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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6 (일)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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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산실] 서양화가 구상희

아름다움을 꿈꾸는… 내마음의 풍경

“아이 미술유치원에서 물감 냄새, 기름 냄새 맞는 순간 신경이 곤두섰어요. 내가 해야 할 것, 가야할 곳이 여기다라는 열망이 확 느껴졌죠.”

미술에 소질이 있던 어린 구상희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접었던 미술에 대한 꿈을 아이 때문에 다시 찾게 됐다.

취미 생활로 유화를 시작하다 좋은 스승을 만났고, 배우고 또 배우고를 되풀이 한 끝에 이제 막 개인전을 열어 작가 대열에 올랐다. 신진작가이기 때문일까. 소녀같이 해맑은 미소와 단아한 외모에서 풋풋함과 열정이 함께 묻어나온다.

■그림을 쫓는 구상희

지난 9일 봄 햇살이 찬란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날, 작가 구상희(41)의 집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는 순간 최근 개인전을 통해 선보였던 ‘마두라이의 아침’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 곳곳에는 국내외 아름다운 풍경이 구상희 느낌으로 재탄생돼 한 폭의 작품으로 걸려있었다.

한참을 부끄러워하던 그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마치 어렸을 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늘어놓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학원 문턱을 넘나들던 작가에게는 “홍대가라, 홍대가라”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1남3녀 중 셋째로 딸들 중에 실력이 가장 부족했지만 뒤에서 지지해주던 아버지 덕분일까, 홍대도 그림도 아니었지만 대학에서 같은 계열의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도 예술의 일부’ 라고 수없이 주문을 걸었지만 순수에 대한 열망을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8년부터 취미로 유화작업을 시작했다.

주부로서 그림 그리기에만 집중하기란 어려웠을 터. 어릴 적 구상희에게 아버지가 있었듯이 주부의 타이틀을 가진 지금은 남편의 외조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좋아하는 것들은 배울 수 있어 행복해요.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엄마가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붓과 캔버스를 놓지 못할꺼에요.”

 

이런 마음 때문일까? 구상희는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한다. 경험이 많지 않다며 겸손하게 예술 세계를 펼치는 그는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랬다. 사람들의 삶 자체가 괴로운 일 투성인데 눈과 마음을 정화하면서까지 고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한 내 그림이 자칫하면 질리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어떻게보면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어디까지 할 지 모르겠지만 아름답고 좋은 그림을 하고 싶어요.”

■열 손가락 깨물면 아픈 손가락 있더라

구상희에게는 중1, 중3인 아들 둘이 있다. 큰 아들이 공부하느라 가족여행도 마다하는 데 비해, 작은 아들은 시험 공부를 하다 말고 몰래 그림을 그릴만큼 공부는 뒷전이다. 둘 다 사랑스럽지만 기쁨을 주는 자식, 기쁨을 주지만 아픔도 주는 자식은 다르다.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여태껏 완성작, 스케치작 등 숱하게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6호짜리 두개를 연결한 ‘배꽃’이다. 지금은 신안군청에 소장돼 군민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 가장 애착이 간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보고싶어요. 소장될 때는 기뻤는데 못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하더라구요. 중견작가처럼 여러 작품을 팔고 기증했다면 덜 했겠지만 늘 얘는 잘있나, 어디에 어떻게 걸렸나 궁금해요. 부모님들이 손을 깨물어서 안아픈게 없다고 하지만 사실 더 아프고 덜 아픈게 있는 것 같아요.”

‘배꽃’은 구 작가의 지도교수인 박성현 경기대 서양화과 교수를 따라다니며 그린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멘토이자 가장 존경하는 박 교수가 추구하는 그림스타일을 닮기 위해 늘 따라다니며 노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 교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와 작업실에서 그리는 그림이 아닌 현장에서 그 모습 그대로를 캔버스 안에 담아오라는 가르침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작업실로 가져온 스케치는 사진을 모사한 그림이 아니라 풍경을 생생하게 나타낸 작품으로 탄생한다.

“어쩌면 신안군청에 소장된 ‘배꽃’이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이를 떼어놓은 것처럼 불안하고 그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그림을 남기고 싶다

서양화를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내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구 작가는 매주 이론 수업, 개인작업에 아이들까지 돌보느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림이라는 것을 하면 할 수록, 알면 알 수록 더욱 힘이 든다”는 그에게 남편은 “당신 그림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고. “그럴때면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지다”는 구 작가는 르노와르에 관해 공부를 하다 자신의 사상과 그의 사상이 같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내 작품 앞에 사람이 섰을 때 그 곳으로 들어가고 싶고 걷고 싶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안산국제아트페어에 출품한 ‘고도의 인상’을 주제로 한 작품 9점 역시 그렇다. 서유럽을 돌며 그 곳의 오래된 풍경들을 물과 관련 지어 캔버스에 담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고민하는 부담을 주지 않도록 단순하면서도 강한 느낌을 준다.

보는 이에 대한 배려까지 자신의 예술세계에 담으려 하는 그는 중견작가가 될 먼훗날의 희망사항까지 올곧다. 재능이 있음에도 화단을 떠난 작가들은 흔히 “이 바닥이 썩었다. 썩은 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구 작가에게 털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를 느끼면 구 작가는 다시 한 번 생각을 바로 잡는다.

“저도 그런 것들을 느껴요. 잘못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싶어요. 그림 수준이 저 사람의 블루칩이냐 레드칩이냐를 떠나서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릴꺼에요.”

작가생활 5년. 그에게도 작은 소망 하나쯤은 있다. 취미생활로 서예를 하는 아버지, 의류학과 조소를 전공한 언니와 여동생이 함께 가족전을 여는 것. 미적 재능을 타고난 가족들의 단란한 전시회 생각에 구 작가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그림은 자신감이죠. 못하니까 안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앞으로 열릴 개인전을 위해, 또 가족전을 위해 행복한 마음으로 즐겁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선보일껍니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사진 추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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