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최후의 만찬(2)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을 의뢰받은 후 기한에 맞춘적이 거의 없던 레오나르도는‘최후의 만찬’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당시 전해지는 일화에는, 레오나르도가 받침대에 올라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작품 제작은 지연되었지만 사실상 이러한 사색이 ‘최후의 만찬’에서 나타나는 증오나 분노, 배신, 종교적 계시 등 다양한 은유들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래서 지속적인 복원이 필요할 정도의 희미해진‘최후의 만찬’이지만 작품의 감동은 여전했고,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그림을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설명이나 종교적 상징을 넘어 예술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혁신이 오늘날 예술로서의 미술이라는 체계를 확립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림 속에 수많은 은유를 설정함으로써, 그림이 단순히 심미감을 넘어서 ‘예술적 진리’라는 인간 사유의 포괄적인 영역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후의 만찬’은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림의 훼손의 정도가 심해졌다. 그림의 완성 후 수 차례 복원이 이루어졌고 최근의 복원은 1999년에 시행되었다. 이러한 복원을 통해 ‘최후의 만찬’의 음식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빵과 포도주 등의 음식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의견이 분분한 것은 도마의 앞에 놓인 접시의 내용물이었다.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내용물은 생선과 레몬으로 특히 생선은 장어라는 것이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에 물고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인류의 등장과 함께 생선은 인간의 주요 식량원이었다. 로마시대에 대규모 생선 시장이 등장하였고,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에는 생선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또 카이사르의 승리 기념 연회에는 6천마리의 곰치 뱀장어가 요리되어 식탁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그 외에도 고대 벽화에는 다양한 생선 그림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연어이다. 그리고 송어, 농어, 뱀장어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연어는 예나 지금이나 귀족 생선이었다. 일단 최후의 만찬에 물고기가 사용된 것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 신의 아들, 구원의 주(lesus Critus Theoun Uios Soter)의 첫 글자를 이으며 ‘이쿠타스(ICTUS)’로 물고기를 뜻하는 말이 된다. 즉 생선이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생선은 물밑에 있다가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뱀장어일까? 레오나르도는 일상사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메모 수첩은 약 4천장에 이른다. 여기에는 일기와 그림들, 다양한 어록들이 전해진다. 이 수첩들 중에 레오나르도가 뱀장어를 사서 제자들과 먹고 그것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복원된 그림의 생선은 껍질은 미끈미끈하고 둥글게 토막 친 것처럼 보인다. 레오나르도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는데 그 중의 하나가 요리사였다. 직접 음식점을 운영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뱀장어 요리 역시 레오나르도가 즐겨 요리하던 재료로 예수의 생존 시대와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 요리된 뱀장어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이 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접촉 공포를 넘어서

2일 밤 9시 기준 코로나 확진자가 11만5천여명이었다. 이쯤 되면 코로나 재유행상황으로 판단한다. 2020년 처음 발생한 이후, 확진자가 발생하면 감염경로를 파악하여, 접촉자에 한해서 pcr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대상이 특정되다 보니, 사회적으로 ‘금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마치 누구에게라도 접촉하거나 만나게 되었을 때, 코로나 확진자가 되지 않을까 서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필자는 2020년 열심히 지역의 문화공간을 준비, 10월 문을 여는 개관식을 준비했다. 오후 5시 오프닝을 멋지게 준비하고 있는데, 그날 일을 도와주던 아르바이트생이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확진자 접촉 문자를 받아서 당장 pcr 검사를 받아야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식 행사를 불과 3~4시간 앞두고 받은 통보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서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확진자와 접촉을 했으며, 그 문자를 받은 친구가 확진이 될 경우,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가 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행사는 급하게 취소했다. 잔칫집이 한순간에 초상집이 됐다. 일 년간의 수고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날이었지만 그렇게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그것 또한 큰 경험과 자산이 됐다. 그 전까지는 느슨하게 지키던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를 철저하게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행사를 준비함에 있어서 방역당국의 지침을 두세 번 검토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예술계 입장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갑자기 닥친 코로나라는 전염병 환경 속에서 막무가내로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생각했다. 아주 초창기에는 모든 예술 프로그램이 취소가 됐다. 그 당시, 필자에게 익명으로 페이스북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본인은 연극배우인데, ‘모든 연극이 취소가 됐다. 단순 아르바이트를 시켜달라’는 메시지였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전염병 사태가 예술계가 얼마나 취약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모든 예술 프로그램 취소 이후에는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주 소수의 인원을 초청해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거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통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 실제로 얼굴을 보고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비대면으로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하면서 예술적 경험을 공유할 수는 없다. 2022년 현재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확진자가 나와도 금기하거나 공포에 떨기보다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전염병으로 인식 중이다. 팬데믹을 너머 엔데믹(풍토병)으로 정착 중이다. 지난 2년여 간의 문화예술계의 팬데믹 경험이 어느 정도 축척되어 있다. 무조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것만이 혹은 만나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삶이 있으면 그 희노애락을 담아, 옆의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계도 존재해야한다. 접촉의 공포를 넘어, 전염병 속에서도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묘수를 낼 때다.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헤어질 결심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의외로 흥행이 부진하다. 120만 언저리에서 한 출연 배우가 ‘가자, 200만으로!’라고 했다는데, 한 500만은 넘어야 칸의 평가에 부응하고 한류의 진전에도 조력이 되지 않겠는가. 어떤 비평가는 〈헤어질 결심〉의 부진을 “극장의 스크린으로 볼 영화가 아니라서”라고 진단했다. ‘블록버스터가 아니기에 관객들이 굳이 극장에 가지 않으려 한다, 삶과 인간의 어떤 미묘한 세부를 주목하며 그 현상의 복잡한 이면까지 드러내기에 OTT 화면에 어울려서 그렇다’는 견해가 아닌가 한다. 이분법 재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중들에게 밉상이 되더라도 한국의 어떤 흥행 풍토를 점검하거나, 〈헤어질 결심〉에서 그 이유를 찾든지, 아니라면 왜 〈헤어질 결심〉이 볼만한지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한편 관람후기엔 이런 촌평이 있다. “기껏해야 결국 불륜극 아닌가?” 반론도 있다. “작품의 결말을 보면 그렇지 않다.” 댓글 형식의 익명 토로지만 아무래도 안타깝다. 픽션의 불륜과 현실의 불륜은 미적 거리의 개재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좋은 픽션의 불륜은 현실의 불륜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그런 영화이며, 뭐든 그렇듯 그 부진에도 몇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교육체계에서 예술향유의 커리큘럼이 영락한 사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세계가 아는 대로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인 교육대국 이 나라에서 중등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대학 교양과정에서도 문학작품을 위시하여 영화 음악 회화 조각 등 예술 감상 과목이 위축을 거듭해왔고, 근년 이래 그 잔존 과목도 실용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률 저하에서 이 현상이 야기됐고,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대로 수용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반도체 인력양성 확대와 더불어 대학교육 지원이 다시 논의되는 이 때, 다시 물어보자. 그 저하와 일반 인문학교육 배제에 대체 무슨 상관이, 무슨 인과가 있었나?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아니 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문학 교육을 확충했어야 하지 않았나? 인문학 교양은 장식이나 도구가 아니다. 인문학 교양과 향수(享受)가 동반되지 않는 공리(功利)와 효용 추구는 인간을 가볍게 하고 결국 사회를 필요 이상으로 건조하고 각박하게 한다. 인간 자체가 지식과 정서와 의지가 하나로 통합돼 있는 존재, 어느 하나가 결여되거나 부족하면 가치 추구와 판단이 원만하기가 쉽지 않다. 일회성에 제한되는 인간 개체, 하지만 그 막중하고 도저한 운명의 궤적은 그 셋의 교호과정에서 결정된다. 삶의 이면과 내면도 다양하게 통찰하는 경험을 쌓아 휴머니티를 기르는 인문학이 한국 영화에서도 꽃피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 북돋는 환경 조성에 나섰으면 한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엔데믹을 준비하자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고 이제 세계 각국은 엔데믹을 맞이해서 사회 각 분야마다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 특히 관광 여행 분야는 각국이 많은 준비를 서둘러 하고 있다. 그러나 팬데믹의 기간 동안 각국의 관광 인력과 컨텐츠가 현격히 줄어 폭발적으로 늘어날 미래 관광시장에 대비할 여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공연관광의 시장 또한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늘어날 수요에 감당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팬데믹의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OTT시장에 매우 훌륭한 성과를 거뒀고 전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하게 했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의 드라마와 영화를 비롯해 ‘BTS’의 신드롬으로 단번에 한국은 가장 가고 싶은 매력적인 국가가 됐다. 유튜브에는 한국을 방문한 여행 블로그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발전한 한국의 현재 모습에 전 세계인이 감탄하고 있다. 엔데믹을 맞이해서 한국 정부도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비자 발급 업무를 다시 시작했고 여행업계도 분주하게 손님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이번 팬데믹의 긴 기간 동안 오히려 우리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고 세계의 중심의 나라가 됐다. 우리의 문화에 깊은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린 지금 이때 더 정교하게 엔데믹을 준비해서 우리 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알려야 할 때라고 본다. 다만 지금 세계에 주목을 시킨 문화는 매우 패션이 있는 분야이다. 지속가능성을 놓고 보았을 때 과연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내 주변의 외국인 지인들은 최근 높아진 한국문화에 정말 한국적인 것, 한국을 대표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우리 문화의 저력을 지속 가능하게 세계에 알리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리라 본다.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의 음식을 먹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우리 문화의 유니크함을 보여줘야 함에 있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해 본다. 과연 그런 준비가 돼있는지를 반문해 본다. 엔데믹을 향하고 있는 지금 시기가 최고의 기회라 여기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문화카페] 추억팔이는 이렇게

‘그래, 영화는 역시 로망이지!’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탑건: 매버릭> 이야기다.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인 만큼 영화에 대해선 특별히 보탤 말이 없다. 다만 톰 크루즈 예찬만큼은 몇 자 얹어야겠다. 그는 전성기를 지나 원숙기로 접어들던 시기의 마라도나와 메시 같았다. 정상급 실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나이든 면모를 긍정적으로 발현해 팀을 특별한 경지로 끌어올린 이들. 톰 크루즈도 그랬다. 이런 속편 성격의 작품은 조금만 삐끗하면 ‘추억팔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때 멋지고 탁월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고루하고 식상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로맨틱하다며 젖어들었다. 예전에 열광한 대목은 더욱 두근두근해졌고, 세월과 나이듦을 녹여낸 서사도 뭉클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젠더 등 여러 감수성을 업데이트한 것도 세련되게 다가왔다.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비교된다. ‘탑건’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메가 히트작이다. 역시 30여 년이 지난 2016년에 부활해 극장에 걸렸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원작 내용을 잇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리부트’ 방식을 택했다는 것. 괴짜 집단이 유령을 사냥한다는 큰 줄기 외엔 싹 갈아엎었다. 주인공 네 명 역시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고, 심지어 과거 주인공 역의 배우들은 별다른 비중 없는 카메오로 등장했다. 등장한 지 1분 만에 죽거나, 지나가던 택시기사로 잠깐 나오거나... 이러면 추억을 팔기보다는 오히려 배신하는 쪽에 가깝다. 결과는 ‘폭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심지어 괜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성별이 바뀐 점에 집착해 영화를 페미니즘과 엮으며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벌인 것이다. 실제 영화는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과도하게 추앙하거나 매도하는 이가 많았다. 평론가들마저 이를 부추겼다. 결국 소니는 이 2016년 버전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아예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1980년대 원작의 내용을 잇는 진짜 속편을 만들었다. 원작 주인공의 손녀와 친구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삼아 세대를 교체했고, 70대가 된 예전 배우들 역시 큰 비중으로 등장해서 활약했다. 그러자 비로소 대중이 호응했다. 추억을 환기하며 즐겼고 팬데믹 와중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성이 아쉽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은 다들 그냥 흘려들었다. 속편을 만드는 데에 뚜렷한 공식은 없다. 다만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은 한때 좋아했던 무언가를 추억으로 이름 붙여 기억하고, 가급적 그걸 지키며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는 것. 사랑받은 속편, 나아가 프랜차이즈를 구축한 시리즈는 대체로 이 점을 존중해왔다. 사람들은 추억팔이를 손가락질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추억팔이를 갈망한다. 어쩔 수 없다. 추억 또한 인간의 핵심 동력이니까. <탑건: 매버릭>은 훌륭한 추억팔이의 사례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추억팔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최후의 만찬(1)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다양한 일화를 많이 남겼지만 그가 천재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자료를 통해 인정받은 작품은 열점 내외이다. 그리고 그의 일생 중 그림을 그린 시기는 매우 짧았으며 오히려 과학, 수학, 건축,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스스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레오나르도가 받은 교육은 장인(匠人)의 도제교육뿐이었는데, 이후 독학을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또 그가 활동했던 피렌체의 메디치가에는 많은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드나들었는데,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도 습득할 수가 있었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식당 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1498)>은 <모나리자>와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성경의 내용 중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라고 한 예수의 말에 대해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당시 벽화작업을 할 때 주로 사용하던 프레스코 기법(회벽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물에 안료 가루를 개어서 벽에 그리는 기법) 대신 템페라 기법을 사용하였다. 프레스코 기법이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는 반면에 템페라 기법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템페라 기법은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 등 빨리 훼손 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림을 완성한지 20년 후에 그림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계속적으로 복원과 훼손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가 템페라 기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 그림 속에 암호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뒤따른다. 실제로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데 7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화면의 구도는 풍부했고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개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이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은 모세와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踰越節)의 식탁이다. 예루살렘 남서쪽 예수의 친구 집에 차려진 유월절 만찬에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형태를 알기 힘든 음식이 차려져 있다.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며 “이것은 내 몸과 피이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예수 앞에 놓인 접시 위의 희미한 물체는 생선처럼 보인다. 보통 서구나 중동의 만찬에는 양고기가 등장하는데 최후의 만찬에는 생선이 등장한 것이다. 왜 생선일까?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선한 영향력

현재 가장 핫한 대한민국의 스타를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BTS를 뽑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화 되고 그 영향력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급기야 BTS는 지난달 31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들의 만남은 언론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 트위터에 영상을 공개하며 알려지게 됐다. 이들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은 BTS의 영향력을 언급하며, “착한 사람들이 증오에 대해 말할 때 증오는 숨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 말할 때 증오는 쓰러진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BTS는 “대통령님께서 ‘코로나19 증오범죄법’에 서명해 법으로 만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필자는 이 장면을 인류애와 평화의 메시지가 문화적으로 담긴, 매우 아름답고도 격조 높은 대화로 평가한다. BTS는 빌보드 차트 진입 및 그래미 어워즈 입상 불발 등 문화예술계에 아시아인 스타로서 다양한 시사점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BTS는 그들의 음악으로, 활동으로 전 세계적인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MZ 세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선한 영향력’이 사용된 올바른 예로 볼 수 있다. 영향력 있는 대중예술가, 아티스트의 행보가 얼마나 사회적 파장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이쯤에서 한국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기록적인 폭염 기사가 매일같이 나오는 요즘, 휴가를 가거나 수영장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런 찌는 더위에 시원함을 느끼고자 기획한 것이 싸이의 ‘흠뻑쇼’다. 공연 중간중간에 300t에 가까운 물을 관객과 무대 위로 뿌리고 음악을 즐기는 콘서트이다. 코로나 사태로 중지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된다. 그동안 멈추었던 행사가 다시 시작되는 것은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꼭 같은 행사를 기획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방역당국에서는 “마스크가 젖으면 세군 번식과 감의 높아진다”며 물을 뿌리는 형태의 축제를 지양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싸이 측에서는 “방역당국의 지침을 최대한 따르겠다”며 “방수 마스크 1매와 KF마스크 3매, 총 4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펜데믹 사태의 이유로 지목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위기’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환경오염과 쓰레기를 줄이자는 운동이 한참이다. 이런 때에 1회 콘서트에 4장을 바꿔가며 열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도처에서는 홍수, 가뭄,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 중이다. 우리나라 또한 더위 속 가뭄으로 농산물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300t의 물을 공연 중 사용해도 될까? 싸이는 한때 유튜브 100억뷰 조회 수, 빌보드 차트 입성 등으로 K팝의 위력을 먼저 알린 이로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모를 리 없다. 두 월드 스타의 행보를 보며 때와 장소에 맞춰 자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외손봉사

지난 13일에 대법원은 자녀가 어머니를 따라 성과 본관을 바꾼다면 어머니의 종친회 가입도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혹 양성평등을 외면하거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어 딸은 종친회에 가입할 수 없다고 알던 사람들도 한번 주목했으면 한다. 이제 확실히 종친회도 부계혈족의 단체가 아니게 됐다. 하지만 종친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인 60대 이상 남성 임원들과 회원들도 충격이 크지 않고, 2005년 호주제 폐지 때의 일부 선배들처럼 개탄하지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오히려 종친회가 의도와 다른 구태의 이미지를 벗는 계기가 되리라 전망하지 않을까 한다. 이미 2005년에 우리는 13일의 판결을 예비했다. 당시에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여성단체들의 주장을 배척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의거하여 뒤늦게나마 기존 호적법을 가족관계등록법으로 개정하기에 동의했던 것이다. 호주에서 개인으로 작성 기준을 변경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했으며, 필요에 따라 입양과 혼인 등 관계증명을 따로 제공받을 수도 있게 했다. 그래서 이 판결이 이슈가 되는 건, 애초의 부계 성과 본관을 어머니 쪽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종친회 가입까지 시도하였으며, 지난 개정을 포함해 해당 종친회가 두루 검토한 끝에 가입을 사절하자, 종원 자격을 부여해달라며 그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웃이 우리의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현실화는,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낯설지 않다. 조선 후기 이후에는 이행이 축소되었지만 부모의 유산 분배에서 자녀 구분 없는 균등이 원칙이었고, 자녀가 여러 제사를 분담하거나 특정 제사는 윤번으로 담당하기도 했다. 또 그 원칙에 따라 ‘외손봉사(外孫奉祀)’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번 판결과 외손봉사는 우선 보기에 다르다고 하겠지만 권리와 의무 승계의 양성평등이란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고 보니 종친회란 결국 세대를 이은 한 가정의 확대가 아닌가. 공동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고 돈목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동일하다. 21세기 현재에도 외손봉사 전통을 잇는 유명 무명 가문들이 산재한다. 여전히 부계 선조의 묘소처럼 수묘하고 제사를 봉행하며, 선대 외가의 천선사업에 부조하기도 한다. 가문의 이런 전통을 유래한 당시 사정을 가문의식의 한 정체성으로 유지하며 모계를 존중하는 정서를 지피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외손봉사와 겹쳐 보며 환영한다. 우리 시대에도 다시 이렇게 가문의 모계도 조명하면서 아직 미진한 양성평등에 작으나마 이벤트가 되었으면 한다. 2002년부터 도산서원 상덕사의 향사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고, 이후 퇴계의 기제(忌祭)에도 여성의 참사가 가능하다. 부인의 내조 없이 남편의 공업(功業)이 없다는 견지에서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리하여 2018년에 우당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1889-1979) 여사와 석주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의 부인 허은(1907-1997) 여사에게, 2019년에는 석주의 부인 김우락(1854-1933) 여사에게 신산했던 내조 그 자체를 구국의 공적으로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김승종 시인•前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극장은 커뮤니티의 중심

우리나라는 대도시가 아닌 인구 20만명 안팎의 중소 규모 도시에도 1천석 이상의 대규모 극장이 건립됐다. 지역의 문화 향유권을 위해 건립된 많은 수의 극장이 제 역할을 한다면 그리 걱정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앞서 1993년 서울 예술의전당이 완공됐는데, 정권 임기 말에 무리하게 극장 완공을 진행하면서 예기치 않은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공사를 진행하던 중 암반층 때문에 설계대로 시공했다가는 당초 계획한 완공 시점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고, 결국 토월극장의 경우 한쪽 무대를 포기하고 설계를 변경해 급히 완공했다. 예술의전당은 지역 극장의 롤 모델이 돼서 양재동 예술의전당 도면을 그대로 차용해 지역마다 극장이 지어졌다. 그런데 토월극장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으로 시공됐던 사라진 무대 한쪽이 지역의 극장에서도 고민 없이 똑같이 시공됐다. 충분히 옆 무대의 공간을 살려 극장의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을 수 있었음에도 큰 고민 없이 한쪽 무대가 사라진 극장을 마구 지어버렸다. 공연 전문가들은 지역의 이런 공연장을 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당시 국내에서는 극장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적었고 서양의 극장 도면을 빌려서 건축하는 수준이었기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역의 극장이 각 지역의 예술과 특수성을 고려해 시공되지 못하고 지역마다 거의 같은 도면으로 같은 형식의 극장만이 계속 지어진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각 자자체는 극장의 규모에만 신경을 써서 인근 도시보다 더 큰 규모의 객석 수를 자랑하는 극장을 경쟁적으로 건립했다. 결국, 지어진 극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고 극장은 만성 적자 운영으로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지금도 지역의 극장을 탐방하면 대부분 공연이 없는 날이 많고 공연시간 이전에는 굳게 문을 걸어둔 경우가 많다. 지역 시민들에게는 이런 거대한 극장은 매우 낯선 공간이고 지역의 특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건축물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성공적인 극장의 운영을 위해 극장은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극장은 시민이 쉽게 만나고 문화를 체험하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극장은 단순히 공연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고 시민의 자기 발전을 위한 체험의 장이 되어야 하고, 지역의 커뮤니티 중심이 되어야 극장의 온전한 기능을 하리라 본다. 그리고 극장은 지역 고유의 문화와 특성을 살려 운영돼야 한다. 식당에 가더라도 여러 가지를 다 파는 식당이 아니라 한 두 가지의 전문 메뉴를 운영하는 식당이 더 대중에게 믿음을 주듯 극장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지역의 어느 극장에 가면 어떤 콘텐츠를 꼭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시민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지역을 찾아오는 관객도 생기고 지역을 대표하는 컨텐츠도 창작될 것이다. 규모만을 자랑하는 건축물로서의 극장이 아닌, 진정으로 시민이 주인이 돼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극장이 이젠 필요하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국립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

[문화카페] 시스템 밖에서 꿈을 좇는 아이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이 득점왕을 차지한 날. 꿈만 같은 쾌거에 ‘국뽕’이 차오른 나는 온종일 관련 영상과 뉴스를 끼고 살았다. 그러다 끝내 내가 사는 춘천에 있는 손흥민체육공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성지순례 비슷한 느낌으로. 참고로 춘천은 손흥민의 고향. 어라? 차를 몰고 공원에 들어서면서 어리둥절했다. 내가 아는 공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커다란 사자상이 양옆에 서 있는 대문을 통해 들어서자 이내 드넓은 주차장이 펼쳐졌다. 한데 그게 전부. 공원임에도 휴게 공간은 보이지 않았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 역시 없었다. 심지어 주차장 외의 나머지 구역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공원이야? 의문은 금세 풀렸다. 알고 보니 이름만 공원일 뿐 실제로는 축구 학교였던 것이다. 손흥민이 170억 원을 들여 설립한 손축구아카데미가 바로 여기였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으며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다. 주위는 온통 숲. 애초 입지 자체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연에 파묻혀 축구를 연마하기 좋은 곳. 대안 학교를 겸하고 있다기에 궁금증이 일어 검색해봤다. 커리큘럼이 특이하다. 축구 단체훈련은 오후에 두 시간만 진행되며 나머지는 선수가 자율적으로 연마하고 보완하는 구도. 일과의 상당 시간을 외국어 교육에 할애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외에 진출하려면 외국어가 필수이고, 혹 축구 선수로 실패하더라도 외국어가 탁월하면 어떻게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 거기에 독서, 인성 지도가 곁들여진다. 내가 10대일 때의 운동부 친구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수업엔 들어오지 않고 그들끼리 어울렸으며 폭력, 일탈 사건도 꽤 심했다. 운동 재능은 있지만 공부 못하고 가정형편 아쉬운 이들이 태반. 이렇게 표현하면 편견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힐난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나? 체육 선생님들은 아예 대놓고 그런 친구를 찾아다녔다. 운동부가 되는 순간 공부와 작별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그런 문화를 바꾸는 게 손축구아카데미의 취지란다. 자질 뛰어난 이를 선발한 다음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교육에 집중. 운동선수도 교양을 갖춰야 한다며 독서와 인성을 강조하고, 혹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해도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한다. 나름의 철학 아래 실속만 추구하는 셈이다. 물론 커리큘럼이 이렇기에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안 나온다. 검정고시를 희망하면 지원한다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을 모른 척하고 들어가 보니 드넓은 축구장이 펼쳐졌다. 마침 훈련이 한창이었다. 여느 유소년 축구교실처럼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호통이 오가는 엄격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축구는 ‘그깟 공놀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인생을 내던진 것. 도박일까? 그런 속성이 없는 건 아니나 그리 표현하고 싶진 않다. 불완전한 체제에서 벗어나 나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전 정도로 해두자. 따지고 보면 손흥민도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100% 순혈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낳았다고 표현하기 애매한 이유. 그래서인지 그의 경기와 행보를 보면 이런 생각마저 든다. ‘쟤는 대체 왜 한국인인 건데?’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대게와 바닷가재 가격이 내린 적이 있다. 바닷가재는 로마 시대에 요리법이 있을 정도로 고급 음식 재료였다. 특히 다양한 요리법으로 현대 미식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17세기 미국에서는 바닷가재는 너무 흔한 음식 재료였다. 바닷가에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오는 바닷가재는 빈민층이나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주식이 됐다. 그리고 별다른 요리법이 없어 맹물에 바닷가재를 쪄서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몇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먹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민자들은 고향의 친지들에게 자기들은 매일 맛없는 바닷가재만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바닷가재가 미국에서 고급 음식이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온 프랑스 요리사들과, 20세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바닷가재를 먹는 모습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다. 바닷가재는 그림에도 등장했는데 낭만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외제 들라크루아(Eug〈00E8〉ne Delacroix)의 정물에 바닷가재가 등장한다.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은 들라크루아가 정물화를 많이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희소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화폭 중앙에 사냥물들인 새, 토끼, 도마뱀들이 날것 상태로 쌓인 그림인데 엉뚱하게도 조리된 바닷가재도 같이 뒤섞여 있다. 이 그림에 대한 주요 해석은 당대의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들라크루아는 현대미술의 토대가 된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선과 규칙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미술과는 달리 낭만주의는 색채와 문학적 영감을 중시하는 장르다. 들라크루아는 당대의 퇴폐시인 보들레르, 시대를 앞서간 자유의 피아노 시인 쇼팽과 친분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도 열정에 가득 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다. 귀족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누나의 손에서 자란 들라크루아는 평생을 작업에만 몰두한 화가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으며 작업하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사회의식도 발달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제작했는데, 프랑스 삼색기를 든 여인이 민중들을 이끌고 혁명을 이끄는 모습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류의 모습을 표현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낭만주의는 사실상 혁명과 변혁의 장르다. 프랑스 혁명은 실패했지만 ‘자유, 정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에게 각인시킨 성공한 혁명이다. 낭만주의는 현실에서 찾지 못한 이상향을 과거의 신화나 이국의 유토피아에서 현실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매개체가 바로 예술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예술에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낭만주의의 이상과 한계를, 풍경화와 정물화가 뒤섞인, 날것들과 조리된 것이 뒤섞인 혼돈의 상황을 표현한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1827~27)>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지역 아트마켓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아트부산’ 미술작품 페어가 열렸다. 페어는 단순히 전시를 넘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미술시장을 말한다. 아트부산은 최근 호황인 미술시장 분위기를 적극 반영해, 관객을 만나는 다양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올해로 11회를 맞으며, 자타공인 국내 3대 아트페어로 입지를 다지게 됐다. 준비 단계에서는 국내 유수의 갤러리 뿐 아니라 뉴욕, 베를린, 런던, 일본, 싱가폴 등 미주, 유럽과 아시아의 해외 갤러리가 참가했다. 참여 작가로는 국내 미술계 슈퍼스타인 박서보, 이건용, 정상화, 유영국을 시작으로 해외 초청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안토니오 곰리, 아니쉬 카푸어 등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까지 선보였다. 이뿐 아니라 MZ 세대의 수요를 고려한 영향인지 1990년대 생의 신진작가 작품도 고루 전시했다. 간혹 갤러리 부스마다 반복되는 작품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다양한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페어였다. 이런 준비는 흥행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아트부산 주최 측은 방문객 10만2천여 명, 760억원 매출 성과를 발표했다. 이는 작년 350억원 매출규모의 두 배나 성장한 모습이다. 실제로 필자가 아트부산을 찾았을 당시, 해운대 입구에서부터 아트부산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벡스코 진입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입장 대기 또한 한 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부산시민들의 관심도 있었지만 전국에서 아트부산을 향해 달려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미술시장에 관한 관심 때문일까? 필자는 대한민국 제 2도시라는 부산, 그리고 해운대라는 특수성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타 도시도 그렇지만 특히 수도권에서 부산을 방문할 때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다. 이럴 경우 보통 1박을 계획하기도 하는데, 부산은 더 특별하다. 주변의 볼거리로 2박 이상을 머무르며 관광과 예술을 즐기는 휴양의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런 이유로 기관들도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붙들기 위한 노력을 쏟는다. 아트 부산 주변 미술관과 기관에서는 다채로운 예술 기획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벡스코 옆 부산시립미술관은 탄탄한 기획으로 페어와는 다른 전시를 보여주었다. 롯데백화점·롯데갤러리는 올해 처음 시그니엘 부산 호텔에서 ‘롯데아트페어부산’을 개최했다. 오후7시 기관들이 문을 내리면, 해운대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맛집 앞의 긴 줄, 해변 곳곳의 작은 파티들, 모래사장에서의 맥주타임 등 해운대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다양한 관광자원을 갈고 닦은 지역에서 잘 준비된 예술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도시의 활력이 살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부산의 상쾌한 바닷바람을 뒤로 한 채, 돌아 나오며 생각에 잠겼다. 경기도에서 이런 아트페어 행사가 가능할까? 우선 이런 대규모 규모의 행사를 열 수 있는 행사장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예술행사를 진행하면서 도시의 매력을 느낄만한 관광자원이 있을까?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할만한 숙박업소는 있을까? 이 모든 것이 충족됐다면, 서울에서 열리는 예술행사들과는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을 가슴속에 품으며, 나의 자리에서 작은 일이지만 다음 전시기획을 시작한다.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시공(時空)은 삶의 제약이자 축복, 인간은 필멸의 나그네. ‘길’은 그래서 삶이 경유하거나 삶을 인도하는 도(道)의 비유로 활용된다. 지난 4월4일부터 17일까지 13박 14일 ‘제3회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서울 경복궁-안동 도산서원 276㎞)가 열렸다. 1546년 46세에 퇴계 이황선생은 고향 건지산 기슭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으며 은퇴를 결심했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출사했고 사퇴를 반복했다. 1568년 음력 7월에 즉위 2년차 17세 선조가 소환하자 다시 상경해 경연에서 강의하며 음력 12월에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제진하고는, 왕과 대신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듬해 1569년 음력 3월4일 마침내 은퇴 아닌 은퇴를 결행했다. 그 길의 마지막 두 구간을 따라 걸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이 길이 ‘퇴(退)’의 의미를 성찰하는 길이지만, 왕에게 제시한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도 엄연히 종생토록 퇴계가 세상에 간절하게 제시한 길이고, 왕에게만 국한된 길도 아니며, 오늘 우리 모두 봉건의 고도(古道)로 외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무진육조소’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으로 위미(危微)한 선악시비의 구별을 단행하고 정일하게 중용을 견지하며 그 역행(力行)으로 성세(盛世) 구현을 촉구한 논설이다. ‘성학십도’는 위민 정치의 대의를 구현하기 위한 천도 실현을 인륜과 덕업으로 해명하고 그 기본으로 심성 수양을 사단칠정과 이기를 설명하면서 ‘경’(敬)으로 그 일관된 추구를 권유한 도설이다. 시비와 의리, 공익의 그 전제에 아랑곳하지 않거나 당리당략의 고의성 왜곡까지 감행하며 아전인수를 거듭하는 근년 이래 이곳의 정치.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국민을 위한 대의에 충실해야 할 정치인들과 공직자는 당연히 되새겨야 하는 자산이고, 특정 진영에 자신을 고착시키며 자타를 훼손하는 팬덤에게도 역시, 아니 더 필요한 양식이다. 자기긍정을 확보하고 상대와 신뢰하며 통합다운 통합으로 나아가려면 아무래도 어떤 고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퇴계가 은퇴하여 전일(專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그 길은 어떤 길이었나. 1565년에 지은 ‘도산십이곡’의 후육곡(後六曲) 기사(其四)편에 이미 정리돼 있었다. “당시에 녀던 길을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사 돌아온고, 이제나 돌아오나니 딴 데 마음 말으리.” 즉, 일찍이 지향했으나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으며 근년 들어 또 방치한 가고 싶은 그 길은 우주와 인간의 진리, 그 궁극을 탐구하는 길이었다. 다른 편들에서 보이는 강호사물과의 물아일체 대등조응도 그 한 갈래이다. 오래 이어진 제자 육성은 그 자연스러운 한 결과였다. 우리는 퇴계가 아니며 시대와 환경도 아주 다르다. 그러나 퇴계의 그 탄식에서 우리는 문득, 자신에게 분노하며 삶의 진정성을 그리워하는 내면의 강렬한 비애를 느낄 수 있다. ‘유한한 삶의 시간, 이런저런 핑계로 시시하게 소모하지 말고,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자…’ 그리하여, 아 혹 그럴 수 있어, 퇴계가 임종 때까지 가꾼 매화에는 미치지 못해도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단 한번 피울 수 있다면, 우리의 짧고 비루한 삶을 구원하는 크나큰 영광이 되리. 도산서원(원장 김병일)이 주관해 퇴계의 옛 그 길을 최대한 복원한 ‘퇴계선생 귀향길’, 혼자도 좋고 친구들과도 좋고, 다시 걸어야 하리.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예술을 민중에게

독일을 대표하는 최고의 극장 폴크스뷔네(민중무대)는 통독 이전 동베를린을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동구의 연극에 늘 새바람을 일으키고 혁명처럼 문제작들을 선보였다. 폴크스뷔네가 유럽의 연극을 선도했던 이유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극장의 명성도 있었지만 폴크스뷔네의 예술의 계급 저항정신에 바탕을 뒀던 극장 운영 방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폴크스뷔네는 1914년 노동계급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극장이다. 특히 동독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독일의 세계적인 연출가 프랑크 카스트로프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폴크스뷔네의 정신으로 다시 회생, 실험적인 작품을 여러 차례 성공시켜 극장의 문을 닫을 위기를 극복했다. 그의 선언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예술을 민중에게!”. 돈이 없어 대중이 예술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예술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고 생각했기에 최소 비용으로 폴크스뷔네의 작품을 민중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티켓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적어도 돈이 없어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상황을 없애도록 했다. 수준 높은 극장의 작품을 많은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폴크스뷔네는 통독 이후에도 이런 운영 방침을 지속 운영했다. 폴크스뷔네의 영광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극장은 자립성을 강요받고 자본주의 경쟁의 구도 아래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야 성과를 인정받는 극장과 공공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한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극장들은 따가운 질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재정 자립에 대한 부분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공공극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수익을 올리는 방안에 혈안이 돼 있다. 비싼 주차요금을 비롯한 식당 등 부대 상업공간을 최대한 많이 임대해 임대소득을 올리기도 하고, 대관료를 높게 책정하거나 혹은 부대사용료 항목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대관 단체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물론 방만한 운영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는 공공단체와 극장들은 문제다. 그러나 재정자립도만을 문제 삼고 이를 향유하는 시민들의 만족도에 대한 부분을 놓치는 게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의 알토란같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의 극장과 단체의 경우 시민의 문화 향유 권리를 더 고려해야 할 것이고 혹시라도 소외받는 계층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들의 문화향유의 기회를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준 높은 작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공공의 극장과 단체가 해야 할 책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더욱 가장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폴크스뷔네의 슬로건인 “예술을 민중에게”를 가슴에 새겨본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학문의 언어, 대중의 언어

드라마 제목 때문에 소셜미디어가 시끌벅적하다. ‘너에게 가는 속도 493㎞’라는 제목이 문제시됐다. ㎞는 거리의 단위이기에 속도를 의미하려면 시간을 더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 맞는 말이다. 시속 493㎞, 493㎞/h 등으로 표기해야 정확하다. 한데 이게 오류 지적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문과가 또...’라며 비웃는 사람이 늘어가자 그를 불편해하는 분위기. 문과는 모르고 이과만 아는 내용은 아니라며.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한데 속도 대신 속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언어 관습을 무시한 주장이니까. 물리학 정의에 따르면 속도는 속력에 방향이 더해진 것이다. 우리가 속도라고 표현하는 대부분이 엄밀히 따지면 속력. 한데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고속도로에서 자기 혼자 반대 방향으로 100㎞/h로 달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리학 정의대로면 이 또한 속도위반이다. 속력은 규정을 지켰어도 방향이 틀렸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걸 속도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역주행이라고 부른다.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는 게 온당할까? 경제학을 전공하며 비슷한 사례를 여럿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공공재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공공재 항목엔 이런 예문이 있다. “에너지는 공공재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 올여름의 전기 부족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 이는 틀린 예문이다. 경제학에선 비경합성, 비배제성 둘을 충족해야 공공재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쓴다고 해서 저 사람이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고(비경합성), 누군가가 쓰는 걸 억지로 막을 수 없어야 한다(비배제성). 에너지는 둘 다 충족하지 않는다. 전기, 가스 등은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데다 요금 체납 시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를 두고 적지 않은 경제학 교수가 수업 시간에 열을 올린다. 대중은 무식하고 언론은 나태하다며.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공중(公衆)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고 일상에서도 그리 활용된다. 좀 넓게 확장하자면 음악의 불협화음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갈등이 심해서 화합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불협화음 심각하다’, ‘불협화음 마땅히 해소해야’처럼 표현하는 걸 종종 본다. 그러나 음악 전공자에겐 꽤 다른 온도로 읽힐지도 모른다. 불협화음 역시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고, 장르에 따라선 그걸 얼마나 영리하고 절묘하게 활용하느냐에서 실력이 판가름 나기에. 그런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불협화음은 악(樂)의 일부일 뿐 악(惡)이 아니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모든 전공에 다 있기에 다들 할 말이 있을 테다. 한발 떨어져서 조망하면 자기 분야에서는 ‘그런 뜻 아니라고!’라며 으스대지만 남의 분야에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쓰는 형국. 그렇다면 조금 관대하거나 겸손해지는 게 어떨까 싶다.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주고받되 특정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꼭 그러고 싶다면 대중과 동떨어져 누구도 헷갈리지 않을 언어로 대체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첼리니의 소금 그릇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였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첼리니의 이름을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금 그릇 때문이다. 1543년에 제작된 <황금의 소금 상자>는 순금으로 조각된 소금 그릇으로 프랑스 왕에게 헌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30㎝가 안 되는 이 금세공품은 한쪽에는 벌거벗은 바다의 신과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인이 배치된 형태인데, 그 세부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소금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한 음식물이다. 원시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야생 동물의 고기 대신 농사를 통해 생산된 곡물이 인간들의 주 식량원이 됐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의 고기에는 풍부한 소금이 있었지만 곡물에는 소금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소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됐다. 특히 내륙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들에게 소금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고대 국가들의 흥망성쇠도 바로 이 소금 때문으로 소금은 최초의 국제적인 무역 상품이 됐다. 이탈리아 작은 어촌 마을인 베니스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상업 도시가 된 것도, 17세기 세계 경제를 지배한 네덜란드의 성공도 바로 이 소금 때문이었다. 또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특성 때문에 믿음과 신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배신자 유다 옆에 소금 그릇이 엎어져 있는데, 이것은 바로 배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첼리니는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은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받았지만 살인, 강도, 여성 편력 등 개인의 생활사는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말년에 그러한 내용을 솔직하게 기록한 자서전을 발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첼리니의 자서전에 감동해 독일어로 번역을 햤고 첼리니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칭송했다.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마치 천재의 비사회적 전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후대에 첼리니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가 제작되기도 했다. 최근에 첼리니의 소금 그릇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3년에 비엔나박물관에 전시된 소금 그릇이 도난당한 것이다. 당시 10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걸고 소금 그릇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는데, 2006년 비엔나 북쪽의 숲속에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소금 그릇이 발견됐다, 이후 미술관 측이 소금 그릇을 보험에 들었는데 보험금이 대략 800억원 정도였다. 첼리니는 르네상스 전성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전 세대가 하지 못했던 더 흥미롭고 비범한 것을 만들려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 에술가들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에서 예술가라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정립해야 하는 부담감(-책을 많이 읽어 고전에 대한 상당한 지식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과 선배들인 중세 장인들의 방랑벽과 방탕한 생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애매한 상황이 바로 첼리니의 생애인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

필자는 평택시 신장동에서 지역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신장동은 ‘송탄’이라는 옛 지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은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K-55)가 주둔해 있는 전형적인 기지촌이다. 미군을 찾아 전 세계에서 찾아온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과 문화를 지역주민,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덜컥 문화예술공간을 열었다. 2020년부터 운영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다. 코로나19 발생 후 관객을 대면으로 만나기 어려운 점부터 공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비용 마련, 행정 서류처리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지역에서 같이 일할 ‘동료’를 만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사람 몇 명이서 할 수가 없다. 같이 일할 기획자, 작가, 코디네이터, 활동가, 디자이너, 예술가,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동료를 지역에서는 만나기가 어렵다. 특히 신장동지역은 평택 본도심과 많이 떨어져 있고, 미군부대가 있다 보니 주변에 살고 있는 청년, 전문가 수가 현저히 적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두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모셔와야 하는데, 시간 대비 비용이 문제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지역에서 만나,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하지만 왜 우리 지역에는 문화예술 전문가를 만나기 어려울까? 평택에는 순수예술과가 있는 대학이 없다. 당연히 예술에 종사하고자 하는 이도 적고, 능력을 펼칠 무대도 적다. 인력난을 겪어 보니, 청소년·청년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으나, 관심도가 현저하게 적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지역의 청년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없을까? 평택은 매우 큰 도시지만 미술관·박물관은 없고, 문화 경험을 할 공간도 매우 적다. 평범한 사람도 1년에 한 번 마음 먹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는 예술이 단순한 그림이나 음악으로 치환되고, 부모 또한 예술을 접촉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문화예술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경험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문화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정해진다. 아마 이런 문제는 비단 평택시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이 계속 문화소외지역으로 분류되거나, 문화예술 경험의 기회가 적은 채로 있어도 되는 것일까? 필자는 자기 집 앞에서도 다양한 문화예술의 경험이 삶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문화예술 경험이 늘어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자인 주민의 역할이다. 수요자가 많아지고 요구가 많아져야 지방 정부가 움직일 수 있고, 공급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주민의 입장에서는 문화예술기회가 적은 것을 인지해야한다. 그리고 공공의 문화적 혜택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지역문화 공급자로서는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양질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대로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다. 곧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느껴진다. 현재 각 지역의 예비 후보자들이 등록을 하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부디 지역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후보자들이 입후보하길 바라본다. 특정 정치인 한 사람의 관심으로 갑자기 지역의 문화예술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 그 지역의 문화예술이 독특한 힘을 발휘하는 날이 오기를. 그날이 오기를. 마음깊이 기다려 본다.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 대표·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일송 김동삼 선생의 지향

언제부턴지 ‘광복절(光復節)’ 명칭이 부담스러웠다. 일제 강점 35년은 우리 5천여년 유장한 민족사에서 점 하나에 불과하고, 그 전후의 자주성과 성취를 가리기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2 <일송김동삼(一松金東三)선생기념사업회>가 오는 13일에 백범기념관에서 발족식을 개최한다며 초청장을 배부했다. 인용된 선생의 유언,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를 읽었다. 선생을 비롯해 당대 독립투사들의 막막한 운명, 그 통한과 비원을 공감하며 분노로 우울했다. 선생은 또 옥사하기 3년 전에 “내가 죽을 이곳은 풀밭이나 산중에서 죽은 무명의 동지들을 생각하면 ‘과분한 장소’”라고 탄식했다. 두 말씀의 깊고 도저한 함축에 감읍하며 무명 열사들께도 죄송했다. 1907년 이래 선생의 30여년 독립운동은 ‘무장투쟁’과 ‘민족통합’으로 요약된다. 특히 1919년에 남만 한족회 총무사장과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의 참모장을 역임하며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확대해, 이청천 신팔균 김경천 이범석 등이 독립전쟁의 무장으로 전환하는 계기도 마련했고, 그 전후에 김산 김원봉 강화린 등 뒷날 독립운동사에 큰 자취를 남기는 3천5백여 투사를 육성했다. 대소 무장투쟁을 촉진하는 한편, <대한통의부>(1922.8), <상해 국민대표회의>(1923.1), <정의부>(1924.12), <삼부통합 혁신의회>(1928.12),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1929.5) 등을 결성하며 민족의 독립투쟁 역량을 통합하거나 통합하는 노력에 헌신했다. 무장투쟁 내부에도 갈등과 불화가 상존했다. 좌우 갈등뿐만 아니라 학통과 반상에 따라 입장이 달랐고, 만주 거주지역의 지연과 관련 세속권력도 형성돼 있었으며, 심지어는 복벽(復〈8F9F〉)과 민주가 맞서기도 했다. 단일전열로의 통합에는 살신성인 수준의 헌신과 신뢰가 요구됐는데, 선생은 그 대의명분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다. 특히 참의부 신민부와의 통합에서 끝내 기득권들이 충돌하자 1911년 만주 망명 이래 피땀을 바쳐 결실한 정의부에서 탈퇴까지 했으며(1928.5), 통합 동지 김좌진 장군이 피살되면서 좌우이념이 끝내 문제돼도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 중앙집행위원장 활동의 일환으로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창립주비회>에 집행위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1930.3) 1931년 10월5일 하얼빈에서 피체된 선생은 1937년 4월13일 경성형무소에서 60세로 순국했다. 걸출한 고승이자 『님의 침묵』의 위대한 시인인 만해 한용운은 선생의 시신을 심우장에 안치하고 영결식에서 유례없이 대성통곡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오늘 국내의 여러 분열과 남북의 갈등을 생각하면, 선생의 지향은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대의(大義)이고, 공동이념으로 필요하다. 광복절, 이 명칭 또한 남북이 서로 국체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통일에 합의하는 그날 이후라야 변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몸의 연극

연극은 더는 대중매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드라마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매체에 그 위치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문학에 종속돼 있던 연극은 드라마가 없는 새로운 방식의 연극으로서 발전하는데, 역사적 아방 가르드부터 시작된 연극의 재연극화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매체로서는 도저히 대체 불가능한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방식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이런 경향은 최근 더욱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연극을 ‘재발견’하고 연극에서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독창적인 표현의 잠재력을 ‘재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만이 가능하고 다른 매체로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특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텍스트는 무대에서 생성된 여러 이미지의 기호처럼 기호화돼 표현되기 시작했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지각’의 방식은 무대에서 ‘몸’의 관심을 끌어냈다. ‘몸’은 수행성을 이끌고 ‘몸’을 통한 수행성이 새로운 연극에선 중요한 사항이 됐다. 즉흥적인 에너지의 생성은 새로운 지각방식의 퍼포먼스를 창조하게 했다. 퍼포먼스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정교한 구조로서 한정된 시공간의 연극환경에 새로운 소통의 확장을 이루어 왔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배우는 더는 어떤 인물을 재현하거나 창조하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무대 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현존을 제공하는 인간이다. 수행성의 의미에서 연극은 관객의 새로운 지각방식을 연구하고 나아가 공연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공연은 결과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창작행위의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제 연극은 재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모든 대상의 현상적 물질성을 부각시키고 가시적인 무의미성을 강조한다. 이제 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대상인 것이다. 미디어의 결합은 공연예술에서 다양한 실험으로 이루어졌는데 매체와 매체를 결합해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균열을 만들어 냈다.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연극성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대연극에서 텍스트는 그 힘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드라마가 절대적인 연극성이라고 여겨왔던 믿음은 새로운 형태의 체험이 연극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관객을 감상적인 범주의 객체로 위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주체로서 지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예술이 오늘날 연극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관객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극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권리와 책임을 주장할 수 있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민 중심 사회를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연극은 관객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사유하거나 혹은 근본적인 문제에 성찰하는 기회를 공연이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관객을 사유하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 ‘어떻게 감동하게 할 것인가?’ 나아가 ‘감성의 부분과 이성의 부분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사유해 본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예능보다 재미있는 다큐

재미의 커트라인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예전엔 그럭저럭 웃고 즐겼던 영상과 농담에 지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시간이 흐르며 과거의 웃음 포인트가 부적절하고 구태의연해진 탓도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뭐가 됐든 예전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고 확실한 걸 원한다. 어설픈 재미보단 차라리 노잼이 낫다. 그러면 노잼이라고 비웃으며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치어: 승리를 위하여>는 이런 트렌드에 정확히 부합하는 콘텐츠다. 다큐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지만 그 어떤 예능보다 재미있다. 담긴 모든 이야기가 실화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대중이 현대 엔터테인먼트에 기대하는 요소를 두루 담아낸 수작. 에미상 3개 부문 수상에 걸맞은 완성도. 소재 선정부터 영리하다. 미국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치어리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은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운 존재다. 경기장의 선수를 응원하는 게 목적이니까. 실제로 치어리더라는 표현은 경기장 밖에서 응원이나 하는 이 같은 격하 의미로 사용될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 다큐를 보고 나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간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도전하는 대학생 청춘들을 보면 어느덧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의아해하는 이를 위해 말해두자면 여기 담긴 치어리딩은 우리가 야구장, 농구장 등지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춤추고 흥을 돋우는 걸 넘어서 곡예 수준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을 가로지른다. 남녀가 어우러져 펼치는 종합 체조로서 화려하고 아찔한 연기의 반복. 영상으로 보면 박진감과 스릴이 가득한데 이 역시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소재 선정의 승리. 대단한 육체적 능력과 매력을 가졌지만 그들 모두는 덜 여문 채 미래를 불안해하는 보통의 20대.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며 경쟁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인간의 한계와 의지를 묻게 된다. 아울러 다양한 배경, 개성, 가치관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이끄는 리더십의 중요성과 덕목도 되새기게 된다. 다큐 본연의 목적을 너끈히 수행하는 가운데 예능 이상의 재미까지 담아냈다. 치어리딩 경기와 훈련은 역동적이고 화끈하게, 각자의 삶과 일상은 사려 깊게 접근한 덕분에 재미와 감동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자극적으로 편집된 짧은 영상 외엔 도통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 뭘 봐도 작품성과 진정성을 피곤할 정도로 따지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 여기 담긴 게 그들 삶의 전부일 리는 없다. 시즌1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 전국구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 한 명이 이후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구속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시청자는 물론 제작자, 동료, 감독까지 죄다 충격에 휩싸인 스캔들. 그동안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완벽하게 숨기고 산 것이다. 시즌2에선 이 내용까지 다룬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작품의 메시지 중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다들 어느 정도는 연기하며 산다는 것. 물론 그게 추악한 범죄여선 곤란하지만.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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