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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 객지사람

무한 무변의 시공(時空), 이중 좁은 국토의 수원에 다 같이 살면서 따진다. ‘누구는 수원사람·누군 객지사람’이라고, 지척지간인 안양이나 평택사람도 객지사람 취급해대는 것이 일부의 토박이 수원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눈은 수원서 30년을 3대가 살아도 객지사람으로 본다.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졌다. 예전엔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면 수원서 태어난 아들이나 손자도 전라도 사람으로 그들은 보았다. “아버지 고향은 가본적도 없는데 그러했다”는 것은 지금은 은퇴한 영동시장 어느 거상의 말이다. “할아버지 고향을 숨겼다”는 것은 누구라면 알만한 이의 회고담이다. 토박이는 어디든 다 있다. 텃세는 동물의 본능이다. 다만 사람의 텃세가 다른 것은 공동체가 존중된다는 사실이다.

 

6·2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별의별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같은 수원출신 국회의원인 남경필, 정미경의 싸움이 주목된 덴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 수원시장 공천을 미는 입장이 각기 달라, 중앙당이 지난 7일에야 가까스로 최종 결정을 했을만큼 백중지세였던 싸움이, 막판 막말로 폭발한 것은 여기서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다. 두 사람의 당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경필이 정미경을 객지사람 취급했다는 것은 잘못이다.

 

두 사람은 같은 1965년생이다. 남경필은 관록있는 4선이다. 정미경은 검사 출신의 초선이다. 남경필은 대망을 가진 ‘연부역강’한 정치인이다. 정미경은 이 정권의 실세 직계다. 수원비행장 문제해결을 위해 국방부를 찾기도 했다. 이어 국방대학에 다니는 열정파다. 선거구는 팔달·권선구로 달라도 수원시민이 뽑은 유능한 국회의원들이다. 이에 토박이나 객지사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1980년대 초 20만명이던 수원시 인구가 110만명을 넘어섰다. 30년전에는 수원 인구의 약 80%가 토박이던 것이 이젠 반대로 수원 인구의 약 80%가 객지사람이다. 수원만이 아니다. 경기도 인구 1천172만여명 역시 토박이보단 객지사람이 더 많다. 지역사랑의 소속감은 객지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것이 농경사회와 구분되는 정보화시대 사회생활의 특성이다.

 

남경필은 ‘꼴통’이 아닌 ‘깨인’ 정치인을 자임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농경시대에서나 있을법한 ‘객지사람…’ 타령을 하는 건 구닥다리 티를 벗지못한 징후다. 다음 번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에 나서고, 그 후엔 더 큰 도전을 할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국량이 토박이 수준에 불과한 구닥다리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토박이만 찾다가는 차기 도지사는 고사하고, 다음 국회의원도 되기가 어렵다.

 

이번 지방선거부터는 객지사람보다 더한 신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 도내 각 지역선거구와 연고가 있으면서 외국에서 살고있는 재외국민들이다. 또 있다. 국내에 3년 이상 살고있는 외국인들도 투표권이 있다. 이런 재외국민 유권자가 1만5천252명이고 외국인 투표권자는 1천615명이다. 당락이 단 1표 차이로 갈라질 수 있는 것이 선거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유권자들이다. 하물며 토박이나 객지사람을 따지는 것은 자멸행위다.

 

물론 토박이정서란 게 있긴 있다.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토박이정서가 토착비리를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박이끼리도 사분오열하는 것이 이해관계의 상충에 기인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디든 지역사랑으로 농축된 전통적 정서의 미덕이란 것이 있다. 이런 것을 객지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되는 지역지킴이의 면모가 함양돼야 한다. 토박이는 지역지킴이다.

 

지방자치는 곧 주민자치다. 주민자치는 생활자치다. 참여자치이기도 하다. 이런 지방자치가 근 20년이 되는데도 기대만큼 성숙되지 못한 덴 연유가 있다. 선거판과 유권자, 즉 상층구조와 하층구조가 겉돌았기 때문이다. 이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우선 소통에 문제가 있다.

 

선거판에 달콤한 온갖 말이 나도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순 없다. 소통은 진정성이 전제돼야 성립된다. “그 사람, 어디 사람이냐? 수원사람이냐?”는 말은 지역소통을 막는 칸막이다. 닫힌 마음의 칸막이를 허물고, 열린 마음의 공동체사회 광장으로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싸워도 열린 광장에서 싸워야 건설적이다. 닫힌 칸막이에서 싸우는 것은 조잡스런 텃세다. 수원은 참 좋은 도시다. 수원시민의 도시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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