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산 아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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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돈가스집 앞에 여태 없던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간판엔 ‘산 아래 시‘라는 산뜻한 글이 담겼다.

 

‘시를 만나, 시에 말 걸며, 시의 시간을 꽃 피우고 있습니다’라는 문장도 시적이다. 이 거리에 조금 어색하지만 반갑다. 서점 전멸의 시대에 시집 전문 책방이라니,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매대엔 컬러풀한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으나 대부분 무명 시인이다. 모두 새 책인데 어떻게 된 걸까. 책방 주인은 유명 작가들의 책은 취급하지 않는다며 의미심장하게 응수했다. 시의 내용이 맑고 간혹 비장했다. 어쩜 무명 시인이 더 치열할 수 있다. 기웃대다가 그냥 나오기가 민망해 이상의 시집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손에 담았다. 주인은 덤으로 동인지 한 권을 줬다. 아는 작가라곤 이것뿐인가 했더니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포켓북으로 빈티지하게 놓여 있어 갖고 싶었다. 그러나 책에 정가가 없어 한동안 망설였더니 그냥 가져가란다. 덤으로 시 동인지 한 권도 줬다. 이 책방 주인 돈 벌려고 책방 차린 게 아닌가 싶다. 책값을 모르니 돈을 받을 수 없다며 행운이라고 한다. 이런 시가 생각났다.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천천히 걸어 나오는 저물녘 도서관/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혼자 걸어 들어갔는데/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가 않은/도서관.’ -송경동 ‘삶이라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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