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라야 네평 남짓. 대여섯명이 들어서면 북적거릴 공간에 책상 하나, 책장 그리고 모두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전부였다. 바로 안병직 실학박물관장의 방이다.
첫 대면이었다. 실천과 실용의 학문인 실학을 어떻게 전시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최근 경기도의회 행정감사에 증인이면서도 불출석해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라는데 호기심이 발동했다. 안 관장에 대해 김문수 경기지사는 ‘대학 은사이자 평생의 멘토’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굳이 김 지사와의 인연을 들지 않더라도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인데다 거물급(?) 정치인들을 길러낸 스승이 아니던가.
실학박물관은 건물 착공 후 만 3년 반만인 지난 10월 23일 개관했다. 위치가 수변구역인데다 개발제한구역 규제로 인해 그동안 몇차례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팔당호를 바라보는 정약용의 묘를 가려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층수도 2층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박물관에서 실학이라는 학문과 사상을 전시한다는 거였다.
실학박물관을 찾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시대 중심으로 하는 나열식의 전시 구성이 아닌 실학자의 의지, 열정, 역경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주제별 전시가 실학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후한 점수를 준데는 실학박물관이 자리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풍광도 한 몫 했다. 실학박물관은 관람객을 흡인할 수 있는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비롯한 유적지가 있고 수종사라는 전통사찰이 있으며, 무엇보다 국내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팔당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에서 실학박물관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추진 중이라고 하니 그런 호조건을 갖춘 박물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안 관장은 지난 3월, 제자인 김문수 지사의 요청으로 초대 실학박물관장 자리에 앉았다. 은사이면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평생 연구해온 안 관장은 분명 적임자였을 것이다. 안 관장의 말을 빌면 당초 자문 내지는 고문의 역할을 맡아 ‘실학박물관을 좀 어떻게 해달라’ 였다. 그러나 안 관장은 뒤에서 훈수나 하는 잔소리꾼에 머물고 싶지 않다며 관장직을 달라고 했다. 실학에 대해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감에서다.
안 관장은 자료가 대부분 서지(書誌) 유물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전시장을 꾸몄다. 실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전시실 별로 나누어 정리했다. 역사책으로만 봐왔던 정약용의 ‘경세유표’ 필사본과 조선후기에 중국과 일본을 통해 수용된 서양의 문물인 조총, 천리경, 자명종, 안경 등의 실물(재현품) 등도 함께 전시해 실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유물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서에는 안 관장이 직접 해석을 달아 사상의 참의미를 알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영상 등의 전시기법을 적극 활용한 것도 흥미롭다.
“내 사무실은 이만 하면 됐지만 수장고도 필요하고 교육 공간도 필요하다”며 부속 건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안 관장은 “직접 예산을 집행한 지 한달도 안됐는데 내가 감사를 받을 게 뭐 있고, 또 내가 가면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겠어요?”라는 말로 기자의 궁금증을 해결했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좌파니 중도보수니 하는 이념을 떠나 30년 넘게 연구하고 집중해 온 실학의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돌려 줄지를 고민하며 그 고민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박물관장 자리는 전문가가 앉는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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