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하면 베트남전쟁이 떠오른다. 울창한 정글을 선회하며 비행기로 뿌려지는 정체불명의 액체. 때마침 정글을 정찰하던 군인들이 이유도 모른 채 의문의 액체를 뒤집어쓴다. 전쟁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장면이다. 그렇게 울창한 정글 식물을 고사시켜 그 속에 숨은 베트콩을 소탕하기 위해 독한 화학물질이 광범위하게 뿌려졌다. 고엽제다. 고엽제는 정글 식물만 고사시킨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안겨줬다. 피부질환은 물론이고 암까지 발병케 했다. 부작용이 피해자 자신을 통해 자녀에게까지 대물림하기도 했다.
당시엔 몰랐다. 전쟁이 끝나고 이같이 무서운 고엽제 살포의 부작용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베트남 파병 군인들도 고엽제 피해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고엽제 피해 군인들에 한해 만족스럽진 않지만 보상이 이뤄졌다.
1960년대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던 대한민국에도 고엽제가 살포됐다. 그러나 아직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
DMZ와 접한 파주 대성동, 철원 생창리 등 경기와 강원 접경지역 일원에 살포됐다. 역시 피해자가 발생했다.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현행법상 고엽제 피해를 군인 및 군무원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인 피해자는 피해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억울함을 제대로 호소할 곳도 없다.
지난달 17일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고엽제 피해를 입은 파주 대성동 마을 주민 김상래씨(77·미2사단 카투사병으로 대성동 근무)와 박기수씨(79·김상래씨의 미 2사단 동료)가 강원 철원군 생창리를 방문해 같은 처지의 김영기씨(89)와 권종인씨(86)를 만났다.
당시 미 2사단에 근무했던 김상래씨는 대성동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인정 받아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시간이 흘러 주름이 깊어졌지만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민간인 신분이지만 국군의 지시하에 고엽제를 맨손으로 희석해 살포했고 이후 부작용을 얻었다. 수차례 고엽제 피해를 국방부 등에 호소했으나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치권 등에서 움직이는 것은 다행이다.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이 고엽제 살포로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과거사 진실 규명 대상에 1945년 8월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때까지 DMZ 지역에 살포된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얻은 사항을 추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법 개정과 함께 민간인 피해자 전수조사부터 실시해야 한다.
이들 고령의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들의 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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