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흠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어떤 종중이 종중 규약을 새로이 제정하면서 ‘종중회장은 본 종중의 종손으로 한다.’라고 정했다면, 그러한 규약 내용은 유효한 것일까.
판례에 따르면 원래 종중 대표자는 종중의 규약이나 관례가 있으면 그에 따라 선임하고 그것이 없다면 종장 또는 문장이 그 종원 중 성년 이상의 사람을 소집해 선출한다. 만일 평소 종중에 종장이나 문장이 선임돼 있지 아니하고 선임에 관한 규약이나 관례가 없으면 현존하는 연고항존자가 종장이나 문장이 돼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분명한 종원에게 통지해 종중총회를 소집하고 그 회의에서 종중 대표자를 선임하는 것이 일반 관습이다.
위 선례에서 만일 해당 종중의 관례로 그 종손이 종중회장을 계속 맡아 왔다면, 위와 같이 새로이 제정한 규약 내용은 관례를 성문화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러한 규약 내용은 유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례가 없는 경우에는 견해가 나뉠 수 있다.
즉 그 경우에도 만일 종중 규약에서 종손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나름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고 종중 규약이 정한 절차에 따라 위 규약 내용을 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종중의 특성이나 종손이 종중 내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지위 등에 비추어 위 규약 내용 자체가 종중의 본질이나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 위와 같은 쟁점이 문제 된 사건에서 하급심은 그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2024년 12월24일 선고 2024다274398 판결 참조)은 회장 지위를 종손에게만 부여할 만한 특별한 필요성을 찾기 어렵고, 오히려 종중의 의사결정, 임원 선임 등을 위한 권리와 의무에 관해 종원 모두에게 같은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그 본질과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점. 위 규약 내용은 종손이 아닌 종원이 대표자에 입후보하고, 종원이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했고, 특히 여성 종원에 대해서는 대표자에 입후보할 기회조차 봉쇄하고 있으므로 합리적 이유 없이 종손과 종손이 아닌 종원을 차별하고, 남성 종원과 여성 종원을 차별하는 내용이라는 점. 위 규약 내용은 총회의 회장 선출에 관한 본래적 기능을 무력화시킨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위 규약 내용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할 뿐만 아니라 종원이 가지는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종중의 본질이나 설립 목적에 크게 어긋나므로 무효라고 보고 있다. 이 판결은 기존의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종중의 법리와 관련해 특히 참조할 만한 판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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