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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매서운 추위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봄의 기운

무여 스님 보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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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2월4일,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날, 입춘이다. 아직 동장군이 물러가지 않아 추위가 한창이지만 자연의 기운 속에서 봄이 시작되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게 된다.

 

입춘은 한자로 ‘설 립(立)’ 자에 ‘봄 춘(春)’ 자를 쓴다. 곧 ‘봄을 세운다’라는 말이기도 한데 사계절의 시작에 입춘, 입하, 입추, 입동처럼 ‘설 립’ 자를 쓴다. 이 글자는 사람이 두 팔을 벌린 채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그동안 기다렸던 봄이 오니 두 팔 벌리고 일어서서 반갑게 봄을 맞이해 본다는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렸다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는 그림이 있다. 추운 겨울, 동지에 그리는 이 그림은 9×9=81, 곧 81개의 매화 꽃송이를 말하는데 이 매화 꽃송이들로 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매화 81송이를 그려놓은 다음 매일 하루에 한 송이씩 차례대로 빨갛게 칠한다고 한다. 81일 동안 81송이의 매화의 채색을 완성할 즈음 진짜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이 온다.

 

봄을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마저 이렇게 멋지게 그림을 그리면서 풍류를 즐기는 여유로운 선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기나긴 겨울, 어둠과 추위 속에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에 밝고 따뜻한 희망의 계절, 봄이 온 것이다. 고난의 시간이 없었다면 희망의 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림이 커질수록 반가움은 더 커진다. 인고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나긴 겨울도 지나고 새싹이 올라오고, 따스한 봄 기운이 느껴지는 봄이다.

 

성공만 있는 삶도 없고, 실패만 있는 삶도 없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귀중한 열쇠가 된다. 길을 가다가 넘어졌다면 넘어진 이유를 알아차리고 다시 털고 일어서면 된다. 다시 일어서는 힘, 그 힘은 바로 자신감과 희망을 잃지 않는 내면의 강인함에서부터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매화 향기에 비유한 황벽희운 선사의 멋진 게송을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승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매서운 추위가 없다면 결코 매화 향기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겨울 없는 봄이 없듯이 고통이 없이는 깨달음도 없는 법이다.

 

고난과 역경을 묵묵히 견뎌내고서 마침내 피어나는 매화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렇게 은은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다면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조금만 더 견디고 이겨냈으면 좋겠다. 빠르고 느림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꽃 피는 희망의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산 위의 구름만 밟고 다녔네. 돌아와 뜰 안에서 웃고 있는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완연한 것을.”

 

중국 남송 시대에 어느 비구니 스님의 깨달음의 게송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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