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다시 연둣빛으로 눈부시다. 짧은 봄나들이라도 가고 싶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무모하고 함께할 시간은 발목 잡히기 일쑤다. 매달린 일들에 정작 하고 싶은 것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허송세월이 아닐까 싶다. 이러다 해그림자 지듯 인생을 소비할 것만 같다. 얼마 전 늑대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해 소동이 벌어졌다. 꼭 교도소에서 탈출한 수인처럼, 격리된 곳을 벗어난 조두순처럼 피해가 발생할까 걱정이었다. 폐쇄회로(CC)TV에 잡힌 늑대는 탈출한 동물원 쪽을 자꾸만 뒤돌아봤다. 귀소본능도 포함되겠지만 자유가 주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드론과 열화상카메라와 트랩이 설치되고 경찰특공대와 소방대가 수색 작업에 동원됐다니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9일 후에야 생포된 늑대는 위장에 생선과 낚싯바늘과 낙엽이 발견됐다고 한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낙엽과 낚싯바늘이 든 생선을 먹었을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유는 스스로 지켜갈 책임이 따른다. 잠시 퇴근길에 아이들과 창룡문 잔디밭에서 연을 띄우며 망중한을 즐겼다.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에 안데스 카페가 눈에 띈다. 산보냐를 연주하며 안데스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오래전 남미 여행에서 안데스 음악에 취해 직장을 그만둔 카페 주인은 아직 그 안에 갇혀 커피를 볶는다. 자유를 추구했지만 결국 우리 안에 사육되는 늑대처럼 청춘의 야행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그린 자유의 꿈은 현재도 유효할까.
꾸다 만 춘몽처럼 꽃비가 흩날린다. 분분히 쌓인 꽃잎은 밥상을 덮어 놓은 어머니의 조각보같이 포근하고 정감 있다. 꽃그늘 내린 버드내에 목을 뺀 왜가리 한 마리가 시간을 멈춘 듯 부동자세로 서 있는 봄, 어반스케치 교실에 신입생들이 모여 앉았다. 놀란 까투리처럼 동그랗게 뜬 눈은 호기심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가득한 여성 속에 남성 한 분이 묻혀 있다. 경기일보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칼럼을 봤는데 내용이 좋아 관심을 가졌고 수강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그린 그림은 데생과 색의 원근감이 질서 있어 좋았다. 알고 보니 수원 토박이로 학창 시절 미술부 활동을 잠시 했다고 한다. 수원의 작가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점심도 같이 먹고 해움미술관의 한국현대목판화 협회전도 함께 봤다. 전시장엔 매교동 동장님이 와 계셔서 반가웠다. 미술관이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는 연계 프로그램을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데 동장님은 이 가교 역할을 잘하시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그림을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전시하기도 했고 지역 카페에서 매교동 주민자치센터프로그램을 기획 전시하기도 했다. 문화가 강국을 이루듯이 우리 동네의 상징적 문화를 가꾸는 것은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한다. 항상 부지런한 이지효 동장님의 멋진 행정이 온몸이 길인 담쟁이처럼 마을 곳곳에 번져 가기를 응원한다.
청명 지나 꽃비 내리더니 연둣빛 새잎이 흐른다. 부활절 예배에 기도 제목을 적어냈다. 가족 건강과 작업 성취를 적었는데 오늘이 어머님 소천일이라는 걸 알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임종도 지키지 못해 늘 죄를 안고 살았는데 망일도 잊을 뻔했고 기도 제목도 넣지 못했으니 말이다. 잠시 기도하며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했다. 싱그러운 파밭에서 일하시던 모습, 무슨 생각을 하며 씨앗을 뿌렸을까. 돌이킬 수 없지만 함께 살던 마루 위의 제비처럼 어머니라는 부활의 박씨 하나 품어야겠다. 일전에 수원시청에 간 적이 있다. 내게 선행이란 공로로 시장 표창을 준다고 해서다. 문화예술 공로라면 몰라도 선행이라니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상을 받아 우등상을 들고 자랑하던 사촌에게 수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선행상과 미술대회 입상 상장을 아버지는 매우 못마땅해하셨다. 선행이란 게 포괄적 의미가 있겠지만 모범생 같은 나약한 인식만 새겨지는 것 같아 스스로 상처만 받았다. 꽃과 잎이 물든 어반스케치 스케치북에 도시의 쇼윈도처럼 봄의 색을 입혀 본다. 화려한 봄의 이면이 두견화처럼 애처롭다. 아름다움이 승화된 꽃의 모순일까. 문득 최승자 시인의 시 한 자락이 허기처럼 몰려온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화가)은 존재한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
봄이 흐른다. 하이네의 시처럼 온갖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고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부드럽고 윤기 있는 풍경이다. 산책길에 느닷없이 피어난 자목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얀 목련이 내릴 때쯤 망울지던 것이 이미 만개한 것이다. 버드나무도 어느새 올리브그린으로 변했다. 개나리 진달래 피고, 영산홍과 철쭉이 뒤따라야 하거늘 요즘 꽃들은 눈치 없는 사오정처럼 대책 없다. 번호표를 줘 대기줄을 서게 해야 할까. 꽃들의 무질서는 사실 인간이 만든 부메랑이니 변질된 환경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자연도 인간처럼 앞뒤 없고 속수무책인 속도와의 전쟁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종달새는 개척교회 목사님 설교처럼 정성스럽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처럼 미려하다. 세류동 언덕을 지나다 그린세탁소라는 간판을 봤다. 인공지능 시대에 세탁소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다. 무인빨래방도 생겼지만 드라이 크리닝이란 고전적 세탁소는 속도의 시대를 쉬어가는 느린 횡적 풍경이어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손빨래한 교복에 감자풀 먹여 하얀 칼라를 세워주시던 어머니의 다림질이 오브랩됐다. 나도 매일 아이들의 교복을 다림질해 등교시킨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사치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견지하는 의무 같았다. 편의만을 쫓는 시대는 가끔 인간 사이의 체온을 앗아 간다. 봄날도 벌써 어둡다. 준비 없는 이별처럼 한 계절은 이미 떠나는가.
삼월이 꼬리를 물고 사월을 부른다. 한 분기라는 시간의 뭉치가 통째로 소멸한다. 필자의 어반스케치 교실도 종강 채비다. 버드내를 따라 걷는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목련꽃, 새하얀 미선나무와 산수유도 은은히 노랗다. 배냇머리같이 연둣빛 가지 결을 드리운 버드나무, 늦둥이 진달래도 조산을 했고 양지쪽엔 파릇한 새 풀이 돋았다. 계절은 늘 쓰지 못한 편지에 답장이 먼저 오는 것처럼 체감을 앞질러 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으로부터 마당 가득 달래 향이 피어나던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립다. 이틀째 수강생들과 긴 겨울 지난 도토리 농장을 찾았다. 자작나무 선생은 겨우내 불어난 얼굴에 ‘봄이 오다, 봄을 그리다, 봄비가 내리다’란 배너를 내놓고 우리를 맞았다. 목소리도 시냇가 버들가지처럼 물이 올라 활기찼다. 커다란 무쇠 난로는 장작을 태워 비닐하우스 천막 교실은 온난했다. 공주파 선비파는 그림을 그리고 살림꾼들은 전을 부쳤다. 일하고 먹는 밥이 맛있듯 우리는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목공에 쓰인 자투리를 이용해 짧은 시구와 컷을 넣으니 새롭고 재밌는 공부가 됐다. 사는 게 늘 공부 같다. ‘칠보산 아래’라는 자작나무 선생의 새 시집은 아직 향기를 잃지 않았다. 올 때마다 비닐 문에 써둔 나의 글은 흙먼지를 덮어쓴 채 흐릿한 세월을 견뎌낸다. 그리움이 얼마나 내려야 다시 시가 흐를까. 허전한 봄날이다. 멀리 떠난 친구처럼.
결국 닥쳤다. 봄. 다가올 많은 일들이 옷도 입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이 온 것처럼 분주하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학창 시절 들길 지나 냇물 건너며 학교 가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라는 동요도 생각나고 하얀 칼라의 세라복을 입고 앞서가던 윗마을 여학생들도 생각난다. 구령을 붙인 것도 아닌데 팔과 발을 맞춰 걷는 게 신기했다. 인사동에 개인전을 잡아 놓아 쫓기는 기분이다. 일전엔 큰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난해 600만명이 관람해 입장객 수 세계 4위를 기록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 보고 인사동의 지인 개인전도 봤다. 오랜만에 만난 서울 친구와 식사하고 막걸리도 축였으니 긴 겨울 깨어난 새싹 같은 외출이었다. 예전의 골목 찻집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귀천(歸天),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사건의 고문에 만신창이가 된 후 그를 간호하고 아내로 나선 문순옥 여사의 전통찻집이다. 예술인들이 들락거리던 그 집은 부부가 하늘 간 후 사라졌지만 문 여사의 조카가 다시 이룬 찻집이다. 천상병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 이상 순수가 뭔지 모르겠다. 코끝 찡하게 하늘을 본다. 봄날 하늘 가신 부모님이 세월 가며 더욱 그립다. 인생이 소풍일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3월,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모든 학교의 개학, 개강이 시작되고 봄맞이 전시회와 공연도 활발하다. 겨우내 묻힌 지인들의 소식도 경칩의 개구리처럼 밖을 나온다. 전시회와 공동체의 총회 임원 선출 소식도 있다. 기지개를 켜니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긴 하품도 난다. 겨울이 고요한 건 봄이 숨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꽃샘추위가 바람을 감으며 사나운데 양지쪽 화단엔 파릇한 새싹이 몰래 돋았다. 일전에 선배 작가들과 양구에 다녀왔다.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손기환 작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내가 막내라는 게 신기했다. 그 대신 왕복 운전을 맡았다. 의외로 큰 전시 공간에 입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주제는 그가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 회억을 담은 것이었는데 발상이 신선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육십 후반의 나이에 젊은 후배들과 입주 작가전을 한다는 게 부러웠다. 때마침 미술관은 박수근 작고 60주기 소장품 특별전 ‘봄이 오다: 정림리에서 전농동까지’가 전시되고 있었다. 초창기 박수근의 원작이 없던 것과 달리 최근엔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일부 소장품이 원작으로 채워졌다. 박수근의 그림처럼 화강석으로 축조한 건물이 여전히 멋졌다. 해 바뀌고 벌써 두 달이 소진됐다. 행복이 지나가는 것도 모를 세월이다. 박수근 임종의 말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의 원근감을 아직 모르겠다.
앞을 가린 황사처럼 3월이 왔다. 설 지나 경칩이 눈앞이다. 갑자기 닥친 봄이 조금은 불안하다. 어릴 적 불렀던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라는 새해의 노래처럼 아직 준비되지 않은 긴장감 때문이다. 봄비마저 우수에 깃든다. 삼일절 주일예배엔 담임목사가 애국가 제창을 구하셨다. 교회의 애국가가 조금 어색도 했지만 기독교는 3·1운동 등 국가의 위기에 늘 앞장서 왔다. 고명진 목사가 애국가의 영역(英譯)이 ‘National anthem’이라며 이는 국가이자 찬송가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삼일절 노래의 작곡가 박태현을 교회와 연관 짓다가 산바람 강바람도 작곡하신 분이라며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하고 노래까지 부르셨다. 성서를 깊이 말씀하시다가 메디치가와 미켈란젤로로 옮겨 가기도 하는 목사님의 설교는 한편의 맑은 인문학 같다. 불교로 치면 아직 깨달음을 받지 못한 중생이지만 나는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로운 휴식 같아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는다. 오늘 수강생들과 명봉역이라는 전남 보성의 간이역을 그려봤다. 모든 게 직선적인 속도의 시대에 간이역이라는 느린 곡선을 그려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마음산책이다. 간이역은 소박한 옛 추억과 향수가 코스모스처럼 묻어 있다. 앞만 치닫는 종적 삶보다 옆도 보며 가는 횡적 삶을 지녀야겠다. 이런 시처럼.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고은 ‘그 꽃’
길을 걷다가 가끔 시적인 풍경을 보기도 하고 음식을 매개로 한 만남의 장소를 지나기도 한다. 화홍문을 통과하는 물소리를 들으면 시적 단상이 현전하지만 통닭거리엔 목적이 해체된 실용적 사고가 안치된다. 항상 감각적인 날것의 상상력이 눈앞의 관념에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 늘 엉뚱하고 새로운 관점과 섬세한 내면 배양이 필요하다. 신선한 시각과 감각을 채집하는 정신의 공간을 활성화해야겠다. 통닭거리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젊은이들은 영화와 먹방을 보고 스스로 경험해 보려는 심리적 이동을 즐기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옹호한다. 수다 떠는 잡음을 분위기로 여기며 갇혀 있던 마음을 통쾌하게 여는 방식이다. 통닭을 모티프로 한 이 거리는 다양한 축제와 문화적 모뉴먼트로 가꿔 가고 있다. 50년 전통 매향통닭의 가마솥치킨도 좋고 진미통닭의 프라이드치킨도 좋고 용성통닭의 왕갈비치킨도 각각의 맛을 낸다. 무엇보다 쫄깃한 닭똥집을 소금에 살짝 찍어 맥주 한잔 곁들이면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이 거리를 오늘은 고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다는 경상도 영천 사나이 김동석님이 그렸다. 퇴임 후에도 일이 많이 쌓였지만 나의 현대미술과 어반스케치 교실은 누에가 명주실 짓듯이 집중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이 화가가 되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몰입이라는 순수한 시간의 뭉치가 되길 삼가 바란다.
새해 지나 한 달이 가더니 설이 가깝다. 해가 깊으니 나이를 셈하고 싶지도 않다. 갈 테면 가라는 배짱만 성성하다. 송구하지만 나도 잘 모르는 나이를 구태여 묻지 말았으면 한다. 버드내를 낀 세류동을 지나다가 시장 떡방앗간 집을 발견했다. 간판이 무려 4개나 걸렸다. 전문 떡집이 존재하다니 괴이하지만 요즘 떡은 참으로 화려하다. 내용물이 다양하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대로 외양 또한 우아하다. 서양의 케이크나 바게트보다 문양과 빛깔이 곱고 전통적 깊이가 있다. 시루떡, 인절미, 절편같이 흔히 먹던 떡 개념을 넘어선 궁중떡과 지역을 대표하는 떡은 저마다 품격이 있다. 예전엔 설 앞의 가래떡이 불문율 같은 고유 양식(樣式)이었다. 따끈한 떡가래를 조청에 듬뿍 찍어 먹는 달콤함이란 형용하기 어려운 맛이다. 고향의 맛보다 더한 게 또 있을까. 조선시대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음식 저술에서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 방풍죽이었다고 기술하는데 그의 고향 강릉에 지천으로 널린 방풍나물 덕분일 것이다. 올 설엔 부모님 돌아가시고 자주 못 만난 동생들에게 떡국이라도 나눠 먹자고 연락했다. 어머니는 떡국을 끓일 때 꼭 소고기와 배추 고갱이를 넣었다. 그 시원하고 익숙한 맛을 지금 H가 계승하고 있다. 불손하지만 내가 주문하는 H의 떡국은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가장 향수적인 대체 수단이다.
입춘이다. 골목 안 아저씨댁 대문은 이맘때면 화려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대문에 머리를 맞댄 입춘첩은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다. 돌개바람은 마당을 훑고 가고 정화수 같은 삼신할머니 물사발은 꽁꽁 얼어붙었다. 나는 지게에 바소쿠리를 장착해 산에 올랐다. 솔바람 소리는 차갑게 윙윙대고 고주박을 패어 지게에 옮긴다. 마을은 뽀얀 연기를 집마다 뿜어대며 점심을 준비했다. 고구마가 들어간 갱시기죽에 김치 한 포기 밥상은 겨우내 먹는 점심 메뉴다. 문풍지가 떨고 저녁 해 기울면 아버지는 늘 동네 사랑방에 가셨고 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을 귀 세워 들으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 어젯밤엔 먼 길을 갔다. 고향집에서 하늘 가신 어머님을 만났다. 하얀 눈 덮인 꿈길이었다. 이른 아침 밖을 나오니 정말 흰 눈이 왔다. 처마를 타고 낙수 흐르는 인계동 재개발구역을 지난다. 한때 ‘인도래’라는 공간에서 주변 작가 5명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곳이다. 2001 아웃렛도 환영만 남기고 허물어진 채 이젠 이 동네도 슬럼가가 됐다. 중국 간판에 중국인이 동네를 차지한 지 오래다. 재개발이란 명분에 보따리를 싼 작가들은 일종의 예술인 디아스포라, 실향민이 됐다. 입춘,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점이다. 시간은 눈덩이 구르듯 점점 부풀려 간다. 길운과 기운의 새 기지개를 켜자. 동면에서 깨어난 양서류처럼.
낯선 신작로 따라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시외버스에 올랐다. 미루나무가 농수로를 따라 높이 솟아 있는 오솔길, H의 집은 우정읍에서 가까운 수정리였다. 마당엔 펌프가 물을 길어 올렸고 작은 툇마루가 있는 소담한 집은 나그네를 굽어봤다. H와의 첫 인연은 현실감도 긴장감도 없이 시작됐고 겨를없이 고된 세월은 빠르게 치달아 지금에 정박했다. H의 외가는 청풍 김씨였는데 그림 속 잡초 우거진 땅도 그 집안 땅이었다. 2남4녀인 H의 집에서 처남들과 동서 넷이 가끔 멍석 깔고 모여 앉아 여름밤을 보냈고 긴 겨울밤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마을 뒤에 쌍봉산이 있고 앞엔 삼괴고등학교가 있었다. 나와 H가 주말에 채소밭을 가꾸기도 했던 그 시절이 이젠 꿈처럼 먼 빈집이 됐다. 텃밭 가꾸며 맑게 살아가시던 H의 어머님도 집을 비우고 부근의 요양원에 드셨다. 100세가 눈앞이지만 아직 건강하시고 동료분들과 잘 어울리며 사신다. 사라진 시간은 옛것을 지우고 다시 질주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그땐 또 어떤 모습일까. 나의 고향 빈집도 옛일을 잃고 있다. 입춘이 다가오고 설이 가깝다. 이런 시가 스친다. ‘빈집에 쌓이는 시간의 무늬에도/아름답고 쓸쓸한 생을 관통하던 추억있다/집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었고/나는 길 위의 집에서 꿈을 꾸었다./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옛사랑의 그림자여.’ -민병일 ‘적멸 속에 빛나는 빈집’.
예술은 이상을 형상화하고 텍스트화하는 고도의 정신적 테크닉이다. 아무리 자신을 속여도 남루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가슴속엔 항상 넉넉한 영감을 저장하고 있다. 예술은 끊임없는 개척과 탐험과 고뇌의 성취다. 현악기만으로 애절함을 표현하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음악가의 절절한 메시지가 읽힌다. 우리는 교향곡 앞에서 굴곡진 오선지를 읽는 마에스트로가 돼 눈을 감고 심상의 손을 젖는다. 마에스트로의 팔은 그를 이끄는 또 다른 영혼의 지휘가 있어 조용히 조율하는 것이다. 제도적 변혁을 감식한 예술의 편력일까. 화령전 작약이 돋아난 그리운 시절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신여성 나혜석의 산책을 그려본다. 서호변에 캔버스를 편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불가능한 꿈을 지운 한 페미니스트의 생애가 애처롭다. 나혜석, 그의 첫 전람회엔 하루 4천~5천명이 성시를 이뤘다니 가부장적 사회에서 신여성의 예술 활동이 얼마나 큰 파급이었나를 알 것 같다. 50까지 칠한 그의 생은 행려병자의 무연고 병동에서 끝맺는다. 지금 이곳 나(羅) 참판댁 터는 무슨 연유인지 아직 복원이 되지 않고 생가터 옆에 걸린 화령전 작약만이 공터를 굽어보고 있다. 사회제도와 법률과 도덕과 인습에 저항했던 한 페미니스트에게 내면의 꽃 한 송이 바친다. 새 교실에 오늘도 조용히 마음을 닦는 김미경님이 빈 생가터를 그렸다. 그림이 별건가, 즐거우면 그만이지.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엉킨 남루한 골목길을 걷는다. 어둡고 눅눅하고 한적한 길은 나의 정체성을 반추해 보는 조용한 피난처다. 삶이 엉켜 복잡하고 난해할 때가 있다. 콜카타의 슬럼가같이 비루한 정적. 이곳의 바로 옆 골목은 젊은이들로 북적대고 휘황해 대비를 이룬다. 삶이 지루한 매너리즘에 빠질 때 지난한 시절의 도돌이표 같은 원점으로 돌아가 본다. 새해 돋더니 벌써 열흘이 지났다. 망설임 없이 치닫는 시간과의 무모한 대척, 쉼 없이 놓쳐 버린 세월이다. 바야흐로 농가월령가는 농사를 준비하고 학교엔 졸업 시즌이 끝났지만 문화센터엔 새 분기가 시작됐다. 두려움이 아닌 설렘과 기대로 나의 어반스케치 교실에 들어선 신입생들, 토끼 눈을 뜨고 동그랗게 응시한다. 새해에도 멋진 이야기가 스케치북에 채워져야 할 텐데. 한 해의 전개가 궁금하다. 세한도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어려울 때도 변치 않는 지조와 인격이 필요한’, ‘세한평안(歲寒平安):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시련과 고난을 지나는 것은 모두 이맘때의 풍경이다. 지금이 최고인 고단한 오늘을 위로하자. 수묵담채 같고 무반주 첼로의 잔향 같은 묵음(黙吟)을 듣는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묵화(黙畵)’ 김종삼-
연말연시라는 혼잡한 시간을 징검다리 건너듯 지났다. 다리를 건너는 것은 물리적 형상이 있지만 연말 밤과 새해 아침을 잇는 시간은 비유형적이며 틈과 거침이 없다. 동안과 쉼이 없는 시간을 우리는 거저 따라갈 뿐이다. 한 세기가 지나가는 연말연시나 평범한 어젯밤과 오늘 아침은 다르지 않고 다만 한 시대와 한 해와 상징적 단락을 이룰 뿐이다. 모든 사이의 간(間)은 좌우대칭의 문(門)을 사이에 둔 날(日)이 있다. 문과 문 사이에는 빛이 있고, 인간(人間)의 간(間)은 사람과 사이는 따뜻한 정이 흘러야 함을 형용하며,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필요한 이유다. 그 밖에도 눈썹과 눈썹 사이의 미간(眉間), 한 시점과 다른 시점의 사이 시간(時間)이 있다. 격동의 긴장감으로 해가 다시 떠오를 때 새해 소망을 접합해 본다. 오래전 그렸던 금빛 일출을 다시 꺼냈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나의 곁을 떠난다. 밥 짓듯 농사짓듯 지난한 노동으로 이룬 작품이다. 그림을 경작하는 정신노동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고통이다. 차라리 육체적 노동이 더 명확한 결실이 있겠지만 정신노동도 의지를 잃지 않고 정진하는 한 또 다른 가치와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 그림이 결기를 이루는 당신에게 희망과 영광의 은유가 되길 기도한다. 영원히 지지 않는.
길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운명의 통로다. 우리의 마음속엔 항상 삼포 가는 길처럼 복기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고향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먼 시절은 사람도 가고, 집도 변하고, 형상 없는 정과 한만 서렸다. 처음 나를 만난 H는 갈대와 갯벌과 뿌연 바닷물이 들락대던 선창 포구와 화수리를 보여줬다. 이곳에서 다녔다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잠복한 나의 소년 시절이 떠올라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명절 때마다 선창에 가며 만난 길모퉁이 사거리다. 얼마 전 H의 어머니를 뵈러 가던 길에 화수슈퍼라는 간판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다. 그 많은 세월에도 아직 그 모습대로 본업을 잇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옆의 식당은 뷔페라는 거창한 간판에도 문을 닫고 허수아비처럼 충직히 풍상을 버텨내고 있었다. H와 맺은 인연이 아직 이 거리에 맺혔지만 복잡한 지구별 여행에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한 해가 간다. 다시 리얼리스트가 돼 불가능한 상상을 꿈꿀 수 있을까. 송년회가 끝나고 차가운 가로등 아래 태엽 풀린 시계처럼 멍하니 섰다. 나를 미행한 실패를 뿌리치고 새해엔 희망을 노래해야지. 명마 로시난테의 등에 올라 길을 나서는 라만차의 기사처럼. 붉은 말에 긍정의 힘을 싣고 박차를 가하자. 불타오르는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지 않으며 믿음으로 고! 지난 시간은 소각된 비망록일 뿐.
20여 년 전 티베트를 여행했다. 거얼무에서 이어진 청장공로를 따라 라싸로 가는 황량한 길가에 한 모녀가 서로 의탁한 채 걷고 있다. 지난 가을 티베트를 비롯한 세계여행 스케치를 모아 기억 공간 ‘잇~다’에서 전시를 한 바 있다.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추억은 메주 냄새 같고 발효된 효모 같다. 동지 밤이 유난히 깊다. 이맘때 고향 집엔 다락에 오르는 찬 계단에 응고된 동지팥죽과 시린 동치미가 놓여 있었다. 장광과, 슬레이트 지붕과, 감나무 가지에 하얀 눈 쌓이고 주인 잃은 집은 겨우내 섬이 될 것이다. 이 계절 끝에 다가올 따뜻함은 한편 거북하다. 내용 없이 소모되는 세월에 주도권을 내주는 불안 때문이다. H가 화실에 들었다. 실내를 정리하고 바닥을 쓸다가 짜증을 낸다. 뚜껑 잃은 만년필처럼 기능을 상실한 것들이 버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H는 캔버스 아래 쌓인 황토 가루를 치우다 포기하고 방을 나간다. 등 뒤로 쌀쌀하게 한소리 날아온다. ‘내일 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정리하세요!’ H는 겨우내 올라오지 않을 것 같다. 달리 만날 사람도 없으니 외부와 차단된 옥탑방은 동안거나 다를 바 없다. 작업이 늘 명상이지만 잠시 지난해를 바라본다. 명상의 명은 어두울 명(冥)자다. 눈을 감고 어둠에 잠긴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흐리고. 생명의 숨은 다시 삼라만상의 싹을 피울 것이다. 주룩, 쏟아지는 낙수 소리와.
지난 여름 능소화가 휘감긴 대문은 넝쿨만 남긴 채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담장 밖의 온갖 꽃이 외딴 마을 아이들처럼 반겼다. 카메라를 매디슨 카운티 다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조준하던 중에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대문이 열려 깜짝 놀랐다. 안쪽의 할머니가 내다보셔서 기웃하니 의외로 태연하시다. 대부분 카메라를 든 낯선 사람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인데 의외다. 내친김에 집이 궁금해 안으로 들었다. 할머니는 나그네를 쉽게 받아 주셨으나 옅은 미소 뒤로 외로운 기색이 보였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 긴 행랑채가 들어섰는데 무르익은 담쟁이가 온몸에 길을 뻗고 있었다. 안쪽엔 사람이 사는 듯했고 우측엔 밖에서 살짝 보이던 이 특이한 지붕의 건물 한 채가 놓여 있었다. 이색적인 양식에 빠져드는데 할머니가 먼저, 건물은 할아버지가 유럽 여행에서 본 건물을 본떠 지은 집이라고 소개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독특한 모습은 가치를 잃지 않았다. 시집간 딸은 할머니만 남겨 두신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서양식 건물을 매교어반스케치 임진선님이 그렸다. 이곳저곳 어반스케치 교실을 다니다가 종래 나의 교실에 머물렀다. 그림으로 행복을 지어가는 영근 마음, 튼튼한 구도와 채색이 항상 맘에 찬다. 마지막 학기도 종강이 머지않았다. 꿈처럼 흘러간 한 해가 다시 그립다. 후회가 꿈을 대신할지라도.
남미 여행 때 브라질에서 먹은 페이조아다(Feioada)가 생각난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 노예들이 식사 후 남은 고기와 콩을 이용해 만들어 먹던 일종의 소울푸드다. 우리나라에도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먹다 남긴 햄, 소시지 등 잉여 재료를 김치, 고추장과 함께 끓여 먹던 부대찌개가 있다. 수년 전 어반스케치팀과 험프리 캠프가 있는 평택국제중앙시장에 간 적이 있다. 평택 송탄엔 김네집과 최네집이 있다. 좁은 골목의 김네집엔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대기실까지 있었다. 맛집이라는 인식의 결부로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다. 수원 권선동의 최네집 분점이라는 부대찌개 집은 우측 건물에 지붕 일부가 먹혀들어 간 특이한 외관이다. 몇 년 전 ‘미셀 자우너‘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지은 ‘H 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미셀이 미국으로 시집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대학 시절을 보낼 즈음 어머니가 암에 걸려 투병하다 숨을 거둔다. 미셀은 마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짜장면을 먹던 생각. 만두피가 있는 냉동식품 코너에서 엄마와 단둘이 식탁에 앉아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 사실에 흐느낀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궁극의 희로애락 속에 있으므로.
자아(自我)란 내 안의 모든 감정과 의식이 잠재된 내면의 주체다. 여느 해처럼 연말 가까이 자신을 그려본다. 한 해를 지낸 자신을 반추하며 단순한 자화상을 넘어 사고와 감정을 수반하는 상징적 자아 찾기에 모두가 진지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을 생각할지도 궁금하다. 나와 마주하며 연상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갑자기 떠오른 어머니를 닮은 나, 젊은 시절의 싱그러움이 연상되기도 할 것이다. 나의 내면은 햄릿과 같은 독백이 숨 쉬거나 돈키호테 같은 거친 행로를 회상할 수도 있고, 내 안의 다른 나라는 얼터 에고(Alter ego)를 접합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를 기호화하거나 가꾸고 덧붙이고 각색할 수 있는 작업을 모두가 진지하게 어떤 수행(修行)처럼 수행했다. 콧잔등이 긴 모딜리아니의 잔 에뷔테른처럼 그려낸 재경님도 재미있고 자신을 캐리커처화한 중국 여성 장정혜님의 그림도 재미있다. 모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신기한 닮음이다. 나의 어반스케치 교실에 20대도 한 명 있지만 30대 초반의 여성 한 명이 있다. 항상 열심히 집중하는 김민지님이다. 특별한 묘사 없이 자신의 특징을 잘 나타낸 신선한 그림. 뭉크의 사춘기가 연상되는 시크릿하고 독자적이며 첫눈 보숭이 같은 느낌이다. 철새가 허공에 떠 가는 끝에, 한 장의 달력이 마지막 잎새인 듯 차갑게 떨고 있다. 외딴 산골 집 문풍지 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