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육아다. 사정상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낼 수 없을 때 육아는 할머니의 몫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기 보기는 젊은 엄마들이 감당하기에도 중노동이다. 하물며 몸 여기저기서 노화의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 할머니에겐 병을 키우는 일이다. 안고, 업고를 반복하다 보면 차라리 파밭을 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질 수밖에 없다.
현재 30대 부부들은 유독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1997년 말 IMF가 터지면서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탓에 어렵사리 구한 직장에서 버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서른, 삶의 만족’에 대해 물은 결과 두 명 중 한 명이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답변까지 합치면 열 명 중 여덟 명이 삶에 대해 부정적이다. 연봉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결혼ㆍ출산 등 가정문제도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다보니 30대 자녀를 둔 50~60대 부모들이 덩달아 수난을 겪고 있다. 지금이야 자녀가 하나, 둘이 고작이지만, 나의 경우만 봐도 부모님이 남의 도움 없이 다섯을 키웠다. 이제야 좀 쉬어 볼까 하던 중에 자녀의 아이를 다시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문제는 좋아서 애를 봐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어쩔 수 없어서’라는 데 있다. 부모로서 아들, 딸의 고생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떠안은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한 술 더 떴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에게 4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두 자녀 이상인 맞벌이 가구의 12개월 이하 아이를 돌보는 경우에 한해서다.
취지는 좋다. 살아보겠다고 바동대는 자식들을 보며 손 내밀기가 어려웠던 할머니들에게 나라가 주는 40만 원은 탐내 볼만 하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지 못하는 가정엔 무얼 해주겠다는 건지 묻고 싶어진다.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흔이 넘으면 지원이 안 된다는데 자녀가 둘째 아이를 낳아야만 해당하니 나이를 맞추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아이가 12개월이 넘으면 혼자 큰다는 말인가?
아직까지 논의 단계라고 밝혔지만, 출산을 앞둔 자녀를 둔 할머니들은 벌써부터 부담이 된다고 토로한다. 나라에서 돈까지 준다는데 안 봐준다고 하면 매정한 할머니가 될 게 뻔하다. 맞벌이의 고충을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관련 부처 장관의 발상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장관에게도 두 명의 딸이 있다고 한다.
소위 ‘잘나가는 여성’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양육 배경이 궁금해진다. 맞벌이 부부이기도 한 여성장관이 양육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려 했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절실히 원하는 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국공립보육시설의 확충이다. 그리고 눈치 안 보고 육아 휴직을 낼 수 있는 환경이다.
‘손주 돌보미 사업’이 평생을 가족 돌봄으로 사신 할머니에게 다시 손주 돌봄을 맡기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박 정 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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