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서 열린 ‘빙하 추도식’…수원시립미술관 2024 예술확장성 프로젝트 ‘빙하에게 안녕을’ [전시리뷰]

수원시립미술관 ‘빙하에게 안녕을’
아이슬란드 등서 열린 추도식 재연
설치·영상·음악·공연·체험 ‘융복합’
예술로 기후위기 등 경각심 일깨워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빙하에게 안녕을’ 전경. 기후위기로 인해 녹아버린 빙하와 이를 가속화하는 ‘검은 빙하’의 현실이 작품(좌측 하단)에 표현돼 있다. 이나경기자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빙하에게 안녕을’ 전경. 기후위기로 인해 녹아버린 빙하와 이를 가속화하는 ‘검은 빙하’의 현실이 작품(좌측 하단)에 표현돼 있다. 이나경기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서는 빙하 추도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빙하가 물이 돼 떨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곧이어 빙하 추도식을 안내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캄캄한 공간에 손전등을 비추자, 전시실 사방에 자리한 여러 형태의 빙하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빙하는 산에 자리한 만년설이 녹아내려 갈색의 흙이 드러나 있고, 어떤 빙하는 마치 블랙홀처럼 검은 웅덩이가 돼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동굴 탐험을 하듯 랜턴을 벽에 비추자, 벽화와 같은 빼곡한 기록들이 드러난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지난달 19일부터 다원 예술 기반의 2024 예술확장성 프로젝트 ‘빙하에게 안녕을’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초, 중, 고 모든 교과에 등장하는 주제이자 우리 세대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주제로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 벽면에는 해외 곳곳에서 열린 ‘빙하 장례식’의 모습과 당시 오갔던 말들이 기록돼 있고, 관객들이 추도식을 경험한 후 남긴 한마디가 적혀 있다. 이나경기자
전시장 벽면에는 해외 곳곳에서 열린 ‘빙하 장례식’의 모습과 당시 오갔던 말들이 기록돼 있고, 관객들이 추도식을 경험한 후 남긴 한마디가 적혀 있다. 이나경기자

 

“오크 빙하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사이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우리는 이 추모비를 세움으로써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있음을 알린다.”

 

지난 2019년 8월 아이슬란드에서는 700년의 세월 간 자리를 지키다 소멸한 오크예퀴들 빙하를 추도하기 위한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와 환경운동가, 주민 등은 빙하를 추도하며 추모비를 세웠고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동판에는 위와 같은 말이 새겨졌다.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스위스, 멕시코, 미국 등 전 세계 5곳에서 기후위기 등으로 사라져간 빙하의 죽음을 추도하는 장례식이 진행됐다.

 

전시실 벽면에는 이처럼 ‘사망 선고’가 내려진 전 세계 빙하의 목록과 앞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질 예정 목록 그리고 빙하 장례식에서 오갔던 말들이 기록돼 있다. 소멸하는 빙하를 조각조각의 픽셀로 영상화한 화면을 마주하다 보면, 이윽고 빙하를 기리는 레퀴엠(장송곡)이 흘러나온다. 2024년 12월 지금 이 자리의 관람객들이 흰색 펜을 들고 남긴 한마디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빙하야 인간이 미안해’, ‘우리의 잘못으로 빙하는 피해를 입는다’.

 

전시장 바닥 곳곳에는 기후위기로 녹아내린 빙하가 표현돼 있다. 조류 혹은 화산폭발과 산불의 자연요소, 발전소와 자동차 연소 등 인위적 원인의 에어로졸은 ‘검은 빙하’가 된다. 이나경기자
전시장 바닥 곳곳에는 기후위기로 녹아내린 빙하가 표현돼 있다. 조류 혹은 화산폭발과 산불의 자연요소, 발전소와 자동차 연소 등 인위적 원인의 에어로졸은 ‘검은 빙하’가 된다. 이나경기자

 

이번 프로젝트는 일방향으로 관람하는 ‘전시’가 아닌 설치, 영상, 음악, 공연, 체험 등 융복합 예술로 기후위기의 현실을 감각할 있도록 구성하고, 이를 관객이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쥐고 탐험하듯 능동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빙하가 깨지는 소리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전쟁, 도시화, 산업화를 상징하는 기괴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악, 훼손된 빙하를 보여주는 픽셀 영상 등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빙하를 위한 추도문을 직접 작성해 보는 시간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웹용)(문화/톱)[가]미술관서 열린 ‘빙하 추도식’…수원시립미술관 2024 예술확장성 프로젝트 ‘빙하에게 안녕을’ [전시리뷰]
‘빙하에게 안녕을’ 프로젝트에서 녹아내리는 빙하를 조각조각의 픽셀로 영상화한 모습. 조각의 픽셀은 바다의 모습으로 흩어진다. 이나경기자

 

 

프로젝트 컨셉과 연출을 맡은 창작단체 ‘섬우주’의 전강희 작가는 “몇 년 전 강원도에서 일어난 산불 재의 성분이 극지방 빙하에서 발견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며 “우리 역시 기후위기와 빙하의 사라짐에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이 홀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공간에 있는 타인의 빛과 함께 만나게 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시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8일까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