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m까지 감시… 흠 잡을 데 없는 '홈'
성 밖에서 보면 돌출된 치성 전면에 위에서 아래로 길게 파인 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안이라 한다. 현안이란 ’매달려(懸)있는 눈(眼)’이란 뜻이다. 성 밖 적군의 처지에서 보면 긴 홈의 맨 윗부분에 상대방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현안은 왜 만들어 놓았을까.
의궤에는 설명이 없다. 정약용의 현안도설을 보자.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의 부속적인 장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어 “적병이 성벽 밑에 바짝 붙어 괭이를 가지고 구멍을 뚫어 성벽을 헐거나, 또는 사다리를 사용해 성을 올라와도 아군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니, 어찌 방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현안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라고 필요성을 상세히 설명한다.
즉, 현안은 ‘적의 화살이나 탄환으로부터 안전하게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구멍을 통해 감시할 수 있는 장치”로 정리할 수 있다. 원문 ‘적도성하 일견무유’는 ‘적병이 성벽 아래에 이르면, 빠짐없이 단번에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연 이 작은 구멍으로 목표대로 성벽 가까이는 모두 보일까. 그리고 멀리는 어디까지 보일까. 무척 궁금하다.
먼저 현안의 생김새부터 살펴보자. 도설에 ‘치성 전면에 성의 위 바닥으로부터 구멍을 뚫는데, 크기에 알맞게 벽돌을 구워 쌓되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층계를 이뤄 좁아지게 쌓은’ 구조라고 말하고 있다.
치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본다. 먼저 성 위에 올라 치의 바닥을 보면 치의 돌출된 삼면 중 바깥쪽 면 바닥 한가운데 여장 가까이에 구멍이 있다. 이곳이 바닥에 아군이 엎드려 내려다보는 현안 구멍이다. 다음에 성 밖으로 나가 바깥 면을 보면, 위에서 아래를 향해 일정한 폭으로 홈이 파여 있다. 현안 구멍과 이렇게 파인 현안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현안을 통해 어디가 보일까. 그 범위를 계산해 보자. 가까이는 어디가 보일까. 멀리는 어디까지 보일까. 서북공심돈의 북쪽 현안을 표본으로 삼아 가시 범위를 계산해 봤다. 서북공심돈을 선택한 이유는 원형이 잘 보존된 시설물이고 무엇보다 수원시 화성사업소에서 실시한 실측조사 보고서가 있기 때문이다.
성 위의 구멍 크기는 사방 30㎝, 구멍 위치는 외벽선에서 1.1m 들어온 지점에서 시작된다. 성 밖의 현안 폭은 33㎝, 길이는 3.1m이고, 현안의 끝은 성 밖 바닥 면 위 1.5m 지점에서 끝난다. 이 수치의 근거는 2012년 서북공심돈 실측조사 보고서 자료다.
이상의 자료를 기준으로 작도법에 따라 가시거리를 계산해 봤다. 결과는 가시거리는 성벽에서 60㎝ 떨어진 곳부터 13.8m 떨어진 곳까지로 나왔다. 뜻밖의 결과다. 하나는 적군으로부터 몸을 100% 보호하면서 감시할 수 있는 점이고 또 하나는 가시 최대 거리가 13.8m라는 점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보일 줄은 상상을 못 했다. 가시거리는 곧 감시범위다.
시설물 유형별로 한 곳씩 실측 자료를 활용해 가시거리를 계산해 봤다. 최대 감시거리는 동1포루 5.1m, 동1치 12.3m, 동옹성 8m, 동북노대 2.2m, 적대 14.5m, 봉돈이 13m로 나온다. 바닥에 엎드린 병사의 눈높이를 참작하면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리하면 ‘현안으로 볼 수 있는 최대 가시거리는 짧게는 5.1m에서 길게는 14.5m 떨어진 곳까지’ 다. 복원이 잘못된 동북노대는 제외했다.
동북노대는 원형보다 현안 길이가 반 정도로 복원됐다. 현재 복원 상태로는 최대 가시거리가 2.2m이나 원형으로 계산하면 11.5m가 된다. 원형대로라면 11m까지 보여야 하는데 부실한 복원공사로 2m까지만 보인다면 현안은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위치, 길이 등 외적인 것보다 현안의 목적, 개념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시설물을 실측하면서 보게 된 것은 복원공사를 거치며 변형됐다는 점이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부분이 가시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돌을 한두 층 더 두껍게 쌓았다든가, 돌을 매끈하게 마감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상태인 점이다. 모두 먼 곳을 볼 수 있는 가시각을 좁혀 놓았다.
화성에서 현안이 설치된 치성은 적대 네 곳, 포루(군졸) 다섯 곳, 치 여덟 곳, 그리고 동북노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봉돈으로 모두 21개 시설물에 35개 현안이다. 그리고 옹성 네 곳에 34개 현안이 설치돼 있다. 합하면 화성 전체 시설물의 40%인 25개 시설물에 총 69개다. 아주 특별한 현안도 있다. 북암문 밖 두 개의 현안, 서북각루 밖 두 개의 현안이다. 모두 원성에 설치돼 있다. 현안도설에는 곡성의 전면과 옹성에만 현안을 설치하게 돼 있다.
현안의 목적은 성 가까이 접근한 적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성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현안 목적은 성 가까이 있는 적군을 감시하는 것이라면서 왜 불필요하게 멀리까지 보도록 설계했을까. 미스터리다. 현안 최대 가시거리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는 놀랄 만한 이유가 있다. 다음 편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화성 성역 200여년 전 류성룡은 “포루가 하나 있으면 현안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현안의 가치는 포루와 같음을 보여준다. 보잘것없는 작은 구멍에 큰 역할을 맡긴 현안을 통해 정조의 전략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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