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승진발령의 무효와 부당이득

법률에 따라 설립된 A공사가 외부 업체에 의뢰하여 승진 시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후 ‘일부 직원들이 사전에 위 외부 업체로부터 시험문제와 답을 제공받아 시험에 합격했고 그 대가로 금전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 직원들에 대한 승진발령은 취소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그동안 승진된 직급에 따라 근무하고 급여를 받아왔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직원들의 승진이 중대한 하자로 취소돼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상, 이들은 승진 전의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을 받아야 하고 승진가산급은 받을 수 없으므로 결국 이들이 승진 후 받은 급여상승분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부당이득으로서 공사에게 반환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와 같이 판단한 A공사는 위 직원들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원심 법원은 승진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급여상승분은 해당 직원들에게 귀속되는 것이 옳다는 전제 하에 A공사가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22년 8월19일 선고 2017다292718 판결)의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우선, 대법원은 승진발령이 무효임에도 근로자가 승진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해 온 경우,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있어 승진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지급됐다면, 근로자가 지급 받은 임금은 제공된 근로의 대가이므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사용자가 이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어 승진 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가 승진 전과 견주어 실질적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직급의 상승 만을 이유로 임금이 상승한 부분이 있다면 근로자는 임금 상승분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승진이 무효인 이상 그 이득은 근로자에게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으로서 부당이득에 해당하므로 이를 사용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대법원은 여기서 승진 전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 사이에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여부는 제공된 근로의 형태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근로자가 승진 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하면서 승진된 직급에 따른 보수를 지급받았으나 이후 승진 발령이 무효가 된 경우, 대법원은 당해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성립 여부 및 부당이득의 범위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박승득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소멸한 저당권에 기하여 개시된 경매의 효력

타인으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고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람이 그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근저당권자는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해 그 매각대금에서 법정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그런데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채무자가 그 채무를 변제해 근저당권이 소멸됐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취소 신청이 없어 경매가 그대로 진행된 경우, 경매신청의 근거인 담보권이 없어졌음에도 그대로 진행된 경매를 유효한 것으로 보아 낙찰받은 매수인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근저당권부 채권을 변제해 근저당권을 소멸시킨 소유자(채무자)가 억울하게 부동산을 뺏기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까? 민사집행법 제267조(대금완납에 따른 부동산 취득의 효과)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은 담보권 소멸로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경매절차의 안정성과 공신력 보호를 위해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 등으로 경매절차가 취소되지 않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경매는 유효하고 매수인은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경매 신청으로 인한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소멸하거나 그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었는데도 그에 기초한 경매가 진행되어 매각됐을 경우에도 그 경매는 유효한가? 예를 들어 A 소유 부동산에 B가 근저당권을 설정한 후 여러 건의 가압류가 경료되자, A가 B에 대한 채무를 모두 갚았음에도(또는 아예 B에 대한 채무가 전혀 없이 허위로 근저당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B가 임의경매를 신청해 매각대금을 선순위로 모두 배당받고 가압류 채권자는 배당받지 못하게 한 뒤, 배당받은 금원을 다시 A에게 반환하는 편법으로 경매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그 경매를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052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음과 같이 보았다. 임의경매의 정당성은 실체적으로 유효한 담보권의 존재에 근거하므로,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다면 그에 기초한 경매는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특히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당시 실행하고자 하는 담보권이 이미 소멸했다면, 그 경매개시결정은 아무런 처분권한이 없는 자가 국가에 처분권(즉 경매절차를 통한 처분권)을 부여한 데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서 위법하다. 반면 일단 유효한 담보권에 기하여 경매개시결정이 개시됐다면, 이는 담보권에 내재하는 실체적 환가권능에 기초해 그 처분권이 적법하게 국가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담보권의 소멸은 그 소멸 시기가 경매개시결정 전인지 또는 후인지에 따라 그 법률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민사집행법 제267조는 경매개시결정이 있은 뒤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만 공신력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것이고,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 그 담보권에 기한 경매의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이는 소멸한 담보권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와 현재의 등기제도와 조화된다고 볼 수 없다. 요컨대 이미 소멸한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가 개시되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그 경매는 무효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자 공동불법행위 책임 범위

민법 제760조는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면서(제1항) 방조자도 공동불법행위자로 보고 있다(제3항). 그런데 여기에서의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공동불법행위 책임은 가해자 각 개인의 행위에 대해 개별적으로 그로 인한 손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공동으로 가한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임의 범위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가해자들 전원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함께 평가해 정하고 가해자 각자가 손해배상액의 전부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 1인이 가공한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그 가해자의 책임 범위를 손해배상액의 일부로 제한하여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위와 같은 공동불법행위 책임의 원칙적 법리에 의한다면, 과실에 의한 방조로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에도 그 방조자 역시 전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게 된다면, 과실에 의한 방조자에 대해 너무나도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 이에 판례는,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제한한다. 따라서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해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그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판례는, 타인의 불법행위가 계속되는 중 공동불법행위자의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가 이뤄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와 그 이전에 타인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과실에 의한 방조자는 그 이후의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이 있다고 한다. 타당한 결론이라 할 것이다. 임한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마이너스 통장에 착오 송금한 경우 은행으로부터 반환받을 수 있을까?

갑은 A가 은행에 개설한 예금계좌로 3천만원을 송금했다. 그 계좌는 통상 ‘마이너스 통장’이라 부르는 것으로, 잔고가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은행이 상당액을 자동적으로 대출한 것으로 하며(이른바 ‘종합통장 자동대출’) 계좌에 입금이 이뤄지면 그 대출금에 충당한다. 갑이 A에게 송금했을 때 위 계좌의 잔고는 마이너스 8천400만원이었다. 그런데, 사실 갑은 본래 B에게 금전을 지급할 생각이었다. 즉 갑은 지급의 법적 원인이나 의사가 없었음에도 착오로 A의 계좌로 잘못 송금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갑은 다음 날 곧바로 은행에 잘못 입금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은행은 이를 거부했고 갑은 은행을 상대로 위 착오 이체된 금전의 반환을 구하는 부당이득 반환의 소송을 제기했다. 위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갑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대법원 2022년 6월30일 선고 2016다237974 판결 참조) 종합통장 자동대출에서 은행이 대출약정에서 정해진 한도로 채무자(A)의 약정계좌로 신용을 공여한 후 채무자가 잔고를 초과해 약정계좌에서 금원을 인출하면 잔고를 초과한 금원 부분에 한해 자동적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그 약정계좌에 다시 금원을 입금하면 그만큼 대출채무가 감소한다.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가 예금거래기본약관의 적용을 받는 예금계좌인 경우 그 예금계좌로 송금의뢰인(갑)이 자금이체를 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A)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은행에 대해 위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다만 약정 계좌의 잔고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계좌로 자금이 이체되면, 그 금원에 대해 수취인의 예금채권이 성립함과 동시에 대출약정에 따라 은행의 대출채권과 상계가 이뤄지고 그 결과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게 된다. 따라서, 설령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해 이체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될 뿐,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은행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이 펼치는 논리는 다소 복잡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이 사건에서 갑이 착오로 잘못 송금해 이익을 얻은 상대방은 A이지 은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갑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대방도 A일 뿐 은행이 아니다. 따라서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갑의 소송은 기각될 수밖에 없다. 계좌이체 방법으로 송금할 때 정당한 수취인을 확인하고 정확히 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어떤 이유로 송금 과정에서 이미 오류가 발생한 경우 그 이후에 취해야 하는 법적 조치를 선택하는 때에도 신중해야 한다. 만일 착오로 엉뚱한 사람에게 돈을 송금한 경우라면,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해야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재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행방불명인 외국인 배우자와 이혼 방법

A씨는 베트남 국적의 B씨와 2010년 1월1일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이후 A씨와 B씨는 대전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B씨는 2012년 12월31일 가출해 현재 소재불명인 상태다. 이제 A씨가 B씨와의 혼인관계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소송을 제기해야 할까? 다양한 쟁점 중 관할과 송달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소송의 관할 문제다. 관할이란 어떤 법원(재판부)이 어떤 사건을 담당해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서, 가사소송법에 따라 그 관할을 정한다. 이런 사안에서 서울가정법원이 무조건 관할법원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가사소송법 제22조에 따르면, 혼인의 무효나 취소, 이혼의 무효나 취소 및 재판상 이혼의 소의 관할을 정하면서 부부가 같은 가정법원의 관할 구역 내에 보통재판적이 있을 때에는 그 가정법원(제1호), 부부가 마지막으로 같은 주소지를 가졌던 가정법원의 관할 구역 내에 부부 중 어느 한쪽의 보통재판적이 있을 때에는 그 가정법원(제2호) 각 그 관할법원이 되고, 이는 전속관할이다. 따라서 외국인 배우자가 현재 소재불명이더라도 과거 국내에서 일정한 생활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가사소송법 제22조 제2호가 적용돼야 한다(서울가정법원 2017. 3. 17. 선고 2016르654 판결). 결국 A씨는 대전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위와 같이 관할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이혼 소장을 송달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A씨는 혼인신고서에 기재된 피고(B씨)의 외국 주소지를 확인해야 하고, 출입국 외국인청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 등으로 피고의 주소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피고(B씨)의 외국 주소지가 확인됐다면 외국으로 소장을 송달하기 위한 절차인 번역 공증 및 영사송달촉탁 신청을 통해 소송자료를 송달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송달불능처리가 되거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면 외국 공시송달을 통해 소송이 진행된다. 공시송달이란 상대방의 소재지 또는 행방이 불분명해 소장 등 소송관련 서류를 송달하기 어려운 경우 그 서류를 법원 게시판 등에 일정기간 동안 게시함으로써 서류를 상대방(피고)에게 송달한 것과 같은 효력을 발생시키는 송달 방법이다. 원칙적으로 공시송달은 실시한 날로부터 2주가 경과해야 송달된 것으로 보지만, 외국 공시송달의 경우 2개월이 경과해야 송달된 것으로 본다. 공시송달 기간이 도과한 경우 이혼청구 인용판결이 내려지는데, 다만, 공시송달에 의한 판결은 추후보완이라는 절차를 거쳐 다시 재판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의를 요한다. 소송의 상대방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소송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 그 사유가 없어진 날로부터 2주 내(외국 거주 시 30일)에 추후보완 항소 등의 절차를 개시하면 다시 재판 등 소송행위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처분문서의 증거력에 대하여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로펌에 입사해 각종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인데, 변호사들이 실제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아 주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등장인물 중 14년 차 정명석 변호사(강기영 분)가 한 대사 중 법조인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만한 것을 소개한다. “14년 차 변호사로서 가장 난감한 게 뭔 줄 알아요? 의뢰인이 이미 서명날인 해 버린 문서예요. 이 처분문서가 얼마나 무서운지.”가 바로 그것이다. ‘처분문서’가 무엇이기에 법조인들을 난감하고, 무섭게 만드는 것일까. ‘처분문서’란 증명하고자 하는 법률행위가 그 문서 자체로 이뤄진 문서로서 각종 계약서, 합의서, 각서, 유언서 등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문서’가 있는데, 작성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한 바를 기재한 문서로서 대표적인 예로 일기, 편지 등이 있다. 처분문서와 보고문서는 위와 같이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그보다도 법정에서 ‘문서의 증거력’ 즉, 그 문서가 요증사실의 증명에 기여하는 힘에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문서의 증거력은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을 의미하는 형식적 증거력과 그 문서가 요증사실을 증명하는데 기여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실질적 증거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처분문서는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이 인정돼 형식적 증거력이 인정되면, 실질적 증거력이 사실상 추정된다. 결국,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법률행위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하고, 합리적인 이유 제시 없이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반면, 보고문서는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이 인정돼 형식적 증거력이 인정되더라도 실질적 증거력이 추정되지 않고, 법관의 자유심증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과 다른 약정이 인정될 경우 ‘그 기재 내용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작성자의 법률행위를 해석할 때에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202조, 대법원 2006년 4월13일 선고 2005다34643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위와 같이 진정성립이 인정된 처분문서의 실질적 증거력이 배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가 ‘의뢰인이 이미 서명날인 해 버린 문서’를 난감하고 무서운 것으로 본 이유는 형식적 증명력이 부여된 처분문서는 실질적 증거력이 추정되므로 사실상 재판에서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사실관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다솔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임차인의 유치권 행사

유치권은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해 생긴 채권을 가지는 경우에, 그 채권의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민법 제320조 제1항). 그렇다면 부동산 임차인도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과 비용상환청구권(필요비, 유익비)을 이유로 임대차 목적물에 대해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②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고, ③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에 관해 생긴 채권이 ④ 변제기에 있어야 하며, ⑤ 유치권 배제 특약이 없어야 한다. 유치권의 성립요건 중 특히 ‘유치권이 해당 목적물에 관하여 생긴 것(견련관계)’의 해석이 문제가 되는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그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라 함은, 유치권 제도 본래의 취지인 공평의 원칙에 특별히 반하지 않는 한,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는 물론이고 채권이 목적물의 반환청구권과 동일한 법률관계나 사실관계로부터 발생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7년 9월7일 선고 2005다16942 판결 참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① 우선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은 그 건물 자체에 관해 생긴 채권이라 할 수 없으므로 견련관계가 인정되지 않고(대법원 1976. 5. 11. 선고 75다1305 판결 참조), 따라서 임차인은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이유로 유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다만 임차인은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해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기 전까지 임대차 목적물을 점유할 수는 있을 것이다). ② 다음으로 비용상환청구권(필요비, 유익비)은 임대차 목적물 자체의 보존이나 가치증진에 사용된 금원이므로 견련관계가 인정되고, 이에 기하여 임차인은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건물의 임차인이 임대차관계 종료 시에 건물을 원상으로 복구하여 임대인에게 명도하기로 약정한 것은 건물에 지출한 각종 유익비 또는 필요비의 상환청구권을 미리 포기하기로 한 취지의 특약이라고 볼 수 있어 임차인은 유치권을 주장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1975년 4월 22일 선고 73다2010 판결 참조). 따라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원상복구 특약을 맺은 경우에는 비용상환청구권에 따른 유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준행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근로복지공단에 구상의무가 있는 제3자의 범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며, 재해 예방과 근로자의 복지 증진 등을 위한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설치돼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한다. 그런데 만일 당해 업무상 재해가 제3자의 행위로 발생했다면, 근로복지공단은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보험급여를 지급받은 근로자가 제3자에 대해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할 수 있다(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만일 동료 근로자(B)가 의도적으로 가해행위를 해 근로자(A)가 피해를 입은 경우를 상정해 보자. 이 사안도 구체적 사정에 따라 업무상 재해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고, 이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A에게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A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한 근로복지공단은 동료 근로자(B)에게 구상할 수 있을까? 즉 동료 근로자가 구상권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에 해당할까? 이 사건을 심리한 원심 법원은 동료 근로자의 가해행위가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에는 동료 근로자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동료근로자(B)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에서 정한 ‘제3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 사건의 상고심을 진행한 대법원(2022년 8월 19일 선고 2021다263748 판결)은 원심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파기했다. 위 판결에서 대법원이 근거로 제시한 논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상권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란 재해 근로자와 산업재해보상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 근로자에 대해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다른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 그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에 그러한 가해행위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이다. 따라서 그 위험이 현실화해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궁극적인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보험적 또는 책임보험적 성격에 부합한다. 근로자가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 근로자의 행위로 인해 업무상의 재해를 입은 경우에 그 동료 근로자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 근로자와 산업재해보상보험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에서 업무상 재해를 고의로 일으킨 동료 근로자(B)는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에 따른 제3자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은 B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승득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자녀가 어머니 소속 종중의 종중원이 될 수 있을까?

‘종중(宗中)’이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 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이다. 종중의 이런 목적과 본질에 비춰 볼 때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 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여성도 종중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의 연속선상에서 종중원인 그 여성과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도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A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子)는 부(父)의 성(姓)과 본(本)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A는 아버지의 성과 본(예를 들어 ‘김해 김씨’)을 따라 ‘김ㅇㅇ’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졌다. 그런데 민법 제781조 제6항은 ‘자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이후 A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어머니의 성과 본(예를 들어 ‘전주 이씨’)으로 변경신고(‘이ㅇㅇ’으로 변경 신고)를 했다. 이후 A의 어머니는 자신이 속한 종중(예를 들어 ‘전주 이씨 ○○파 종중’)에 A가 종원 자격이 있음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종중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A는 위 종중을 상대로 법원에 종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60940 판결 [종원(宗員)지위 확인 사건])은 A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즉 A가 ‘전주 이씨 ○○파 종중’의 종원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제시한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종중에 관한 종전의 관습법은 종중의 구성원을 성년 남성으로 제한해 왔지만 지금은 성년 여성도 당연히 종원으로 보고 있다. 성년 여성의 후손이 모계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관습도 법적 규범으로서 효력을 상실했다. 자녀의 성과 본은 부성주의를 원칙으로 하지만 예외로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할 수 있고 출생신고 이후에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모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처럼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변경된 자녀는 더 이상 부의 성과 본을 따르지 않아 부가 속한 종중에서 탈퇴하게 되는데 모가 속한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본다면 종중의 구성원으로서 속할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돼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종중 관련 법제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종중 관련 법률분쟁을 직면하고 있는 분들은 좀 더 치밀하게 사안을 검토해 변화된 법제가 제시하는 중요한 논점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묵시적 채무승인에 관하여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채무승인은 이른바 관념의 통지로서, 시효이익을 받는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채권을 상실하게 될 자 또는 그 대리인에 대해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한다. 또한 채무승인은 시효의 이익을 받는 사람이 상대방의 권리 등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방적 행위로서, 그 권리의 원인·내용이나 범위 등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채무자가 권리 등의 법적 성질까지 알고 있거나 권리 등의 발생 원인을 특정해야 할 필요도 없다. 판례는 채무승인이 있는지는 문제가 되는 표현행위의 내용·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칙, 사회일반의 상식에 따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한다. 판례에 따르면, 채무승인의 표시 방법으로 아무런 형식도 요구하지 않고 있고, 그 표시의 방법이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불문한다. 묵시적인 채무승인의 표시는 채무자가 그 채무의 존재 및 액수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그 표시를 대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가 그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그 표시를 통해 추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해지면 족하다. 판례에 따른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효완성 전에 채무의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는 채무승인으로서의 효력이 있어 채무 전부에 관해 시효중단의 효력이 발생한다. 또한 갑이 행정소송에서 을측 증인으로 출석해 을의 소송대리인의 신문에 대답함에 있어서, “을로부터 금 3천500만 원을 차용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면 이는 자신의 을에 대한 대여금채무를 승인한 것으로서 소멸시효중단사유인 채무의 승인에 해당한다. 회생절차 내에서 이루어진 변제기 유예 합의도 채무에 대한 승인이 전제된 것이므로 채무승인의 효력이 있다. 갑이 을의 명의로 부동산을 매수하고 등기명의를 신탁했으나 실명등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에 위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을이 명의신탁받은 부동산에 관한 세금의 납부를 요구하는 등 갑의 대내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행태를 보였다면 갑에 대해 소유권등기를 이전·회복해 줄 의무를 부담함을 알고 있다는 뜻을 묵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임한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위법한 체포상태서 음주측정 거부는 무죄

법치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법관의 영장이 없는 한 구속되거나 수사기관에 강제로 연행되지 아니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범죄인이라 하더라도 구속이나 강제연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관의 사전영장이 필요하다. 예외적으로 긴급체포(중대한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체포하는 것)와 현행범인 체포(바로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는 것)에는 법관의 사전영장이 필요하지 않으나, 이 경우에도 긴급체포나 현행범인 체포가 적법하게 되기 위해서는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 요건을 갖추지 않은 긴급체포나 현행법인 체포는 불법이 된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현행범도 아닌데, 경찰관이 ‘조사할 것이 있으니 경찰서로 같이 가자(동행요구)’라고 요구하거나, 노상에서 ‘정지시킨 후 인적사항 등을 묻는 경우(불심검문)’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반드시 경찰서까지 동행해야 하는가 또 불심검문에 응해야 하는가. 현행범인이란 범행 중이거나 범행 직후에 현장에서 범행이 발각된 범인을 말한다. 범행현장에서 범행이 발각된 자가 아닌 경우에는 비록 범인이 범행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될지라도 법관의 영장 없이는 체포하거나 강제구인할 수 없다. 실제로 진행됐던 재판 사례. A씨가 2019년 9월20일 오후 8시42분께 자신의 집 앞에 차량을 주차한 후 택시를 타고 같은 날 오후 8시52분께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술에 취해 차량을 운전하고 소란까지 피운다’는 택시 기사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사안을 심리한 법원은 “음주운전을 했다는 택시기사들의 진술이나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피고인의 외관은 피고인이 과거 어느 시점에 음주운전을 했다는 점에 관한 정황증거는 될 수 있겠으나, 이 같은 사정만으로는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보아 피고인이 방금 음주운전 범행을 실행한 범인(현행범인)이라는 점에 관한 죄증이 명백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그 요건(피고인이 범죄 현장에서 발각되었음)을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위법하고, 그와 같이 위법한 체포상태에서 이뤄진 음주측정 요구 또한 위법하다고 봐야 하므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인권침해 사례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법의 보호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평소 신체자유에 관한 법의 보호규정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이재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상속한정승인 후 상속재산이 경매되더라도 양도세 내야 할까

망인인 A씨에게는 10억원의 은행 빚이 있었으며, 유일한 상속인인 아들 B씨가 알고 있는 상속재산은 A씨 명의로 된 시가 8억원의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B씨는 위 아파트만 상속하기 위해 한정승인을 신청했고, 위 신청은 수리됐다. 이후 위 아파트는 은행의 경매신청으로 인해 경매에 넘어갔고, 매각대금은 전부 1순위 채권자인 은행이 배당받았다. 이 경우에도 B씨는 위 아파트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야 할까? 먼저, 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상속으로 취득하게 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받는 것을 의미한다. 상속인의 한정승인 신청에 따라 법원이 한정승인신고를 수리하게 되더라도 피상속인의 채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법원은 상속재산이 상속채무의 변제에 부족하더라도 상속채무전부에 대한 이행판결을 선고한다. 다만, 상속의 한정승인으로 상속인은 상속으로 인해 물려받을 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변제할 수 있게 되므로 판결문의 주문에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집행할 수 있다는 취지가 명시된다. 그렇다면, B씨의 경우처럼 상속한정승인 후 상속받은 재산이 임의 경매로 넘어간 경우에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할까? 대법원에 따르면 저당권의 실행을 위한 부동산의 임의 경매는 양도소득세의 과세대상인 ‘자산의 양도’에 해당하고, 이 경우 양도소득인 매각대금은 부동산의 소유자에게 귀속되며, 그 소유자가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라도 그 역시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권리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해 해당 부동산의 소유자가 되므로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0두13630 판결). 즉, 한정승인을 한 뒤 상속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매에 의해 상속재산이 처분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양도소득세는 상속인이 부담해야 한다. 결국 B씨는 상속의 한정승인으로 인해 취득한 재산은 하나도 없이 ‘상속포기를 하였더라면 부담하지 않아도 될 양도소득세’만 부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상속재산 중 양도소득세의 부담이 큰 고액의 부동산이 있는 동시에 상속 후 부담해야 하는 채무가 상속 부동산의 가액보다 큰 경우에는 상속의 한정승인보다는 상속포기를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이 경우 본인만 상속포기 하는 것이 아니라 4순위 상속인인 4촌 이내의 방계혈족까지 모두 상속을 포기하는 것이 향후 발생할 법적 분쟁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는 경우

혼인은 이혼에 의해 해소된다. 부부는 협의해 이혼하거나(민법 제834조) 부부의 일방은 법률에 정해진 사유가 있는 경우에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은 재판상 이혼사유를 제840조 제1호부터 제5호까지 개별·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고, 제6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두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2009년 12월24일 선고 2009므2130 판결 참고)은 위 제6호를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한다. 한편 대법원은 1965년부터 이른바 ‘유책주의’ 즉,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에 그 상대방에게만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사유를 판시하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 더해 ‘이혼을 청구하는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돼 쌍방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에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사유를 확장했다(2015년 9월 15일 선고 2013므568 판결 참고). 최근 일방 배우자가 과거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에서 기각 판결이 확정된 이후 새롭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례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구체화한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원고와 피고는 종전 이혼소송의 변론종결 이후에도 5년째 별거 중이고, 쌍방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고는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상당한 고통임을 토로하면서 새로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혼인계속의사를 밝히면서 원고가 먼저 가출했다는 사정을 들어 원고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요구만을 반복할 뿐이었는데, 원고는 별거 중에도 사건본인(자녀)에 대해 양육비를 꾸준히 지급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례에서 과거에 원고가 청구한 이혼소송이 기각됐더라도 그 후로 피고가 혼인관계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혼인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반면 원고는 피고와 사건본인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해 유책배우자로서의 유책성이 희석됐다고 보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정다솔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점유취득시효

우리 민법은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라고 규정해 부동산에 대한 점유취득시효를 인정하고 있다(민법 제245조 제1항). 점유취득시효는 소유의 의사인 자주점유를 그 요건으로 하는데, 이는 객관적으로 점유취득의 원인이 된 점유권원의 성질에 의해 결정하고, 점유권원의 성질이 분명하지 아니할 때에는 점유자가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점유자의 점유가 자주점유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타주점유임을 주장하는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권원의 성질상 증여, 매매에 의한 소유권 취득은 자주점유지만, 지상권자, 임차권자는 타인의 소유를 전제로 하므로 타주점유이다. 자주점유의 추정과 관련해 대법원은 “점유자가 점유 개시 당시에 소유권 취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법률행위 기타 법률요건이 없이 그와 같은 법률요건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타인 소유의 부동산을 무단점유한 것임이 입증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점유자는 타인의 소유권을 배척하고 점유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로써 소유의 의사가 있는 점유라는 추정은 깨졌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7. 8. 21. 선고 95다2862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 점유자는 해당 부동산에 대한 등기를 해야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만약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음에도 부동산에 대한 등기를 하기 전에 해당 부동산의 소유자가 변경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점유자는 해당 부동산의 새로운 소유자인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소유자가 변경된 시점부터 다시 20년의 점유기간을 충족해 점유취득시효 완성 당시의 소유자에게 점유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있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취득시효가 완성된 후 취득시효를 주장하거나 이로 인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기 이전에는 부동산 소유자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효취득 사실을 알 수 없으므로 이를 제3자에게 처분했다 하더라도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부동산의 소유자가 취득시효의 완성 사실을 알 수 있는 경우에 해당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줌으로써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에 빠지게 돼 취득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이는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 또한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가 부동산 소유자의 이와 같은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했다면 이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로서 무효이다. 이준행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의사는 상인일까?

상인(商人)이란 단어는 시민들이 일상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상인’이 엄연히 법률용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여기질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인’은 상법 제1편 제2장의 제목으로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법률 개념이다. 이처럼 ‘상인’ 개념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상인’과 ‘상인 아닌 사람’에 대해 적용되는 법률 규정에 일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반인(상인 아닌 사람) A가 일반인 B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사안에는 민법의 규정이 적용된다. 따라서 A의 대여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법정이율은 5%이다. 그러나 대여자나 차용자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상인이라면 민법이 아니라 상법이 적용돼, 위 대여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고 법정이율은 6%이다. 그렇다면 ‘상인’은 어떤 사람일까? 자기명의로 상행위를 하는 사람이 상인이다. 여기서 상행위란 영업으로 하는 매매, 임대차 등의 행위들을 의미하는데 그 세부 종류는 상법 제46조에 열거돼 있다. 다만, 점포 기타 유사한 설비에 의하여 상인적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사람은 상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상인으로 본다. 상인이 (영업 그 자체가 아니라) 영업을 위해 하는 행위도 상행위에 해당한다. 만일 독자 여러분이 법원에 의해 ‘상인’이라고 인정된다면, 또는 상인이 아니라고 인정된다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예컨대 의료법인에 근무하다 퇴직한 의사들이 의료법인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 퇴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최근 대법원(2022년 5월 26일 선고 2022다200249 판결)은 의사나 의료법인은 상인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원고들의 임금 등 채권은 상사채권이 아니므로, 원고들은 피고로부터 미지급 임금 원금에 민사 법정이율(5%)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만일 대법원이 의료법인이나 의사를 ‘상인’으로 인정했다면, 원고들은 상사 법정이율(6%)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의사는 무슨 이유로 상인이 아닌가? 대법원에 따르면, 의료법은 의사의 영리추구 활동을 제한하고 직무에 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한다. 개별 사안에 따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활용해 진료 등을 행하는 의사의 활동은 상인의 영업활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재 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나 요청도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의사나 의료기관은 상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상인일까? 과거 대법원(2007년 7월 26일자 2006마334 결정)은 (위 대법원 판결과 비슷한 취지에서)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15년 이상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대법원의 판례를 충실하게(?) 따르는 법조인답게 변호사는 결코 상인이 아님을 명심하고 업무에 전념하고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 ‘상인’이 되어버린 듯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김종훈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지역주택조합 지위 상실자의 납입금 반환시기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해 조속히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우선 가입계약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그 의미를 이해한 다음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예기치 않은 손해를 예방할 수 있다.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 중 조합원 지위를 상실한 자에게 납입금을 반환할 시기를 ‘대체 계약자 대금이 입금 완료되었을 때’로 제한한 조항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납입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시기가 불확실해 계약자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서게 된다. 위와 같은 납입금 반환시기 제한 조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공정을 잃은 약관조항으로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효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대법원(2022년 5월 13일 선고 2020다217380 판결)은 아래와 같은 논거를 들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조합 설립 전에 미리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그 분담금 등으로 사업부지를 매수하거나 사용승낙을 얻고, 그 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소유권을 확보하고 사업승인을 얻어 아파트를 건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진행과정에서 조합원의 모집, 재정의 확보, 토지매입 작업 등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가 많다. 따라서 최초 사업계획이 변경되거나 당초 예정했던 사업의 진행이 지연되는 등의 사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특성상 지역주택조합이 자격을 상실하거나 자격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조합원에 대해 즉시 이미 납부한 분담금을 반환해야 한다면, 예기치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조합의 자금계획에 차질이 발생해 다수의 잔존 조합원들의 이익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자격을 상실한 조합원 등에 대한 분담금 반환시기를 대체 계약자의 대금이 입금되었을 때로 정한 것은 타당성이 인정된다. 또한 조합가입계약의 반환시기 제한조항은 조합의 분담금 반환의무 자체를 면제하거나 부당하게 경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반환시기 등만을 제한하고 있을 뿐이며, 조합원 측의 사정(탈퇴, 조합원 자격의 상실, 제명 등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한 조합원의 지위 상실)에 기초해 적용된다. 반환시기 제한조항에서 정한 분담금의 환불시기인 ‘대체 계약자 대금이 입금 완료되었을 때’는 일종의 불확정기한이다. 불확정기한은 위 사실이 발생한 때 또는 발생하지 아니한 것으로 확정된 때에 기한이 도래하므로, 조합원은 자신을 대체할 다른 계약자가 입금을 완료한 경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체 계약자의 대금 입금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기한의 도래를 이유로 분담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이상의 근거로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한 자에 대해 대체 계약자가 대금 입금을 완료한 때로 반환시기를 정한 반환시기 제한조항이 약관법 제6조 제1항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따라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려는 경우 이러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계약서 문구의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박승득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판촉물과 상표법 위반

상표법은 ‘상표’를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장’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상표를 등록받은 경우 상표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처럼 타인이 등록한 상표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거나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교부·판매·위조·모조 또는 소지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행위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고 형사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여기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란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한 것을 양도 또는 인도하거나 그 목적으로 전시·수출 또는 수입하는 행위 등을 의미하고, 이때 ‘상품’은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을 의미한다. 실제 사례를 보면 A가 타인이 등록한 상표를 동의 없이 임의로 표시한 수건(일반 거래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유통되는 수건 제품과 외관이나 품질 등이 유사함)을 주문 제작해 일부는 거래처에 판매하고, 일부는 다른 거래처에 사은품 내지 판촉용으로 제공했다. B도 위 수건이 상표권자의 허락 없이 임의로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일부를 자신의 거래처에 판촉용으로 무상 제공했다. 이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A가 거래처에 판매한 수건에 대해서만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상품’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 부분 상표법 위반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와 B가 사은품 내지 판촉용으로 무상제공한 수건에 대해서는 판촉물에 불과할 뿐 상표법상 상품이 아니라고 봐 이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2022년 3월 17일 선고 2021도2180 판결)은 위 수건의 외관·품질 및 거래 현황 등에 비춰 볼 때, 위 수건은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으로 상품에 해당하고, 위 수건 중 일부가 사은품 또는 판촉물로서 무상으로 제공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상으로 제공된 부분만을 분리해 그 상품성을 부정할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위 수건에 위 상표를 표시하거나 위 상표가 표시된 수건을 양도하는 행위는 모두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를 인정했다. 이처럼 설사 무상으로 또는 판촉용으로 제공할 목적이라 하더라도 타인이 등록한 상표를 표시한 물건을 임의로 제작, 양도한다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타인이 등록한 상표를 사용하는 행위를 할 때 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배우자에 대한 증여와 특별수익

갑은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배우자인 을에게 부부가 함께 살던 주택을 증여했는데, 위 주택은 갑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후 갑이 사망하자, 갑의 자녀인 병은 을을 상대로 유류분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병의 유류분반환 청구는 인정될 수 있을까? 민법 제1112조는 상속인의 유류분을 보장하고 있고, 제1115조 제1항은 「유류분권리자가 피상속인의 증여 및 유증으로 인해 그 유류분에 부족이 생긴 때에는 부족한 한도에서 그 재산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민법 제1008조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자가 있는 경우에 그 수증재산이 자기의 상속분에 달하지 못한 때에는 그 부족한 부분의 한도에서 상속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의 취지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에게서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에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수증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뤄 구체적인 상속분을 산정할 때 이를 참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공동상속인의 유류분반환 청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의 다른 상속인에 대한 증여가 유류분반환의 대상인 특별수익에 해당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어떠한 생전 증여가 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는 피상속인의 생전의 자산, 수입, 생활수준, 가정상황 등을 참작하고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형평을 고려해 당해 생전 증여가 장차 상속인으로 될 자에게 돌아갈 상속재산 중 그의 몫의 일부를 미리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해야 하는데, 생전 증여를 받은 상속인이 배우자로서 일생 동안 피상속인의 반려가 되어 그와 함께 가정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헌신하며 가족의 경제적 기반인 재산을 획득·유지하고 자녀들에게 양육과 지원을 계속해 온 경우, 생전 증여에는 위와 같은 배우자의 기여나 노력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실질적 공동재산의 청산, 배우자 여생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 등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그러한 한도 내에서는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더라도 자녀인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공평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0다66644 판결 참조). 물론 피상속인의 배우자에 대한 증여가 모두 특별수익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위 사안의 경우 갑과 을의 혼인생활의 내용, 혼인의 기간, 갑의 재산 형성·유지에 을이 기여한 정도, 을의 향후 생활보장의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증여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특별수익에서 배제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재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계약명의신탁 대상 주택의 임대차

이른바 계약명의신탁의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돼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소유자와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소유권이전등기를 명의수탁자 명의로 마친 경우에는, 위 계약명의신탁 약정이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에 의해 명의수탁자가 당해 부동산의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다. 따라서 이 경우 명의수탁자로부터 주택을 임차한 임차인은 명의수탁자에 대해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계약명의신탁에서 매도인이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경우에는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이 경우 명의수탁자로부터 주택을 임차한 임차인은 보호될 수 있을까?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의하면, 명의신탁 약정 및 이에 따른 물권변동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돼 있고, 여기서 ‘제3자’는 명의신탁 약정의 당사자 및 포괄승계인 이외의 자로서 명의수탁자가 물권자임을 기초로 그와 사이에 직접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사람으로서, 소유권이나 저당권 등 물권을 취득한 자뿐만 아니라 압류 또는 가압류채권자도 포함하고, 그의 선의·악의를 묻지 않는다. 판례에 의하면, <매도인이 명의신탁 관계를 알고 있는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로부터 주택을 임차해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침으로써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의한 대항요건을 갖춘 임차인도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의 규정에 따라 명의신탁 약정 및 그에 따른 물권변동의 무효를 대항할 수 없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게 되면, 이론상 임차인은 명의수탁자만을 상대로 임차권을 주장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소유권이 원상복귀된 점을 중시하여 임차인이 매도인이나 명의신탁자를 상대로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계약명의신탁이 무효임을 이유로 명의수탁자로부터 그 소유권이전등기를 회복하게 된 매도인으로부터 다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명의신탁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다고 판시하고, 임차인이 명의신탁자를 상대로 임대인 지위의 승계를 주장하면서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임차인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미할 만한 판결이라 하겠다. 임한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양육비에 관한 사전처분

A씨는 B씨와 혼인해 미성년의 자녀 C를 슬하에 두고 있었다. 혼인관계 지속 중 B씨의 외도로 인해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현재 별거 중인 상태인데, B씨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A씨는 이혼소송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없는 것일까? 위와 같은 상황에서 A씨가 B씨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이혼소송의 제기와 동시에 양육권자 지정 및 양육비 지급을 구하는 사전처분을 신청하는 것이다. 이혼소송에서 사전처분이란 이혼소송 계속 중 임시적으로 조치가 필요할 때 소송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 일정한 처분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전처분의 종류로는 양육비 지급 사전처분, 친권자 및 양육권자 지정 사전처분, 면접교섭권 사전처분, 접근금지 사전처분 등이 있다. 사전처분은 가정법원, 조정위원회 또는 조정담당판사의 직권이나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가능하며(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 1심뿐 아니라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현행 가사소송법은 사전처분에 집행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처분결정을 받은 상대방이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강제집행을 할 수는 없다(최근 법무부가 공고한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법률(안)은 사전처분에 집행력을 부여하고 즉시항고의 집행정지 효력을 배제하는 규정을 추가하고 있다. 위 전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그대로 시행된다면 사전처분에 대한 강제집행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정법원은 직권 또는 권리자의 신청에 의해 사전처분을 이행하지 않는 자에게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가사소송법 제67조). 따라서 이 사건에서 A씨는 B씨를 상대로 양육비 지급에 관한 사전처분을 신청해 그 처분을 받을 수 있고, 만일 B씨가 법원의 처분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A씨는 과태료의 부과를 신청할 수도 있다. 반대로 B씨의 입장에서 위 사전처분 결정에 따른 양육비가 과다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사전처분에 따른 양육비 전부를 그대로 지급해야 하는 것일까? 이 경우 B씨는 양육비에 관한 사전처분 결정에 관한 즉시항고를 제기해 양육비의 금액에 관해 다시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위 즉시항고는 사전처분 결정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해야 한다. 이때 B씨는 양육비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 산정의 적정 여부, 자신이 부담하고 있는 가계부채의 금액, 사전처분 결정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는 경우 생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어 양육비의 감액을 주장할 수 있다. 조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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