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닛뽕 데이고쿠 덴노헤이카 반사이!’(대일본제국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일제 식민지 통치 시대다. 또 있다. 매월 8일이면 신사(神社)참배를 했다. ‘다이토아센소’(대동아전쟁·2차대전)에서 일본 황군의 승리를 기원했다.8일은 1941년 12월8일 새벽 일본 해군 항공대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 궤멸시킨 날이다. 일왕 만세, 황군 승리를 기원했으면 친일행위다. 내가 그러했다. 조선 젊은이가 학병으로 끌려가는 기차역까지 나가 일장기를 흔들며 환송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작곡가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이 포함된 친일파 1천686명의 추가 명단이 발표됐다. 먼저 자괴감을 갖는 게 있다. 8·15 광복이나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원죄가 지금같은 후대의 혼란을 빚게 만들었다. 물론 원인은 있다.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친일 청산을 그들 나름대로는 깨끗이 했다. 일원화사회의 특성은 일사천리의 쾌도난마가 가능하다.
반면에 남쪽 다원화사회는 중구난방인 가운데 남로당의 건국 방해 유혈 책동으로 영일이 없었다. 일본 경찰의 앞잡이로 악명 높았던 고등계(정보계)형사 노덕술을 서울경찰청 사찰(정보)과장으로 기용한 것이 일제 관리 등용 파급의 단초가 됐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일본과의 국교 수립은 한사코 반대했으면서도, 발등의 불인 공산당을 제압하기 위해 사람잡는 기술자로 친일 경찰을 썼던 것이다. 결국 이로인해 나중에는 제헌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모임이 의사당에 난입한 괴한들에게 테러 당하는 사태로까지 악화됐다.
건국 60년이다. 이제와서 친일 인사를 가려내자니 힘이 든다. 그렇다고 그같은 작업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민간단체의 자의적 선정 기준이 얼마나 객관화됐느냐는 의문이 성립된다. 일제 치하를 지금의 눈금으로 보아선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다.
일제 36년을 한반도서 안 살면 몰라도, 이 땅에서 살려면 저들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식민지 통치 방식이었다. 친일 인명사전 1차 수록 대상자 3천90명 가운덴 박정희, 김활란, 홍난파, 서정주, 이광수 등이 있다. 이광수의 학병 권고 연설은 일제가 병상의 몸을 떠밀다시피하여 연단에 세우곤 했다. 서정주의 일본군 ‘오장’(伍長·하사계급) 찬미의 시는 시문학 중단을 위협한 끝에 마지못해 썼던 것이다. 홍난파가 얼마간의 일제 협력을 끝내 거부했다면 주옥같은 그의 음악을 우린 지금 갖지 못했을 것이다.
안익태는 애국가의 작곡가다. 김활란은 여성교육의 선구자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다. 비록 이들에게 친일의 허물이 다소 있다 할지라도 민족과 나라를 위한 공로가 비할 바 없이 크다. 굳이 이들을 친일로 매도해서 유익할 것이 뭣인가를 생각해 본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보다 주요한 것은 진실이다. 예를 든다. 자식이 어떤 일에 부모를 위해 거짓말을 했으면 거짓말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은 부모를 위한 자식의 마음이다.
일제 치하가 뭣이고, 교활하기가 얼마나 가혹했던가 하는 것을 체험은 고사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선정하는 마구잡이 분류가 황당하다. 프랑스도 이러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독일 침략군의 나치 협력자를 가려내면서 금기시했던 것이 기계식 선별이다. 그들이 기준삼았던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6·25 한국전쟁때 무수한 양민이 학살됐다. 재판이고 뭐고 할 틈도 없이 무법천지로 잡혀 죽었다. 인민군 세상이 되어서는 우익측이 살기위해 부역하고, 국군 세상이 되어서는 좌익측이 살기위해 협력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또 바뀌면 이번엔 반동분자로, 또 한편에서는 부역자로 몰아 죽였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부역하는 척 협력하는 척 했던 사람들이 이념의 희생이 된 것이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죽인 것이 아니다. 토착 세력의 광적 민간들이 그랬다.
이른바 친일 인명사전은 한 사람의 생애를 재단한다. 선별하는 사람은 신명날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은 억울해도 이미 고인이 되어 말을 못한다. 유족에게 소명 기회를 준다지만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친일 인사는 일본의 국권 침탈을 거든 매국노를 비롯한 현저한 반민족 행위자들로 국한하는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다이닛뽕 데이고쿠 데노헤이카 반사이!”를 외치고, 일본 신사를 참배하고, 학도병 환송식에 나가 일장기를 흔든 나도 친일파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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