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상가 권리금의 보호

상가 권리금은 통상 상가 건물의 영업시설, 비품,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건물 위치에 따른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이용하는 대가로 신규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금전을 말한다. 이처럼 권리금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보증금·차임과 전혀 다르다. 누구나 상가 권리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법률과 판례는 권리금의 법률관계를 규율할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 혼란이 벌어졌다. 결국 국회는 2015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에 권리금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위 법률은 기존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는 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인이 이를 방해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권리금을 보호한다. 예컨대 임대차 기간이 종료될 시점이 다가오자 기존 임차인(갑)이 신규 임차인(을)을 물색해 임대인(X)에게 소개했다. 갑은 을로부터 권리금으로 1억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X가 을에게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보증금과 차임을 제시하면서 이 금액이 아니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X와 을의 임대차 계약은 무산됐다. 임대인인 X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특정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문제는 X의 행위로 인해 갑이 을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갑은 권리금 회수 기회가 소멸됐음을 이유로 X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것이 권리금 보호를 위해 상가임대차법이 채택한 수단의 핵심이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사례라면 갑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X는 갑이 주선한 을에게 시세에 딱 들어맞는 보증금과 월세를 제시하면서 계약의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을은 자금이 부족해 보증금과 월세를 지급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 경우 X에게 무작정 을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시 말하면 X가 을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정당하다. 따라서 갑은 X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대법원은 최근 선고한 판결(2025년 11월20일 선고 2024다305605, 305612 판결)에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에 따른 임대인의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한 바 있다. 첫째,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했는데 임대인이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한 경우 임차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대인이 사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하는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음을 확정적으로 밝힌 경우라면, 임차인이 실제로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지 않았더라도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둘째,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주선했는데 임대인이 자신이 그 상가에서 직접 영업할 계획이라는 이유로 신규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거절했다면 이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는가? 위 판결은 ‘임대인 자신이 직접 영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정당한 이유로 볼 수 없으며, 임차인은 임대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률플러스] 상속인의 상속포기와 강제집행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약 5억원 상당의 채권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채무자가 사망하자 채권자는 상속인들로부터 채권을 추심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승계집행문을 받았다. 여기서 승계집행문이란 판결 등 집행권원에 표시된 채권자나 채무자가 사망, 상속, 양도 등으로 변경됐을 때 그 승계인에 대해 강제집행을 실시하기 위해 법원이 발급하는 문서를 말한다. 그런데 상속인들은 법원에 정식으로 상속포기 신고를 해 채무자의 빚과 재산을 모두 물려받지 않기로 했다. 이후 상속인들은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청구이의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제1심과 항소심은 상속인들이 법에서 정한 기간 내에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확정판결에 따른 망인의 채무를 부담하지 않음을 근거로 상속인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여기서 상속인들의 청구를 인용했다는 것은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원심 법원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우선 대법원은 집행문부여의 요건인 당사자 지위 승계 여부는 집행문부여와 관련된 집행문부여의 소 또는 집행문부여에 대한 이의의 소에서 주장·심리돼야 할 사항이지 집행권원에 표시돼 있는 청구권에 관해 생긴 이의를 내세워 그 집행권원이 가지는 집행력의 배제를 구하는 청구이의의 소에서 심리돼야 할 사항은 아님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대법원(2026년 4월2자 선고 2025다218671 판결)은 이 사건처럼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속인들에 대해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으나 상속인들이 적법한 기간 내에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승계적격이 없는 경우에 상속인들은 집행정본의 효력 배제를 구하는 방법으로서 민사집행법 제34조의 집행문부여에 관한 이의신청을 하거나, 같은 법 제45조의 집행문부여에 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확정판결에 따른 채무자의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지 여부는 집행문부여의 요건에 관한 것으로서 집행문부여에 대한 이의의 소 등에서 심리돼야 할 사항이지, 확정판결의 집행력 배제를 구하는 청구이의의 소에서 심리될 사항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상속인들의 패소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처럼 상속인들이 위 청구이의의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위 대법원 판결의 진의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위 판결이 상속인들이 사망한 채무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상속인들이 사망한 채무자의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그들이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소송의 형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자신의 주장이 궁극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올바른 법적 절차와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법률플러스] 협의이혼 상대방의 사망과 재산분할청구

아래와 같은 사례를 가정해 본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A는 자녀를 둔 B와 재혼해 십수년을 함께 살았으나, B의 가정폭력을 견딜 수 없어 B에게 이혼을 요구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협의이혼 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이혼 당시에는 빨리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재산분할에 대해서 아무런 협의 없이 이혼을 했으나 막상 이혼 후에는 경제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돼 전 남편 B에게 재산분할을 요구하려고 했으나 그 사이 B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A는 더 이상 재산분할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일까? 민법은 “협의상 이혼한 자 일방은 다른 일방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고, 위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한 날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839조의2). 따라서 협의이혼 당시에 재산분할 협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협의 이혼 후 2년 내에는 전 배우자를 상대로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 한편 민법은 “협의상 이혼한 자 일방은 다른 일방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위 사례처럼 막상 재산분할 청구를 하려니 상대방(전 배우자)이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 일반적으로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그 행사 여부가 청구인의 인격적 이익을 위해 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전적으로 맡겨진 권리로서 행사상의 일신전속성을 가진다고 해석되고 있으므로 전 배우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재산분할청구권 행사의 상대방을 누구로 할 것인지가 모호하다. 재산분할 제도는 이혼 등의 경우에 부부가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즉 재산분할은 혼인 중 부부의 어느 일방이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의 특유재산으로 하는 부부별산제를 취하는 민법의 규정을 보완해, 이혼을 할 때는 그 재산의 명의와 상관없이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기여한 정도 등 실질에 따라 각자의 몫을 분할해 귀속시키고자 하는 제도다. 따라서 재산분할 청구 사건에 있어서 혼인 중에 형성한 재산의 청산 뿐만 아니라 이혼 후의 부양적 요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급부로서의 성질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거로 최근 대법원(2026년 1월15자 2024스876 결정)은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행사상의 일신전속성을 가지지만 혼인 중 형성한 재산관계를 이혼에 즈음해 청산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재산분할 제도의 취지와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보면, 이혼을 한 당사자 일방이 사망하는 경우 그의 재산분할의무는 상속인들에게 승계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혼을 한 당사자 일방은 사망한 전 배우자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요컨대 비록 전남편 A가 사망했지만 B는 A의 자녀들(예컨대 A와 A의 전처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법률플러스] 반려견은 가족, 책임은 온전히 사람의 몫

대한민국은 이미 반려동물 1천500만명 시대다. 넷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고, 반려견만도 500만마리 안팎으로 추정된다. 반려견은 이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의 기준은 애정이 아니라 책임이다. 실제 판결을 보면 그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인천지법은 2024년 마당에서 기르던 맹견이 대문 밖을 나가 행인에게 달려들어 발생한 사건에서 견주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인천지법 2024고단5430 판결). 피해자는 넘어지면서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법원은 “목줄이나 입마개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고 대문을 잠그지도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잠깐의 방심’이 형사처벌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처벌 수위가 한층 더 높아진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은 2025년 12월 맹견을 목줄과 입마개 없이 방치해 4차례의 개 물림 사고를 일으킨 견주에게 금고 4년 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맹견 몰수 명령까지 유지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얼굴 등 중요 부위를 물려 수술을 받았고, 치료 중 급성 패혈증으로 위독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고 방지를 위한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반복적 방치는 더 이상 과실의 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범죄로 평가된 것이다. 민사상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공원에서 목줄을 놓친 사이 반려견이 어린아이를 물어 치료가 필요해진 사건에서 법원은 견주에게 치료비 전액과 함께 수백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의정부지법 2016가단8442 판결). “평소에는 얌전했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반려견이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견주의 관리·감독 의무를 엄격히 보고 있다. 또한, 목줄을 하지 않은 채 키우던 진돗개가 대문을 열자 뛰어나가 애완견을 공격하는 바람에 제지하던 애완견 주인이 넘어져 중상해를 입은 사건에서는, 상해로 인한 노동능력상실 손해까지 더해져 견주에게 2천9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부산지법 동부지원 2018가단209302 판결). “반려견이 직접 물지 않았더라도, 통제되지 않은 행동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려동물 등록제, 외출 시 리드줄과 입마개 착용 의무는 단순한 행정 규제가 아니다. 이는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특히 맹견의 경우 통제 실패가 곧 중상해와 중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최근 판결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반려견을 가족이라 부르는 사회라면 그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산책길에서 줄을 단단히 잡는 일, 대문과 울타리를 점검하는 일, ‘우리 개는 안 문다’는 방심을 경계하는 일이 결국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최근 판결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는 애정의 크기가 아니라 책임의 깊이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법률플러스] 임대된 건설기계 관련 산업재해에 대한 보험급여와 구상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7조 제1항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급여를 받은 사람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 다만 보험가입자인 둘 이상의 사업주가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각각 행하다가 그 중 사업주를 달리하는 근로자의 행위로 재해가 발생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다. 위 ‘제3자’의 의미에 관해 그동안 대법원은,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근로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 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나 민법 또는 국가배상법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를 말한다고 판시해 왔다. 이에 따라 동일한 사업주에게 고용된 동료 근로자, 사업주인 원수급인에게 고용된 근로자와 하수급인에게 고용된 근로자 및 하수급인에 대해서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면서 대법원(2008년 5월15일 선고 2006다27093 판결 등 참조)은 건설기계 임대차 및 운전노무 제공 계약이 체결된 사안에서는, 임대인의 근로자가 건설기계를 운전한 경우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직접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노무를 제공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직·간접적인 산재보험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제3자에 해당한다고 봐 공단의 대위권 행사를 긍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종전 판례에 대해 현실적인 타당성의 관점에서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이에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판결로, ‘기존의 판단은 제3자에 해당하는지를 산재보험료의 부담관계, 특히 업무상 재해의 가해자에 대한 산재보험료 납부의무를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문제로 파악한 것이나, 위 대위권의 행사 범위는 그러한 관점이 아니라 근로자들 또는 노무제공자들이 동일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그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가해자와 그 사용자는 보험급여를 한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상대방인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2026년 1월22일 선고 2022다214040 전원합의체 판결) 이에 따라 건설기계 임대인 측 가해자가 재해근로자와 동일한 사업주의 지휘·명령 아래 그 사업주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다면, 가해자와 재해근로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내재하는 위험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변경된 판례에 따라 가해자 측은 공단으로부터의 구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바람직한 판례의 변경이라 하겠다.

[법률플러스] 위임계약서 ‘3개월 전 서면 해지 통지’ 약정과 민법 제689조

A씨는 B의류업체와 영업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숙녀복 원단 판매 업무를 맡아 왔다. 위 계약은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됐고, 계약서에는 ‘상대방 당사자에 대해 3개월 전 서면으로 통지함으로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약정과, 귀책 당사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약정이 함께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B업체는 2022년 3월 A씨에게 직물사업 철수를 이유로 위임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같은 해 9월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 경우 A씨는 B업체를 상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시기에 위임계약을 해지했음을 이유로 영업중단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위임계약에 관해 민법 제689조는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자유롭게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해지의 시기가 상대방에게 현저히 불리하고 그에 관해 부득이한 사유가 없다면 손해배상책임이 대두될 수 있다. 다만 이 사안의 위임계약은 해지 사유와 절차,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원인 등을 별도로 정하고 있으므로, 이 약정이 민법 제689조에 우선하는지 나아가 그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볼 수 있는지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대법원(2026년 1월8일 선고 2025다215829 판결)은 민법 제689조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들이 계약으로 해지 사유·절차 및 손해배상책임에 관해 별도로 정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약정이 우선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안의 영업위임계약이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와 관련해 귀책 당사자가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반면, ‘상대방 당사자에 대한 3개월 전의 서면 통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약정에는 손해배상에 관한 문언이 존재하지 않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계약 구조는 당사자들이 민법 제689조의 일반 규율과 달리, 일정한 방식의 해지에 관해 별도의 손해배상책임을 예정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에도 원심이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곧바로 민법 제689조 제2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의사가 민법 제689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해석된다면, A씨가 위 규정을 근거로 B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 곧바로 모든 손해배상청구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B업체에게 별도의 계약상 의무 위반이 있거나 위법한 행위와 그에 대한 고의·과실이 인정된다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별도로 검토할 수 있으며, 이는 이상의 논의와 별개의 쟁점이다.

[법률플러스] 점유취득시효와 소유자의 변경

부동산의 소유자가 아니지만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민법 제245조 제1항). 이를 점유취득시효라고 한다. 그런데 점유취득시효의 완성을 전후해 시효취득 대상 부동산의 소유자가 변경된 경우의 법률관계는 어떻게 될까? 우선 취득시효기간 중 대상 부동산에 대한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변동 없이 동일한 경우, 그 기산점을 어디에 두든지 간에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는 시점에서 보아 그 기간이 경과한 사실만 확정되면 충분하므로, 점유자는 임의로 기산점을 선택할 수 있다. 다음으로 대상 부동산에 대한 취득시효기간의 완성 전에 등기부상의 소유명의가 변경된 경우,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래의 점유상태의 계속이 파괴됐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는 취득시효의 중단사유가 될 수 없다(대법원 1993. 5. 25. 선고 92다52764, 92다52771 판결 참조). 다만 이 경우 원칙적으로 시효취득의 기초가 되는 점유자의 점유 개시시점이 기산점이 되고, 점유자가 임의로 기산점을 선택할 수 없다.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변동된 경우까지 시효이익을 주장하는 자가 그 기산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이해관계 있는 제3자(대상 부동산의 소유명의를 새로 취득한 자)의 법적 지위가 점유자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게 되어 부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상 부동산에 대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상황에서 점유자가 대상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 않고 있는 사이에 등기부상의 소유명의가 제3자로 변동된 경우, 대상 부동산의 점유자는 그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기존의 점유자가 계속 대상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고, 소유자가 변동된 시점을 새로운 기산점으로 삼아 다시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면, 대상 부동산의 점유자는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다463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실제 실무상 점유자가 오랜 기간 동안 대상 부동산을 점유해 취득시효가 완성됐음에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 않은 사이에 대상 부동산의 소유자가 변경돼 점유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대상 부동산에 대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 점유자는 신속하게 대상 부동산의 등기부상 소유자를 상대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 및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법률플러스] 배우자의 부정행위와 손해배상청구

W(아내)와 H(남편)는 1998년 결혼한 부부다. H는 2017년 무렵 A(여)와 불륜을 저질렀으며 W는 그 즈음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W와 H 사이에 갈등이 누적·증폭됐으며 결국 2022년 W는 H와 A를 상대로 이혼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례에서 W의 A에 대한 청구는 인용될 것인가? H와 A가 벌인 부정행위로 인해 W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분명하므로 W는 이들을 상대로 민법 제750조, 제760조(H와 A의 부정행위는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한다)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중대한 제한이 있다. 즉, 민법 제766조 제1항에 따라 불법행위의 피해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따라서 W는 대략 2020년이 지나기 전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W는 2022년에 비로소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W의 A에 대한 청구는 기각된다. 이상의 설명은 W가 일반적인 불법행위 규정을 근거로 통상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음을 전제한 것이다. 그런데 민법 제843조, 제806조는 이혼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위 사안의 W는 H와 A의 유책·불법한 행위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면서 민법 제843조, 제806조를 근거로 위자료를 청구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대법원은 이혼에 따른 위자료청구권에 관해 (통상의 손해배상청구의 경우와 달리) 다음과 같은 법리를 제시한다. ①이 청구권은 이혼의 원인이 되는 개별적 유책행위의 발생으로부터 최종적 이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경과가 전체로서 불법행위로 파악돼 최종적 이혼시점에서 확정·평가된다. ②피해자인 상대방 배우자는 혼인이 해소된 때에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그때부터 3년이 경과해야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된다. ③부부의 일방이 제3자와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 타방 배우자는 불륜 배우자 또는 제3자에 대해 이혼을 원인으로 하는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으며 이는 가사소송법이 정한 가사소송사건이다. ④이혼을 원인으로 하는 위자료청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안에서 당사자의 의사, 혼인관계 유지 여부, 협의 이혼의 성립 여부, 재판상 이혼의 청구 여부, 이혼청구 소송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W와 H는 제1심에서 조정이 성립해 이혼했다. 따라서 W의 A에 대한 위자료청구의 당부가 심리의 대상으로 남았는데 원심은 이 사건을 통상의 민사소송과 동일하게 취급해 W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26년 1월29일 선고 2025므10716 판결)은 이상과 같은 법리를 원용하면서 W의 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법률플러스] 퇴직금 산정 시 초과운송수입금이 평균임금에 포함될까

오랫동안 택시운송업계는 택시회사 소속 운전기사가 하루 운송수입금 중 일정액(사납금)을 회사에 내고, 이를 초과하는 운송수입금은 운전기사가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이를 사납금제 방식이라 하는데, 사납금제 방식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과속과 승차 거부 현상이 발생하고 운전기사의 피로가 누적되며 저임금 구조를 초래한다는 등의 부작용이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운전기사가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회사는 이를 모두 수납하는 방식의 전액관리제 시행이 권고됐고,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개정으로 2020년 1월1일부터 전액관리제가 의무화 됐다. 그러나 전액관리제는 택시회사와 운전기사 양쪽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해 여전히 사납금제와 유사한 방식을 유지하는 택시회사가 많다. 따라서 사납금제와 관련된 사용자와 근로자의 갈등은 계속 진행 중이다. 사납금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분쟁이 발생했다. 택시회사는 운전기사의 퇴직금을 산정할 때 기본급만으로 평균임금을 계산했다. 이에 대해 운전기사는 사납금을 초과한 운송수입금 중 카드로 결제돼 회사 계좌에 입금된 금액도 평균임금에 포함해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주장이 타당할까? 위 사안에서 원심 법원은 초과운송수입금은 운전기사의 개인 수입으로 귀속되고, 초과운송수입금 발생 여부나 금액이 불확실해 회사가 예측하고 관리하기 어려우며, 근로계약에서 초과운송수입금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정했으므로 택시회사의 관리가능성이나 지배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음을 근거로, 초과운송수입금은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26년 1월29일 선고 2025다217529호 판결)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대법원이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택시회사 명의 계좌에 입금된 카드 결제대금을 통해 초과운송수입금의 발생 여부와 금액 범위를 명확히 확인·특정할 수 있으므로 택시회사가 이를 관리·지배하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 ▲근로계약에서 초과운송수입금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라 산정한 퇴직금액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이 보장한 하한에 미달한다면 위 합의는 퇴직급여법 제8조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등이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퇴직금액이 퇴직급여법이 보장한 하한을 상회하는지 아니면 미달하는지에 관해 심리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위 판결은 택시 운전기사의 초과운송수입금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사례로 의미가 있다.

[법률플러스]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의 범위

A는 다세대주택 및 오피스텔로 이루어진 집합건물의 구분건물 23개를 은행에 공동담보로 제공(근저당권 설정)했다. 공인중개사 B는 위 건물 중 1개를 C에게 임대하는 임대차계약을 중개하면서 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중개대상물을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으로 표시하고 ② ‘권리관계’란에 ‘중개대상물에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는 내용만 기재했을 뿐 ‘실제 권리관계 또는 공시되지 않은 물건의 권리 사항’란은 공란으로 비어 뒀다. 이후 공동근저당권이 설정된 위 23개 구분건물들에 대해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돼 매각됐는데 그 매각대금은 소액보증금 최우선변제권을 보유한 임차인들과 선순위 근저당권자 등에게 배당됐을 뿐 임차인 C는 한 푼도 배당받지 못했다. C는 공인중개사 B가 중개대상물에 관한 확인·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임차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했다. 위 사안에서 하급심법원은 공인중개사 B가 중개대상물에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것을 확인·설명했고, 다세대주택은 다가구주택과 달리 임대차계약을 중개할 때 임차인에게 다른 세대의 임대차 현황(소액보증금 등)에 관한 사항을 확인해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25년 12월4일 선고 2024다305087 판결)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공인중개사는 중개대상물의 기본적인 사항과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 등을 확인해 이를 임차인에게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설명의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하며, 그 확인·설명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임대인 등에게 해당 중개대상물의 상태에 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계약서 작성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거래당사자에게 교부해야 하며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는 ‘실제 권리관계 또는 공시되지 않은 물건의 권리 사항’도 기재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의 설정은 공정하고 투명한 부동산거래질서를 확립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런데 위 사안에서 공인중개사 B는 중개대상물이 공동주택(다세대주택)임에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이를 단독주택으로 표시했다. 또한 그는 ‘권리관계’란에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는 내용만 기재했을 뿐, 그 근저당권이 공동근저당권이라거나 공동근저당권이 설정된 다른 구분건물에 선순위권리가 있는지 확인한 내용은 기재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그는 공동근저당권이 설정된 다른 구분건물에 대한 임차인의 존부, 임대차보증금, 임대차의 시기와 종기 등에 관한 자료를 임대인에게 요구해 이를 확인한 다음 그 내용을 임차인에게 설명하고 그 자료를 제시하거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그러한 내용을 기재하는 등 공인중개사로서의 확인·설명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공인중개사 B는 부동산 중개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필요한 확인·설명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임차인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유사한 사건으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참조할 가치가 있는 판단이다.

[법률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단순 불안감'으로 손해배상 어렵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SK텔레콤, 쿠팡, 넷마블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에서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정보는 괜찮을까?’, ‘범죄에 악용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안감만으로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2025년 12월4일 선고 2023다311184 판결)은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2021년 9월 학습자료 공유 플랫폼 해피캠퍼스가 해킹을 당해 40만여 명의 이메일 주소와 암호화된 비밀번호가 유출됐다. 회원 A씨는 개인정보 유출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3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우선 유출된 비밀번호는 암호화돼 있어 제3자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이메일 주소만으로는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렵고, 실제로 2년이 넘도록 스팸메일 증가나 2차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 회사도 사고 직후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회원들에게 통지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대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경우까지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하려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는 아니다”라며 원심을 확정했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피해자가 손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법정 손해배상 제도를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손해가 없는데도 무조건 배상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 발생 여부를 판단할 때 ▲유출된 정보의 종류와 성격 ▲정보 주체 식별 가능성 ▲제3자의 열람 가능성 ▲정보의 확산 범위 ▲추가적 피해 가능성 ▲사업자의 정보 관리 상황과 유출 경위, 피해 발생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단순히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로 인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위험이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출된 정보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거나, 명의도용으로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거나, 민감정보 유출로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된 경우라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판결이 개인정보 유출을 가볍게 봐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업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철저히 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응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유출 시 72시간 이내에 정보 주체에게 통지하고 보호위원회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제34조). 이용자 입장에서도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서비스마다 다른 비밀번호를 사용하며, 의심스러운 연락에 주의하는 등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디지털 시대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업과 이용자 모두가 그 가치를 인식하고 보호에 힘써야 할 것이다.

[법률플러스] 집합건물에 대한 분양자와 관리단의 관리시점 구분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 제23조에 따르면 구분소유 관계가 성립되면 관리단이 당연 설립된다. 그러나 관리단의 당연 설립 시점에서도 관리단이 현실적으로 곧바로 집합건물을 관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집합건물법 제9조의3 제1항은 ‘분양자는 제24조 제3항에 따라 선임된 관리인이 사무를 개시할 때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건물과 대지 및 부속시설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해, 관리인이 사무를 개시할 때까지는 분양자로 하여금 관리할 책임과 권한을 주고 있다. 구 집합건물법 제9조의3 제1항은 ‘분양자는 제23조 제1항에 따른 관리단이 관리를 개시할 때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건물과 대지 및 부속시설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동일 취지의 조항이다. 현행법이 관리단의 관리 개시시점을 좀 더 명확히 한 셈이다. 아무튼 관리단의 관리가 개시되면 집합건물법 제9조의3에 따라 집합건물을 관리하던 분양자는 그때에 관리비 징수권한을 포함한 관리권한을 상실하게 되고, 관리단이 그 관리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다만 판례는, 분양자가 집합건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관리업무에 관한 법률관계는 관리단에 당연히 승계되는 것은 아니므로 분양자와 관리위탁계약을 체결한 위탁관리업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존 관리위탁계약의 효력을 관리단에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는 어느 시점에 관리권한이 분양자에서 관리단으로 바뀌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구 집합건물법이 적용되는 시점에서는 어떠한 상태가 관리단이 관리를 개시한 때인지가 더 명확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구 집합건물법 제9조의3 제3항은 ‘분양자는 예정된 매수인의 2분의 1 이상이 이전등기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구분소유자가 규약 설정 및 관리인 선임을 하기 위한 관리단집회를 소집하지 않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위한 관리단집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판례(대법원 2025년 12월11일 선고 2025다214166 판결)는 위 규정의 취지는 분양자가 관리단의 업무 개시 전 집합건물을 장기간 독단적으로 관리해 구분소유자들의 관리 권한을 침해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관리단이 관리업무를 개시하지 않고 임시관리인을 선임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조치를 취해지지 않은 이상, 예정된 매수인의 2분의 1 이상이 이전등기를 마친 후 3개월 이내에 관리단집회가 소집되지 않았다고 해 곧바로 분양자의 한시적 관리권한이 소멸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법률플러스] 사망한 피고인에게 선고된 유죄판결, 상소 가능할까

피고인 A씨는 항소심 재판 도중인 2023년 4월26일 사망했다. 그런데 항소심법원은 그 다음 날인 2023년 4월27일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이러한 경우 A씨에게 내려진 유죄판결은 적법할까? 본래 재판 도중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 형사소송법 제328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법원은 공소기각 결정을 해야 한다. 따라서 피고인 A씨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하 ‘원심판결’)은 적법하지 않은 판결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위법한 판결에 대해 누가 어떻게 다퉈야 하는가? 형사소송법 제341조 제1, 2항에 의하면 피고인의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또는 원심의 대리인이나 변호인(이하 ‘원심의 변호인 등’)은 피고인이 명시한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피고인을 위해 상소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원심의 변호인 등에게 ‘고유한 상소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상소권을 대리해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사망한 때에는 그 상소권을 가지고 있는 권리자가 사망한 것이므로 상소권의 대리권자인 원심의 변호인 등은 상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편 우리 대법원(2005년 3월11일 선고 2004오2 판결 참조)은 법원이 판결 선고 전에 피고인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해 공소기각 결정을 하지 않고 실체 판결로 나아간 경우, 이는 사망이라는 전제사실을 법원이 오인한 것으로 형사소송법 제441조에서 정한 비상상고의 사유인 ‘법령에 위반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비상상고로도 위법한 판결을 시정하는 것이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위 사안과 관련해 최근 대법원(2025년 12일15일 선고 2023도6106 판결 참조)은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에도 위법한 판결을 시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즉,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 형사소송법 제328조 제1항 제2호나 제363조 제1항에 따라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어야 함에도 사실심 법원이 피고인의 사망사실을 간과한 채 유죄판결을 선고한 때에는, 그 시정을 위해 원심의 변호인 등이 예외적으로 공소기각 결정을 구하는 취지의 상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본 사안의 경우 피고인 A의 원심 변호인 등이 피고인의 사망에 따른 공소기각 결정을 구하기 위해 상고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82조, 제328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

[법률플러스] 공동임차인 중 1인의 채권자가 한 압류 및 전부명령의 효력

갑과 을은 상가를 공동으로 임차하고 임대인 병에게 임대차보증금 2억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후 을(공동임차인 중 1인)의 채권자 정이 을의 병(임대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중 4천만원에 관해 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다. 갑, 을과 병 사이의 위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자, 갑은 병에게 임대차보증금 2억 원을 전액 반환할 것을 청구했는데, 병은 정의 압류 및 전부명령을 이유로 위 4천만원의 반환을 거부했다. 이와 같은 병의 임대차보증금 일부에 대한 반환 거부 주장은 타당할까? 우선 대법원(2012년 3월29일 선고 2011다95861 판결 참조)은 공동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불가분채권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전제로 대법원은 위 사안에 관해 다음과 같은 법리를 판시하고 있다. 우선 ①수인의 채권자에게 금전채권이 불가분적으로 귀속되는 경우 불가분채권자들 중 1인을 집행채무자로 한 압류 및 전부명령이 이뤄지면 그 불가분채권자의 채권은 전부채권자에게 이전된다. 그러나 ②그 압류 및 전부명령은 집행채무자가 아닌 다른 불가분채권자에게 효력이 없으므로 다른 불가분채권자의 채권의 귀속에 변경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③다른 불가분채권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해 채무자에게 불가분채권 전부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채무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해 다른 불가분채권자에게 전부를 이행할 수 있다. ④이러한 법리는 불가분채권의 목적이 금전채권인 경우 그 일부에 대하여만 압류 및 전부명령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우선 정(공동임차인 을의 채권자)의 압류 및 전부명령으로 병(임대인)의 을(공동임차인 중 1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중 4천만 원은 정에게 이전된다. 그러나 다른 공동임차인인 갑에게는 위 압류 및 전부명령의 효력이 미치지 않으므로 갑은 위 압류 및 전부명령에 관계없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의 이행을 구할 수 있다. 정은 갑과 더불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위 압류 및 전부명령으로 전부받은 채권액 범위 내에서 불가분채권자의 지위를 갖게 될 뿐이다. (이상 대법원 2023년 3월30일 선고 2021다264253 판결 참조). 결국 정의 압류 및 전부명령의 효력은 다른 공동임차인 갑에게 미치지 않으므로, 갑은 임대인 병에게 불가분채권인 임대차보증금 2억 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병의 입장에서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중 일부에 대한 정의 압류 및 전부명령이 존재함에도 갑에게 임대차보증금 전액을 반환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병은 법원에 임대차보증금을 공탁함으로써 복잡한 법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률플러스] 무효인 근저당권과 임의경매

채권자 Y는 채무자 X가 소유하는 A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X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자 Y는 A토지에 대한 임의경매를 신청했고 그 절차에서 Z가 낙찰자로 결정됐다. Z는 매각대금을 지급했고 Y는 자신의 채권액(편의상 1억원이라 하자)을 전액 배당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Z는 A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다. (반대로 X는 소유권을 상실함) 이것은 임의경매(담보권 실행)의 전형적인 전개 과정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황이 모두 종료된 이후 X가 위 근저당권에 여러 가지 흠결이 있어 Z는 A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 경우가 있을까? 즉 임의경매 절차 자체는 법률에 따라 적절하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Z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까? 더구나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은 담보권 소멸로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민사집행법 제267조를 감안하면 X의 위 주장은 애당초 법률 규정과 충돌하는 억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X의 주장이 타당한 경우가 있다. 임의경매의 정당성은 실체적으로 유효한 담보권의 존재에 근거하므로,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다면 그에 기초한 경매는 원칙적으로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Y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줄 당시 X가 의사무능력자(중증의 정신질환자처럼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된 사람)였다면 담보권 자체가 무효이므로 그에 따른 임의경매 절차도 무효다.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근저당권을 설정한 이후 X는 Y에게 채무 전액을 변제했다. X는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근저당권 등기를 방치했다. Y는 이 기회를 틈타 임의경매를 신청했고 Z가 경락을 받았다. 이 사례에서 X가 채무를 변제함과 동시에 근저당권은 소멸한다. 그럼에도 잔존하는 근저당권 등기는 단지 껍데기일 뿐이다. 껍데기인 근저당권에 근거한 임의경매도 무효다. 여기서 임의경매가 무효라는 것은 Z가 경매절차에서 매각대금을 완납했고 A토지에 대한 소유권등기를 마쳤음에도 A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X는 Z를 상대로 소유권등기의 말소, 토지의 인도를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Z에게 날벼락 같은 일로 느껴질 수 있다. 다만, Z는 Y에게 배당금 1억원을 부당이득으로 자신에게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는 있다. 대법원(2022년 8월25일 선고 2018다2052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민사집행법 제267조의 적용범위를 이상과 같이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사집행법 제267조가 적용되는 것은 어떠한 경우일까? 예컨대 채무를 변제받지 못한 Y가 임의경매를 신청하자 비로소 X가 채무를 변제했다. 그런데 이처럼 변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Y는 경매를 계속 진행했고 X는 이를 방치했으며 결국 Z가 낙찰을 받았다. 대법원에 의하면 이러한 경우(즉 경매신청 이후 비로소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는 민사집행법 제267조가 적용돼 매수인(Z)이 유효하게 소유권을 취득한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권을 상실한 X는 Y에게 배당금을 자신에게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플러스] 혈중알코올농도 상승기에 있으면 음주운전 아니다?

운전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의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면 음주운전죄로 처벌된다.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0.03% 이상 0.08% 미만이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0.08% 이상 0.2% 미만이면 1년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의 벌금, 0.2% 이상이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상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도로교통법 제44조 제1항, 제4항, 제148조의 2 제3항). 술을 마신 후 30분에서 90분 사이에 알코올이 체내에 흡수되면서 혈중알코올농도가 올라가 최고치에 도달한다. 이 시기를 상승기라 한다. 이처럼 최고점에 도달한 이후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혈중알코올농도가 점차 낮아지는데 이 시기를 하강기라 한다. 음주운전의 성립 여부는 운전 당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에 달려 있다. 운전자가 음주운전으로 단속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운전 시점과 혈중알코올농도의 측정 시점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으며 측정시점이 혈중알코올농도의 상승기이므로 운전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처벌기준인 0.03% 미만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운전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1차로로 차로를 변경하며 주행하다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있었다. 측정 시점에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 0.037%였지만 운전 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심은 피고인이 자동차를 운전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2025년 12월11일 선고 2025도8137 판결)의 판단은 달랐다. 운전 시점과 혈중알코올농도의 측정 시점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고 그때가 혈중알코올농도의 상승기로 보이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언제나 실제 운전 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기본 입장이었다. 즉, 운전 당시에도 처벌 기준치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운전과 측정 사이의 시간 간격,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의 수치와 처벌기준치의 차이, 음주를 지속한 시간 및 음주량, 단속 및 측정 당시 운전자의 행동 양상, 교통사고가 있었다면 그 사고의 경위 및 정황 등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음주운전은 운전자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사회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막연히 혈중알코올농도의 ‘상승기’에 있었으므로 무죄라는 주장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 대법원의 위 판결도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법률플러스] 대화녹음 행위와 손해배상 책임

A는 지방에 영업소를 설치하면서 B로 하여금 지방 영업소에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게 했다. A는 위 지방 영업소를 폐점하기로 하면서 B의 근로계약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연장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하고, 이러한 내용을 B에게 통보하는 과정에서 B의 동의 없이 대화내용을 녹음했다. 이후 B와 법적 분쟁이 발생하자 A는 위 대화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B는 A가 불법적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해 자신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A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안에서 B의 청구는 인용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해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복제, 방송, 배포 등이 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그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방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음성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했더라도 그 녹음한 파일이나 녹취록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실체적 진실 보존 또는 자기 방어를 위해 상대방 대화의 녹음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녹음행위가 음성권을 위법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의 명시적인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해 녹음을 하는 등 침해방법이 부당한 경우, 또는 녹음행위 자체는 부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방송, 배포하는 등의 경우에는 이로 인해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필요성, 상대방이 입게 되는 피해의 성질과 정도 등에 비춰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위 사례의 녹음 행위는 A가 B에게 영업소 폐점에 관한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B가 명시적으로 녹음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B를 기망 또는 협박해 녹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A는 위 녹음행위를 통해 영업소 폐점에 관한 B의 반응을 확인해 둠으로써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위 대화 내용은 근로계약 기간의 종료를 통지하면서 갱신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리는 취지에 불과하고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B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크다고 볼 수 없다. A는 녹음파일을 법적 분쟁과 관련해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했을 뿐, 다른 목적으로 방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녹음파일 등의 제출로 인해 B가 입을 수 있는 피해의 정도는 수인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법원(2025년 10월16일 선고 2025다204730 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B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법률플러스] 문서제출명령과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출

민사소송법 제344조 이하의 규정에 따라 법원은 문서제출명령을 할 권한이 있다. 한편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의하면 ‘누구든지 위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위 단서 각호에 ‘문서제출명령’이 발령된 경우는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법원이 민사소송법에 의한 문서제출명령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출을 명했을 때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그 자료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23년 7월17일 선고 2018스34 판결)로 법원은 민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할 수 있고 전기통신사업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이와 같이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민사소송법이 정한 문서제출명령에 의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민사소송법상 증거에 관한 규정이 원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②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미 민사소송법 제294조에서 정한 조사의 촉탁의 방법에 따른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통신사실확인자료가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확장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③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 취지는 법원이 신중하고 엄격한 심리를 거쳐 문서제출명령 제도를 운용함으로써 충분히 구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위와 같이 강한 일반적 금지의무를 부과하고 법원과 관련된 예외사유로는 조사·송부의 촉탁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294조만을 특정하고 있을 뿐 이에 관한 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를 정하고 있지 아니한 점, 전기통신사업자가 법원에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출할 의무를 부담하는지에 관해서는 규범의 충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규범 충돌의 상황은 특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을 우선함으로써 해소돼야 한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강력히 비판하는 반대의견이 존재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존중돼야 할 것이나, 상당한 반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관한 문서제출명령을 내림에 있어서는 신중한 고려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법률플러스] 볼링장 건물이 경매로 처분되는 경우 볼링장 기계의 소유권

A는 B로부터 금전을 차용하면서 B를 위해 본인(A) 소유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에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줬다. 이후 A는 이 사건 건물 안에 있는 볼링장의 시설인 기계(이하 ‘이 사건 기계’)를 C에게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던 중 A는 B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했고 이에 B는 위 부동산에 관해 경매신청을 해 임의경매개시결정이 내려졌고, D가 위 부동산을 매수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C는 D에게 자신이 이 사건 기계를 매수했다며 이를 인도해달라는 청구를 제기했다. 이때 D는 C에게 이 사건 기계를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우선 이 사건 건물과 이 사건 기계의 관계를 통해 D가 이 사건 기계의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했는지에 관해 살펴보자. 물건(주물)의 소유자가 그 물건의 상용에 공하기 위해 자기 소유인 다른 물건을 부속하게 한 때에 그 부속물은 종물이다(민법 제110조). 쉽게 말해, 건물(주물)의 소유자가 그 건물에 설치하는 전기설비, 냉난방 설비, 승강기 등은 건물의 종물이다. 그렇지만 모든 부속물이 종물이 되는 것은 아니며, 주물의 경제적 효용을 다하게 하는 것으로서 주물과 소유자가 같고 주물로부터 독립한 별개의 물건이면서, 장소적으로도 밀접하게 결합돼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기계는 이 사건 건물과의 관계에서 종물에 해당하는가? 최근 우리 대법원(2025년 10월16일 선고 2025다213056 판결)은 위와 유사한 사안에서 볼링 기계는 해당 건물이 볼링장으로서 경제적 효용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필수적인 시설물로서 해당 건물의 종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 사건 기계는 이 사건 건물의 종물이다. 그런데, 경매절차에서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 D는 이 사건 기계에 대한 소유권도 취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 민법(재358조 본문)은 저당권의 효력은 저당 부동산에 부합된 물건과 종물에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부동산에 관한 저당권의 실행으로 개시된 경매절차에서 그 부동산을 매수해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은 그 저당권의 효력이 미치는 종물의 소유권도 함께 취득한다. 그리고 이는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 전에 저당권이 설정되고 그 후 종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가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대법원 2005년 5월13일 선고 2005다12230 판결 등 참조). 따라서 D는 경매절차에서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하여 소유권을 취득했으므로 그 종물에 해당하는 이 사건 기계의 소유권도 함께 적법하게 취득한 것이다. 요컨대 C는 D를 상대로 자신이 소유자임을 내세워 이 사건 기계의 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

[법률플러스] 추심명령이 있는 채권에 대한 채무자의 이행의 소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나 국세징수법에 의한 체납처분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법원은 추심명령이나 체납처분이 있는 경우,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 소송을 각하해 왔다. 그런데 최근 위 기존 대법원의 판결을 변경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한다. 최근 대법원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국가가 국세징수법에 의한 체납처분으로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압류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①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추심명령에 위반되지 않고, 추심명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무자가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볼 법률적 근거가 없다. ②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소송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실제 추심은 압류에 의해 금지되고 설령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게 피압류채권에 따른 급부를 제공하더라도 이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으므로 추심채권자의 추심권능이 제한되지 않으므로, 추심채권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③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소송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집행을 시도하더라도 제3채무자로서는 집행장애사유를 주장하여 이를 저지할 수 있고 민사집행법 제248조에 따라 공탁함으로써 지급의무를 면할 수도 있으므로, 제3채무자에게 불리하지 않고 오히려 응소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④추심명령을 이유로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면 소송이 장기간 진행됐거나 상고심에 이르러 비로소 추심명령이 발령됐더라도 법원은 이를 직권으로 조사해 소를 각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 경우 그동안의 소송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게 돼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에 반하고 추심채권자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25년 10월 23일 선고 2021다25297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러한 판례 변경에 따라 이제는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이행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된다. 대법원이 밝힌 바와 같이, 위 판결은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의 관점에서 변경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합당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향후 소송 진행과정에서 소송고지나 법원의 석명 등을 통해 추심채권자가 위 이행의 소에 적절히 참가할 수 있도록 그 기회를 보장하는 절차가 확립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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