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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쌀 팔아주기에 대한 소고

얼마 전 농협 경기지역본부 김준호 본부장이 안성출신 김학용 국회의원과 경기신용보증재단 박해진 이사장에게 ‘경기미 판매’와 관련해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쌀 재고량이 넘쳐 나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조촐하지만 매우 뜻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과거의 농업이 갖고 있던 영예의 쇠락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쌀을 지원해 주지 않아 쌀이 남아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과 같이 거창한 정치적인 문제의 파생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우리 ‘食’생활에서 언제부터인가 인식도 못 한 채 ‘쌀’이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는 현실적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다.

통계청이 올 초 2007년 양곡을 기준으로 조사한 연간 1인당 양곡 소비량은 76.9㎏으로 전년의 78.8㎏보다 1.9㎏ 감소했다. ‘1인 하루 평균 쌀 소비량’도 210.9g으로 전년에 비해 2.4% 줄어들었다. 농협 경기지역본부가 최근 내놓은 쌀재고 및 판매량 분석 자료는 그나마 다행히 연초부터 쌀소비 촉진운동을 벌여 8월 말 재고량이 3만3천408t으로 크게 줄었지만 올 초까지만 해도 전년재고+추가매입분이 15만6천141t에 달했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런 상태로 쌀 소비가 줄어들면 아마도 10년 후쯤이면 웬만한 도시의 인구 중 농가인구는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고 굶거나 하는 상황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생활주변에 물만 부으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컵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 비일비재하고 단돈 1천~2천원이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빵과 같은 기초식품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밥심으로 산다’는 우리민족 삶에 대한 정서와 인식의 변화다. 물론 아무도 식생활 속에서 ‘쌀’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 살면서 그런 사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당장 올 가을 추곡수매부터 문제다. 재고량이 쌓였으니 수매량은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가격 또한 낮출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농가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7일 안성에서는 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가 발생하는 등 벌써부터 농민들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농가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마음의 고향인 농촌도 사라질 가능성이다. 최근 귀농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는 하나 머지않은 미래에는 돌아갈 곳도,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했던 정겨운 고향마을도 찾기 힘들게 될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쌀은 산업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존이 걸린 문제다. 타 산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굳이 지켜내려는 정부의 노력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협을 중심으로 한 관련 기관들의 쌀 팔아주기 운동은 그 의미가 그 어느때보다 깊다. 유통센터 릴레이 쌀 마케팅이라든가, ‘애들아 밥 먹자!’ 아침밥 먹기 캠페인, 쌀 8·9·0운동, 1직원 1 거래처 개발, ‘경기미 평생회원’, ‘Happy Plus! 米’ 특판 등이 바로 그것들인데 이는 단순히 농가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쌀 팔아주기로 보이지만 보다 깊게 생각하면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를 도모하는 일련의 행사들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메아리다. ‘지성감천(至誠感天)’인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농업과 농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食생활 속에 반드시 쌀을 소비하는 생활패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농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쌀을 우리가 소비해 주지 않는다면 우려는 현실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일형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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