아들 교육을 부탁하고 전장으로 나간다. 멘토는 아버지를 대신해 교육을 했는데 때로는 엄격하게 가르치고 때로는 마음 터놓고 친구처럼 깊은 정을 쌓아 갔다. 전쟁에서 돌아온 오디세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멘토 덕분에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에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충실한 인생 상담자, 또는 반려자나 존경하는 선배를 멘토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을 항복시키고 6ㆍ25 한국전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48세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다. 육군 중장으로 유럽, 필리핀 등 세계를 누빌 때여서 자식 교육에 소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수시로 암송했다고 한다.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승리에 겸손하며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웃을 줄 알고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사람 미래를 향해 전진하되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 이렇듯 집을 떠나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영웅일지라도 자식 교육에 신경을 쏟았다. 그런 게 군인이 아니어도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너무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자식 교육에 소홀할 수 있다. 심지어 전국을 누비며 부흥설교를 하러 다니는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 탈선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 확장에 몰두하던 대기업 총수의 자녀가 마약이나 도박에 빠지는 일도 있다.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 차남 홍업, 3남 홍걸 씨 등 3형제 모두가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등 아버지들의 명예를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대권(大權) 문 앞까지 갔다가 자식문제로 낙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그리고 대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힘 장재원 의원등등. 그리고 지금은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아들 문제로 난처한 상황에 있다. 경기 남부경찰은 그의 장남 도박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고 이재명 후보는 직접 국민 앞에 깊은 사과를 했다. 국민의 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아들은 아니지만, 부인의 허위 경력문제로 시끄럽다. 결국 이준석 당 대표와 조수진 의원의 이른바 항명 파동도 후보 부인의 문제에 대한 대처방식이 충돌을 빚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다 지난주 윤석열 후보의 장모가 사문서위조혐의로 재판을 받고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이야기가 자식도 없고 처가도 없는 신부님이나 스님이 대통령에 출마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신부님이나 스님이 정치를 잘할 것인가? 우리 한국 정치의 현실을 말해 주는 뼈아픈 농담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조국의 江’과 ‘돌아오지 않는 江’

미국 서부 웅장한 로키 산맥의 긴 협곡에는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이라 불리는 강이 있다. 물살이 빠르고 험해 당시 서부 개척자들이 뗏목을 이용해 이 강을 건너다 많은 희생을 당해서 생겨난 별명이다. 1955년 관능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를린 먼로와 로버츠 미첨이 주연했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이 대단한 인기를 몰았는데 바로 그 배경이 되어준 강이다.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도 그 주제가는 라디오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먼로가 직접 부른 주제가를 들으면 그 위험한 물길에서 뗏목을 부둥켜안고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국 주인공들은 그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사랑도 이루는 해피엔딩.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조국의 강이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처럼 뗏목까지 등장하고 있다. 조국 전(前)법무장관이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저는 강이 아니라 뗏목에 불과하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정말 그는 강이 아니라 뗏목일까? 이 문제를 처음 꺼낸 것은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한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 중에 큰 것은 결국 조국의 강을 확실히 건넜느냐라고 언급하면서였다. 그러자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역시 조국 사태에 사과를 했고 특히 12월2일 방송기자클럽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민주당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이에 반발해 조국의 강은 실체가 없으며 쥴리의 강만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바닥까지 긁어내고 다 파내도 표창장 한 장만 남았다고도 했다. 표창장 하나. 추 전 장관이 인식하는 표창장 하나의 의미와 국민들이 인식하는 표창장 하나의 의미에는 큰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추 전장관은 모르는 것일까, 알고도 무시하는 것일까? 사실 조국의 강은 조국 가족의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을 큰 강으로 만든 데는 내로남불의 사건들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소위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사건은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사건이 엄청나게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데도 민주당 소속을 무소속으로 자리만 옮겼을 뿐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다. 윤희숙 의원이 아버지로 인해 발생한 부동산투기 의혹임에도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것과는 정반대다. 재벌의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경제 정의를 외쳤던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자신이 앞장서 임대차 3법을 만들었는데도 자신의 청담동 아파트를 법 시행 이틀 전 141%나 기습 인상시킨 사실이 밝혀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내로남불이 계속되자 이들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강을 이루었고 그것이 마침내 조국의 강에 더해져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처럼 위험한 강이 됐다. 이 강물을 더욱 흐려 놓은 것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사건들이다. 여성의 인권과 공작자 윤리를 강력히 부르짖던 이들의 두 얼굴, 국민들을 얼마나 실망스럽게 했을까? 따라서 조국 전 장관은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넘어 들판을 향해 신속히 진군하고 있다고 하면서 뗏목 고치는 일은 저와 제 가족, 소수의 동지들 몫이라고 했지만 뗏목 고치는 것으로는 이 강은 건널 수 없을 것이다. 내로남불이 바로 큰 강이기 때문이다. 뗏목이나 고치는 정도로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고 말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회창 대선 패배의 교훈

우리나라 바다에서 가장 물의 흐름이 빠르고 험한 곳이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이라고 부르는 명량해협(鳴梁海峽)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어느 때 조류가 빠르고, 어느 때 물길이 바뀌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거북선으로 왜선 133척을 맞아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것도 명량해협의 물길이 변하는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치에서도, 특히 선거에서 때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협의 조류, 그 바다의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해 승리한 것처럼 선거도 민심의 흐름, 그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회창의 대권실패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그의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권 반열에 올려놓았던 대쪽 이미지와 3金청산이 족쇄가 됐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그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57만표라는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불과 2.3%p 차이, 그러니까 이회창 후보가 30만표만 더 얻었으면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이 얇은 벽을 그는 뚫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을까? 대통령선거에서 2.3%p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그가 JP(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JP를 잡았으면 충청권에서 적어도 30만표 이상은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투표 전에 이미 이와 같은 낌새를 느낀 참모들이 JP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건의를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그의 정치철학이었던 3金청산이라는 것이 제동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제동을 건 또 하나의 사유도 있다. JP가 이회창과 손잡으면 충청권의 정치적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K씨가 자리를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다 이회창은 투표 며칠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JP를 만나러 청구동 JP자택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JP자택에 거의 도착할 무렵, K씨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만약 JP를 만나면 자신은 탈당하겠다는 전화였다. 결국 이회창은 JP를 포기하고 차를 되돌렸다. 그리고 JP가 끌어 모을 수 있는 30만표는 노무현 후보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JP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처럼 JP와 이회창이 손을 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성사 직전 서로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일까? 아니면 참모들의 판단 착오일까? 이회창은 박근혜 의원(후에 대통령)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문제로도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박근혜를 영입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잃은 후였다. 2007년 12월, 그가 세 번이나 삼성동 박근혜 의원 집을 찾아갔으나 면담조차 거부당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회창은 대권도전에 실패하는 쓴잔을 마셨다. 역시 때(時)를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말이 수긍가는 대목이다. 어쩌면 지금 대권주자들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걸 주저하고 있는지 모른다. 후보자 본인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측근 참모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임박해서 손을 내밀면 그때는 이미 놓친 것이고 과거 이회창처럼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후보는 아니지만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안철수를 따돌림 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좋은 자세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승자와 패자 표차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포용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정말, 지도자가 없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 역대 미 대통령들이 당파를 초월해 멘토 역할을 해 준 인물이 있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1918-2018)다. 대통령들은 전쟁이나 국가의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를 불러 조언을 들었고 그러면 그래함 목사는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고 함께 기도했다. 그래함 목사는 전쟁이 있는 곳에도 달려가 군인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힘을 줬다. 한국 전쟁 때도 그랬다. 한번은 야전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상에 엎드려 있는 병사가 그래함 목사를 바로 보기 위해 힘들게 몸을 움직이자 아니, 그대로 누워 있으시오!하고는 자신이 그 병사의 병상 밑으로 누워 기도를 했다. 그러자 그래함 목사의 얼굴에 병사가 흘리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목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이런 모습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를 정신적 멘토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의 혼란, 6ㆍ25전란 후의 절망과 굶주림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정신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불교의 성철 스님, 청담 스님, 송월주 스님, 법정스님, 기독교의 한경직 목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친 함석헌 선생, 그리고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1971년 12월24일 자정, 서울명동성당에서는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KBS TV는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미사를 진행하던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 할지 모른다고 당시 정치 사회 전반의 부패를 강하게 경고했다. 혁명까지 거론할 정도로 폭탄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예기치 못한 발언이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자 청와대는 당황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많은 희생자가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이 전두환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두환 면전에서 그만 멈추라고 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이에 대한 대답은 않고 국방부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1979년 6월 항쟁 시에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 대학생들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진입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먼저 나를 밟고 가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 감동을 줬다. 판자촌 철거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위로했다. 한경직 목사나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과 돈을 외면했고 청빈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성철 스님의 누더기 옷도 유명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그리고 한경직 목사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품이라고는 오래된 낡은 옷과 구두 한 켤레, 안경이 감동적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안구마저 시력 장애자에게 기증하고 떠났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정신적 지도가 없다. 정치가 이렇게 혼탁하고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부패라고 하는 성남의 대장지구 개발 게이트가 터져도 나서 주는 지도자가 없다. 목소리도, 촛불도 없다. 그러니 공정과 정의는 어디서 찾을까? 교파, 종파의 지도자는 있어도 통합의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하긴 100세 노교수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를 했다가 젊은 변호사로부터 면박을 당하는 세상이니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이 혼탁한 세상을 비출 지도자를 고대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TV토론이 대통령 만든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이 TV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60년 9월26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TV토론이 있던 날, 민주당 후보 케네디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에 검정 정장,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얼굴에 메이크업까지 하는 등 젊고 활력 넘치는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때만 해도 TV가 컬러가 아닌 흑백이어서 그에 맞는 이미지 연출에 신경을 썼는데 반대로 공화당 닉슨 후보(당시 현직 부통령)는 이런 것에 소홀했다. 그런데다 닉슨은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을 막 끝낸 상태여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얼굴 화장도 거부하고 맨얼굴로 TV토론장에 나타났다. 사실 닉슨은 현직 부통령으로 인지도가 높고 이미 모스크바에서 당시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와의 그 유명한 부엌 논쟁으로 토론 솜씨를 세계에 과시한 만큼 케네디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TV토론이 시작되자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됐다. 닉슨은 계속 얼굴에 땀을 흘려 피곤한 모습에다 얼굴빛은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해 창백해 보였다. 반대로 케네디는 아일랜드 이민 후손이어서 특유한 영어 발음에 유창한 언변으로 닉슨을 공격, 미국을 이끌 지도자로서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 이 TV를 보고 미국의 중도층이 케네디로 돌아섰고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가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케네디는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TV가 없었으면 케네디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많은 나라들이 선거에서 TV토론을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으로 활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선두 주자인 윤석열 후보 측이 토론에 소극적이라며 역대 선거에서 토론실력을 보여 줬던 후보들이 공격했고, 지난달 25일에 있었던 후보들 비전 발표회를 초등학교 학예회 같다고 비웃는 후보도 있었다. 심지어 TV토론이 겁나면 대통령 출마도 그만둬라고까지 몰아세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민의힘도 민주당처럼 치열한 토론의 무대가 열렸으며 날 선 검증과 공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 후보 캠프에서는 토론 준비에 올인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을 초청해 과외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TV토론이 대통령을 만드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것일까? 듣기에 달콤한 언변으로 유권자들을 솔깃하게 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후벼 파는 공격은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지를 벗을까요?와 같은 저급한 용어, 배신자, 개XX 같은 섬뜩한 독설은 유권자들을 흥분시킬 것이다. 얼굴의 주름을 감추고 눈썹을 짙게 하는 등 분장은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얼마나 표로 연결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제 유권자들의 의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수없이 있었던 TV토론을 통해 TV화면 뒤에 가려진 후보자의 진실을 유권자들은 판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멋진 말도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경험한 국민은 이제 그 연출된 말의 향연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TV토론이 선거 참고서는 될지언정 대통령을 만드는 요술방망이는 아님을 후보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공짜 점심은 없다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은 사실 우리 역사상 복지행정의 선구자다.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도 그랬지만 특히 충청도 아산 현감으로 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것이 떠돌아다니는 걸인들을 한 곳에 몰아 수용하는 걸인청을 만든 것이다. 조선 중엽, 이 땅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는 백성이 많았다. 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걸인청을 만들고 정부 보유미를 풀어 굶어 죽는 백성이 없게 했다. 그러나 공짜로 먹여주는 대신 가마니 짜기, 염전에서 소금 만들기 등 생산적 작업을 하게 했다. 복지행정의 혁신적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지함의 복지정책에 심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 현감을 도와 일해야 하는 아전들의 불만이 컸다. 모든 아전들이 누추한 걸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지함이 갑자기 죽게 된 것도 이런 복지행정에 반발하는 아전들의 흉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이지함이 지네를 먹었다. 밤을 먹어야 하는데 이지함에 불만이 많았던 아전이 밤같이 생긴 버드나무를 깎아 주자 그걸 먹고 그만 지네의 독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국가의 존립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민이 모두 굶지 않고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며 주택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른바 복지다. 결국 정치의 기본도 여기에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정권의 방편으로 변질되는 것이 문제다. 최근 한 자치단체장이 초등학생들에게 매월 2만원씩 용돈을 지급하겠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관내 어린이들에게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것인데 그 단체장은 이렇게 해서 어릴 때부터 지역 사랑정신과 경제교육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연간 10억원을 세금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계속됐다.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복지국가라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용돈까지 주는 나라가 있느냐는 소리도 나왔다. 결국 지방의회에서 부결됐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곳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서 바로 이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선거가 겹쳐 있기 때문에 경쟁이라도 하듯 복지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이 난무할 수 있다. 허경영씨가 주장했던 연애수당 30만원 지급이라든지, 대학 진학하지 못한 청년에게 1천만원 지급 같은 공약이 나올지 모른다. 이런 허망한 선심성 공약은 젊은 세대 바람에 편승해 젊은 층을 향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의 의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캠퍼스에 전등을 꺼주고 전기료보다 몇 배 되는 인건비를 받는 노인들도 이 같은 일들이 결국 세금으로 국민 부담을 키우는 것이고 자식들에게 빚으로 남겨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국민의 눈높이는 자꾸만 높아지는 것이다. 한 때 공짜라면 양잿물(독약)도 좋다는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국민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수준에까지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선거에 소환되는 ‘노벨 경제학상’

미국에서 오랫동안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언론계 인사와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교육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미국에서는 학교 대표로 수학 경시대회에까지 나갈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는데 한국에 와서는 아주 엉망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을 중시하는 미국식 교육방법과 해답을 중시하는 한국식 교육내용의 차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1등이 한국에서도 1등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프린스턴 대학을 다니다 창고 하나를 빌려 창업을 했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그런 과정을 거쳐 창업했어도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회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정보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정부의 규제에 갇혀 있는 한국에서는 학원 강사나 카센터 사장에 머물렀으리라 예측하기도 한다. 나라와 나라의 문화뿐 아니라 학문과 현실 사이에도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 노벨상을 받은 마이런 숄스와 로버트 매튜 두 사람이 노벨상금과 개인 재산을 투입, LTCM이라는 투자금융회사를 세웠었다. 많은 사람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MIT 등, 명문대 교수여서 이들 투자금융회사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이들이 세운 회사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과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1천2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되었고, 이밖에 악재에 시달리다 파산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렇듯 경제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도 예측할 수 없는 이론과 현실에 괴리가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벨 경제학 수상자가 우리나라에 소환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자신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에 대해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정세균 전 총리 등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지사가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브히지트 배너지(Abhijit Banerjee)와 에스더 뒤플로(Esther) 이론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고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해석이 왜곡됐다, 그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용돈 수준이다 등등. 재반격을 가하면서 노벨 경제학 수상자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하긴 X-파일까지 난무하는 세상이니 자기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노벨상 수상자를 끌어들이는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의 권위까지 선거에 이용하려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씁쓸하다.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진정성과 확신에 차있다면 굳이 노벨상 수상자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노벨 경제학 수상자가 세운 회사도 망하는 법인데.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순신 사면을 상소한 정탁

충무공 이순신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97년 2월, 27일간이나 옥에 갇혀 선조 임금으로부터 혹독한 국문(鞫問)을 받는다. 선조는 충무공에 대해 불타는 질투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고 충무공에 쓰인 죄명도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임금을 업신여기고 역모를 꾀했다는 것. 제일 무거운 죄다. 특히 임금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받는 충무공을 이참에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 선조의 속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국문에 시달리며 초주검이 된 충무공은 점점 말을 잃고 흐느끼기만 했다. 선조는 왕을 속인 자는 구족(九族)을 멸(滅)하겠다. 또한 이순신의 구명을 논하는 자는 같은 무리로 처단하겠다며 대신들이나 유림에서 있을지 모를 사면운동을 단호히 차단했다. 그러나 이 위급한 운명에 처한 이순신을 살리고자 자기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인물이 나타났다. 정탁(鄭琢). 그는 왜란이 발생하자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갈 때 호종관으로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그래서 선조가 각별히 신임했고 이로 하여 좌찬성, 좌의정, 판부사 등 두루 요직을 거쳤는데도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정탁은 선조의 비위를 거슬러 화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이순신을 사면해야 할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진술해 마침내 선조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그 해 4월1일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을 하게 됐고 쑥대밭이 된 우리 수군을 다시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됐다. 만약 정탁 같은 충신의 구명 상소가 없었으면 이순신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임진왜란은 어떻게 됐을까? 사실 정탁은 이순신을 구했지만 결국 그것은 나라를 구하고 임금도 구한 참 신하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사면은 선심이 아니라 정치다. 전 세계에서 두 사람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지만 심각한 것은 지금 국제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뜨거운데 우리 반도체 최일선에 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들에 대한 사면에 대한 논쟁이 시끄럽더니 요즘은 잠잠하다. 물론 여권 인사가 사면을 이야기하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처럼 강성 친문의 문자 폭탄에 상처를 입고 사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 공감대라는 카드로 상황전개를 차단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해 보자.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음에도 대통령이 되자 전두환을 사면하도록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해 관철했다. 국민 공감대를 따지자면 그때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사면을 실현했다. 지도자는 국민 공감대를 따라 가야 하지만 때로는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 가기도 해야 한다. 특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경제 5단체, 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주지들과 종교단체, 대한 노인회 등이 사면 탄원서를 냈으니 국민 공감대의 틀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사면(赦免)은 선심(善心)이 아니라 정치(政治)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주목받는 MZ세대

북한의 2030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데 김정은이 이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장마당 세대 곧 2030세대들이 한류 등을 접하면서 외부세계에 눈을 뜨고 개인주의 풍조가 일어나 이것이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김정은은 이들의 언행과 옷차림까지도 당에서 통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은 당에서 언행과 옷차림까지도 이래라, 저래라, 통제할 수 있는지 정말 북한스러운 모습이다. 북한과는 달리 우리는 이들 2030세대를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는 긍정의 세대로 보고 있다. 1980년대 초 ~ 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 M과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총칭해 MZ세대라고 하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이번 4ㆍ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파워를 보여줌으로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비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파워만이 아니라 이들 MZ세대는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들 세대는 어려서부터 모바일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디지털 세상에 익숙해 모든 분야에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재테크시장의 큰 손이 돼 6개 증권사의 신규 계좌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심지어 가상화폐 투자자의 60%가 바로 이들 MZ세대라는 것이다. 개인 간 금융거래를 말하는 P2P 금융이라는 낯선 이름의 플랫폼을 이용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다양한 재테크를 구사, 수익을 얻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디지털 생활이 가져다준 산물이다. 대중문화에서도 브레이브걸스처럼 오래전 발표된 곡들이 음원차트 상위를 차지하는 등 자기방식대로 재창조한다. 이처럼 MZ세대가 때로는 역주행을 하며 자기방식대로의 재창조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문제도 큰 작용을 한다. 치솟는 아파트값과 눈앞에 전개되는 온갖 불공정, 정권의 내로남불과 위선에 분노하며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개척하는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행위가 불의도 아니며 자신이 체득한 정보력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떳떳하고 당당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분노와 당당함이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투표의 결과로 표출되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도 할 말은 거침없이 토해내는 풍토를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의 MZ세대를 정치권에서는 단순히 표 관리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 못 판단을 한 것이다. 특히 민주당 의원 중에는 이번 선거 때 MZ세대의 대거 이탈을 달래기 위해 군복무 가산점 부활과 여성도 군사훈련을 하게 하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MZ세대가 안은 본질적 문제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이 역시 이들 세대에게는 또 하나의 위선으로 보일 뿐이다. 더 진솔하게 표 계산하지 말고 이들 세대의 본질적 문제에 파고드는 자세가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패가망신’ 큰 소리의 허상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이 새로 왔다. 그는 전임 관리소장과 차별화하고자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시도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단지 내 도로의 불법주차를 단속한다며 불법주차 강력 단속이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 놓았는데 강력 단속이라는 글자는 빨간 글씨로 크게 써서 눈에 잘 띄었다. 단속이면 그냥 단속이지 강력한 단속은 또 무엇일까? 주민들은 주목했다. 결국 강력 단속이란 자동차 앞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단지 내 주차위반은 여전했고 강력단속 현수막만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었다. 그는 또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강력 단속하겠다고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여 놓는 등 그렇게 강력 한 조치들을 좋아했다. 관리소장 직책을 완장을 찬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어느 날 관리소장이 경로당을 방문했는데 그의 승용차를 인도에다 불법 주차한 사실이 드러났다. 주민이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아파트 홈페이지에 올리자 주민들의 여론이 싸늘하게 변해 갔다. 그렇게 강력 단속 현수막까지 걸고 야단이더니 정작 자신이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결국 관리소장은 주민들과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쫓겨나다시피 물러갔다. 요즘 LH 부동산 투기 쇼크가 터지자 부동산 투기 강력 단속이니 공직자가 투기로 적발되면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겠다는 등 그 용어들이 살벌하게 쏟아지고 있다. 재산 몰수, 토착 왜구, 소급입법이라는 용어도 등장하더니 마침내 9급 말단 공무원까지도 재산 등록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앞서 가다 보면 실제로 뒤는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람들이 흥분해 다툼이 벌어졌을 때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잘한다. 말 그대로 죽이는 행동을 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무서운 사람은 그런 험악한 말을 하지 않고 얼굴에 표정도 짓지 않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정책을 다뤘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차법 발효 직전, 자신의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14% 인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에 말한 강력 단속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무서운 용어들이 힘을 잃고 말았다. 법이 발효되면 5% 이상 인상할 수 없으니 발효 전 이렇게 기습 인상한 것이다. 대통령 최측근 정책 책임자의 양심이 어떻게 이랬을까. 더욱이 그는 재벌의 저승사자라는 별명과 함께 경제 정의의 전도사처럼 행세했다. 김상조 전 실장에 앞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투기 논란으로 사임했는데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나타났으니 누가 이 나라가 걸핏하면 내세우는 공정과 정의를 믿겠는가? 이런 가운데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처럼 임대차법 발효 20여 일을 앞두고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 인상한 사실이 밝혀져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충격적인 것은 임대차법을 발의한 장본인이 바로 박주민 의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정말 이쯤 되면 강력 단속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말들이 국민에게 먹힐까?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이 강력 단속 현수막까지 걸어 놓고 설치다 오히려 자신이 불법 주차로 자리에서 물러난 꼴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공정이니 정의니 하는 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변평섭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영화 ‘미나리’와 미국

기생충 영화가 미국을 강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미나리가 미국 영화관을 휩쓸고 있다. 한국 이민가족의 이야기가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 주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할머니로 나오는 윤여정의 연기는 할머니를 그랜드 맘이라 하지 않고 halmeny로 영어화 해 유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는지 모른다. 미국에서만 아니라 최근 영국의 BBC방송이 미나리를 크게 소개하는 등 유럽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학의 한국학연구소는 한국 영화 과정을 신설하기까지 했는데 모집 정원을 넘게 신청자가 몰려 정원을 늘렸다니 한국 영화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해준다. 미국에서의 한류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렇듯 붐을 일으킨 연예인 중에는 강남 스타일로 유명한 가수 싸이(Psy)도 빼놓을 수 없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음원 시장을 휘어잡고 있으니 가슴 뿌듯한 일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연예계만이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학 하버드 등 8개 대학을 소위 아이비리그라고 하는 데 한국학 연구소, 또는 한국학과를 둘 정도로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점점 높아 가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의 램지어 교수가 우리 위안부문제를 매춘부로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것도 이들 대학가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를 말해 주는 것이다. 같은 하버드 대학교수들까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고 나섰고, 브리검영대학교의 마크 피터슨 명예교수 등도 가세해 일본의 추한 모습이 다시 고개를 들게 한다고 비판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오히려 미국 내에서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한국의 대학들이 미국보다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미국 정치권에서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 의회 내 한국연구모임(CSGK) 공동의장으로 한국계 여성 의원 영 김(한국명 김영옥) 의원이 선출되었는데 한국 연구 모임이면서 한국계 의원이 의장에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이 모임은 한국에 대한 연구와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초당적 기구인데 처음에는 가입의원이 20여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명으로까지 늘어났다. 그러니까 미 의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우리 정부의 대북문제에 대해서 미 의회가 매우 민감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정부여당이 국회에서 통과까지 시킨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서 미 의회가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들어 청문회를 추진하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특히 이 문제에 앞장서는 공화당의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문 대통령 정권의 한국의 궤적에 관해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이와 같은 한국에 대한 관심은 미국이 중국과의 긴장을 더해 갈수록 뜨거워질 것이다. 지난달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동시에 방한한 것만 봐도 미국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다. 냉랭한 한일 관계 개선에도 미국이 적극적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한반도의 지정학적 함수와 중국 포위정책이 상호작용 때문일 것이다. 정말 미국인에게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야말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나라다. 영화를 잘 만들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음악인이 많으며, 그러면서도 북쪽에는 핵무기를 이고 있고 안에서는 대형 사건이 끊이지 않는 나라. 그래서 더 관심의 대상이 된 한국이 아닐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아름답지 않은 ‘長官의 뒷모습’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조각품 중에는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 있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작품이 유명한 것은 나신(裸身)의 뒷모습 때문이다. 등줄기에서 허리에 이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살아 움직이는 듯 생명력 있는 엉덩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구조를 다 갖췄는데 실제 조각에서도 여성으로 착각했다가 남성임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한다. 뒷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가도 있다.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페이르메르(1632-1675)는 자기 자화상을 정면이 아니라 뒷모습을 그렸는데 이처럼 뒷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린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자기 뒷모습 그림을 굉장히 사랑했다. 미술 시장에 내놓지도 않고 끝까지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뒷모습에서 예술가로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렇듯 남자건, 여자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뒷모습에는 표정도 없고 제스처도 없지만, 그 실루엣만으로도 그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연인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사랑의 밀도를 읽듯이 인간이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삶을 읽는다. 어깨가 축 늘어져 힘없이 걷는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주먹을 불끈 쥔 사람의 뒷모습은 분노, 결기, 도전 같은 강렬한 무엇을 느끼게 한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워싱턴을 떠나던 날, 긴 코트에 가죽 장갑을 끼고 헬기에 오르는 뒷모습은 언젠가 다시 워싱턴 권좌로 돌아오겠다는 오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거처할 플로리다의 리조트에 도착하자 인근 주민들이 함께 살고 싶지 않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짧은 기간만 머물기로 했다니 대통령을 했지만 역시 뒷모습이 아름답지가 않다. 검찰총장 임기를 4개월 앞두고 퇴임한 윤석열 전 총장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검찰 청사를 떠날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 하겠다고 했는데 그 해석이 분분하다. 1970년대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시장이 있었다. 군 출신의 김현옥. 길을 뚫고 다리를 놓는 등 서울을 탈바꿈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면 판자촌이건 빌딩이건 거침없이 철거하고 공사를 벌였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1970년 4월8일, 그 유명한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 눈물을 흘린 후 곧바로 사표를 던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장관에 서울시장까지 지낸 사람이 고향으로 내려가 시골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변신했는데 그 뒷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기도 했다. LH 사태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데 LH 사장이었으며 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 변창흠 건설교통부장관의 사의가 화두가 되고 있다. 대통령은 그의 사의를 수용한다면서도 그가 추진하던 주택정책 작업을 마무리 하라는, 말하자면 조건부 수용이다. 사실 그는 이 문제가 터지고 LH직원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장관 자리에 있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는 거슬렀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어정쩡하게 지키고 있어 뒷모습은 물론 옆모습마저 볼 성 사나워졌다. 처음부터 말썽 많던 그를 장관에 임명한 대통령이나 LH 사태에 분노하고 있는 국민이나 그의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시 인간은 뒷모습이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세종대왕 ‘나는 북극성이 아니다’

세종대왕과 노비출신으로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을 다룬 영화 천문은 세종대왕역의 한석규와 장영실 역의 최민식의 뜨거운 연기로 감동을 더 해 주었다. 영화 속에서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별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가리켜 저기 북극성이 전하 이십니다라고 말하자 세종대왕은 그건 아니다, 북극성은 중국 황제만이 칭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북극성이 지구의 자전축과 북쪽에서 일치하는 별로 작은 곰 자리에서 가장 빛을 발하기 때문에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그것에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내에서조차 세종대왕도 북극성에 비유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장영실이 말한 대로 그래 내가 북극성이다 했다면, 그리고 그 말을 누가 중국에 밀고했다면 큰 변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중국 황제를 비하하거나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는 등 중국에 불경한 행위를 했을 때 정적들이 중국에 밀고하여 큰 사건을 일으킨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고려 때부터 극심했는데 심지어 우리의 왕 책봉권도 중국이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가령 원(元)나라가 고려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고도 내정을 마음대로 간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왕 책봉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왕으로 인정해야 즉위할 수 있었고, 재임 중인 왕도 미덥지 않으면 바꿀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고려의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3명의 왕은 물러났다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두 번씩이나 왕의 자리에 오르는 허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충혜왕은 주색잡기에 빠졌다고 원나라 왕실에서 중국으로 압송했으며, 퇴위한 아버지 충숙왕을 다시 왕위에 앉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중국 원나라는 고려를 자기네 속국(屬國) 또는 번국(藩國) 정도로 취급하고 주권을 가진 국가 예우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려의 대표적 간신으로 꼽히는 유청신(柳淸臣) 같은 사람은 아예 고려를 원의 속령으로 편입시켜 달라고 원에 청원하기도 했고, 멀쩡히 살아있는 충숙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폐위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고려와 중국과의 관계는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그리고 구한말 일본 세력이 뻗어 오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1876년 일본의 무력시위 속에 맺어진 강화도 조약 제1조에서 일본이 조선은 자주국가 라고 선언한 것만 봐도 청의 속국처럼 되어 있는 것을 끊고 조선을 자기들 일본의 세력권으로 예속시키려는 흉계가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조선이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은 1882년, 청나라 대표 이홍장은 조약 제1조에 조선은 청의 속국이며 내정은 조선의 자주라는 조항을 넣자고 강력히 요구할 정도였다. 이에 미국 대표 슈펠트가 단호하게 거절, 속국이라는 문항은 넣지 않았다. 이렇게 불과 140년전 까지만 해도 중국은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의 DNA는 지금도 그들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가령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최고 통치자 시진핑과의 대화 중 시진핑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하여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이라면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드 문제로 관광객의 발을 묶어버리고, 김치의 종주국도 중국이라는 등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면 역시 그들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는 DNA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정말 세종대왕을 북극성에 비유하는 것조차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우리 정치인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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