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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초점] 통계도 지원도 없다… 복지 사각지대 ‘영 케어러’

최근 발생한 ‘강도영(가명) 비극’으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경기도의 선제적인 영 케어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영 케어러란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을 부양하며 학업도 병행하는 상황에 놓인 청소년 또는 청년을 말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들도 영 케어러에 대한 통계나 현황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다.

2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에 따르면 영 케어러로 추정할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만 25세 미만 청소년ㆍ청년’은 지난해 기준 전국에 3만1천921명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19%가량인 6천106명이 경기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 25세 미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전체 5분의 1 수준이 도내에 머무르는 셈이다. 이들 외에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ㆍ청년까지 고려하면 도내 영 케어러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청소년ㆍ청년 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그동안 영 케어러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도 역시 내년에 33조5천661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본예산을 편성, 이 중 36%가량인 12조2천453억원을 복지 분야에 편성했으나 영 케어러와 직결된 예산은 반영된 것이 없다.

김성주 의원실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학업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과 청년이 부양 의무를 떠맡게 돼 생계유지에 나서는 영 케어러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영 케어러 실태조사 추진 의사를 밝혔으나 지역 차원에서도 문제 해결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와 달리 영 케어러 지원을 위해 선제적으로 나선 지역들도 있다. 부산시 중구는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돌봄제공자인 아동ㆍ청소년 보호 및 지원 조례’를 제정, 향후 지역 내 영 케어러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시의 사무위탁기관인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이달부터 ‘영 케어러 케어링 지원사업’을 추진, 서울 거주 19~39세 영 케어러에게 지원금 130만원을 지급한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제는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하지 말고,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분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영 케어러에 대한 공공 영역의 실태조사 추진과 지원 제도 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아직 영 케어러 관련 대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부가 먼저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인 만큼, 그에 따라 향후 대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도영 비극은 경제력이 없는 22세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자택에서 돌보다가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당시 청년은 병원비는커녕 월세와 도시가스 비용 등도 내지 못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 사각지대 놓인 ‘영 케어러’  ‘간병살인 비극’에 이제야 공감대… 영국·일본선 적극 지원

국내에서는 관심 밖이었던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와 관련, 보다 일찍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경험한 해외 국가들은 이미 영 케어러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고 관련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강도영 비극’ 사건으로 뒤늦게라도 영 케어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나선 정부가 해외 사례를 적극적으로 분석 및 반영,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 케어러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 기준 정의로 명확한 지원 대상 정해야

먼저 영국은 지난 2014년 ‘아동가족법’에서 영 케어러의 법적 정의를 명확하게 했다. 영국은 장애ㆍ질병ㆍ정신질환ㆍ약물ㆍ알코올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이나 친척을 돌보는 18세 이하 청소년을 영 케어러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부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영 케어러 보조금(Young Carer Grant) 제도를 도입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영 케어러 2천900명에게 총 86만파운드(약 14억원)를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호주의 경우 2010년 ‘케어러 인정법’을 제정해 영 케어러에 대한 법적 정의를 마련했고, 2015년부터 호주 내 비공식 돌봄 제공자를 대표하는 비정부기구 ‘Carer Australia’를 통해 영 케어러의 학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는 영 케어러 기준을 장애ㆍ정신질환ㆍ약물중독 등 문제를 가진 고령의 가족 및 친구를 돌보는 25세 이하 청년으로 정했다.

■ 시민사회와의 연계 통해 효과적 대응

일본은 올해 총무성과 후생노동성, 문부과학성 등 정부 부처 공동으로 ‘전국 중ㆍ고등학생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 일본의 중학교 2학년생의 약 6%, 고등학교 2학년생의 약 4%가 영 케어러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경우 중학생은 하루평균 4시간, 고등학생은 하루평균 3.8시간을 가족 돌봄에 할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돌봄에 나서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영 케어러들을 대상으로 ▲육아 및 가사노동 지원 ▲간병 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와 함께 영 케어러가 원할 때 온라인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아울러 일본 시민사회도 영 케어러 유형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자료를 배포하는 등 문제 해결 노력에 동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 케어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속적인 지원을 유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 ‘영 케어러 지원법’ 국회 통과로 첫발 떼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영 케어러에 대한 법적 정의와 정부 차원의 지원 규정 등을 마련하고자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는 해당 법안에는 영 케어러를 ‘가족돌봄청소년’으로 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영 케어러와 그 가족 등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성주 의원실 관계자는 “현행법은 국가나 지자체가 위기청소년에게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생계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며 “이제라도 영 케어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법안 통과를 시작으로 관련 사업 및 예산 반영 등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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