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국전쟁기념비에는‘Freedom is not free!(자유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UN의 첫 파병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은, 이 말을 그 어떤 경우보다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순간 대한민국을 지켜준 UN참전용사들. 머나먼 이역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돌이켜보면,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다.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고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전쟁의 참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슬픔으로 마음속에 간직돼있다. 흔히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UN참전용사들이 남긴 자유를 향한 고귀한 희생정신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고 아직까지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던 우리가 지금과 같은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전용사들의 공헌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UN의 21개국은 망설임없이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대부분의 용인시민은 한국전쟁 때 우리시 김량장동 일대에 중요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1950년 7월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의 부대가 김량장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우리군은 부산에 도착한 미군이 전투준비 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지연전을 전개했고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김량장 일대에 급히 투입되어 인민군을 기습해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개전 초부터 패배를 거듭하던 국군은 적으나마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통해 인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터키여단은 UN군의 중공군에 대한 본격적인 반격작전이었던 ‘선더볼트작전’의 일환으로 1월25~27일 김량장동 151고지 전투에 투입됐으며 북한군과 중공군이 밀집해 있던 151고지(용인초등학교 뒤편)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다.
이 전투에서 터키여단은 12명이 전사하는 약간의 손실을 입은 반면 중공군은 1천900여명이 사망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1974년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2005년 터키 카이세리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그해 카이세리시 참전용사회 15명의 참전용사를 공식 초청해 격려와 감사를 표했다. 지자체 중 최초로 한국전 참전용사를 초청한 행사로 혈맹국에 대한 형제애 강화를 통해 상호간 교류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기흥구 동백동에는 1974년 9월6일 건립한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참전비 정면에는 육군을 파병했다는 의미를 담은 3명의 용사 동상이 세워져 있어 참전 당시 백병전에 능했던 터키 장병들의 용맹함을 느낄 수 있다.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엔군의 기치를 들고 터키 보병여단은 한국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침략자와 싸웠다. 여기 그들의 전상자 3천64명의 고귀한 피의 값은 헛되지 않으리라.’
터키인들에게 한국은 ‘형제의 나라’이자 ‘제2의 조국’이 다. 60여년 전,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전쟁이 한창이던 대한민국 땅을 밟은 터키참전용사. 이전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황폐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줬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속담처럼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달려와 준 터키 참전용사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김 학 규 용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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