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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얼굴들을 기억하며

[경기단상]

흔히들 연수구를 인천의 강남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천지역 영구임대아파트 총 6곳 중의 3곳이 연수구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3곳에 사는 주민만 약 4천 세대가 된다.

 

지난해 10월 나는 이 3곳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각각 3일씩 현장 체험을 했다. 퇴근 시간 이후를 영구임대아파트와 복지관 등에서 자면서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였다.

 

지어진 지 20년 가까이 된 낡은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적어도 십수 년을 살아온 주민들의 삶을 고작 9일 동안의 체험으로, 그리고 4천 세대 중에 고작 30여 세대만을 방문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으랴? 누군가는 쇼라고도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하든 상관 없었다. 우선은 답답했기 때문이다.

 

구가 2010년 말부터 이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하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주민행복을 위한 복지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렴하고, 밑그림도 그려보고, 나름대로 몇 가지 성과도 있긴 하지만, 자꾸 뭔가가 들어맞지 않고 삐걱거리는 것이 사실이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뭔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았다.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 불을 질렀다. ‘그러면 직접 가서 한 번 살아보라고!’

 

그렇게 주민들을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들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만나고, 해고로 인원이 줄어 힘들어하면서도 주민들의 복지사 역할을 겸하곤 하는 경비아저씨도 만났다.

 

부양의무자가 있어 수급이 중지된 어르신을 만나고, 생활고에 지쳐 술을 입에 대고 헤어나지 못해 방황하는 가정에도 들렀다. 시를 쓰는 1급 시각장애인 ‘안나’ 선생, 하반신을 못 쓰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5월 어느 봄날에 태어난 당찬 꼬마 아가씨, ‘보메나’, 그리고 가난하지만 구김살 없이 커 주고 있는 8남매의 일곱째, ‘바다’를 만났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답을 찾았느냐?’고. 내가 대답했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은 것 같다’고. ‘그것도 아주 많은 질문을 찾은 것 같다’고.

 

곰곰이 그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 보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 있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었고, 당장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초조함과 답답함이 조금은 가셔졌다. 그것은 주민들의 따뜻한 희망이 내게 준 선물일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영구임대아파트가 ‘모아놓으면 저절로 잘되겠지’라는 무책임한 판단에서 비롯된, 실패한 복지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지역을 슬럼화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아파트의 암울한 분위기 자체가 다른 주민들의 자활의지마저 꺾어 악순환을 반복시킨다는 것이다.

 

일정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내게는 꿈이 하나 있다. 이 3곳의 영구임대아파트 지역을 연수구에서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것, 그리고 어느 아파트 동네보다 정이 넘치는 동네로 만드는 것이다.

 

분명히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것. 무엇보다 세심하게 가꾸는 것. 그리고 내가 집에 찾아가 함께 얘기를 나눈 것이 평생 기억에 남을 거라며 좋아한 예쁜 ‘바다’가 말한 대로, 내년에도 바다의 집을 찾아가 바다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4년짜리 선출직 공무원인 내가 현재 해야 할 일이다.

 

후에 어떤 씨앗이 ‘뽁’하고 싹을 틔우면, 그것을 눈여겨본 누군가는 그 싹에 정성껏 물을 주게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영양분이 듬뿍한 거름으로 정성껏 그 싹을 키워내리라.

 

고 남 석 인천 연수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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