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대생때 전남서 치료 봉사에 보답...할머니가 싸 온 고구마 맛 잊지 못해
외국인 근로자 저렴하게 치료해주고, 무료 건강검진까지… 1천300명 돌봐
36년 전 그날도 요즘 같이 추운 겨울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가시지 않았던 이른 아침, 전남 영광군 한 마을에서 80대 할머니가 분홍색 보따리를 품에 꼭 안은 채 종종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원광대학교 치과대생들이 머물던 초교 앞에 멈춘 노인은 한 청년에게 보따리를 건넸다.
청년은 어리둥절한 채 꽁꽁 싸맨 보자기를 풀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 이 안에는 10개의 고구마가 있었다.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치료해줘서 고마워. 방금 삶은 건데 식었는지 모르겠다”
컴컴한 새벽부터 일어나 부랴부랴 첫차를 타고 먼 길을 온 할머니를 생각하니 울컥했다. 눈물을 꾹 참은 채 고구마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갓 스무 살이던 이 청년은 5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소개가 늦었다.
최신규 이사랑치과(고양시 일산동구 소재) 원장(54)은 치아 치료 봉사활동을 계기로 25년째 국경 없는 의료 나눔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97년 개원 첫해. 20대 중반이자 동남아 국적의 한 남성이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이에 최 원장은 간단한 치료로 통증을 없앨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나 한국말조차 할 줄 모르는 이 남성은 ‘돈이 없으니 아예 치아를 빼달라’는 의사를 손짓 발짓으로 전달했다.
순간 최 원장은 자신의 봉사활동으로 고마워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그때의 다짐을 되뇌였다. 의료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내국인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그 남성을 치료해줬다.
이후 최 원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비뚤배뚤한 이 한 단어를 ‘그리기’ 위해 주변 사람한테 알음알음 한글을 물어봤을 남성의 모습을 상상하자 치대생 시절 느꼈던 감동이 몰려왔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매년 20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최 원장을 찾아왔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타국에서 번 돈을 가족에게 모두 보내고 정작 자신은 치료비에 전전긍긍했을 그들을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그리고 ‘고마워요’라는 어눌한 한국말을 들을 때마다 의사를 하기 정말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최 원장은 또 봉사활동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해주고 있다. 이 수까지 합치면 최 원장이 돌본 외국인 근로자는 모두 1천300명에 달한다.
최 원장은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서 국적 가릴 것 없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맙다’라는 한마디는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따스한 빛 한줄기가 될 것”이라고 웃음지었다.
이정민·김태훈기자
댓글(0)
댓글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