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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소설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 던지는 교훈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통을 이어온 유럽문명은 ‘이성’과 ‘기독교’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이성과 기독교를 가늠자 삼아 세계를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구분했으며, 오직 이 두 가지 가치와 기준만이 올바른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창했다. ‘이성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와 ‘기독교적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식의 이분법은 유럽문명을 이끌어 온 수레바퀴였으며 유럽문명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아름다운 원리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자기중심적 오만과 편견으로 둔갑했고, 이성과 기독교외의 다른 원리나 존재들은 잘못되거나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심지어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떠밀어냈다. 그 결과 노예, 마녀, 이단, 유대인, 이교도 등 유럽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성과 기독교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차츰 이익과 욕망의 무한궤도를 질주하려는 수단과 명분으로 차용되었다. 이 명분과 탐욕은 마침내 식민지, 약탈, 학살,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의 가장 치욕적이고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이 그 거대한 비극의 종점이었다. 그제야 유럽은 성숙한 문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직접 처절하게 이 두 개의 전쟁을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집필한 <데미안>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다. 올해 탄생 100년이 된다. 헤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자기구현 과정을 보여준다. 유럽 사람들이 세계를 대립의 공간이 아니라 통합과 단일의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헤세는 이성과 기독교를 중심에 둔 채 양극사상에 빠져 한쪽만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부인하던 유럽이 개조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바랐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알을 깨고 나오는 새’로 상징한 이 소설은 수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이 이 책에서 받은 영감으로 2집 앨범 ‘윙스’(WINGS)를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58년에 걸쳐 구시대를 뚫고 새로운 세계와 인간내면의 자기구현을 일관되게 작품에 담아낸 헤세.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맞아 <데미안>의 주인공처럼 이 시대를 살아낸 사회명사 58인의 글로 엮은 <내 삶에 스며든 헤세>가 출간되었다.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전찬일이 기획한 이 책의 58인 필진들의 삶에는 한국전쟁과 4·19혁명이 있고, 5·16과 유신, 80년 광주와 서울의 봄이 스며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치열한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뚫고 나오려는 자기성찰의 노력이 생생하게 엿보인다. 이들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데미안에 담아낸 헤세의 메시지를 더듬어 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협력이 사라지고 오만과 편견, 약육강식의 원리에 빠져 있던 유럽문명이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을 만들었지만, 다시 처절한 반성을 시작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며 평화적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기 논리와 명분에 허우적거리며 알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알을 깨뜨리기 위한 병아리의 노력과 바깥에서 알을 깨주려는 어미 닭의 노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병아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는 줄탁동시(?啄同時)의 교훈이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보내며 새롭게 다가온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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