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무속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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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이 끼었다고 H는 속으로 말했다. 특별한 이상향도 없지만 계절풍처럼 내 안이 요동칠 때면 배낭을 멨다. 다시 그런 미래가 온다면 거친 길보다 편하고 뻔한 여행을 하고 싶다. 아름다움 뒤에 누추하고 불편했던 것들은 젊음을 무기로 각박하고 빈약한 삶을 헤쳐 나갔던 것과 양립했다. 빌딩 숲속에 과학과 화려한 실존이 존재한다면 변두리 빈민가엔 늘 근심과 걱정과 실체 없는 허구가 난립한다.

 

매교동 변두리는 무속 신앙이 널브러졌다. 2년 전에 그린 그림을 살펴보니 지금도 바뀐 게 없다. 보이지 않는 담벼락 안에 빨간 지붕이 덮여 있다. 연등이 빨랫줄처럼 걸렸고 장대에 나치 기를 뒤집어 놓은 무당의 깃발이 매달렸다. 징 소리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허약한 곳에 여린 삶이 신을 의탁해 살아가고 있다. 액운을 덜어내려고, 가로막힌 앞을 뚫어내고 가뭄에 봇물 터지듯 생이 윤택하게 자라길 빈다. 꽃 대신, 계룡 할아버지, 백년암, 천상암, 태을연사, 천신보살, 설악산 박보살, 한국역리연구소, 신가림, 사주, 작명, 병굿 등 무속인과 동종의 집들이 산재해 있다.

 

미신의 삭정이 같은 영혼은 항상 호두알처럼 엉켜 정상적인 삶을 왜곡하고 있다. 떠날 때 무겁지 않게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지. 마음의 깊이를 채우되 헛된 욕망을 비우고 살자. 생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빛나는 계절과 예지를 본다. 훈자의 살구처럼, 우물가의 앵두처럼, 미켈란젤로의 눈동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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