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양과 닮은 ‘스프링 복’이라는 야생 동물이 있다.
이 놈들은 수천마리씩 떼를 지어다니며 풀밭을 찾아 뜯어먹고 다 먹으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그러나 어떨때는 아무 이유없이 내 달리다가 수백m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괴이한 광경을 연출하는 다소 어리석은 동물이다.
이유인즉 앞에 있는 동물들이 풀을 다 뜯어 먹거나 발로 밟아 놓으면, 별다른 먹을 것이 없는 뒤쪽에 있는 동물들이 무작정 밀어붙여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어느 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스프링 복’이야기는 작금의 국내 경제사정을 보는것 같아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무 정신없이 내달리는 ‘스프링 복’과 앞뒤 사정없이 좋아지는 수치와 경제성과만을 좇아 달려가는 정부의 경제발표와 일맥상통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최근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국내경제 실적과 향후 전망은 한마디로 ‘따봉’이다.
IMF이후 10년만에 쓰나미급으로 들이닥친 금융위기는 어느덧 온데간데 없고 ‘체감경기 훈풍’ ‘경제지표 회복세’ 등 그럴싸한 제목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다.
세계경제 불황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제품 경쟁력을 확보, 세계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오면서 전반적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계는 지난달 매출이 전년도 동기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소비심리 회복세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 캐피털을 비롯해 해외 주요 투자은행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해 플러스 성장 전망을 제시하는 등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와 전망을 놓고 경제전문가는 물론 상인,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이다.
실물 즉 바닥 경제는 아예 땅을 치다 못해 지하 깊숙이 빠져 들고 있는데도 정부와 언론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도내 제조업(중소기업)의 생산지수는 하반기들어 점차 줄어든데다 중소기업업황지수(SBHI)도 지난달 87.1(100기준)을 기록, 전달(96.5)에 비해 10p가량 하락한 상태이다.
또 대형유통점을 비롯한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연중내내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도내 전통·재래시장과 주택가 주변 상가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다.
10월말 현재 도내에 입점한 SSM은 모두 102곳으로 도내 곳곳을 잠식한 가운데 인근 슈퍼마켓의 폐업 뿐만 아니라 납품 대리점, 정육점, 과일가게, 잡화점까지 연쇄도산이 일어나는 등 소상공인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자체와 정부당국에선 사전조정협의회를 통한 중재와 입점제한조치 검토 뿐 뒷북행정으로 일관, 피해를 보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
수원시 호매실동 길거리에 수개월동안 나붙은 ‘백화점에 대형마트도 모자라서 구멍가게까지 호랑이 출현에 동네시장 다 죽는다”는 현수막 문구에서 이들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금융위기 여파로 자영업과 일용직 일자리는 급감하면서 서민들이 맞는 겨울은 한없이 춥기만 하다.
이렇듯 바닥경제의 중심에 선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서민들의 아픔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낸 실적을 마치 우리 경제 전체가 회복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지금이 허리띠를 졸라 맬 시기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과가 중소기업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투자돼야 한다. 또 일시적인 일자리가 아닌 안정적인 고용 창출을 위해 정·재계가 지혜를 모으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이용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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