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으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고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람이 그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근저당권자는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해 그 매각대금에서 법정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그런데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채무자가 그 채무를 변제해 근저당권이 소멸됐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취소 신청이 없어 경매가 그대로 진행된 경우, 경매신청의 근거인 담보권이 없어졌음에도 그대로 진행된 경매를 유효한 것으로 보아 낙찰받은 매수인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근저당권부 채권을 변제해 근저당권을 소멸시킨 소유자(채무자)가 억울하게 부동산을 뺏기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까?
민사집행법 제267조(대금완납에 따른 부동산 취득의 효과)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은 담보권 소멸로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경매절차의 안정성과 공신력 보호를 위해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 등으로 경매절차가 취소되지 않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경매는 유효하고 매수인은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경매 신청으로 인한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소멸하거나 그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었는데도 그에 기초한 경매가 진행되어 매각됐을 경우에도 그 경매는 유효한가? 예를 들어 A 소유 부동산에 B가 근저당권을 설정한 후 여러 건의 가압류가 경료되자, A가 B에 대한 채무를 모두 갚았음에도(또는 아예 B에 대한 채무가 전혀 없이 허위로 근저당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B가 임의경매를 신청해 매각대금을 선순위로 모두 배당받고 가압류 채권자는 배당받지 못하게 한 뒤, 배당받은 금원을 다시 A에게 반환하는 편법으로 경매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그 경매를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052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음과 같이 보았다. 임의경매의 정당성은 실체적으로 유효한 담보권의 존재에 근거하므로,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다면 그에 기초한 경매는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특히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당시 실행하고자 하는 담보권이 이미 소멸했다면, 그 경매개시결정은 아무런 처분권한이 없는 자가 국가에 처분권(즉 경매절차를 통한 처분권)을 부여한 데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서 위법하다. 반면 일단 유효한 담보권에 기하여 경매개시결정이 개시됐다면, 이는 담보권에 내재하는 실체적 환가권능에 기초해 그 처분권이 적법하게 국가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담보권의 소멸은 그 소멸 시기가 경매개시결정 전인지 또는 후인지에 따라 그 법률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민사집행법 제267조는 경매개시결정이 있은 뒤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만 공신력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것이고,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 그 담보권에 기한 경매의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이는 소멸한 담보권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와 현재의 등기제도와 조화된다고 볼 수 없다. 요컨대 이미 소멸한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가 개시되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그 경매는 무효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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