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商人)이란 단어는 시민들이 일상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상인’이 엄연히 법률용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여기질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인’은 상법 제1편 제2장의 제목으로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법률 개념이다. 이처럼 ‘상인’ 개념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상인’과 ‘상인 아닌 사람’에 대해 적용되는 법률 규정에 일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반인(상인 아닌 사람) A가 일반인 B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사안에는 민법의 규정이 적용된다. 따라서 A의 대여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법정이율은 5%이다. 그러나 대여자나 차용자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상인이라면 민법이 아니라 상법이 적용돼, 위 대여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고 법정이율은 6%이다.
그렇다면 ‘상인’은 어떤 사람일까? 자기명의로 상행위를 하는 사람이 상인이다. 여기서 상행위란 영업으로 하는 매매, 임대차 등의 행위들을 의미하는데 그 세부 종류는 상법 제46조에 열거돼 있다. 다만, 점포 기타 유사한 설비에 의하여 상인적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사람은 상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상인으로 본다. 상인이 (영업 그 자체가 아니라) 영업을 위해 하는 행위도 상행위에 해당한다.
만일 독자 여러분이 법원에 의해 ‘상인’이라고 인정된다면, 또는 상인이 아니라고 인정된다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예컨대 의료법인에 근무하다 퇴직한 의사들이 의료법인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 퇴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최근 대법원(2022년 5월 26일 선고 2022다200249 판결)은 의사나 의료법인은 상인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원고들의 임금 등 채권은 상사채권이 아니므로, 원고들은 피고로부터 미지급 임금 원금에 민사 법정이율(5%)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만일 대법원이 의료법인이나 의사를 ‘상인’으로 인정했다면, 원고들은 상사 법정이율(6%)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의사는 무슨 이유로 상인이 아닌가? 대법원에 따르면, 의료법은 의사의 영리추구 활동을 제한하고 직무에 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한다. 개별 사안에 따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활용해 진료 등을 행하는 의사의 활동은 상인의 영업활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재 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나 요청도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의사나 의료기관은 상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상인일까? 과거 대법원(2007년 7월 26일자 2006마334 결정)은 (위 대법원 판결과 비슷한 취지에서)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15년 이상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대법원의 판례를 충실하게(?) 따르는 법조인답게 변호사는 결코 상인이 아님을 명심하고 업무에 전념하고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 ‘상인’이 되어버린 듯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김종훈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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