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도산의 의미 있는 걸레질

왁자지껄했다. 짚신을 신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투를 거머쥔 채 악다구니를 쓰고 있어서다. 이들은 조선인 인삼 장수들이었다. 영역 침범이 다툼의 원인이었다. 구경꾼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장소는 어디였을까. 미국 남부지방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조선 청년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청년이 태평양을 건너온 목적은 신학문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같은 광경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바로 동포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걸레로 집 안 구석구석을 닦고 훔쳤다. 빗자루로 쓸기도 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우리 동포들이 사는 집이 화장실보다 더 더럽다고 흉보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선 일이었다. 1902년 3월 중순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도산 안창호다. 역사는 가끔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 미래를 묻는다. 120여년 전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조선인의 삶은 처참하고 지난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은 기본이었다. 그보다 더 살을 파고드는 고통이 있었다. 서구 사회가 덧씌운 지독한 차별과 멸시의 낙인이었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은 그저 ‘미개하고 더러운 동양인’일뿐이었다. 인간으로서 존엄도 철저하게 부정당했다. 가난과 비위생이라는 굴레가 천형처럼 옥죘다.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도산이 택한 건 분노 대신 걸레질과 빗자루질이었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하찮은 일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산에게 청소는 우리 민족을 향해 덧붙여진 ‘더럽다’는 편견의 얼룩을 지워내는 성스러운 의식이자 독립운동이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메시지는 심오했다. 도산은 사소한 노동, 작은 행동 하나가 모여 한 민족의 국격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봤다. 정직한 땀방울과 단정한 태도가 곧 조국의 얼굴이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같은 실천 덕분에 조선인은 ‘성실하고 깨끗한 민족’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독립운동의 거룩한 도덕적 자산이 됐다. 도산의 걸레질과 빗자루질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게 아닐까라는 발상은 지나친 비약일까. 문득 드는 단상이다.

[지지대] 불 한번에 드러난 대응역량의 민낯

평온한 일상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리더십과 역량. 위기의 순간은 진정한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된다. 최근 주말을 맞아 머리도 식힐 겸 펜션을 빌려 여행을 떠났다. 평소 약속시간에 자주 늦는 편인데 그날 따라 일행 중 가장 먼저 펜션에 도착했다. 미리 받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선 순간, 뿌연 연기가 내부를 휘감고 있었다. 펜션 건물 바로 뒤에 위치한 보일러실에서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사건 기자를 하면서 수십건의 크고 작은 화재 사고를 접해 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경험은 전무, 정확히 말해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였다. 곧 있으면 펜션동으로 불길이 확산될지 모르는 상황. 위기의 순간 가장 필요한 침착한 대처는 없었다. 너무 놀라 펜션 현관문에 놓여 있던 발 사이즈에 맞지도 않은 슬리퍼를 신고 ‘후다닥’ 밖으로 대피했다. 119 신고를 하며 “불이 났다. 불이 났어요!”만 앵무새처럼 떠들다가 소방 측의 추가적인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10여분 뒤 소방차들이 속속 도착해 불길을 잡아갔다. 연신 쏟아내는 물대포는 3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불이 완진되는 과정을 보다 문득 건물 재질을 물었던 소방 측의 질문에 답을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펜션 건물을 살펴보니 그제야 건물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구조 1층, 목재로 마감된 2층. 주복내견선유(舟覆乃見善游). ‘배가 뒤집어졌을 때에야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위기나 시련이 닥쳤을 때 비로소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의미다. 경기일보에 ‘사람들’이라는 미담 사례를 소개하는 지면이 있다. 기도가 막혀 쓰러진 시민을 구한 20대 청년, 치솟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구조를 도운 시민. 급박한 돌발 상황에서 침착한 판단과 신속한 대처를 선보인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작은 영웅들이 아닐까.

[지지대] 평화의 봄은 오는가

완연한 봄이다. 입춘이 지난 지도 한 달이고 곧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이다. 아직 아침 출근길은 쌀쌀하지만 낮 기온은 영상 10도 가까이 오르며 봄을 느끼기에 충분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국민 스포츠라 불리는 야구의 계절도 돌아왔다. WBC 예선에서 보여준 한국 야구의 끈질긴 투혼과 국민의 함성은 미국에서 펼쳐질 본선과, KBO 리그 개막으로 이어질 것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고 승부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희망의 계절이다. 하지만 경제 현실은 봄볕처럼 따스하지만은 않다. 멀리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은 단순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어 글로벌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는 어느덧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이는 고스란히 우리 장바구니 물가와 기업의 원가 부담으로 전이되고 있다. 전쟁은 파괴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라는 가장 잔인한 경제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야구 경기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기대하듯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갈등의 종식과 평화의 회복이다. 진정한 봄은 기온이 오른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총성이 멈추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이 가실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라운드 위로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간절하게, 중동 땅에도 증오의 포연 대신 화해의 꽃향기가 퍼지길 기대한다. 우리 경제가 이 매서운 ‘글로벌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진정한 평화의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야구장의 함성 속에 간절한 염원을 보태본다.

[지지대] 장릉과 광릉

2026년 3월 엇갈린 ‘장릉’과 ‘광릉’의 모습이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은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잠든 곳이다. 이전에는 노산군묘(墓)로 불렸고 숙종 24년(1698년) 단종이 추존·복권돼 장릉으로 격상됐다.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광릉(光陵)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정희왕후의 왕릉이다. 세조, 즉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문종의 사망 후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계유정난’을 일으킨 끝에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사후 광릉에 묻혔고 지금 온라인상에서 ‘악성 댓글’의 대상이 됐다. 단종 이홍위와 강원도 영월 광천골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이래 꾸준히 화제를 모으며 ‘천만영화’에 등극했다. 단종과 관련된 역사라면 수양대군과 한명회, 김종서 등이 얽힌, 피의 군사정변인 계유정난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홍위와 엄흥도를 비롯한 귀양지 광천골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인간적으로 풀어내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했다. 결국 관객은 ‘두 남자’를 통해 역사적 비극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며 권력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다. 영화를 통해 떠오른 또 다른 이슈는 세조와 단종이 묻힌 장소다. 세조의 광릉은 지도앱에 ‘악플’이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고 한 플랫폼은 ‘세이프모드’로 전환돼 후기를 차단했다. 반면 단종의 장릉에는 응원과 애도의 메시지가 넘치고 있다. 영월에는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역사와 허구를 넘어 현실에서 다시 쓰는 새로운 기록은 현대인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현재의 대한민국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바로 4년 전 2022년 3월10일 우리는 한 대통령의 당선을 바라봤고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비상계엄’ 선포를 지켜봐야 했다. 반면 외국의 정치학자들은 비상계엄을 민주주의로 극복한 대한민국 시민 전체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현재의 댓글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과연 먼 훗날 이 시간에 대해 어떤 댓글이 달릴지 궁금해진다.

[지지대] 생강나무 서정

해마다 이맘때면 꽃망울을 터뜨린다. 아직 잎이 돋기 전이다. 그리고 이내 노란색 꽃을 피운다. 색깔이 제법 곱고 환하다. 한반도에서 이만한 자태를 갖춘 식물이 또 있을까. 생강나무가 딱 그렇다. 이 같은 에피소드 이외에도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게 또 있다. 어둡고 혹독했던 계절이 끝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생강나무 꽃이 활짝 핀 뒤 20일 정도 지나야 산수유꽃이 망울을 터뜨린다. 그래서 산수유가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는 명제는 수정돼야 한다. 그런데 이 명칭은 낯설다. 그 대신 ‘동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 얘기가 달라진다. 귀에 익기 때문이다. 강원도 사투리로도 ‘동백’이라 부른다. 옛날 강원도에선 내륙에서 구하기 힘든 비싸고 귀한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해 사용했다고 한다. 동백기름이라고 부르던 게 이렇게 유래됐다. 소설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꽃을 가리켰다. 강원도의 전통민요인 ‘정선아리랑’에도 나온다. ‘싸릿골 올동박’이 그것이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이 식물은 녹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로 키는 3m에서 웃자라면 6m 남짓하다. 꽃과 잎, 줄기 등에서 생강 향이 난다. 이름이 붙여진 연유다. 암수가 딴 그루다. 같은 시기 피는 산수유꽃과 비슷하다. 색깔도 노랗다. 그래서 헷갈리기 쉽다. 한번 따져 보자. 생강나무는 꽃이 가지에 바짝 붙어 핀다. 반면 산수유는 꽃에 비해 꽃자루가 길어 작은 꽃들이 여유롭다. 생강나무꽃은 줄기 끝이 녹색이고 줄기가 갈라지지 않고 매끄럽다. 산수유꽃은 줄기가 갈색이고 거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잎과 껍질 등을 약으로 썼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우려내 차로도 마시는데 매운맛이 난다. 냄새가 특이해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국립수목원이 3월 우리의 정원식물로 생강나무를 선정했다. 산책로 주변이나 상록수 앞쪽에 심으면 노란꽃이 더욱 돋보인다. 반그늘이나 양지 바른 곳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올봄에는 들녘에서 생강나무의 서정을 마음껏 느껴 보자.

[지지대] 태극기 페르소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사신이 증기선에 몸을 실었다. 미국이라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이 나라와 수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가 없었다. 부랴부랴 망망대해 한복판 배 안에서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 총리대신 김홍집의 에피소드다. 몇 개월 뒤 일본으로 떠나는 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의 사신은 박영효였다. 태극기는 그렇게 제작됐다. 일각에선 고종이 도안해 국기로 사용했다는 학설도 있다. 조선은 현대적인 의미의 국기가 없었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임금의 어기(御旗)인 ‘태극팔괘도’가 있었다. 태극기는 조선 군주의 어기를 일부 변형해 고종이 직접 도안해 제작했다는 설이 그렇다. 태극기는 이처럼 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때가 1882년 5월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종이 조선의 정식 국기로 공포했다. 이듬해인 1883년 3월6일이었다.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었다. 태극기는 일제에 의해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9년 후인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정통성이 계승됐다. 그리고 광복 이전까지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역사다. 태극기는 흰색을 배경으로 중앙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태극, 네 귀퉁이에는 팔괘 중 상하가 대칭되는 사괘인 건(乾), 곤(坤), 감(坎), 이(離) 등이 그려졌다. 음양 화합을 상징한다. 앞서 김홍집이나 박영효가 국기를 만들 때 참조했던 게 임금을 상징하는 어기인 태극팔괘도였다. 그 원형이 지금도 규장각에 보존돼 있다.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청나라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이 배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조선이 모름지기 독립국가라면 반드시 국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일부 정치세력 앞에 태극기라는 접두사가 붙은 지는 오래됐다. 태극기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무릇 태극기도 인격체라면 그 처절하고 장엄한 페르소나를 기억해야 한다. 1세기가 넘도록 어떻게 지켜온 국기인가.

[지지대] 성장의 그늘

항만과 공항을 지닌 대한민국의 관문도시 인천이 연일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올해 인천항을 찾는 크루즈는 현재까지 122항차를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25년 32항차의 4배에 이르는 수치다. 중국이 일본 관광을 제한하는 ‘한일령’ 기조를 유지하면서 중국발 크루즈가 일본 대신 우리나라로 선수를 돌렸다. 이로 인해 당초 64항차였던 올해 예상치는 배가 늘었다. 항만에 이어 인천의 하늘도 연일 최고 기록을 쓰고 있다. 지난해 인천공항을 이용한 여객은 7천407만1천475명으로 개항 이후 가장 많은 여객 수를 기록했다. 2월 설 연휴 기간에는 역대 성수기 가운데 최다인 1일 평균 23만1천여명의 여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했다. 인천공항은 2024년 말 제2여객터미널(T2) 확장 등을 담은 4단계 사업을 마치고 여객 1억명을 수용하는 인프라를 갖췄다. 이 사업으로 T2 면적은 종전의 곱절이 됐다. 화려한 수치 뒤에는 대부분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인천항의 출입국을 담당하는 세관·출입국·검역(CIQ) 기관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크루즈 항차는 수배가 늘어났지만 인력은 그대로다. CIQ 현장 인력은 종전 업무에 더해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천명의 승객을 수십번 더 상대해야 한다. 상급 기관에 인력 충원을 건의했지만 대안 마련은 먼 나라 이야기다. 인천공항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은 2017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밤새 일하고 오전 9시 퇴근한 뒤 그날 오후 6시에 출근하는 3조2교대제에 갇혀 있다. 여기에 인천공항은 4단계 확장사업 이후 자회사의 필요인력 충원 계획마저 대폭 줄였다. 공항은 커졌지만 그만큼 일할 사람은 늘어나지 않았고 이는 공항 노동자의 뇌출혈과 추락사라는 절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역대 최다’라는 수치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이 기록을 지탱하는 ‘사람’을 돌아봐야 할 때다. 성장의 그늘을 걷어낼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관문도시 인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지대] 사진신부

1903년 1월13일, 102명의 한인 이민자를 태운 최초의 한인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머나먼 타국에 도착한 100여명의 한인은 주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일했다. 대부분 남성인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돈을 벌었다. 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조국의 여성들과 ‘사진결혼’을 택한다. 여성 혼자 장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절, 조선에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들의 꿈은 다양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혹은 여성의 삶을 옭아매는 관습과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조선을 떠난 사진신부들은 고된 항해 끝에 하와이에 각자의 꿈을 내렸다. 1924년 미국 이민법으로 한인 이민이 금지되기까지 총 1천명의 신부가 하와이, 115명의 신부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가정을 이뤘다.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진 속 남편감은 실제의 모습과 다르기 일쑤였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제도적으론 젠더·인종 차별을, 개별적으론 매일 고된 노동과 가부장적인 남편과 어렵게 자식을 길러내고 삶을 일궈 나갔을 것이다.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도 사진신부들은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 꾸렸다. 식민지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1919년 하와이에서 ‘대한부인구제회’라는 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해 자금 모금에 힘썼고 독립선언서를 통해 독립기금을 모았다. 3·1운동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일어난 한국 독립운동 집회에도 큰 역할을 했다. 사진신부들이 조선을 떠나 하와이에서 새 삶을 꾸린 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 국적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진신부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사진신부들은 어떤 꿈을 안은 채 한국으로 왔을까. 그 꿈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삶은 조각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으로 건너 온 사진신부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지지대] 시민 삶을 결정하는 지방선거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을 비롯해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그리고 교육감까지 수많은 일꾼을 뽑는다. 벌써 많은 지역 정치인이 출마를 위해 또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그냥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우선 시민에게 정치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정치인의 공방 등은 모두 뉴스로만 소비가 이뤄질 뿐 실제 생활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방정치는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힘으로 시민들에게 훨씬 가까이 있다. 예컨대 아침 출근길만 떠올려 봐도 버스 노선부터 지하철까지 모두 지방정부가 결정한 사항이다. 또 집 앞 공원이나 주차장까지 각종 정책을 지방정부가 짠다. 이 같은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한 교통 등 도시 인프라는 시민의 출퇴근 시간과 생활반경을 직접 바꾼다. 또 지방정부는 시민이 내는 세금의 쓰임새도 정한다. 같은 예산이지만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우리 동네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진다. 청년 창업 지원을 늘릴지, 노인 돌봄 예산을 확대할지, 지역화폐를 발행할지 같은 선택은 단체장의 철학에 달려 있다. 시민이 체감하는 삶의 온도는 이 선택에서 갈린다. 특히 지방정치는 부동산과 지역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종 개발사업의 결정은 집값과 상권을 움직이고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구조까지 바꾼다. 이처럼 지방정치는 시민의 삶의 결을 다듬는다. 우리가 걷는 길, 아이가 다니는 학교, 부모가 이용하는 복지관, 장사가 잘되는 상권은 모두 정치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시민 생활에 가장 밀착한 선택인 지방선거.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4년간 뛸 일꾼을 뽑는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가까운 힘을 잘 발휘할 시기다.

[지지대] 고구마 vs 사이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마다 습관이 다른 이치와 같다. 감정이나 상황 등을 극대치로 표현할 때 말 어미에 ‘죽겠다’를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보고 싶어 죽겠다’ 등의 표현이 그랬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심심찮게 썼던 말투다. 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워딩도 있었다. ‘완전’이란 단어다. 품사로 따지면 명사이지만 부사처럼 쓰였다. 예를 들면 “요즘 날씨 ‘완전’ 추워”가 있다. 원래는 “요즘 날씨 ‘완전히’ 추워”로 써야 한다. 문법의 경지를 뚫고 명사가 부사로 쓰인 반란이었다. 요즘은 엉뚱하게 먹거나 마시는 것과 관련된 명사를 어떤 감정을 함축할 때 쓴다. 고구마라는 단어를 쓰는 표현이 딱 그렇다. 답답한 상황을 한마디로 “고구마”라고 함축한다.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게 구는 사람이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종종 빗대어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말이나 행동은 “사이다”라고 표현한다. 좀 더 들여다보자. 최근 국립국어원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답답한 상황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고구마를 쓴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 이상(56.8%)에 달했다. 사이다를 속 시원한 상황에 쓴다는 응답은 71.5%나 됐다. 세대별로는 두 표현 모두 20대에서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구마는 길쭉한 타원 형태로 녹말이 많아 식용하는 메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덩이뿌리다. 온 가족이 어깨에 이불을 두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참을 나눠 먹던 겨울밤에 잘 어울리는 신토불이 야식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 대용의 구황작물이었다. 사이다는 원래 사과주 아니면 사과주스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이다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후반에는 사과즙에 위스키를 넣고 탄산을 주입한 술을 뜻했지만 일제강점기부터는 무알코올 탄산음료를 뜻하게 됐다. 한국과 일본에선 무색의 과일향 가당 탄산음료를 가리킨다. 한잔 들이켜면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고구마나 사이다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런 대우를 받을까.

[지지대] 3월의 의미

한파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2월이 어느새 뒤로 물러나고 생명의 기운이 기지개를 켜는 3월이 다가온다. 3월은 학교 일정에 있어 시작을 의미한다. 새 학기를 앞둔 마음은 학생도 학부모도 복잡미묘하다.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공존한다. 새로운 교과서를 펼칠 때 풍기는 종이 냄새, 처음 이름을 주고받는 순간의 어색함이 오간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교실의 차가운 책상이, 누군가에게는 새로 산 가방의 빳빳한 질감이, 또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나는 얼굴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작의 정점’이다. 그럼에도 3월이 설레는 특별한 이유는 잠시 멈춘 듯한 시간을 깨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겨우내 웅크렸던 씨앗이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기 위해 치열한 떨림을 겪는 것과 같다. 이런 가운데 올해 전국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만명 선이 무너졌다. 경기지역은 초등학교 취학 대상 아동이 지난해보다 6% 줄어들고 학교 네 곳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때 인구 유입의 상징이었던 경기도조차 원도심과 농어촌을 중심으로 휴교 및 폐교로 몰리는 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교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교육환경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교육은 수많은 학생을 한 교실에 모아 두고 평균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양적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질적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 수가 줄어든 만큼 우리가 마주하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는 더욱 소중하고 특별해졌다. 3월의 교정은 이제 ‘작아서 더 깊은’ 배움의 온기로 다시 채워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위기일 수 있지만 그 숫자 속에 담긴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지지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영하 1도에서 영상 15도. 요즘 인천 날씨다. 이른 아침에는 영하까지 기온이 내려가지만 한낮엔 10도까지 훌쩍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의 옷 두께는 한겨울일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무척 춥거나 더울 때는 날씨에 딱 맞는 두께의 옷을 꺼내 입기도 하지만 최근처럼 애매한 기온에 상당수 시민은 ‘아직 겨울이니까’ 또는 ‘남들 눈에 추워 보일까 봐’ 같은 이유로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만다. 조금은 얇은 외투를 입어도 견딜만 하겠지만 튀지 않고 무난하면 주목받지는 못할 지언정 눈총받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낮엔 조금 더울 텐데’라는 생각이나 내가 느낄 조금의 더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남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진 않을는지 눈치보며 내린 결정이라 낮엔 조금 더워도 참고 만다. 타인을 향한 배려를 섞은 자기희생인 셈이다. 하지만 워낙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상식이라 생각하고 사는 이 같은 모양새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놀랍기도 하다. 남들 눈치를 봐야만 하는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하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 땐 검증도 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기도 한다. 우기기만 하는가? 내 의견이 맞다면서 여기저기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동의를 구하러 다니는 데 정성을 쏟기도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스스로 틀렸음을 알아도 인정하거나 사과는 하지 않고 오히려 역정을 냄으로써 잘못을 뒤로 숨겨 버린다. 어쩔 수 없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고 민족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욕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같은 시대를 살며 운 없이 맞닥뜨렸으니 잘 못알아들어도, 그래서 괴롭더라도 가르칠 수밖에. 2월22일이 다케시마의 날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리 정했다.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 눈치를 볼 줄도 모르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행사에는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했고, 모여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생각이 다르다거나 몰라서 괜찮다고 넘어가기엔 진실을 아는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이라고까지 느껴진다. 가졌으면 베풀고, 알면 가르쳤어야 하는데 말이다.

[지지대] 이 약을 먹은 후 운전해선 안 됩니다

“오늘 하루는 운전하시면 안 됩니다.” 내시경 건강검진, 사랑니 발치 등 수면마취가 필요한 처치를 받아봤다면 그전에 의료진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마취가 풀려 정신이 들어도 맨정신과 같은 반사신경과 판단력 발휘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감이나 심한 몸살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약사들로부터 ‘이 약을 먹으면 졸릴 수 있다’는 안내를 넘어 ‘그렇기에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4월2일부터 감기약, 항우울제 등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는 약을 복용하고 운전하면 처벌 대상이 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다. 병원 치료를 위해 약을 먹었지만 최악의 경우 형사처벌과 면허 박탈 등 행정처분이 뒤따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법 시행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처방약 봉투나 약국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감기약 등에는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또는 ‘삼가해야 한다’ 등의 안내 문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의가 필요한 약 종류 자체가 적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대한약사회가 3일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 성분 386가지를 제시했는데 ‘운전 위험’과 ‘운전 금지’에 해당하는 약물만 297개나 됐기 때문이다. 최근 약물 복용 및 수면마취 후 운전대를 잡다가 인명 피해를 동반한 사고를 낸 사례가 잇따르면서 약물 운전 단속 강화는 필요해졌다. 하지만 법 시행이 임박한 지금도 환자, 소비자들은 이렇다 할 안내를 받지 못한 채 불의의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천저 등 관계기관은 최소한 일반 국민이 ‘이 약을 먹으면 운전해서는 안 되는구나’를 쉽게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사전 안내 기반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지지대] 길마가지나무

식물의 세상은 늘 신비스럽다. 자신들끼리 서로 대화도 나눈다는 점이 학계에 보고된 지는 오래됐다. 동물과 똑같게 말이다. 우리를 향해서도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주파수를 몰라 듣지 못한다는 학설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은 알아 듣는다고 한다. 식물에게 매일 “예쁘다”고 말해주면 시들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대표적인 식물이 길마가지나무다. 지구촌에서 인간과 가장 오래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게 익는 열매 모양이 딱 말이나 소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한반도 전역의 산기슭과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신상명세서를 더 들여다보자. 낙엽성 관목이다. 키는 3m 남짓하다. 줄기의 껍질은 회갈색이다. 잎은 타원형으료 마주 난다. 길이는 3~7㎝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한데 털이 난다. 잎자루 길이는 3~5㎜다. 꽃은 잎과 함께 핀다. 노란색이거나 흰색이다. 잎 겨드랑이에서 두 송이씩 밑을 향해 달린다. 꽃자루 길이는 3~12㎜다. 꽃받침은 얕게 다섯 갈래이고 꽃부리는 길이 10~13㎜, 지름은 15㎜ 정도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다. 잎보다 먼저 또는 잎과 함께 피는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도 특징이다. 2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4월까지 개화가 이어지는데 이 시기 주변을 상큼한 레몬 향기로 채운다. 생기도 더해준다. 그래서 정원에 심으면 듬직하다. 지구촌의 어떤 식물보다 인간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존재여서다. 다른 나무들도 다독거려 준다. 정원을 꾸며 놓은 주인을 향해서도 대화를 시도한다. 산책로 주변이나 창가 근처에 심으면 더 가까이에서 향기를 즐길 수 있다. 물 빠짐도 좋다. 추위에 강해 노지 월동도 가능하다. 하지만 뿌리가 얕게 퍼져 이식 때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종자 파종이나 삽목으로도 번식할 수 있다. 종자는 5, 6월 열매를 따서 파종한다. 삽목은 이른 봄이나 여름철 새로 자란 가지를 이용하면 된다. 긴 겨울을 지나 가장 먼저 봄의 향기를 인간들에게 전해준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정원식물로 길마가지나무를 선정했다.

[지지대] 타냐의 일기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잔혹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피붙이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떴다. 그들이 숨질 때마다 일기에 또박또박 썼다. “1941년 12월28일 아침 제냐 언니가 죽었다. 1942년 1월25일 낮 3시 할머니가 죽었다.” 그 일기는 삼촌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다가 이렇게 끝난다. “마침내 엄마도 죽었다. 모두 죽었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가수가 꿈이었던 레닌그라드의 열한 살 소녀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다. 장소는 옛 소련의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이 도시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6월22일부터 시작된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대침공 작전으로 허를 찔린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독일군은 포로로 잡은 민간인 아녀자도 총알받이로 앞세웠다. 그렇게 보고를 받은 소련군 수뇌부는 상관하지 말고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의 광기(狂氣)가 섬뜩했다. 역사상 가장 지루했던 소모전 끝에 독일군은 포위작전에 들어갔다. 외부로부터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채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871일간 400만명 이상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타냐는 1942년 8월 후방으로 옮겨졌고 1944년 5월 병원으로 이송돼 장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떴다. 타냐의 일기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안네는 나치의 감시를 피해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인 작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발각돼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 그때가 열세 살이었다. 이 소녀는 다락방의 고립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역사를 통틀어 큰 고통과 상실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준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전쟁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건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 버리는 일이다.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는 건 개인을 말살하는 일이다.” 전쟁의 끔찍함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지지대] 명절, 말의 무게

‘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 설을 보냈다. 타인에게 메시지를 던질 때 온전히 전달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받지 않는지 곱씹었다. 반대로 누군가 내게 던진 말은 그 저의가 무엇인지, 시대상에 적절한지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평소 주고받는 말의 절반 이상이 불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과거 명절은 말과 말의 장(場)이었다. 성적, 취업, 결혼, 건강, 재산, 인간관계 등 생애주기 전반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가 없었다.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사이가 풀렸다가도 틀어지곤 했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지금 명절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적막이 흐르는 거실과 조용한 대화가 익숙해졌는데 사실 그다지 싫지는 않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구시대적 소음이 덜하기 때문이다. 명절의 본질은 휴식과 재충전이다. 그 측면에서 고요한 배려가 고맙다.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특유의 유대감도 유연하게 달라지면서 점점 가족도 친구도 국내외 방방곡곡 여행을 떠난다. 안 그래도 줄었던, 안부라는 구실로 사생활을 품평하거나 ‘나 때는’, ‘예전에는’의 훈수가 없어 유독 조용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명절증후군을 앓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시대의 속도는 앞서가고 있는데 원하지 않은 육체·감정노동을 감내하고 불편한 말도 억지웃음으로 참아내는 사람이 주변에도 있었다. 비단 ‘설이나 추석’, ‘집안’에서만 벌어지는 얘기는 아닐 터다. 명절 특수성을 빌미로 휴식을 가로막는 낡은 관습을 보며 그 중심에 말이 있다고 보고 계속 ‘말’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예전의 문법이 정답은 아니라는 게 가장 큰 결론이었다.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안도감이 가치 있다는 걸 느꼈다. 원치 않은 말을 절제하는 게 잡음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연휴 기간 2026년 새해를 되새기며 다짐한 건 ‘올해는 말을 줄여보자’였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고요한 배려가 명절에도, 시대에도 적용되길 바라며.

[지지대] 세뱃돈 이야기

고민에 빠진다. 설날만 되면 그렇다. 금액도 가늠해야 하고 균형도 잡아야 한다. 세뱃돈 탓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면 받은 측이 건넨다. 세배는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웃어른께 드리는 의례다. 언제부터 비롯됐을까. 조선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처음에는 세배하러 온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줬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돈을 챙겨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여성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양반가에선 하인을 보내 일가친척에게 인사를 하는 문안비(問安婢)도 있었다. 이때 인사를 받는 쪽에서 그 하인에게 수고했다며 세배삯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액수는 어느 정도였을까. 1960년대 중반부터 10원짜리 지폐를 주기 시작했다. 새로 발행된 지폐(신권)로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새해 첫날 받는 돈이이서 부정을 타지 말고 기분 좋게 쓰라는 의미도 담았다.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 송나라 때부터 음력 1월1일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훙파오(紅包)’라고 부르는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건넸다. 악귀와 불운 등을 물리치라는 격려도 담겼다. 이후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에도시대(17~19세기) 도시를 중심으로 있던 ‘오토시다마(お年玉)’라는 풍습이 일제강점기 서울 상류층 일부 가정에 전해지면서 시작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가운데 어른들이 설 명절에 세뱃돈 지출을 가장 부담스러운 요소로 꼽았다는 설문 결과가 공개됐다. 카카오페이가 설 연휴 송금봉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세뱃돈 지급액도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고교생이 설날 송금봉투로 받은 세뱃돈은 10만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2024년까지만 해도 세뱃돈 지출 규모로 5만원(39%)이 10만원(37%)을 앞섰지만 지난해는 10만원(42%)이 5만원(37%)을 웃돈 셈이다. 20~40대 응답자들이 부모 세대에게 설날 송금봉투로 전달하는 명절 용돈은 평균 22만7천원으로 나타났다. 세뱃돈이 얼마인지보다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지대] 조용해진 졸업식

1990년대의 졸업식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필자가 졸업한 과거 남자 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은 이랬다. 식이 열리는 운동장에서 졸업을 축하한다며 선배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뿌려대는 과격한 후배들이 있었다. 어떤 졸업생은 화가 난다며 자신을 괴롭힌 선생님의 차 백미러를 제물로 삼았다. 그러고는 삼삼오오 무리 지어 번화가를 향해 사라졌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대다수 학생은 꽃다발을 선물받고 부모님 및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 후 근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30여년전 모습이 그랬다. 며칠 전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 영상을 봤다. 영상 속 풍경이 낯설었다. 우선 아이들이 적었다. 과거와 비교도 안 되게 적었다. 다들 조용히 차분하게 행사를 치렀다. 아이들끼리 사진도 잘 안 찍는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졸업식에서 시상도 자제했다. 성적으로 아이들 줄 세우기도 싫고 내 아이가 상을 못 타면 상처받을 거 같고 내 아이는 상을 못 받는데 상 받는 다른 아이들에게 박수 쳐주는 병풍이 되기 싫어서란다. 대학가 졸업식 역시 풍경이 달라졌다. 학사모를 쓰고 기념촬영을 하긴 하지만 졸업앨범을 찾는 예비 사회인들은 점점 줄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친 학생들은 아는 동기도 선후배도 적어 간단하게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과거보다 소박해졌다고 할까. 지금의 졸업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졸업의 의미는 변함없다. 과거의 나를 떠나 미래로 나아가는 통과의례. 졸업 이후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 마음에 들건 후회되건 시원섭섭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 그 의식이 졸업이고 그 의식을 통해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하고 달라진다. 2월 중순, 졸업 시즌이다. 시원하고 섭섭할 학생들. 후회하고 설레는 이들.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붙잡았던 두 손을 놓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가 됐다. 졸업하는 모든 이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지지대] 경기도의회 비어 버린 민의의 전당

“의원님들께서는 속히 본회의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첫 임시회를 개회한 경기도의회에 본회의 시간만 되면 울리는 방송이 있다. 입장 전부터 시작된 방송은 본회의 시작 시점을 넘겨 수십분간 더, 여러 차례 이어졌다. 저러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씁쓸한 반응까지 나왔다. 이유는 하나다. 개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서다. 도의회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정족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으로 개의할 수 있다. 경기도의회 현원은 154명. 52명만 오면 회의를 시작할 수 있는데 이 숫자를 채우지 못한 셈이다. 대집행부를 향한 일괄 질의가 있던 5일, 이런 현상은 절정에 달했다. 텅 빈 의원석과 꽉 찬 도 및 도교육청 집행부 석이 대비됐다. 그마저 회의장에 남아 있던 일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졸기 바빴다. 앞에 나온 동료 의원이 도민을 위해 집행부를 향해 질의를 던지고 있던 순간, 그곳에 민의의 대변인인 경기도의원은 없었다. 비단 지방선거가 임박한 이번 회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11대 들어서만 회의 중 의장이 의원들에게 자리에 앉아 달라고 요청하느라 회의가 멈추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과반수가 필요한 의결이라도 하려면 더욱 간절히 사라진 의원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정족수만 채워지면 회의는 큰 문제 없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이제 곧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이대로라면 4월 임시회는 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지게 될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조차 마치지 못한 이들에게 민의를 맡길 순 없다. 12일, 제388회 임시회 마지막 본회의가 남았다. 그날 도의회 본회의장에는 민의의 대변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도민의 눈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지지대] 전쟁 가능 국가

‘465석 중 316석.’ 전체 3분의 2인 310석을 상회하고도 6석이 더해졌다. 310석은 개헌안의 발의선이다. 전쟁과 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을 규정한 헌법 9조를 개헌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렸다. 일본 중의원(하원)선거의 결과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8일 치러진 중의원선거에서 창당 이후 역대 최다 의석수를 확보하며 역사적인 대승을 거뒀다. 일본에서 단일 정당이 중의원에서 의석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것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보유하면 현재 여소야대인 참의원(상원)에서 부결된 법안도 재의결할 수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실상 독주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에서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젊은층과 무당파층을 흡수해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일본 정부는 이미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3대 안보 문서를 연내에 개정하고 무기 수출과 관련된 일부 규제를 올해 폐지키로 했다. 국가정보국 창설, 국기 훼손죄 제정 등도 다카이치 총리가 열의를 보인 정책이다. 나아가 개헌을 추진해 일본을 사실상 ‘전쟁 가능 국가’로 변모시키려 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당장은 어렵고 2028년 참의원선거에서도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자민당 압승을 주도한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정치 스승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강한 권력 기반을 구축하게 됐으며 벌써부터 장기 집권할 토대가 마련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참의원선거 압승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과 미국의 독주 체제를 마주한 세계 각국은 실리를 내세우며 강한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내란의 시계에 사로잡힌 정국, 여야를 막론한 내부 분열. ‘정치만 잘하면 일류국가 대한민국’의 현 시계는 조선의 마지막과 많이 닮아 있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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