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변호사 (법무법인 마당)
다음과 같은 가상의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80대 노인 X는 2022년 5월경 이웃 주민 Y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Y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에 X는 치료비 등 손해배상을 요구하였지만, Y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면서 “법대로 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격분한 X는 증거를 확보하고 변호사와 상담하는 등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갑자기 치매 증상이 나타난 X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백방으로 X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2024년 11월 현재까지 그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도 황망한 심정이겠지만 가족들은 현실의 문제를 하나하나 처리하여야 한다. 우선 가족들은 행방불명 전에 X가 Y를 상대로 준비하고 있던 소송을 계속 추진하고 싶다. 그런데 이 사건을 상담한 변호사는 Y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3년의 소멸시효에 걸리므로(민법 제766조 제1항) 신속하게 소송을 진행하여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런데 정작 이 사건의 원고가 되어야 할 X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X의 이름으로 소송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단 소장(訴狀)에 무작정 원고의 이름을 X라 쓰고 소송을 진행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사건의 피고 Y는 이웃 주민으로서 X가 어느 날 가출한 후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설사 위와 같이 X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Y는 이 소송이 X의 의사에 따라 제기된 것이 아니며 변호사도 적법하게 선임된 것이 아니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Y의 이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법률적 방법은 무엇일까.
위 사안의 X는 민법에서 말하는 부재자에 해당한다. 부재자란 종래의 거소나 주소를 떠나 당분간 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만일 그 기간이 상당히 길어진 경우 즉, 부재자의 생사가 5년간 분명하지 아니한 때에는 법원은 이해 관계인의 청구에 의하여 부재자의 실종을 선고할 수 있다. 실종선고가 내려지면 그 기간(5년)이 만료된 시점에 부재자는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X에 대하여 실종선고가 내려지는 경우 X의 상속인들이 직접 Y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위 사례의 경우 현재 X가 가출한 이후 약 2년6개월이 경과하였을 뿐이므로 아직 실종선고를 청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막연히 5년을 기다리다가는 위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경우 X의 가족들은 법원에 부재자 X의 재산관리인을 선임하여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이 청구에 따라 법원이 예컨대 X의 아들 A를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하였다면 이제 그 아들은 X의 법정대리인이 된다. 이처럼 X의 법정대리인 지위에 있는 A는 X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하여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소송의 원고란은 “원고 X 법정대리인 A”와 같이 표시될 것이다. 이를 부재자 재산 관리 제도라 한다.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참고할 만한 제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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