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콤팩트시티 오류와 GTX 패키지 개발

최근 정부가 내놓은 8.16 주택공급대책에 보면 눈에 띄는 용어가 있어 관심있게 보았다. 바로 역세권을 중심으로 고밀 복합개발하는 ‘컴팩트시티’라는 도시개발 전문용어다. 270만호 공급 등 역대급 주택공급이라는 어마무시한 영향력에 비하면 컴팩트시티 조성은 물량으로 따지면 큰 물량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전 정부의 250만호 공급정책과의 차별성 측면에서 눈에 띄는 공급전략으로 내세우는 듯 하다. 도시개발 전문가로서 ‘컴팩트시티’라는 용어는 필자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인데, 박사논문의 근간이 컴팩트시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팩트시티는 현대도시의 문제를 도시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도시형태 사이의 관계를 통해 해결하고자 고안된 도시개발 모델 중 하나이다. 고밀 복합의 집중적인 개발을 통해 교통량을 줄여 환경 배출량을 줄이고, 직주근접으로 대중교통의 사용량을 늘리고 보행과 자전거의 활성화로 지속가능한 도시, 친환경적 도시 조성에 목적이 있다. 컴팩트시티의 필수조건으로 고밀도의 개발과 주거와 업무, 레저 용도의 복합용도개발을 통한 지역 타당성과 사업의 타당성 확보가 전제조건이다. 정부가 선보인 컴팩트시티는 기존의 지속가능한 도시로서의 컴팩트시티와 개념적으로 유사하지만 철도중심도시(TOD)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정부는 GTX 역사를 중심으로 고밀 복합을 개발하되 역사를 중심으로 300m 이내엔 복합환승과 쇼핑몰, 오피스를 배치하고, 600m 이내 지역에 중고밀 주택, 600m 이후에는 중밀도 대단지 아파트를 배치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컴팩트시티의 원형은 500m 이내에 모든 시설이 초고층 고밀 복합으로 개발되어, 주거와 업무, 쇼핑과 레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24시간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함으로써 인간의 이동을 최소화하면서 도시의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반면에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컴팩트시티는 철도를 중심에 놓고 업무, 상업, 주거의 밀도와 위계를 설정해 놓은 철도중심도시에 더 가깝다. 철도중심도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대도시와 교외도시를 철도로 연결하여 도시간 연계를 강화하여 거주자의 이동 편의를 높이는 기존 도시체계의 보완적 도시개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기존 1기, 2기, 3기 신도시들도 기존의 철도망을 중심으로 개발이 되었다는 점에서 GTX 철도망 도입으로 차별화된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본질적으로 그리 새로운 모델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컴팩트시티라는 어설픈 포장보다 GTX 추가역을 신규 택지 발굴과 연계하여 ‘GTX - 택지 패키지 개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동안 진보정부나 보수정부나 공히 주택공급을 중앙정책 주도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개발모델로 추진해 오면서 온갖 미사여구와 전문용어를 동원하여 포장만 바꾼 ‘00대책’을 계속 내놓았다. 부동산 정책이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정권의 사활이 걸리는 상황을 이제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부동산 정책과 주택공급의 지방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정부는 재정을 지원하고 공급은 지방정부가 지역에 맞게 창의적으로 수립하면서 상생의 정책으로 가길 바란다. 지방마다 다른 주택정책, 다양한 주거복지제도가 공존할 때, 국민은 주거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주택정책의 도시간 경쟁과 정부의 합리적 지원정책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지방의 노력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기고] 돌발해충 방제, 종합적 판단 중요하다

10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돌발해충’, ‘외래해충’이라는 단어는 이제 어색하지 않게 생활 속에 자리잡힌 듯하다. 2006년 우리나라에 침입한 꽃매미는 돌발해충이라는 교과서적 의미를 부각할 만큼 그 기세가 높았으며, 2009년과 2010년에 침입한 미국선녀벌레와 갈색날개매미충은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골칫거리다. 외래해충을 처음 겪다 보니 제때 방제하지 못한 데다, 겨울철 온도가 올라가기라도 하면 이 해충들의 밀도는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곧 돌발해충으로 돌변하게 된다. 마땅한 천적도 없을 테니 돌발해충의 기세는 좀처럼 밀리지 않는 것이다. 해충방제 최일선에서 바쁘게 달려온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서 돌발해충의 효율적 방제에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방제에 앞서 돌발해충의 생태적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해충도 생태적 개성을 갖고 살아가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해충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를 통해 해결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으로 유인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유입을 억제하며, 이동 습성에 맞게 방제 시기와 수단을 결정해야 한다. 수십년 전에 도입된 ‘push-pull’(소위 밀당전략)과 IPM(integrated pest management) 즉 종합적 관리 전략이 여전히 인정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둘째, 관습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방제에 임해야 한다. 외래해충도 끊임없이 국내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꽃매미의 경우 2010년 대비 현재 월동알의 부화시기는 15일 정도 빨라졌으며, 같은 시간에 낳은 알들일지라도 열흘 이상의 시간을 두고 하나씩 깨어나는 전략을 쓰면서 떼죽음을 피하고 있다. 북미가 원산지로 여름철 폭염에 불리한 미국선녀벌레는 서늘하고 먹을거리가 많으며 방제 상대적으로 소홀한 산간지로 이동해 생존율을 높인다. 따라서 월동알의 90%가 깨어나는 골든타임까지 기다렸다가 농경지 주변의 산림까지 꼼꼼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해충을 박멸이 아닌 장기적으로 관리한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188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와 함께 침입한 이세리아깍지벌레 방제를 위해 원산지인 호주로부터 천적인 베달리아무당벌레를 도입해 성공한 사례에서 보듯, 외래해충 원산지로부터 천적을 도입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천적을 이용한 생물적 방제는 무분별한 방제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을 보호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국가간 교역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더욱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과학의 발달 이면에는 외래해충의 유입과 확산 등 부정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 미국선녀벌레가 북유럽에서 선박을 타고 빠르게 국내로 유입됐고, 국내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했다는 연구 결과는 어찌 보면 예상된 결과다. 이제는 돌발해충의 생태적 특성을 더욱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이를 역공할 수 있는 소위 생태적 무기(ecological weapons)를 준비할 때다. 해충관리를 위해 캠페인과 같은 인문학적 수단으로부터 천적곤충, 유기농업자재, LED, 생명공학, 최첨단 로봇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근간은 다양한 분야와 소통하며 준비하는 인적 네트워크일 것이다. 우리가 쏘아 올린 인공위성을 해충 관리용으로 못 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영수 경기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농업연구사

[세상읽기] 능력주의 말고 놀권리

무더웠던 지난 여름 한 고등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에 온 이유를 적어달라고 하자 ‘생기부(생활기록부)기재’라 적힌 숫자가 종종 눈에 밟혔다. 황금 같은 주말에 그들을 나오게 한 힘은 대학 진학 준비에 필요한 ‘생기부 기재’인 셈이다. 토요일마저 학교를 나와야 하는 학생들과 ‘인권’을 이야기해야 하는 우리 사이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공유하며 동료 활동가와 쓴웃음을 지었다. 교육을 시작하며 한 학생에게 이후 시간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워낙 피곤해 보이던 터라 내심 집에서 잘 거란 대답을 짐작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원가요.” 힘없이 대답한 고등학생의 표정이 작년 가을 교육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얼굴과 겹쳤다. 의사가 꿈인 어린이는 학원을 마치면 밤 9시가 되야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서울대 의대 가려면 엄마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에너지 음료 광고에 나올 법한 두 학생의 얼굴에 ‘번아웃’과 부지런한 삶을 말하는 MZ 세대의 신조어 ‘갓생’이라는 단어가 처연하게 떠올랐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는 이상한 남자 ’방구뽕‘이 등장한다. 그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10시까지 ‘자물쇠반’에 갇혀 공부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컵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부르는 방구뽕은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의 ‘놀권리’를 위해 놀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변진경의 책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은 드라마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사와 인터뷰를 수반한 현실로 조명한다. 수 년간 아동의 문제를 취재해 온 변진경 기자는 10시 반이면 우르르 학원에서 나와 패스트푸드점 폐장 시간까지 입속의 음식을 욱여넣는 아이들, 학원 수업을 위해 저녁을 거르고 고카페인을 끊지 못해 위염을 앓는 아동의 삶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았다. 드라마와 책 속의 아동은 교육 현장에도 존재한다.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초등학생과 주말에도 학원을 가야 하는 고등학생. 공부와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현실은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에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상생과 연대를 배우기 전에 이기는 게임을 터득한다. 노력에 따른 좋은 결과가 나타날 거란 믿음이 공고화될수록 사람들은 현실의 결과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 각자도생은 타인을 경쟁자로 의식하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결승점을 향해 아등바등 달려가게 하는 기본값이 되었다. 능력주의를 통과한 성공은 위계를 형성한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노력해서 얻어낸 성취는 시험 외에 다른 길은 허락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들은 만들어진 불안함으로 그들의 자녀를 ’자물쇠반‘이 있는 학원으로 보낸다. 흙수저, 금수저와 같은 불평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쟁에 몰두하는 사회 속에 타인을 위한 환경은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간파한 『공정이후의 세계』저자 김정희원은 나의 안위만을 위한 돌봄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와 불공정을 감싸는 구조를 직시하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나를 돌보는 ‘급진적 돌봄’을 제안한다. ‘급진적 돌봄’은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돌보는 삶이다. 경쟁과 성공을 부추기기 위한 정책은 어떤 이유로도 아동의 쉴 권리와 놀 권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삶은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연대와 상생이 인식의 고갱이 되어 좋은 삶으로 이끄는 실천이 필요하다. 어린이가 스스로 돌보며 상생을 배울 힘은 놀이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호와 통제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린이가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삶의 여건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보호자는 어린이에게 주체적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이 돼야 한다. 각박한 세상을 거스르기 위해 어른도 노동의 수단이 아닌 자기돌봄의 주체로 자기 삶의 속도를 따라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늘도 보고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마음껏 놀고 충분한 쉼이 필요한 존재에 예외는 없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문화카페] 사유의 힘

1592년 임진년 4월, 칼로 일본 열도를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조선을 향했다. 명을 치기 위해 길을 열라는 명분은 시비였다. 부산포에 상륙한 지 20일 만에 도성이 함락됐다. 임금은 왜(倭)의 총칼에 도륙 당하는 백성을 버리고 나라 끝까지 도망을 갔다. 그해 7월, 백척간두에 선 절체절명의 시간, 조선의 존망이 걸린 해전이 한산대첩이다. 명량해전과 시제(時制)가 다를 뿐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은 같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왜(倭), 오직 혼자 결정해야 하는 절대 고독의 순간, 장군 이순신이 있었다. 모함과 시기, 파직과 백의종군, 칠흑 같이 어두운 절망적 현실과 대적했다. 판옥선에서, 수루에서, 꿈속에서도 장군의 사유는 계속됐다. 절망적 환경은 바람에도 길을 묻는다. 울돌목의 급류, 병의 목처럼 긴 견내량의 협수로, 항아리처럼 생긴 옥포만, 작은 섬들로 직조된 남도의 자연 등 장군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장군의 배가 됐다. 사유는 눈앞에 닥친 현상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보게 한다. 한산대첩의 결정적 승기인 학익진은 지독한 환경을 우군으로 승화시킨 사유의 완성이다. 여진족 기병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녹둔도 전투가 장군의 꿈에서 영화 ‘한산’의 미장센으로 소개된다. 손자병법에도 없는 진법이 학익진이다. 장군의 인문주의가 그것을 완성했다. 인문이 무엇인가? 인간의 조건을 완성하는 창의적인 인간의 가치다. 전쟁은 죽지 않고 살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게임의 법칙이다. 살신성인하는 그것이 사유의 절정, 사즉생(死則生)이다. 모든 인간은 절망의 순간 현자가 된다. 장군의 시간, 사유의 흔적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먹의 농담(濃淡)으로 남았다. 8년 전 강연 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은 몇 척의 배가 남았습니까? 파격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나는 한 척의 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내 좌표입니다. 나를 살게 한 것은 오직 사유, 사유의 힘입니다.”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나에게 한 척의 배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가 사유의 시작이다. 절망과 대적했던 내 사유의 열반이 배로 부활한다. 비로소 수백, 수만 척의 배가 된다. 사유는 추상이 아니다. 구상이고 실존이다. 모든 에너지를 작업에 쏟았다. 여분의 배가 남을 리 없다. 파격은 그냥 오지 않는다. 파격은 내적 혁명이며 내적 혁명은 사유의 꽃이다. 2022년, 조선의 귀선(龜船)은 무엇인가? 반도체다. 칩 4가 그것을 입증한다. 대만에서 반도체 산업은 호국 신기(護國神器)라 불리듯이 그 핵심은 반도체이다. 과거도 현재도 한국과 대만의 입지적 환경은 엄혹하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더 작은 것에 더 많은 것을 집적하는 일, 그것이 반도체다. 이는 절망적 환경에서 연전연승했던 위대한 장군의 부활, 사즉생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하고 경영하는 대한국인들의 사유의 힘이다. 조선의 생살 여탈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장군께서 대한민국에 묻는다. “몇 척의 배가 남았는가?” 김아타 사진작가

[사설] 한가위 보름달처럼 마음만은 풍요로운 추석이기를

다시 추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던 그 추석(秋夕)이다.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저녁이라는 뜻이다. 곧 민족 대이동도 시작될 것이다. 저마다 고향 마을 뒷산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을 생각하며 길을 재촉할 것이다. 이런 설레임도 거의 3년만이다. 지난해와 그 지난해 추석은 코로나 19 봉쇄로 추석 다운 추석을 누리지 못했다. 신라 초기부터 쇠기 시작한 추석이다. 수천년간 한민족의 유전자에 새겨진 명절이다.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송편을 빚고 조상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 추석이다. 기억에 드물도록 일찍 찾아온 추석이다. 그래서 폭염에 시달리던 무렵에는 무더위 추석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은 어김이 없어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었다. 그런데 추석 태풍도 함께 닥쳤다. 아침 뉴스에서 본 남쪽 지방의 힌남노 물난리는 추석을 맞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온통 침수된 지하 주차장에서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한꺼번에 변을 당하다니. 이들에게는 지금 추석을 맞을 겨를도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남의 일일 수 없다. 따뜻한 위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 무엇에도 앞서 태풍의 상처를 달래주고 복구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락같이 치솟는 물가도 추석 앞의 서민들을 힘들게 한다. 과일 채소 어물 등 추석 성수품들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뛰었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은 시장을 찾았다가 들었다 놓았다만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시장 상인들도 마음이 무겁긴 마찬가지다. 서울 어느 시장 가게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고 한다. “제발 많이 달라 하지 마세요. 너무 너무 힘듭니다.” 어느새 굳어진 명절증후군도 마음의 짐이다. 즐거운 명절조차도 너무 법도를 따져 온 결과다. 다행히 성균관에서 간소한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다. 대표적 명절 노동인 ‘전 부치기’는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홍동백서‘니 ‘조율이시’ 등도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군더더기 예법이라고 한다. 역대급 태풍과 온갖 힘든 일 뒤끝에 맞는 추석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가족과 이웃에 위로와 즐거움의 나눔이 소중한 올 추석이다. 명절 스트레스도 우리들 마음속에서부터 걷어내자. 찬물 한 그릇이면 어떤가. 차례상의 가짓 수보다는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모으는 게 먼저 아닌가. 잠시 SNS도, 유튜브도 끄고 지내보자. 그래서 모질고 험한 말들과는 멀어지고 가족과 이웃들에 더 다가가자. 전쟁과 폭우, 폭염과 태풍 끝에 맞는 추석이다. 그래도 모두에게 한가위 보름달처럼 마음만은 풍요로운 추석이기를.

[사설] 전액 삭감된 지역화폐 예산, 국회가 책임지고 살려내길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지역화폐 예산 항목을 아예 없앴다.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과목 설치와 국비 반영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민생을 제일 우선시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이런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와 소상공인, 국민 대부분이 반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당초 내년 예산에 지역화폐 지원 명목으로 국비 4천억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같은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전액 삭감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지역 상권과 소비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취약계층 직접 지원에 쓰는 게 우선순위로 보여 보조금을 예산안에 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보조금을 2020년 8% 지원한 뒤 2021년 6%, 올해 4%(6천53억원)로 계속 축소해 왔는데 내년엔 이마저도 없애버린 것이다. 지역화폐는 2년 반 동안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온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경제 백신’ 역할을 해왔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 정지·제한을 받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생활형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10%라는 캐시백 혜택을 앞세워 지역민들이 동네 음식점이나 식료품점, 미용실 등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소상공인 매출에 도움을 줬다. 지역화폐가 어려운 시기에 지역경제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은 여러 연구 조사에서 드러났다. 경기연구원의 조사에선 도내 소상공인 67.6%가 지역화폐로 매출액 회복·증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도 70.9%가 지역화폐 정책 전반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지역 상권과 소비가 살아나는 상황’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지원한 예산을 정상화하는 조치’라는 등의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납득이 안된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경기침체는 더 심화될 것이란 예측이다. 경기도 지역화폐 국비 지원은 사업 예산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지난해 2천187억원에서 올해 1천60억원으로 줄면서 수원, 화성 등 5개 지자체가 인센티브 비율을 10%에서 6%로 낮췄다. 국비 지원이 감소하면서 자체 부담이 가중된 데 따른 고육책이다. 이번 추석에는 한시적으로 10%로 상향했지만, 국비 지원이 끊기면 인센티브 비율을 더 낮춰야 한다. 지자체 여건에 따라 사업을 중단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역화폐는 영세업체나 지역상권에서만 사용토록 해 지역순환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정부는 지역화폐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국회가 여야를 떠나 민생과 직결된 지역화폐 예산을 살려내길 바란다.

[지지대] 성공의 열쇠는 ‘멘털’

스포츠는 참 오묘하다. 환경과 지도자에 따라 좋은 기량의 선수가 부진에 빠지기도 하고, 다소 기량이 뒤떨어진 선수가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운동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선천적인 소질의 유무를 떠나 노력없이 성공한 선수는 없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수천번의 점프와 좌절을 딛고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을 완성시켜 한국 피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일궜다. ‘월드 스타’ 손흥민은 오른발잡이지만 지금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하루 수천개씩 양발 슈팅을 통해 단련한 결과다. ▶프로선수는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활약하는 직업선수다. 최근에는 아마추어에도 거액의 계약금과 연봉을 받는 세미 프로화된 선수가 많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세미 프로화 경향은 이제 ‘운동 하나만 잘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다’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1960~80년대 배고파서 운동을 한 ‘헝그리 세대’들과는 달리 요즘에는 배고파서 운동을 시작한 선수는 거의 없다. 오히려 돈 없으면 운동도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일선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의 정신력에 대해 지적한다. 고른 영양 공급을 받고 신체 조건은 서양 선수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멘털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취재 현장에서 보면 체력적으로나 그동안의 과정을 볼때 분명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악조건을 딛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성공한 선수들도 많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좋은 여건에서 지도력이 뛰어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경과 지도자는 조력자일 뿐이다. 성공의 열쇠를 쥔 사람은 선수 자신이고, 열쇠란 바로 멘털임을 전문 선수라면 깨쳐야 한다. 프로정신 없이 성공은 요원하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함께하는 인천] ‘지방시대’를 위한 마지막 퍼즐은

하이퍼로컬의 시대이자 1인 미디어시대이다. 현 정부의 6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지방시대’를 위한 마지막 퍼즐은 무엇일까. 하이퍼로컬은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맞춘’이라는 의미다. 요즘 말로는 ‘슬세권’과 비슷하다. 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을 뜻한다. 영화관을 편히 갈 수 있는 동네 ‘영세권’, 공원과 숲이 있는 동네 ‘숲세권’도 하이퍼로컬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동네’가 강조되는 온라인 서비스들도 하이퍼로컬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하이퍼로컬 시대이자 1인 미디어 시대인 인천의 미디어 환경은 어떤가? 미디어 중에서도 ‘인천 지역 방송’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인천은 우리나라의 6개 광역시 가운데 지상파방송 채널이 단 한 개도 없는 유일한 광역시다. 부산 14개, 대구 12개, 광주 14개, 대전 11개, 울산에 10개의 지역방송이 있다. 인천과 함께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한 대구광역시를 보자. KBS대구, 대구MBC, TBC대구방송의 TV와 라디오 채널 총 6개. 이 외의 지상파 라디오채널 6개가 더 있다. CBS·불교·평화·극동·원음·교통 대구방송이다. 부산과 광주에는 영어FM, 국악방송 등이 추가로 더 있다. 인천은 넓게 봐서 지역방송이 3개라 할 수도 있다. OBS경인, iFM경인, TBN경인교통방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채널은 경기와 인천지역을 동일 가청권으로 두고 있다. 결국 인천광역시를 가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은 ‘0’개다. 지역 뉴스의 사막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자체는 ‘좋은 콘텐츠 지원 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인천지역의 미디어들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노력에 정책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OBS의 인천 섬마을 통신원을 활용한 ‘인섬뉴스’와 같은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으로는 인천에 대한 글, 영상, 오디오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인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하이퍼로컬 시대이고 1인 미디어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 단위 마을 구석구석 마을미디어가 만들어져 인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시·구·군 단위 지자체의 지원정책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방송의 허가와 재허가권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새로운 미디어, 특히 새로운 방송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고 기대할 수도 없다. 광고시장도 한계가 있다. 인천 시민이 직접 만든 인천 이야기는 지역미디어를 통해 다시 유통되도록 하는 것이 인천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궁극적으로 지방자치와 분권을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인 ‘미디어자치권’을 획득하고 뿌리내릴 때까지. 최지안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김종구 칼럼] 이재명 “법 앞의 평등”‚ 그러더니 출두 거부

적어도 대선 경쟁자는 건들지 않는 거였다. 대선 자금은 수사하지 않는 거였다. 이 성역을 무너뜨린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경쟁자였던 이회창의 대선 캠프를 뒤졌다. ‘차 떼기’를 찾아내 쑥밭을 만들었다. 이회창엔 전에 없던 정치 보복이었다. 권력을 놓친 대가로 겪는 희생이기도 했다. 최병렬 당 대표가 검찰총장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회창의 검찰 출두는 불가피했다. 2003년 12월15일 출두했다. 검찰이 부르기도 전에 나갔다. 5년 뒤 노무현 사단이 몰락했다. 그들 스스로 폐족(廢族)임을 자인했다. 누구도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 이명박 검찰의 칼질이 혹독했다. 확인 안 된 의혹이 거침 없이 뿌려졌다. 권양숙씨 ‘논두렁 시계’도 그렇게 등장했다. 만신창이가 된 그에게 출두 요청이 왔다. 정의를 위해 감옥도 갔던 변호사 노무현이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던 정치인 노무현이다. 안 갈 거란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출석했다. 버스를 타고 상경해서 대검에 들어갔다. 그래서 1995년 11월1일이 역사다. 사상 최초의 전직 대통령 검찰 출두였다. 비자금 사건 피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그날 충격은 그 후 상식이 됐다. 전두환·노무현·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두했다. 이제 놀랄 일도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대면 조사 요구를 받았다. 서면으로 대체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때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법 앞에 평등…체포영장 발부해 강제 수사해야 한다.” 결국 끌어내려졌고 출두했다. 그 목소리가 이재명 대표였다. 성남시장이던 그가 던진 사이다 발언이었다. 6년 만에 그 자신이 검찰 출두 논란에 섰다.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고발 사건이다. 대선 또는 국감에서의 거짓말-백현동 거짓말, 대장동 거짓말, 김문기 거짓말-이다. 검찰이 출두하라고 했는데 안 하겠다고 했다. 검찰과의 전쟁 선포가 나왔다. 의원 총회가 검찰을 규탄했다. 역공(逆攻)도 시작됐다. 당에서 대통령 부인 특검법을 꺼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고발했다. 아침에 들은 여의도 정가 신조어가 있다. ‘재명불사’,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역경을 이겨낸 인생을 평한 말일 게다. 실제로 그는 그랬다. 위기마다 정면 승부했다. 공격으로 방어를 대신했다. 매번 성공했고 지금까지 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갈 듯하다.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신을 권력 검찰에 의한 희생양으로 상정하고 있다. 여론을 통한 대반격의 판을 기획하고 있다. 검찰 불출석 의지도 바뀔 것 같지 않다. 상대방들도 이걸 잘 알고 있다. 우연히 국민의힘 측에서 들은 ‘작전’이다. -공소시효 임박한 사건부터 풀 것이다. 법카 사건 등 선거법 사건이 먼저다. 다음으로 변호사비 대납 사건이다. 성남 FC 사건, 백현동 특혜 사건이 이어질 것이다. 대장동은 아직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야당은 이재명 방탄국회를 열 것이다. 버티는 거대 야당 모습에 국민이 분노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적으로 총선이다. 그러면 우리가 압승하지 않겠나-. 들은 건 8월10일 저녁이었다. 어떤 수사도 안 떠 올랐을 때다. 윤석열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근거 없는 소설(?)처럼 들렸다. 그래도 국민의힘·대통령실에 귀동냥 좀 할 법한 인사의 얘기였다. 일단 기억엔 담아 뒀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다. 말대로 첫 사건은 선거법이었다. 이재명 대표에 검찰 출두가 통보됐다. 이 대표 측 반응도 그의 말대로다. 불출석을 선언했다. 민주당 전체가 방탄국회에 돌입했다. 계산들 참 잘한다. 그러든 말든, 정치 셈법엔 관심 없다. ‘이재명-검찰’ 승부에도 관심 없다. 그저, 주변 상식을 옮길 뿐이다. 국민은 출두하라면 출두한다. 그게 국민 일반의 상식이다. ‘내가 누군데’ ‘감히 나를’…. 1995년 11월1일(노태우)에 확 사라진 의식이다. 여론전? 거기 대단한 기술이 있지 않다. 여론의 끝도 결국엔 상식이다. 법치의 상식은 법 앞에 평등이다. 하필 이 말로 유명해진 이 대표다. 출두했어야 했다. 방탄보다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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