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가장 솔직한 언어” 고색뉴지엄, 신경다양성 예술가 9인전 ‘사월, 인터-뷰’ [전시리뷰]

‘이야기의 마술사’, ‘기도하는 작가’, ‘그림 그리는 나무늘보’, ‘멋쟁이 로봇보이’…. 에이블아트센터 작가들의 애칭은 어딘가 특별하다. 이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역시 다르다. 누군가는 사람과 동물을 주인공으로 상상 속 이야기를 풀어내고, 누군가는 작업 전 자신과 동료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이는 작가가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또 다른 작가는 색연필과 펜으로 집과 나무 등 일상의 풍경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미세하게 떨리는 선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종이의 질감과 어우러지며 고유한 화면을 만든다.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상상력, 그리고 섬세한 감각은 익숙한 관습에 머물러 있던 시선에 새로운 결을 드러낸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지난 16일 개막한 고색뉴지엄 기획초대전 ‘사월, 인터-뷰 : 봄에 마주한 이야기’는 신경다양성 예술가 9인의 작업을 통해 ‘말이 아닌 방식의 인터뷰’를 제안한다. 에이블아트센터 소속 성인 작가 4명과 청소년 창작반 ‘새파란’ 작가 5명이 참여했다. 작품은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솔직한 언어로 기능하며, 관람자는 이를 통해 작가의 세계와 마주한다. “여름을 그릴 거예요. 바다, 조개, 물고기를 그리고 싶어요.” ‘색과 선을 빚는 작가’ 최회승 작가(32)의 말은 단순했지만, 그의 작업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사진을 보며 마커로 선을 쌓아가듯 그린다. 민들레와 목련, 선인장, 나뭇가지와 잎 등 관찰한 대상을 독특한 선과 기하학적 패턴으로 변환해 화면을 구성한다.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바다를, 겨울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며 계절의 흐름을 작업으로 이어간다. 작업일지에 ‘좋아요’, ‘이뻐요’, ‘행복해요’를 자주 적는다는 그의 태도는 이번 전시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장애를 설명하기보다 작가의 감각과 표현 방식을 전면에 드러낸다. 대안예술공동체로 설립한 국내 최초의 전문 장애인문화예술 공간 ‘에이블아트센터’가 지향하는 방향과도 같다. 장병용 이사장은 “단순한 취미 교육이 아니라 장애 예술가의 고유한 감각과 상상력을 끌어내고 확장하는 공간”이라며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각자의 감각이 스스로 자라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익숙한 미술 문법과 다른 반복의 밀도, 예기치 않은 전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이유다. ‘이야기의 마술사’ 한대훈 작가(32)는 명화와 애니메이션, 오페라, 자신이 가고 싶은 여러나라의 문화 등을 그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결합한다. ‘겨울철 한옥에서 김장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같은 제목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17세기 유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조선의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한옥과 김장 풍경이 한 작가의 상상 속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지며 기존 서사와는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 한 작가는 책과 영상, 음악에서 만난 세상에 자신만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든다. 한 작가는 앞으로 오페라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그려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창작반 ‘새파란’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성인 작가들이 축적한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면, 청소년 작가들은 더 직관적이고 순수하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감각을 드러낸다. ‘친절한 젠틀맨’ 김동근 작가는 한국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그리며 사람과 역사 이야기를 친근한 장면으로 풀어내고, 회화와 조형을 넘나드는 ‘멋쟁이 로봇보이’ 최윤우 작가는 섬세한 손끝과 집중력으로 거침 없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이들을 지도하는 이혜원 에이블아트센터 강사(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이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첫 걸음이었다”고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9인 작가에게 붙여진 애칭 역시 이러한 대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이 어려울 때는 표정과 반응을 읽고, 어떤 색 앞에서 미소 짓는지 살피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말은 단순한 지도법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처럼 들린다. 이창세 고색뉴지엄 관장은 “작품을 보며 전문 작가 못지않은 완성도를 느꼈다”며 “이번 전시가 서로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30일까지다.

“기억하고, 살아가고, 실천하는 예술” 경기도미술관 20주년 ‘흐르고 쌓이는’ [전시리뷰]

예술은 한 시대를 어떻게 지나가며,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무엇을 다시 읽어낼 수 있는가. 경기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별기획전 ‘흐르고 쌓이는’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파도에 실려온 모래가 켜켜이 쌓여 언덕을 이루듯, 한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되는 긴 세월, 예술가와 함께 시대를 지나온 작품과 이를 향유해온 관람객의 시간이 전시에 담겼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이 지난달 26일부터 6월14일까지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회화·설치·영상 등 125점의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미술관의 20년 발자취가 담긴 작품엔 시대의 사회적 맥락과 함께, 예술이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실천돼 왔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 질문은 관람객 각자의 삶 속으로 이어진다. ■ 소장품을 다시 읽는 방식, ‘정답 없는 질문’ 전시는 ▲‘예술은 ( ) 시작하는가’ ▲‘우리는 ( ) 살아가는가’ ▲‘우리는 ( ) 기억하는가’ ▲‘예술은 ( ) 함께하는가’ ▲‘나는 ( ) 실천하는가’라는 다섯 개의 질문으로 구성된다. 괄호는 비어 있다. 전시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관람객이 각자의 언어로 질문을 완성하도록 유도한다. 첫 번째 섹션 ‘예술은 ( ) 시작하는가’는 예술의 근원을 묻는다. 예술은 때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생각해본 적 없던 질문을 던지며 시각을 확장한다. 첫 번째 섹션은 장르와 형식을 해체하며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을 소개한다. 한국 추상미술을 선도한 유영국의 ‘산’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신 색과 형태의 질서로 환원하며,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기초를 형성한 작업이다. 한국 1세대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의 ‘무제’는 자연과 기술, 물질과 이미지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며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연다. 여러 겹의 천 조각을 거칠게 바느질로 엮어낸 구본창의 ‘태초에’ 시리즈는 인간의 고뇌와 삶의 흔적, 존재의 번뇌를 물질로 드러낸다. 두 번째 섹션 ‘우리는 ( ) 살아가는가’는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노동의 현장과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며 삶의 조건을 드러낸다. 1980년대 민중예술에서 빼놓고 논할 수 없는 민정기는 산업화 시기 노동과 일상의 풍경을 판화로 기록해온 작가로, 반복되는 노동의 몸짓 속에서 사회 구조를 읽어낸다. 그런가하면 박은태는 ‘녹색모듈’에서 금속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획일화된 회로 시스템 속에서 부품처럼 기능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배영환의 작업은 욕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 기억을 불러내는 예술,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세 번째 섹션 ‘우리는 ( ) 기억하는가’는 예술이 잊혀지는 것들을 다시 소환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함께 나누는 기억은 흩어진 것을 모으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드러낸다. 무엇이 잊혀가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강요배의 ‘황파’는 1990년대 제주 민중의 거친 삶을 역동적으로 담아내며 집단적 기억을 환기하고, 조동환·조해준의 ‘미군과 아버지’는 개인의 미시적 서사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교차시킨다. 안규철의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세월호 2주기,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기억이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함께 감각하고 이어가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어느 아이의 방을 옮겨온 듯한 침대에서 관람객들이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공감을 전한다. 네 번째 섹션 ‘예술은 ( ) 함께하는가’는 예술을 관계와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경기도미술관은 국공립 미술관 최초로 퍼포먼스를 소장한 기관으로, 이건용의 ‘동일면적’은 그 상징적 사례다. 전시장에는 1975년 백록화랑 ‘오늘의 방법’ 영상과 행위 개념서, 그리고 도구의 흔적은 퍼포먼스를 기록이 아닌 실행 가능한 개념으로 남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관람객 참여로 재구성해 예술이 현재진행형의 행위로 이어지도록 한다. ■ 예술은 사회에, 세상에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가 마지막 섹션 ‘나는 ( ) 실천하는가’는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을 한 인물의 삶으로 압축한다. 민중미술 작가 김정헌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예술가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실에 개입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본과 권력의 흐름 속에서 주변화된 민중, 노동과 일상, 변두리의 삶에 주목하며 예술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이어왔다. 그의 작업 세계에는 ‘잡’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유가 스며 있다. 흔히 ‘잡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 잡초처럼 눈길에서 비켜나 있던 존재들에 대한 관심은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시선은 예술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해왔는지를 되묻는다. 그의 작업은 ‘큰 그림’에서 ‘작은 그림’, 그리고 ‘영매로서의 미술’로 이어지며 시대 변화 속에서 예술의 역할과 소통 방식을 확장해왔다. 1980년대 ‘큰 그림’이 현실로 나아가 사회와 직접 마주하는 예술을 의미했다면, 1990년대 ‘작은 그림’은 개인의 미시적 서사와 새로운 관객과의 소통에 주목한다. 이후 ‘영매로서의 미술’은 보이지 않던 가치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확장되며, 예술이 사회를 감각하고 연결하는 또 하나의 통로로 기능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 ‘어쩔 수 없이 너 나’ 작품은 그의 고민이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로 귀결됨을 드러낸다. 지난 2024년 경기도미술관에 54점의 작품을 기증한 그의 행위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 놓인다. 나기현 학예연구사는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해왔을 때, 김정헌의 삶이 하나의 답처럼 다가왔다”고 설명한다. 한 예술가의 실천을 조명하는 동시에, 관람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 ) 실천하는가’라는 이번 전시의 마지막 물음은 관람객 각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은 “교과서 명품전이 정해진 해석을 전달하는 데 그친다면, 이번 전시는 시간이 쌓이며 재해석되는 살아있는 소장품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도자의 금기를 깨고, 관계를 잇다” 경기도자미술관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 [전시리뷰]

흙은 인간의 의도를 온전히 따르지 않는 물질이다. 마르고 갈라지며, 불을 통과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변형된다. 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일방적인 형성이 아니라, 흙의 물성과 이를 다루는 인간 사이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 이천에 위치한 경기도자미술관 2026 기획전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은 이러한 관계적 성질을 전면에 내세운다. 완성된 결과 대신, 변화하는 물질과 관람객의 행위가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형성되는 방식을 묻는다. 관람객의 참여 속에서 전시는 끊임없이 변형되며, 그 과정에서 ‘나’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드러난다. 한국도자재단이 주최한 이번 전시는 7월12일까지 이어지며, 국내외 작가 10명이 참여한 도자 설치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도자를 먼 발치에서 ‘완성된 공예품’으로 감상해온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물질과 인간, 관람객의 참여가 결합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관람객은 오감을 통해 도자를 느끼며 예술을 ‘살아있는 과정’으로 경험하게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실 켐페링크(네덜란드)의 작품이 먼저 감각을 깨운다. 쇠사슬처럼 얽힌 원형의 도자를 손에 쥐는 순간, 예상과 다른 미묘한 탄성과 움직임이 전해진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보이지만 직접 움켜쥐고 늘려보는 순간 예상은 빗나간다. 반복되는 원형 구조는 서로 기대고 당기며 관계망을 형성한다. 미술과 무용, 섬유와 패션을 넘나드는 배경을 가진 작가는 ‘원’을 주요 소재로 삼아 하나의 감각으로 완성한다. 그 안에는 바람과 파도 같은 자연의 리듬이 담겨 있다. 세탁기에 던져진 오브제가 짧고 경쾌한 파열음을 남기며 청각을 깨운다. 포레스트 가드(미국)의 ‘빨래’는 돌돌 말린 양말 형태의 점토 오브제를 세탁기 통 안으로 던지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익숙한 장면을 낯선 감각으로 전환한다. 관람객은 오브제를 던지거나 저글링하듯 주고받으며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깨질 때의 리듬을 경험하고, 실제 양말과의 촉감 대비를 통해 감각을 확장한다. 어린 시절 아무렇게나 양말을 던져 넣었다가 혼나던 기억은 이곳에서 ‘어른을 위한 놀이’로 재구성된다. 금기를 깨는 깨짐은 훼손이 아닌 놀이의 일부로 허용되며,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노란 빛으로 채워진 포근한 공간 한 켠에는 계란판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정나영의 신작 ‘부화의 조건’은 ‘깨짐’을 파괴가 아닌 내면을 여는 과정으로 전환한다. 전시장에 놓인 3천 개의 계란은 관람객의 행위를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긴장감을 갖고 도자 주먹으로 계란을 깨뜨리는 순간, 내부에 숨겨진 문장이 드러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무력함의 은유는 이곳에서 전복된다. 작가는 계란 형태를 만들고 문장을 넣어 다시 굽는 과정을 3천 번 반복했다. 그 문장이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이라는 사실은, 감동을 만들어내는 언어의 주체와 의미를 되묻게 하며 관람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남긴다. 홍근영 작가의 ‘타오르지 못하고 소멸하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는 도자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비어 있는 내부에서 경계를 흔든다. 관람객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을 지닌 형상을 손으로 더듬고, 임신한 여성의 배를 연상시키는 비어 있는 공간 내부를 들여다보며 작품과 마주한다. 작가가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도자 조각들은 삶과 죽음, 몸과 사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교차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불을 거쳐 형태를 얻은 흙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상태로 남듯, 작품은 소멸과 생성의 경계에 놓인 존재의 조건을 드러낸다. 빈자리를 채운 관람객의 선물은 매 순간 전시의 모습을 바꾼다. 우관호의 ‘일만 개의 선물’은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순환 구조를 실험한다. 관람객은 도자 오브제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공간으로 가져가고, 그 자리에 직접 만든 형태를 남긴다. 오브제는 일상 속에서 촬영돼 작가에게 전달되고, 다시 공유되며 작품을 확장한다. 어린아이 두상이나 타누키 형상을 본뜬 오브제는 인간의 본질과 본능을 상징하며, 작품은 미술관을 벗어나 개인의 삶과 기억 속으로 이동한다. 2014년 일본 시가현립 도예의 숲 레지던시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세계 여러 지역을 거치며 이어졌고, 작품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만들어낸다. 김선의 신작 ‘마음의 기화’는 태움의 의례를 통해 감정의 전환을 드러낸다. 작가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49재에서 옷을 태우며 마음이 가벼워졌던 경험에서 출발해, 사적인 애도의 과정을 타인과 나누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관람객은 종이에 자신의 감정을 기록해 실로 엮고 항아리에 담는다. 이 항아리는 기억을 저장하는 매개가 되며, 4월과 6월 작가의 진행으로 미술관 가마 터에서 진행되는 태움 의식에서 종이는 불에 닿아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나 감정은 소멸되지 않고 흔적을 남긴 채 다른 형태로 전환된다. 그을린 자국을 품은 항아리는 전시장에 다시 놓이고, 개인의 기억은 타인과 겹쳐 축적된다. 애도는 이 과정에서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각 작품의 참여 방법과 운영 시간은 경기도자미술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예술, 정체성을 실험하다” 백남준아트센터-자그레브 현대미술관 ‘불연속의 접점들’ [전시리뷰]

복제와 창조, 모사 등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확장하며 이를 현실에 구현하게 만들기도, 반대로 인간을 종속시키기도 한다. 백남준아트센터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이 지난 19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공동 기획전 ‘불연속의 접점들’은 백남준과 크로아티아의 미디어 아트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만들어낸 예술적 실험이 교차하는 접점을 다룬다. 특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1960년대 뉴 텐던시 운동은 해체, 예술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과 함께, 관객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참여시키며 그 안에 백남준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는 ‘유머’를 첨가했다. 텔레비전 토크쇼에 한 중년 남성이 출연했다. 스튜디오의 소파에 앉아 있는 이 중년 남성의 맞은편엔 TV가 한 대 놓여있고, 그 안에선 콧수염을 한 강한 개성이 드러나는 또 다른 남성의 영상이 나오고 있다. 두 인물의 모습은 극과 극으로 보인다. 날카로운 인상에 깔끔한 머리 모양, 무채색의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 반면 화면 속 남성은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자유롭고 반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신은 아직 살아있나요?”, “지금의 나와 당신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화면 속 남성이 던지는 20여 개의 질문에 스튜디오의 중년 남성이 대답한다. 달리보르 마르티니스 작가의 작품 ‘달리보르 마르티니스가 달리보르 마르티니스에게 말하기를’은 기록이라는 비디오의 특성을 활용해 32년에 걸쳐, 한 번쯤 상상해본 미래의 나와 과거 나의 조우를 현실에 구현했다. 관람객은 이처럼 백남준과 크로아티아 미디어 아트가 공유하는 지점을 세 개의 시기에 걸쳐 조각, 설치, 비디오, 사진 등 26개의 작품으로 만나게 된다. 전시는 1960~1970년대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전개된 국제적 미술 운동 ‘뉴 텐던시(새로운 경향)’에서부터 시작한다. 전통 미술의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매체 실험에 적극적이던 이 움직임은 예술을 하나의 ‘연구’ 행위로 규정하고,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하며 기술 발전을 적극 수용했다. 특히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예술의 방법론으로 도입하며 오늘날 디지털 기반 예술의 토대를 마련했다. 콜로만 노바크의 ‘빛의 오르간’과 블라디미르 보나치치의 ‘DIN GF. 100 – 14. V. B. 1969’에선 기술과 예술이 만난 초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화려한 도시의 간판 위 네온사인을 보는 듯한 ‘빛의 오르간’은 프로그래밍한 빛의 움직임과 음향 효과가 결합해 새로운 몰입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1969년 물리학을 연구한 보나치치가 만든 작품은 시각적 매개변수를 활용하며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준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6만5천여가지 조합이 차례대로 점등되고, 관람객은 리모컨으로 특정 빛의 조합을 멈출 수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예술가와 작품이, 인공 시스템과 인간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70~1980년대에 이르러 크로아티아의 작가들은 비디오 실험과 신체 탐구에 집중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가의 ‘리듬 2’는 자기 몸이 반응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두 개의 실험으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치료용 약물을 복용하며 1부에선 신체적 통제력을 상실했으나 정신은 완전히 깨어 있는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과정을, 2부에선 신체 반응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나 반대로 정신 상태는 현실 감각에서 멀어진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이반 라디슬라브 갈레타 작가의 작품 ‘거울 탁구’와 ‘TV 탁구’는 영상 속 속임수가 실제 공간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드러낸다. 관람객의 앞엔 탁구대와 함께 두 개의 라켓과 공, 모니터 화면이 비치돼 있다. 라켓을 들고 공을 던진다. 공은 거울 속 또 다른 나의 라켓에 부딪혀 현실의 나에게 돌아온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나는 이긴 것인가 진 것인가. 이번엔 영상이다. 한 경기를 녹화한 것 같은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개의 영상을 이어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두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지각에 주목한다. 1990~2000년대 이후 이러한 경향은 최신 기술을 활용하며 관객의 참여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유전공학을 주제로 한 인터넷 게임 형식의 안드레야 쿨룬치치의 작품 ‘닫힌 현실 배아’를 마주한 관람객은 온 사방에 자리한 작품의 단편들을 만나게 된다. 참가자들은 짝을 이뤄 가상 공간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성별, 피부색, 지능 등 10개의 질문을 선택하며 나만의 배아를 창조했다. 이 배아들은 6개월 동안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조건 속에서 살아가며 모든 데이터는 ‘배아 갤러리’에 저장된다. 인간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창조적 사회의 유전 결합을 바탕으로 한 결과값에서 작가는 대학이나 각종 연구소에서 이를 기반으로 열띤 토론을 하는 워크숍을 개최했다. 인터넷과 공공 장소에 배포된 전단지를 통해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참여자는 자신의 작업을 제작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참여 과정과 분석, 비평결과가 전시 공간에 펼쳐지며 작가는 과학의 사회적 개입과 윤리적 책임을 질문한다. 크로아티아 참여 작가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 단 오키는 “냉전 시대의 유럽, 그 안에서도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안에서 조금 더 ‘자유’를 지향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크로아티아의 예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디어 아트에서 몰입, 유쾌함, 참여, 재미는 백남준의 작품에서도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미디어 아트에선 작품과 관객의 참여가 만나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6월14일까지.

“30만 년 시간 품은 초대형 주먹찌르개, 대중과 만나다”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전면 개편 [전시리뷰]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줄인다면 우리 인류가 등장한 것은 자정이 되기 고작 몇 초 전이다.”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벽면에 적힌 이 문장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인류 역사의 99.6%를 차지하는 긴 시간을 우리는 ‘구석기 시대’라고 부른다. 개관 15주년을 맞은 전곡선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하고 지난 12일 공개했다. 개편을 통해 길이 42㎝, 무게 약 10㎏에 달하는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대중 앞에 처음 선보이고, 구석기에 관한 이야기를 관람객의 눈높이에서 풀어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긴 여정이 펼쳐진다. 직립보행의 시작과 도구 사용, 언어와 문화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인류 진화의 흐름이 한눈에 정리돼 있다. 매머드 등 빙하기 동물 모형과 당시 자연환경을 재현한 공간은 마치 구석기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번 개편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약했던 구석기 콘텐츠를 강화하고 노후화된 전시 코너를 새롭게 정비한 것이 특징이다. 설명 글자 크기를 키우고 질문형 콘텐츠를 배치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실험 고고학 영상과 이야기 형식의 설명도 더해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구석기 문화를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전곡리 유적 발굴 현장을 재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바닥에는 실제 발굴 층위를 연상시키는 전시가 펼쳐지고 주변에는 당시 연구자들이 사용했던 안전모와 곡괭이, 발굴 장비들이 놓여 있다. 석기를 발견한 순간의 흥분이 담긴 학자들의 편지와 기록 영상도 함께 전시돼 수십 년에 걸친 발굴 현장의 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연천군 전곡리 유적은 1978년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동아시아 구석기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다. 수많은 고고학자와 자연과학 연구자들의 조사와 연구가 축적되면서 오늘의 전곡리 유적이 형성됐다.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전곡리 유적의 토층을 재현한 벽면 뒤편에서 이번 전시의 핵심 유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초대형 주먹찌르개다. 살짝 기울어진 채 전시된 모습은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현장엔 이 초대형 석기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한 모형물이 비치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석기는 전곡리 유적 층위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최하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까지 보고된 구석기 석기 가운데 세계 최대 크기로 추정된다. 전곡리 24차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춘천박물관·겨레문화유산연구원의 협조로 전곡선사박물관에 위탁·기증되면서 지난해 8월 지역의 품으로 유물이 돌아오는 ‘주먹도끼 귀환식’을 거쳐 이번 상설전 개편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이번 상설전 개편은 전곡리가 축적해 온 방대한 연구 성과를 관람객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며 “정답을 설명하기보다 관람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먹찌르개 뒤편에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대표 석기들을 3D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전시와 구석기 일반 상식 코너, 전국 구석기 유적 분포를 보여주는 콘텐츠 등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구석기 시대 장례와 예술을 소개하며 당시 인류가 죽음과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거대하고 무거운, 이전의 상식과는 또 다른 모습의 초대형 주먹찌르개가 품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떤 목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박물관은 “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밝히기 위해 현재 실험고고학 연구 등을 통해 제작과 사용 방식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연구 성과는 오는 5월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전이자 85-12번지 유적 유물 공개전인 ‘땅속의 땅, 전곡’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 손엔 나무, 한 손엔 전기톱 든 전사”…구순의 현역 김윤신, 끝은 없다 [전시리뷰]

“나무는 바로 나 자신이자 오랜 친구입니다.” 구순을 넘긴 현역 작가 김윤신(91)은 자신의 지난 70년 창작 인생을 함께해온 ‘나무’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인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순간 또 다른 존재인 작품이 탄생한다는 그의 조형 이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역시 이러한 사유에서 비롯된다. 그는 나무를 재료가 아닌 친구로 여긴다.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 놀던 기억이 지금까지 그의 손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지난 작업 과정을 설명하던 작가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연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호암미술관에서 17일 개막하는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한국 여성 조각가 1세대 김윤신의 70년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다. 그의 초창기 나무 조각부터 석판화, 회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170여 점의 작품이 모였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두 세기에 걸쳐 제작한 작품만 1천500여 점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작가 생애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자 호암미술관이 개최하는 첫 한국 여성 작가 개인전이다. 동시에 한국 현대조각의 한 흐름을 다시 바라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 격동의 현대사 지나 유럽·남미 거쳐 한국…다층적 예술 세계 김윤신의 예술은 ‘두 세계의 공존’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과 원시성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현대성을 띤다. 한국의 토속 문화와 무속 신앙,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공존하며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시는 그의 삶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삶이 녹아든 작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며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했다. 생사를 알 수 없던 아들을 위해 매일 새벽 산에 올라 작은 돌을 하나씩 쌓으며 기도하던 어머니와의 추억은 훗날 연작 ‘기원쌓기’로 이어졌다. 나무를 위로 쌓아 올린 조각은 김윤신 그 자신이다. 절대자를 향한 기도, 예술에 대한 열망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회화와 조각 전반에 걸쳐 삼각형을 하늘의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제작된 석판화 작품 ‘예감’은 그의 대표적인 판화 작품이다. 소라고동처럼 휘어지는 곡선과 긴장감 있는 직선이 맞물린 화면은 조각적 감각이 평면으로 옮겨진 듯한 인상을 준다. 전시는 이러한 판화와 드로잉을 나무 조각들과 함께 배치해 평면과 입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공간을 만든다. ■ 안정된 삶 떠나 남미로…전기톱을 든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작업 세계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1983년 아르헨티나 이주였다. 당시 그는 중견 미술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가 아주 좋다’는 조카의 말에 이끌려 방문한 남미의 자연에 매료돼 모든 기반을 내려놓고 낯선 땅에 정착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자연 속 마을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자라난 한국의 자연은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돼 있었다. 불타 사라진 자연을 먼 타국에서 다시 마주한 셈이다. 한국의 나무가 비교적 부드럽고 작은 데 비해 남미의 나무는 단단하고 거대했다. 그는 그 나무를 다루기 위해 전기톱을 들었다. 중년의 여성 조각가가 전기톱을 들고 거대한 나무를 파고드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낯선 풍경이었다. “톱하고 내가 하나가 돼야 합니다. 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작업도 자연스럽게 되죠.” 전기톱의 거친 흔적은 그의 조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깊게 파인 구조와 거친 표면은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드러낸다. 관람자가 작품 주변을 돌며 바라보면 하나의 몸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뼈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친 나무껍질과 매끈한 단면이 공존하며 자연과 인간의 노동이 동시에 드러난다. 2층 전시장에는 멕시코와 브라질 오지 채석장에서 제작한 돌 조각들이 등장한다. 나무와 차원이 다른 고된 노동임에도 그는 90점 가까운 돌 조각을 완성했다. 거친 돌 표면과 내부에서 드러나는 자연 색채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남미 원주민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색과 문양이 작품에 더해진다. ■ 구순에도 멈추지 않는 실험 ‘회화-조각’ 70년 넘는 창작 기간 김윤신의 작업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외출이 제한되면서 조각용 원목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공사장에서 떨어진 나무 조각들을 주워와 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별하고 놀고 비가 오면 빗방울하고 얘기하고 풀과 나무하고 놀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 기억은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 이어졌다. 기존 조각을 금속으로 캐스팅한 뒤 그 위에 색채를 더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를 ‘회화-조각’이라 부른다. 조각 표면이 캔버스처럼 활용되며 색과 문양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작된 새로운 장르로의 실험이다. 전시장 마지막에 놓인 대형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13-16’은 안데스 산맥에서 받은 영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양팔을 벌린 듯한 형태와 푸른 색채가 남미의 산세와 빙하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함께 테라스에 설치된 ‘노래하는 나무 2013-16V1’은 2013년 제작된 나무 조각을 금속으로 캐스팅해 회화를 입혀 지난해 새롭게 완성한 작품으로, 최근 전념하는 회화-조각 결합의 연장선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 동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자연과 문화를 흡수한 김윤신은 지금도 새로운 작업을 꿈꾼다. “돌과 나무를 다루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렵고 고된 작업입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70년 동안 나무와 돌을 깎아온 김윤신의 예술은 현재 진행 중이다. 전시는 6월28일까지다.

음악적 서사가 흐르는 시각 예술의 향연, K&L 뮤지엄 소장품 전 [전시리뷰]

철학·연결·영향력이라는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K&L뮤지엄이 개관 3주년을 맞아 ‘K&L 뮤지엄 소장품 전’을 4월까지 선보인다. 그간 신념과 열정으로 현대미술 소장품을 축적해 온 K&L 뮤지엄은 지난 3년간 성실히 수집하고 발전시켜 온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다 넓은 관람객층과 공유하고자 기획됐다. ㈜SMK 인터내셔널의 기업정신과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설립된 K&L은 2023년 개관 이후 꾸준히 전시 및 수집 활동을 이어왔으며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성실히 기록해 왔다. 이번 전시엔 24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중 국제 미술사 흐름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K&L 개관전 당시에도 다뤘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전위예술가 헤르만 니치와 스위스의 현대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를 이번 전시에도 전면에 내세웠다. K&L 전시장 벽면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가 재생되고 있었다. 퍼포먼스와 페인팅, 작곡과 연주 그리고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종합한 ‘총체예술’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한 헤르만 니치는 ‘바그너’에게 큰 영감을 얻은 작가로도 유명하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2악장 극에 해당하는 ‘발퀴레’는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2021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서 처음 ‘발퀴레’ 무대 연출을 맡은 헤르만 니치는 공연 중 강렬한 색깔의 물간 1천리터를 쏟아붓는 ‘페인팅 액션’을 선보였다. 무대와 벽면을 캔버스 삼아 표출한 즉흥적인 드로잉은 바그너 음악를 통해 받은 영감을 시각화 한 것이다. 이 비디오 아트 옆엔 권여현 작가의 ‘내가 사로잡힌 사람들: 리하르트 바그너’가 전시돼 있다. 권 작가가 그린 바그너의 초상은 ‘예술을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초기 니체의 사유와 궤를 같이 한다. 클라우디아 콤테는 현재 스위스 바젤을 기반으로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자연의 근원적인 형태를 결합한 작업을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독자적인 실천을 구축해왔다. 콤테 역시 리하르트 바그너를 추종하며 그의 예술관에 영향을 받았다. 김진형 K&L뮤지엄 학예실장은 “2024년 콤테의 개인전을 앞두고 그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전시 오프닝에서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을 논의했다”며 “콤테는 단순한 장례곡을 넘어 하나의 신화적 질서와 세계가 종말로 향하는 순간을 장엄하게 울려펴지는 음악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K&L의 미술 컬렉션에서는 음악과의 연계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비롭고 장엄한 영욱적 신화와 더불어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해 온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에게 교훈과 열정, 서정적 감동과 삶의 의지를 전달해왔다. K&L 컬렉션에 내제돼 있는 음악적 서사를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시각과 청각의 범주를 허물고 감각과 사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입체적이고 초감각적은 예술 체험을 선사한다. 전시는 4월12일까지.

“흑과 백, 근원에서 펼쳐진 노동과 순환” 수원시립미술관 ‘블랑 블랙 파노라마’ [전시리뷰]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흰색의 종착지는 검정이다. 아무것도 품지 못할 것 같은 검정 또한 그 안에 모든 색을 품고 있다. 빛의 세기와 농도에 따라 검정은 수많은 결로 펼쳐지고, 흑과 백은 하나의 원처럼 이어진다. ‘포용’과 ‘성찰’을 올해의 키워드로 내건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12일부터 올해 첫 전시로 소장품 주제 기획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백’과 모든 것을 품은 ‘흑’ 사이에서 인간의 노동과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연결’을 조명한다. 대척점처럼 보이는 두 색은 어원에서부터 맞닿아 있다. 프랑스어 ‘블랑(blanc)’과 영어 ‘블랙(black)’은 빛과 불, 연소를 뜻하는 공통의 어근을 공유한다. 어둠 속 작은 초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타버린 자리에는 검은 재가 남는다. 전시는 이처럼 순환의 관계를 통해 결과가 아닌 과정과 행위에 주목하도록 이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전시 동선과 작품 배치는 곡선의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작품 사이의 단절과 구획을 지운다. 관람자는 꿈과 현실, 물성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에 놓이고,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반복된 행위, 축적된 재료를 통해 창작자가 무엇을 드러내려 했는가를 따라가게 된다. 단일한 검정으로 보였던 화면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수많은 층위의 시간과 노동을 드러낸다. 석철주의 ‘자연의 기억 10-2’는 먹과 아크릴을 겹겹이 쌓고 긁어내는 반복의 과정 속에서 생성된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갈대밭에 이는 바람 소리가 느껴지는 듯 하다. 발을 가까이하면 이름 모를 곤충과 풀의 형상이 떠오른다. 청전 이상범(1897-1972)의 마지막 제자인 작가는 동양 산수의 정신성, 물아일체의 자연관에 서양 회화의 조형 감각을 결합해 사물의 본질에 다가선다. 자연을 사유의 공간으로 삼았던 전통 산수의 세계관은 윤세열의 ‘산수-을지로’에서 도심 풍경으로 전환된다. 비단 위 먹으로 그려진 건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한자로 해체되며, 익명성과 밀집의 도시 풍경을 닮아간다. 그런가 하면 이여운의 ‘복사하기 2’는 반복된 노동의 시간으로 구축된 화면이다. 서양 건축 이미지를 동양의 수묵으로 옮기기 위해 작가는 스며들지 않는 먹을 캔버스 위에 수차례 노동으로 축적했다. 클릭 한 번, 1초 만에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아날로그 행위는 질문을 던진다. 걸음을 옮기면 3미터 높이의 거대한 작품이 조명과 함께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두진의 작품 ‘대지-엄마의 땅’이다. 고대 풍요의 여신 케레스에서 형상을 따 온 작품은 인간의 머릿속 자연의 풍요로움과 실재하는 자연의 간극을 보여준다. 피부와 살이 제거된 자리는 수많은 뼈로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영생을 의미하는 수많은 사슴 뼈의 잔해다. 외형과 속살의 경계를 허문 자리에서 작가는 생과 사가 단절이 아닌 연속된 흐름임을 전한다. 전시는 파편화된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인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이배의 숯 작업 ‘4M08’ 등으로 이어지며 완결이 아닌 순환, 완벽이 아닌 균열의 의미를 확장한다. 나무가 불을 거쳐 숯이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 깨짐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는 도자기의 서사는 흑과 백이 단순한 색채 대비가 아닌 시간과 행위의 층위임을 보여준다. 소장품 18명의 작업을 하나의 주제로 엮은 이번 전시는 찬찬히 들여다보고, 마음껏 사유함으로써 결과로서의 이미지보다 그 이면에 축적된 노동의 시간을 드러낸다. 흑과 백은 이분법의 대립이 아닌 서로를 통해 완성되는 순환의 관계로 읽힌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이어진다.

“맑은 거울로 우주를 비추다” 수행자의 예술 ‘성파선예’ [전시리뷰]

“똑같은 사물일지라도 거울에 때가 묻어 있는 것과 거울이 맑을 때 그 모습은 달리 보입니다. 마음속 거울에 따라 비치는 세상은 다를 것이니 눈앞의 그림이나 글자 그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그저 스스로 평안하게 작품 너머를 느끼면 됩니다.”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性坡禪藝): 성파스님의 예술세계’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기자정담회에서 성파스님이 던진 이 말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화두와도 같았다. 정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깨달음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대중에게 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곧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꺼냈다. 전시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다. 여든을 훌쩍 넘은 노 스님은 지난 작업 과정을 이야기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시를 ‘도 닦는 자’의 그림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종교를 떠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도를 닦는 수행자라는 겸허한 인식이다.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긴 이번 전시가 평범한 대중에게도 고요함과 평안함을 전할 수 있는 이유다. “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평상의 마음이 도”라고 말한 스님은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삶 가운데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빚고 옻칠하고 천을 염색해 온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이 모든 순간이 ‘날마다 좋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이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이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갖고, 사회가 안정되길 염원한다”고 전했다. 경기도 주최,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이번 특별전은 성파스님이 2025년에 제작한 옻칠 회화를 중심으로, 그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통도사 삼천불전(三千佛殿)의 도자불상 일부와 장경각의 16만 도자 대장경판 일부, 불교 교리의 핵심을 담은 반야심경 작품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통도사 밖으로 나온 옻칠·도자·서예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업은 한 수행자가 평생에 걸쳐 축적해 온 사유의 기록이자 수행의 흔적이다. 성파스님은 조계종 제15대 종정이라는 상징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40대 중반 통도사 주지를 마친 뒤, 전통문화와 예술의 연구와 실천이라는 특별한 길을 택했다. 흙으로 구운 삼천불전과 16만 도자 대장경 조성은 이러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스님은 “도 닦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교나 양식이 아니라, 수행의 태도가 작품을 만든다는 인식이다. 방수·방충·방부라는 옻의 유익한 물성에 주목한 작업은 서양 미술과는 다른 동양 예술의 가치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 ‘영겁(永劫)’에서는 아득하고 먼 우주의 시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옻칠 회화와 삼천불 도자 불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스님은 이를 “무엇을 먼저 생각하거나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시작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붓으로 통제하기보다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옻이 흐르고 굳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주에 자리한 단 하나의 존재처럼 자리한 작품 ‘미륵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는 이에게 미소가 전염된다. 동시에 수많은 별과 함께하고 있는 공존을 드러낸다. 제2부 ‘물아불이(物我不二)’에서는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삼천불 도자 불상이 물과 거울, 반사를 통해 배치된다. 6m 수중에 설치된 옻칠 회화는 물에 비친 나와 거울에 비친 우주를 동시에 보여준다. 불상들은 타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얼굴로 다가온다. 약병을 든 약사여래 역시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이다. 각기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조그마한 불상 하나하나를 들여다볼수록, ‘나’와 ‘남’의 경계는 흐려진다. 제3부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반야심경을 주제로 한다. 흙으로 구운 도자판과 옻으로 쓴 글씨는 반야심경 가운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사유를 시각화한다. 형상은 실체가 아니며, 공은 곧 형상이라는 깨달음에 대해 스님은 “글자에 매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뜻을 보라”고 말한다. 물질과 정신, 음과 양, 비움과 채움이 하나임은 읽는 경전이 아닌, 삶 속에서 체득되는 진리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제4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선 가장 자유롭고 유희적인 옻칠 회화가 펼쳐진다. 스님은 “옻칠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평상의 마음으로 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수행과 예술,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이다. 전시는 ‘중력’이란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을 당기는 우주의 기본 법칙처럼, 성파선예의 사유는 ‘나’에게로 귀결된다. 내가 곧 우주이며, 우주가 곧 나라는 인식. 나와 남, 인간과 사물, 생명과 비생명의 구분 또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성파스님이 반복해 강조한 ‘일체유심조’는 공존과 배려라는 동시대의 관람객에게 건네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지며, 개막 후 3일간 드론과 비행선을 활용한 옻칠 염색 작품의 공중 전시가 진행된다. 이달 중순부터 전시 연계 참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3·4월에는 특강, 5월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몸으로 기록된 두 사람의 삶과 춤', ‘춤이 말하다: 문소리x리아킴' [공연리뷰]

7일 오후 4시 남동소래아트홀 소래극장. 예정된 공연 시작 시간이지만 이제 막 입장을 마친 공연장은 어수선함이 남아있었다. 공연 관람 안내 멘트도 없고, 객석 불도 꺼지지 않은 상태. 어두운 무대 위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공연 시작을 인지하지 못한 관객들은 작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갔고 그 속에서 무대 위 사람은 요가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여러 자세로 몸을 이완시켰고 머리 서기를 하고 내려서는 순간 암전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지난달부터 서울과 경기 광주에서 공연해 온 ‘춤이 말하다: 문소리x리아킴’은 두 출연자가 화자가 돼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춤으로 부연하는 방식이었다. 1부는 배우 문소리가 2부는 안무가 리아킴이 맡았다. 요가로 몸을 푼 문소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늘 ‘뒷걸음질’ 치던 아이였다고 소개했다. 늘 에너지가 70%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아이였던 배우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 ‘에쿠우스’를 본 뒤 에너지가 100%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요가의 머리서기 동작처럼 세상이 뒤집히는 첫 번째 순간이 에쿠우스 였다는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한공주 역할을 맡으며 또 한 번 세상이 뒤집혔노라 말했다. 사무실 한 구석에서 캐릭터를 설득하기 위해 호흡과 리듬을 바꾸고 근육의 긴장과 균형을 다시 배열해온 과정은 그녀에게 배우로서 큰 영광을 줬지만 그 뒤에 남은 신체의 통증과 아픔은 배우 본인의 몫이었다. 그렇게 당시의 외로움과 통증은 무대 위에서 춤의 모티브가 돼 동작으로 이어졌다. 1부는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빠져있는 ‘탱고’를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선보이며 끝이 났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심장과, 네 개의 다리로 그려내는 탱고 무대는 인간 문소리가 갖고 있는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쉼없이 이어진 2부는 마이클잭슨의 ‘빌리진’ 실황 영상으로 시작됐다.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문워크’ 동작을 이어받은 리아킴이 무대 위에 미끄러지듯 등장했다. 수줍음에 뒷걸음치던 어린 문소리와는 달리 소녀 리아킴의 뒷걸음질은 꿈을 갖게 하는 동작이었다. 무대 위 찬사와 성취의 순간과 지하 연습실에 간극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극복보다는 잠식의 시간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준비되지 않은 몸 상태로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하지만, 제자들 앞에서 차가운 고배를 맛보기도 한다. 그녀는 “완전히 바닥에 닿고 보니, 그 바닥을 도움닫기 삼아 올라올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즈음 그녀는 완벽한 기술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움직임을 발견했다. 형식을 내려놓고 몸의 충동에 귀 기울일 때, 다시 살아 있는 언어가 됨을 고백했다. 리아킴은 자신의 경험을 따라가며, 춤이 누군가의 성취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임을 무대 위에서 증명해냈다. 무용수의 신체에 숨겨진 ‘말’을 춤과 말로 직접 풀어내는 렉처 퍼포먼스 ‘춤이 말하다: 문소리x리아킴’은 이달 21일 광명시민회관에서도 이어진다.

[영상] “20세기 뉴욕서 멈춘 심장, 21세기 한국서 깨어나다” 백남준 서거 20주기 추모 ‘AI 로봇오페라’ [현장리뷰]

천장에 닿을 듯이 높고, 두 팔 가득 보다 훨씬 넓은 거대한 흑백 스크린을 둘러싸고 수많은 관중과 취재진이 서 있었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공기는 사뭇 무겁기까지 했다. 오래된 텔레비전 스크린에 나타난 과거의 영상과 백남준의 모습에서부터 로봇의 이야기가 들리더니 2026년 현재 이 공간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기 시작했다. 과거를 지나, 로봇의 언어를 지나,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자, 관중 가운데 옅은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과 29일 오후 백남준아트센터의 공기는 수많은 관중과 취재진의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백남준의 기일인 1월 29일을 기념해 28~29일 센터에서는 추모 행사 ‘AI 로봇 오페라’가 펼쳐졌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전시장 한가운데서, 고장 난 로봇을 수리하는 장면으로 퍼포먼스는 출발했다. 전선을 꽂고, 팔을 들어 올려보는 손길.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태 그대로 로봇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느린 시작은 이번 공연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분명히 드러내는 신호였다. 이날 다시 걷기 시작한 로봇 ‘K-456’은 백남준이 1960년대 뉴욕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이 로봇을 거리로 내보내 연주자와 협연하게 했고, 콩을 배설하거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 장면까지 포함했다. 백남준이 이를 ‘21세기 최초의 참사’라 불렀던 이유는 분명하다. 기술이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기계 앞에서 무엇이 되느냐는 질문 때문이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번 로봇 재가동의 의미를 “작동하지 않던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서 끝나는 복원이 아니라, 백남준이 남긴 질문을 지금의 기술 환경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을 수리하던 남성을 비추던 스크린에 이번엔 또 다른 풍경이 담기기 시작했다. 긴 다리를 휘청이고 바닥에 몸을 낮추며 오체투지를 반복하고 있는 로봇. 권병준 작가는 이 느린 수행을 ‘의도된 불완전함’으로 설정했다. 효율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로봇의 서사가 되도록 한 것이다. 그는 28일 리허설 중 로봇이 쓰러지는 사고마저 수리 퍼포먼스로 끌어안았다. 즉흥과 오작동을 배제하지 않는 태도는, 완벽한 기계를 향해 질주하는 오늘의 로봇 기술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가면을 쓴 로봇이 손바닥만 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기괴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작가는 이를 일종의 주술적 장면으로 설정했다. 로봇과 연주, 몸짓을 통해 백남준을 다시 불러내는 의식에 가깝다. 이 공연에서 로봇은 도구가 아니라, 호출되고 수행하는 존재였다. 음악 역시 AI와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설명처럼,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이 공연의 또 다른 협연자였다. 마침내 관객들 사이로 들어온 로봇 K-456은 한 발 한 발 문턱을 향해 나아갔다. 출입문 앞에서 로봇은 잠시 멈춰 커피콩을 배설했다. 관객들 사이로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로봇은 문턱을 넘었다. 그 장면은 기계가 이동한 순간이라기보다, 인간과 로봇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가 잠시 열리는 장면처럼 보였다.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던 장면처럼 어색하지만 분명한 ‘넘어섬’이었다. 눈코입을 가진 로봇, 뻥 뚫린 몸체 사이에 자리한 배꼽. 다시 뛰게 된 심장은 무엇이 인간이고, 로봇인지 경계를 되묻는다. 분명한 건, 백남준이 현재의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의미함’이나 ‘허무함’이 아닌 공존은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엔 가치에 대한 존중, 존엄이 있을 테다. 로봇은 다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전처럼 갇힌 존재는 아니다. 화면 안과 바깥, 인간과 로봇 사이의 경계는 느슨해졌고, 마치 금방이라도 말을 걸 것 같은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했다. “인간은 기계를 닮아가고, 기계는 인간을 닮아가는 공진화의 회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장면”이라고 박남희 관장은 설명했다. 29일엔 김은준의 음악 퍼포먼스 ‘시퀀셜’도 함께 열려 로봇의 감정과 취약함을 소리로 확장했다. 지난 이틀의 시간은 ‘로봇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대신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느림과 실패, 불완전함, 질문하는 태도. 백남준이 60년 전 뉴욕에서 던진 이 질문은,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놓였다.

"어떤 이야기를 믿으시겠어요?"…'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리뷰]

소설과 영화로 대중적,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라이프 오브 파이’가 무대 예술로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이 공연은 탄탄한 원작과 배우들의 열연, 퍼펫의 생생한 동물 표현 등이 더해져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 출신 소년 파이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살며 사랑과 종교, 세상의 이야기를 열렬히 탐구한다. 정세의 불안함과 동물원 경영난이 겹치자 부모는 캐나다 이주를 결심하고 파이 가족들은 처분하지 못한 동물 몇 마리와 함께 화물선에 몸을 싣는다. 풍랑을 만난 배는 힘 없이 좌초되고 바다는 가족들을 집어 삼킨다. 겨우 생명을 건진 파이는 극적으로 구명 보트에 오르지만 놀랍게도 그곳엔 다리 다친 얼룩말, 파이와 친구처럼 교감하던 오랑우탄, 이들을 노리는 굶주린 하이에나가 서로를 견주고 있다. 이번 공연의 핵심 요소는 무대 위에서 동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퍼펫티어(Puppeteer, 인형 조종가)는 동물마다 1~3명씩 달라 붙어 움직임과 호흡을 표현했다. 단순히 동물의 형태를 흉내내는 것을 넘어 상황에 따른 숨결의 변화, 의지와는 무관한 근육의 움직임을 나타내며 무대를 뛰어다니고 상대를 위협한다.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까지 퍼펫티어의 열연은 퍼펫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냈다. 퍼펫티어의 존재감은 자신을 위협하던 하이에나를 배에서 내몰고 “이젠 됐다”고 느낀 순간 더 큰 위협으로 등장하는 뱅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맹수성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부풀린 호랑이의 등장에 파이는 공포와 죽음을 맞닥뜨리지만 이내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인간”이라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더 큰 기세로 위기를 모면한다. 열여섯살의 파이 역할을 맡은 배우 박정민은 극 초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서 구명보트에서 생명을 떠나보내고 지켜내며 겪는 혼란스러움과 강인함을 몰입감 있게 연기했다. 망망대해에서 227일을 표류하던 보트가 마침내 육지에 다다랐을 때 뱅골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이를 떠난다. 화물선 침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선박회사 조사관에게 들려주지만 조사관은 ‘비현실적’이라며 믿지 않는다. 이내 파이는 조사관이 듣고 싶어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현실적이기에 비현실적인 이 이야기도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 중 어떤 쪽을 믿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아니 어떤 이야기도 상관 없다. 227일간 바다 위에서 버티다 살아 돌아온 파이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는 3월2일까지 공연된다. 이후 3월7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이어진다.

확실한 '기승전결'이 주는 쾌감…부천필 신년음악회 [공연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새해 시작을 알리며 ‘2026년 신년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16일 저녁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무대는 신년음악회 겸 부천필의 제333회 정기연주회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제 왈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연주했다. 새해에 듣는 ‘왈츠’는 어느새 클래식 연주회의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됐다. 황금기였던 19세기 빈에서 유행하던 왈츠는 아버지 슈트라우스에 의해 확립됐고 아들 슈트라우스 2세가 꽃을 피웠다. 부천필이 선택한 ‘황제 왈츠’는 경쾌한 리듬과 밝은 선율이 주를 이루는 왈츠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앙증맞은 도입부와 웅장한 중후반의 대비를 적절하게 살렸다. 이어 연주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피아니스트 선율이 함께했다. 2024년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 및 청중상·학생심사위원상을 휩쓸며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하고 있는 선율은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연주에 임했다. 건강하고 밝은 음색이 ‘황제 협주곡’의 위풍당당함과 잘 맞았다. 간혹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에서 거친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부천필의 노련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를 이끌었다.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연주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였다. 부천필의 최대 장점인 현악파트의 풍성하고 우아한 음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곡으로 기대만큼이나 웅장했고 속이 시원했다. 지난해 부천필 제4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아드리앙 페뤼숑은 대중 입맛에 잘 맞으면서도 악단의 품위를 잃지 않는 음악과 흐름을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팀파니스트였던 본인의 장점을 살려 타악기 외에도 더블베이스 같은 저음부 악기들의 흔들림 없는 리듬감이 음악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중요할 때 음악을 절정으로 이끄는 팀파니의 역할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지 않고 폭발시켜 줌으로써 음악의 기승전결을 완성한다. 3박자의 경쾌한 왈츠로 시작된 연주는 2박자의 흥겨운 앙코르곡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로 마무리했다. 부천필은 올해 20여차례 연주 일정을 예고했다. 특히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프랑스 출신의 페뤼숑이 어떤 음악의 결을 보일지 기대를 모은다. 부천필의 제334회 정기연주회는 2월2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객원지휘자 최수열과 시벨리우스 및 말러를 연주한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시대, 팩트를 찾는 방법”...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外 [신간리뷰]

■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주변에서 음모론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갈등을 자주 볼 수 있다. 설득하려고 사실을 제시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더 큰 불신과 단절뿐이다. 부정선거, 간첩, 중국인 범죄, 비밀 조직, 언론 조작 등을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왜 그럴까’ 답답한 마음이 크다.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원더박스 펴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정재철 작가는 현직 언론인이자 미디어학 박사로 30년째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분별해내는 방안을 모색해온 국내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개척자다. 팩트체크 전문가로 활동해 온 저자는 음모론이 사회적 불안, 불평등, 제도 불신, 정체성 위기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명확한 사실을 제시한다고 해서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돌아서지 않는 이유다. 사회적 연대와 신뢰 회복, 정체성과 소속감의 욕구를 다루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선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사회적 기제를 분석하고 음모론이 사람들의 삶에 끼치는 다양한 폐해와 각국의 사례를 통해 음모론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시민 교육, 플랫폼 규제, 정책 개입 등을 통한 방안을 모색한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건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다. 소외와 고립은 사람을 쉽게 음모론으로 이끈다. 그렇기에 논쟁보다 공감, 무시보다 존중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같은 현실에서 다시 연결될 때 음모론도 줄어들 수 있다. 이 책이 그 여정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 기문둔갑 현시대가 아무리 과학 만능 시대라 해도 우리의 인생이나 운명은 과학적인 합리성만으로는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 동양학의 특성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데 그 근본을 삼고 있다. 천명(天命)은 하늘이 내리는 도(道)요, 사람의 개운(開運)은 인간이 수양하는 도(道)에서 출발하며 ‘운명학’은 인간 수양의 학문이란 이론에서 출발 한 신간 ‘기문둔갑’(奇門遁甲)이 한국기문미래연구원 원장 규봉 신정균 선생과 그의 수제자 난강 권기동의 공저로 BOOKK 출판사에서 출판됐다. 저자는 책 ‘기문둔갑’이 이론서로서 고서에 입각하고 수많은 감정을 통해 논지를 전개했으며 사주팔자의 실증사례를 통해 기초를 다지는 지침서가 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평생 ‘운명학’을 연구해 온 저자는 “기문학(奇門學)을 공부하고 나서 얻은 결론은 이른바 개운(開運)하는 방법(方法)이다. 개운(開運)의 방법이란 바로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바르게 할 것, 물욕에 집착하지 말 것, 악운의 씨를 뿌리지 말 것, 남을 도와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질 것, 늘 온화한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철학이 의미의 학문이라면 과학은 직접적인 학문이라고 보고 철학이 自覺 즉 스스로 깨우침의 학문이라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 역학의 현주소가 명확하지 못한 상황에서 책 ‘기문둔갑’은 중국의 고전인 주역(周易)을 기초로 해석한 철학서로 인간의 삶의 범위를 자신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역사의 소용돌이 속 세 청춘, 비극의 현대사 [공연리뷰]

현충원 맞은편 동작역 5번 출구에 대형 공연장 컨버스 스테이지 아레나(Converse Stage Arena) ‘여명’에선 ㈜넥스트스케치가 제작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관객과 만나고 있다. 2019년과 2020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등에서 두 차례 공연한 후 5년 만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해 말부터 다시 선보인 이번 공연엔 1991년 방영된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의 향수를 간직한 5060세대부터 10·20대 관객 등 다양한 관객층이 찾고 있다. 지난 7일 찾아간 공연장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마치 런웨이처럼 가로로 길게 뻗은 무대와 360도 사방으로 무대를 감싸며 상하좌우로 퍼져있는 객석, 관객들이 무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독특한 구조 그 자체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냈다. 작품은 기승전결의 ‘결’부터 시작한다. 1950년, 한 재판장에 서 있는 여인과 그녀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작품은 ‘여옥’이 왜 그 자리에 이르게 됐는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일제의 지배가 막바지에 이르던 1944년, 조선인 학도병 ‘대치’와 일본군 위안부 ‘여옥’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채 스무살이 되지 않았을 여옥의 파란만장한 삶의 시작점. 대치는 여옥을 데리고 도망치려 하지만 끝내 불발된다. 대치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사이판에 이른 여옥은 그곳에서 의무병이던 ‘하림’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작품은 삼각관계에 놓인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며 동시에 역사의 파도에 무참히 휘말리는 개인의 모습을 다룬다. 일본군의 생체실험(세균전)에 동포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고통에 몸부림치고 처절하게 괴로워하는 하림의 모습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정체성에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는 하림의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해방이 됐지만 끝은 새로운 비극이 시작됐다. 2막은 현대사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4·3사건에 집중한다. 1막이 일제에 의해 자행된 만행을 목도하며 적에 대한 분노를 유발했다면 2막은 마치 실타래처럼 엉켜버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대의’라는 명목 아래 사랑하는 여인 여옥을 지켜주지 못한 대치와 역사의 한가운데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간 여옥, 그 둘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하림의 모습은 강렬하게 관객에게 가닿았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특별함은 ‘진정성’에 있는 듯 하다. 화려한 연출이나 효과 대신 공간엔 배우와 관객 두 존재뿐이다. 국내 대극장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원형의 무대, 객석과 채 1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더 이상 ‘배우’가 아닌 살아있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과 눈물, 손짓과 발짓 그 모든 게 목도되는 현장에서 관객은 세 사람의 시공간에 함께 있는 듯했다. 작품을 만든 변숙희 프로듀서는 현충원이란 공간 앞에 이동식 극장을 지은 이유도, 관객이 360도로 가까이 무대를 지켜볼 수 있는 구조도 결국 ‘진짜 사람의 이야기’임을 드러내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그조차도 작품을 올리기 전까지 제대로 몰랐던 현대사였다고 한다. “한 번쯤은 광복 80주년에 현충원 앞에서 작품을 올린 이유는 떠올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변 대표는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위안부 생존자, 4.3사건의 생존자들이 우리와 함께 현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뻗어나가는 무대는 역사는 계속 흘러가며 극장에 있는 모두가 그 속에 함께 자리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재판장에 선 여옥을 내려다보는 관객은 법정의 증인들이기도 했다. 작품은 국내 대극장에서 그간 보기 힘든 원형 형태를 잘 살려낸 동선과 연출 그 자체로도 특별한 경험을 전했다.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작품은 애초 이달 말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3월31일까지 현충원 앞에서 앵콜 공연으로 이어간다. 이동식 극장의 특성을 이용해 지방 순회 및 전국 투어가 예정됐다.

명·청 화가가 그린 조선 사신들...김육·이덕수 초상화 속 숨은 역사 찾기 [전시리뷰]

“조선으로 가져온 초상을 본 친구들이 모두 광대뼈와 이마, 수염과 눈썹, 신체까지 닮지 않은 것이 없으나, 눈과 입만은 닮지 않은 듯하다고 하였다. (중략) 시옥은 본 바에 의거해 그렸으니 당연한 것을 어찌하리. 그러나 입 모양이 둥글게 처진 것은 어찌 내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덕수, ‘서당사재’ 중) 화려한 가죽이 덮인 의자 위 한 사내. 그림을 뚫고 나올 듯 권력과 기품이 느껴지는 태도와 함께 찌푸려진 눈에선 사대부의 고집스런 태도가 느껴지는 듯하다. 허나 그림에 얽힌 사연을 읽고 나면 그림 속 사내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1735년(영조 11), 청옹제가 사망하고 건륭제가 즉위함에 따라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덕수(1673-1744)는 부사로 차출돼 중국으로 향했다. 한양을 떠나 머나먼 청나라에 발을 내디딘 그는 사행길 중 청나라 화가 시옥에게서 받은 자신의 초상에 관한 후일담을 ‘서당사재’에 풀어냈다. 그 속엔 초상을 그릴 당시 눈을 찌푸렸던 연유와 눈병을 앓아 몹시 힘들었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300여년 전, 사신으로 향한 곳에서 현지의 화가가 붓끝으로 남긴 초상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사내의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권위적으로 보이던 사내의 얼굴은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실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무장애 특별기획전 ‘중국에서 그려 온 초상使行肖像: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생동감과 활기가 느껴지는 전시다. 이번 특별전은 2008년 청풍 김씨로부터의 ‘김육 초상’과 2024년 전의 이씨로부터 기증 받은 ‘이덕수 초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행초상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마련됐다. 조선시대 국제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드러낸 전시는 마치 그 옛날 말을 타고 사행길에 오르는 행렬과 머나먼 타지에서 함께하는 듯 그 시대로 보는 이를 데려가는 듯 하다. 김필국 실학박물관장은 전시에 관해 “찰나를 붙든 붓끝은 한 사람의 생김을 넘어 한 시대의 질서를 그려낸다”며 “외교의 현장에서 태어난 초상은 가장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자,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기억의 초대장”이라고 표현했다. 총 4부로 이뤄진 전시는 ▲1부 ‘기록, 초상으로 남기다’ ▲2부 ‘신문물, 초상으로 이어지다’ ▲3부 ‘영원, 초상으로 기억하다’ ▲4부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77점의 작품을 통해 다채롭게 구성됐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일은 국가의 공식 관례로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명나라로 파견하는 것을 부경사행(赴京使行), 줄여서 ‘사행’이라 불렀고 이후 청나라 시대엔 ‘연경사행(燕京使行)’, 줄여서 ‘연행’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사행은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사신들은 명·청나라의 황제와 대신을 만나고 신물문을 접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며 조선에 새로움을 더했다. 관람객은 산수화, 행사기록화, 지도 등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엔 중국 화가가 직접 그려준 초상화가 있다. 이는 사신단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자료로서 국내 약 9점이 현존한다. 이번 전시엔 명·청나라의 화가가 그려준 김육 초상 3점과 이덕수 초상 4점이 포함돼 있는데, 당시 역사·문화의 변모를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제작연도, 제작자, 제작 배경 등이 남아 있는 등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명나라 화가 호병이 그린 김육 초상과 청나라 화가 시옥이 제작한 이덕수 초상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서양화법이 동아시아 초상에 스며든 과정을 사실주의의 두 시선으로 살핀다. 김육(1580~1658)은 1636년(인조 14) 동지사로서 약 1년간 명나라를 다녀온 경험을 ‘잠곡조천일기’ 등 견문록으로 남겼는데, 사행 중 병자호란 발발 소식과 인조의 항복 소식을 접하며 당시를 생생히 전한다. 학을 수놓은 천조각의 짙은 녹색 관복에 사모를 쓰고 있는 ‘김육 초상전신좌상본’과 소나무 아래 학창의를 입고 서 있는 인물을 표현한 '김육 초상와룡관본․송하한유도’는 1636 성절사로 명에 갔을 때 제작됐다. 두 초상은 17세기 중반 초상 화풍을 잘 보여주는 예로 이후 명대 화풍의 조선 유입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시는 초상화가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정신을 담는 예술임을 드러낸다. 조선의 초상은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두 가지의 방향성을 함께 추구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식에 관한 그림 등 초상은 영혼의 눈을 통해 영원의 순간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5년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모든 관람객이 차별 없이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완전한 무장애 동선, 수어 영상, 자막·음성 해설, 촉각 자료 등을 제공했다. 누군가의 얼과 마음을 시각이란 하나의 요소가 아닌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의 눈으로 느껴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4부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에선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초상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확장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독창적인 선과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자화상 ‘니얼굴 은혜씨’를 선보인 정은혜 작가 등 발달장애 예술가 5인의 작품 28점은 오늘날 초상에서 공존과 포용의 얼굴을 읽어 내려간다. 전시는 오는 3월1일까지다.

‘미운오리새끼’의 꿈,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 [공연리뷰]

현대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다. 생각하고 바라보는 방식, 취향, 성장 과정, 그리고 현재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편견과 선입견은 불협화음을 낳고, 때로는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린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 역시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과 두려움 또한 모두 다르다. 또래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저마다 겪는 어려움과 힘든 상황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 앞에서 좌절에 머무르기보다, 이를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지난 20~21일 빛누리아트홀 무대에 오른 수원시티발레단의 창작 뮤지컬발레 ‘미운오리새끼’(예술감독 김문신, 안무 함도윤)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원작이 ‘어느 무리에 속하든 태생적 조건의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은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이한 알에서 깨어난 초라한 존재 ‘미추’는 친구들과 다른 동물들로부터 ‘미운오리새끼’라 불리며 따돌림을 당한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던 미추는 어느 날 호숫가에서 ‘달빛요정’을 만나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내라’는 응원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힘든 여정 중, 갈대숲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파랑꼬리여우’를 만나게 되고, 둘은 차별 없이 살아가는 ‘무지개 동물나라’로 향한다. 그곳에서 받은 깊은 감동은 미추로 하여금 댄스 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하게 만든다. 파랑꼬리여우와 함께 출전한 축제에서 우승한 미추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과거에 ‘미운오리새끼’였음을 고백한다. 이후 가족과 친구들을 감싸안으며 용서와 화해의 눈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이번 공연은 예술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안무가 돋보였다. 물 흐르는 소리와 갈대숲으로 꾸며진 무대는 호숫가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했으며, 장면 전환은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빠르게 진행돼 몰입도를 높였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과 조명은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고, 오리·고양이·청개구리·여우 등의 의상과 분장은 관객을 무대 속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분장한 무용수들의 말 없는 몸짓은 ‘따돌림’, ‘모험’, ‘용기’, ‘화해’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또렷하게 전달했다. 슬픔과 기쁨,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축제로 이어진 공연은 어느새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질문한다. “미추는 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나요?” “친구를 따돌려도 되나요?” 사실 처음부터 ‘미운오리새끼’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과 동물의 마음속에 자리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을 뿐이다. 다원화되고 다문화된 현대사회는 이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수원시티발레단의 ‘미운오리새끼’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편견과 따돌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추가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원망과 용서’는 딱 한 끗 차이...경기도극단 트로트뮤지컬 ‘명랑가족’ [공연리뷰]

얼마 전 지인의 부음을 받고 화성에 있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다. 늦은 시간인지 한적한 빈소를 고인의 자녀 남매와 손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상복과 슬픔이 가득한 얼굴에서 고인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얼굴과는 대비되었다. 고인과 가족에 대한 깊은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표면상으로는 평범한 가족의 상갓집 분위기이었다. 경기도극단의 트로트 뮤지컬 ‘명랑가족’을 보고는 여러 생각이 떠 올랐다. 가끔 언론에서 돈 많은 기업 회장이 죽으면 후손들이 재산 가지고 소송전을 벌인다든가, 또 지인들 말이 누구네도 부모가 죽고 자식들이 유산 싸움으로 서로 원수가 되어 의절했다는 등. 정말 ‘가족’이란 서로가 한없이 아껴주는 식구이기도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돌이키기 힘든 남보다 못한 엉망진창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명랑가족’은 좀 파격적인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국민가수이자 유명 개그맨이었던 심해룡이 죽는다. 유언에 따라 빈소를 자신이 처음 데뷔한 나이트클럽에 차리고 고인의 분신과도 같은 밀납인형을 장례식장에 설치한다. 유언장의 내용은 이뿐 아니다. 장례식장을 슬픔이 아닌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게 준비할 것. 네 자녀가 고인의 불후에 명곡인 ‘명랑가족’을 문상객들이 열광하도록 춤과 함께 부르고, 심사에 통과해야 유산을 받을 수 있다는 다소 ‘골때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네 자녀에 있었다. 어떤 속사정이 얽히고설켜 10여 년을 미움과 원망으로 지내왔다. 장례식장에서 만나지만 갈등과 불신은 지속된다. 네 자녀가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유언을 알게 된 자녀들은 100억원의 재산 때문에 다투면서 그간 몰랐던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들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 과정에 노래와 춤이 있고, 슬픔과 기쁨이 있다. 갈등과 후회로 얽힌 실타래를 용서와 화해로 이끌어 갔다. 관객들은 연출가의 놓은 유언장의 덫에 걸려 배우들과 함께 무대 속으로 빠져들고 빠져나오지 못했다. 간결하고 잘 읽히는 무대, 개성에 맞는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력. 트로트, 랩, 탱고를 넘나드는 춤과 노래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관객들과 소통하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유언장의 내용과 ‘명랑봉’도 참신한 이벤트였다. 원수가 된 이복남매를 화해시키기 위한 가족과 지인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관객들이 울고 웃게 했다. 복잡한 가족관계에서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연출력이 돋보였다. 이야기는 고인의 첫 번째 부인이 등장하면서 반전과 함께 화해의 물꼬를 튼다. 지나고 보면 가족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 원망과 용서, 갈등과 화해 사이는 딱 한 끗 차이다.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원수가 되고 의절한다. ‘태풍이 와도 끄떡 없어…미울 때도 있지 짜증날 때도 있어…그럼에도 우린 하나야 명랑가족…’ 배우가 말한다. 모두 ‘명랑가족’ 가사 같은 가족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을까? 가족이라는 어쩌면 작은 공동체에도 무수히 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기쁨과 행복도 있지만 갈등과 원망도 있을 것이다. 또 갈등과 원망을 평생 풀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여우가 죽으면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首丘初心)’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감성의 동물 인간일 진데, 힘들고 외로운 때 ‘가족’을 먼저 떠올리며 눈물짓는 것은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모두가 노래한다. ‘내 품에 안겨라 내가 항상 여기 있으니 명랑가족, 두 손을 마주잡아봐 명랑가족 끝까지 함께 할 거야’ 글=김현광 작가·전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칼과 춤의 합… 부국강병 꿈꾼 정조, 예술에 정신을 새기다” ‘칼검(劍) 춤무(舞)’ 그 뒷 이야기 [공연리뷰]

정조에게 무예는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었다. 그는 무예를 나라를 지키는 힘이자, 백성을 향한 통치 철학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가슴에 품고 왕위에 오른 정조는, 강한 군대 없이는 진정한 태평성대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즉위 이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해 흩어져 있던 무예를 표준화하고, 무예를 왕권 아래 다시 정렬했다. 칼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상징이었고, 혼란의 시대를 넘어 자주적인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였다.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검무를 올린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이자 자신의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에서 ‘검무’를 선보인 것은 정조가 꿈꿨던 ‘예로 다스리되, 힘으로 지키는 국가’를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다. 화성으로의 8일간 행차를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그렇게 칼춤을 추는 두 여인의 그림과 함께 ‘검(劍)무(舞)’라는 이름이 또렷이 남았다. 조선 왕실 공식 기록에 명확히 남은 ‘검무’는 이때가 유일하다. 지난 4일 저녁, 화성행궁 봉수당을 지척에 둔 정조테마공연장은 궂은 날씨에도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230년 전 펼쳐졌을 문무예술 정신을 보기 위한 설렘과 긴장감이 객석을 메웠다. 검은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숨을 참는 관객의 호흡과 함께 공간엔 검기(劍氣)가 차오르는 듯했다. 이날 공연은 정조가 어머니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었던 진찬연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검무를 복원한 첫 무대다. 박제가의 ‘검무기’, 신윤복의 ‘쌍검대무’, ‘무예도보통지’의 쌍검 검법, 그리고 의궤 속 기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조인문예술재단이 2년에 걸친 학술 연구와 실연을 거쳐 완성한 결과다. 공격과 방어를 위한 검술과 곡선으로 이뤄진 무형의 예술 춤이 한데 섞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연출을 맡은 지기학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과 무예연구가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김영호 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겸 한국병학연구소장, 그리고 진행자 서승원과 3명의 예인이 펼친 이날 무대는 마치 종합예술과 같았다. 화려한 연출 없이 검은 무대 위 오로지 빛과 그림자, 검만 있을 뿐이었다. “검은 원래 병기이고, 춤은 아름다움의 세계입니다. 그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이번 무대는 그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록 속에만 남아 있던 검술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그것이 춤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지기학 감독의 말처럼 이날 무대에선 ‘검’의 예술이 펼쳐졌다. 무대는 총 8막으로 이어졌다. 1~3막에서는 윤자경·김재성·신미경 세 명의 예인이 각각 ‘검녀’, ‘무제’, ‘검무랑’을 선보였다. 음악도, 화려한 의상도 걷어낸 채 오로지 자연의 새소리와 칼, 몸의 결만이 남았다. 맨발에 칼을 쥔 여인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재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순간, 관객들은 숨을 삼키며 그들의 칼 끝만을 바라봤다. 4막 ‘검선(劍仙) 김광택’은 검무와 검술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대목이었다. 영·정조 시기에 실존했던 검술의 명수 김광택은 거문고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군영의 병장기와 검술이 관무재를 거쳐 담장을 넘어 민간으로 스며들고, 그 과정에서 ‘공격의 칼’이 ‘춤의 칼’로 변모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무대 위 서사로 펼쳐졌다. 정조의 군사들이 펼쳤던 검술 정신이 민간에 스며들어 검무가 되고, 그것이 다시 궁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상상이다. 5막으로 넘어가며 무대는 반전됐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기록 속 장면들이 무대에 구현됐다. 5~7막 김영호 무예연구가는 직접 시연과 해설을 곁들이며 정조의 강군 육성 정신과 이를 연습했을 그 시절 군사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두 여인만이 남았다. 마지막 8막 ‘칼검(劍)·춤무(舞)’ 무대였다. 군복에 해당하는 전복과 전대, 군모인 전립까지 착용한 두 여인이 서로의 모양새를 살펴주듯 마주 보며 칼을 들었다. 몸을 뒤로 젖혀 크게 휘두르는 동작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이윽고 칼을 내려놓고 등을 맞댄 두 여인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겼다. “검무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본래 조선이 갖고 있던 가장 건강한 몸의 기억”이라며 “이 무대는 그 잘린 역사와 정신을 다시 잇는 작업”이라고 말한 김영호 연구가의 각오는 수많은 관객에게 가닿았다. 그 옛날 국왕과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던 박제가가 어느 날 묘향산을 여행하다가 보았다는 검무의 인상에 관한 명문은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회갑연에서 검을 들고 그곳을 누볐을 31살의 의녀 ‘춘운’과 24살의 침선비 ‘운선’ 두 여인의 향기를 현대의 관객에게 오래도록 남기었다. “어우러져 싸울 때는 네 자루가 서리를 날리고, 갈라졌을 때는 두 자루 번개를 일으키네. 검 기운 벽에 어른어른 파도 희롱하는 어룡의 형상이네”(박제가, ‘검무기’ 중). ● 관련기사 : 정조의 검무, 230년 만에 무대 위로… 화성행궁에서 ‘칼검 춤무’ 첫 공개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201580080

100년의 시간 사이 놓인 서양미술의 장면들…'수련과 샹들리에' [전시리뷰]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와 중국 출신의 사회 비평적 현대예술가 아이 웨이웨이(1957~)가 100년을 뛰어넘어 한 공간에서 만났다. 지난 10월 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원형전시실에서 진행중인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는 시대적으로 양 끝에 있는 두 작품 사이에 국제미술 소장품 44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 천장에 검은색 샹들리에가 달려있다. 무광의 검은색은 빛을 발산하는 대신 흡수하고 있지만 언뜻 보기엔 평범한 조명 기구와 다름 없다. 가까이 갈수록 그 실체가 드러난다. 척추, 두개골, 손가락 뼈 마디, 심장과 콩팥 등 인간과 동물의 장기로 구성된 이 물체는 샹들리에 모양을 한 죽음의 상징이다. 중국 출신의 현대예술가로 사진, 영상, 건축, 회화, 공공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비판적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작업한 ‘검은 샹들리에’는 빛을 밝히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샹들리에를 통해 화려한 삶 이면에 공존하는 죽음을 암시한다. 원형 전시실 내벽 너머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이 배치돼 있다. 넓은 전시실을 벽으로 나눈 외딴 공간이 연못 같고 모네의 작품이 그 위에 떠 있는 수련 그 자체 같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이 작품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주는 한가로움이 ‘수련'과 ‘샹들리에’가 갖는 100년의 시대적 간격만큼 아득하다. 가장 상반되는 전시 제목의 두 작품 외에도 미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사진 ‘모욕하라, 비난하라’(2010)가 전시장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는 바바라 크루거 특유의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눈을 찌르려는 순간은 담은 이미지 위에 '모욕하라 비난하라(Shame it, Blame it)는 문장을 배치했다. 이는 미디어와 시각적 이미지가 개인에게 가하는 위협과 폭력을 표현한 것으로 크루거의 문장은 온전한 진실과 고정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풍만하고 둥근 형태, 과장된 비율의 신체 표현 등 독특한 스타일로 알려진 콜롬비아 출생의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와 문화적 기준, 고정된 미적 기준에 대해 도전하며 다양성을 추구했다. 이번에 전시된 ‘춤추는 사람들’(2000)은 다양한 색의 조명이 비추는 실내에서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라틴댄스를 즐기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보테로 특유의 풍만한 인체 표현과 활기찬 분위기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지닌 열정을 느끼게 한다. 보테로는 춤, 음악, 놀이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화폭에 담아 자신의 배경인 라틴문화와 정서를 알리고자 했다. 이외에도 2021년 이건희컬렉션 수증을 통해 미술관에 소장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 19~20세기 인상주의 대표 화가의 작품 16점과 국재 최초 미술품 물납제를 통해 소장된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쩡판즈의 ‘초상’(2007) 2점을 포함해 소장 이후 최초 공개작 4점 등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해외 거장 33명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특별한 주제나 연대기적 분류 대신 44점의 작품 한 점,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국제미술 소장품을 엄선해 마련한 전시”라며 “약 100년의 시간 사이에 놓인 서양미술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027년 1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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