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바람에 창문을 닫으려하자, 황급히 말리며…
이 곳은 과천경마장공원역 5번 출구 입구. 모든 이들의 꿈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이 곳의 뒤편엔 재개발과 굴곡진 삶에 떠밀려 비닐하우스에 삶의 공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최소한의 주거생활만이 허락된 이들에게 유난히 일찍 찾아온 올 겨울 추위는 더욱 혹독할 테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일상을 1일 현장체험 소재로 한다는 게 놀이쯤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루만의 체험으로 이들의 일상을 다 겪을 수도 없다. 그러나 3.3당 1천만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가 즐비한 시대에 너무나도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 주거빈곤층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과천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20년간 살아온 배광자(74)할머니의 1일 손녀가 돼 비닐하우스집에서 하루 묶기로 한 이유다. 이들의 일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거나, 굳이 내 삶과 다른 부분을 찾고 싶지 않았다. 이 곳 주민들에게는 비닐하우스가 마지막으로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2일 저녁 8시. 과천경마장공원역 5번 출구 옆 길목에 들어서자 마을 전체에 무겁게 내려앉은 매캐한 연탄가스가 코끝을 찔렀다. 마르지 않은 땅으로 발은 연신 푹푹 꺼졌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판자에 하얀 비닐을 덮은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했다. 이따금씩 불빛과 텔레비전 소리가 비닐하우스 밖으로 새어나왔다. 5분쯤 걸었을까.
두꺼운 점퍼와 조끼를 껴입은 채 작은 손전등을 비추며 어두운 길모퉁이에 서있는 배광자(74)할머니를 만났다. “젊은 아가씨가 있기 불편할텐데, 괜찮겠어? 찾아온다고 힘들었지?”
하룻밤 함께 묶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몇 번이고 거절했던 할머니는 마치 친손녀를 만난듯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을 따라 들어서자 조그마한 파란 대문이 붙어있는 가로 4m,세로 1.5m가량의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배이남, 배광자 집. 이 문으로 드러오세요.’ 이 곳 주민들은 정확한 지번이 없었던 탓에 이렇게 비닐하우스나 대문에 이름을 써놓았다고 한다. 배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과천시 과천동 194번지. 내비게이션은 할머니의 주소를 찾지 못한 채 인근을 한참 맴돌았었다. 지번은 있지만 비닐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정확한 주소를 가려내기 힘들다.
높이가 채 1.5m가 안되는 탓에 허리를 숙인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빨래와 세면을 해결하는 이 곳엔 연탄이 겹겹이 쌓여있다. 방 안엔 할머니의 남동생 배이남(67)할아버지가 이불을 몸에 꽁꽁 싸맨채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 쇼크로 장애를 갖게 됐다. 주위의 도움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혼자 동생을 돌보며 20여년을 이 곳에서 살아왔다. 두어평 남짓한 방안 흰 빨랫줄에는 할머니의 삶처럼 옷들이 얼기설기 걸쳐있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이 곳은 20여년 전 할머니가 전 재산 500만원을 털어 마련했다. 비가 오면 잠기지 않을까, 폭설이 오면 지붕이 내려앉지 않을까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지만, ‘없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안식처였다. 떠밀려 이사를 다니다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는 이 곳까지 왔다. 지금은 배 할아버지의 장애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합친 50여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할머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방 위 아치형 모양의 비닐하우스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무게만큼 내려앉아 있었다. 불안감에 천장을 손으로 눌러보니 스펀지처럼 힘없이 들어갔다. “이만한 것도 많이 나아진 거야. 원래 비닐하우스 전체가 판자로 지어졌는데 2년 전 사회복지관에서 방에서만큼은 사람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판넬로 교체해줬어. 그나마 찬바람이 전보다는 조금 덜 들어오게 됐지.”
이 곳 꿀벌마을에는 배 할머니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266세대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이 중 20%가량(48명)이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다. 자식과 함께 산다는 등의 이유로 수급대상이 되지 못한 가구까지 고려하면 마을의 절반가량이 빈곤층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60~70대 노인층으로 구성돼 있다.
■최소한의 생활만이 허락된 곳
늦은 저녁밥을 지어먹을 준비를 했다. 방의 바깥쪽 문을 열자 거실 겸 부엌이 나왔다. 발을 내딛자 겨울의 언 땅을 밟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지붕엔 2년 전 강풍에 날아갔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곳은 집 구조상 거실 겸 부엌이지만 겨울에는 거의 사용을 하지 못한다. 연탄 보일러가 이 곳까지 들어오지 않고 판자로 지어진 탓에 햇볕이 비치는 대낮에도 옷을 여러겹 껴입어야 활동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해 갔던 등산용 양말 한켤레를 덧신었다. 할머니의 털달린 조끼와 두꺼운 점퍼까지 입었다.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막아놓은 카펫은 속절없이 바람이 휘날렸다. “오늘은 이른 한겨울 추위가 잠시 누그러지고 평년보다 많이 따뜻해 활동하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기상캐스터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아껴써야 했다. 물, 전기 등 최소한의 주거생활 조차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이 곳 주민들은 마을의 농경지용으로 만들어 놓은 지하수를 끌어다가 사용한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물과 지대에 고인 물들이 지하수로 흘러 들어갈 우려가 있어 식수로는 쓸 수 없다. 한 기관으로부터 기증받은 500ml들이 생수를 이용해 밥을 지었다. 전기선도 구축되지 않아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가 임의로 사용하고 있다. 따뜻한 물도, 물론 없다. 각오는 했지만 한여름에도 온수없이는 세수도 못하는 체질인 탓에 순간 당혹스러웠다. 연탄 보일러 위에 주전자에 물을 넣어 대강 데운 물로 씻는 걸 해결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커다란 창문으로 바깥의 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을 닫으려 다가서자 할머니는 기자를 황급히 말렸다. “연탄가스 때문에 안돼, 찬바람 들어와도 조금만 참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유난히 어두운 이 곳은 손전등 없이 밖에 나가기 힘들다. 혼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초인종도 마땅한 현관문도 없는 탓에 주민들 대부분이 개를 키우고 있다. 인기척을 알리거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배 할머니는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고 깼다. 배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고 찬바람에 감기라도 들지 않을까 이불을 덮어줘야 했다.
긴 밤이 지나고 오전 7시. 연탄을 갈기 위해 연탄 보일러 뚜껑을 열었다. 3장 중 1장은 아직 밑불이 남아있었다. 연탄은 6시간 기준 하루 4번씩 간다. 한 달을 나기 위해서는 연탄값으로만 6만원이 나간다. 고맙게도 복지단체에서 연탄 300장을 기부해줬다. 그러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을 나려면 최소 연탄 700여장은 필요하다. 다 탄 연탄 한 장을 버리고 다시 차곡차곡 넣다보니 연탄 가스를 조금 들이켰는지 기침이 시작됐다. 캑캑! 한 시간 동안 기침은 멈출 줄 몰랐다. 매일 연탄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됐다.
이 곳에서는 아프거나 다치는 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번지를 찾기 어려워 구급차를 불러도 시간 소요가 많다. 병원도 차를 타고 20분은 나가야 한다. 화재의 위험은 더더욱 조심한다. 한 곳에서 불이 날 경우 순식간에 이웃 비닐하우스로 번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자에게 내내 불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아가씨, 볼 일 보려면 요강에 봐. 괜찮아.” 배 할머니네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요강에 볼 일을 보고 농지에 한꺼번에 뿌린다.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한 채 마을 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화장실을 찾아나섰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물건 더미가 쌓인 재래식 화장실은 방금 전 누가 다녀간 듯했다.
“돈이 어디 있어?” 편한 집에 들어가서 살면 안되냐고 묻는 기자에게 배 할머니가 답했다. 17평 남짓한 배 할머니 집은 기껏해야 1천300여만원 밖에 보상을 못받는다. 정부에서 임대주택을 우선 배정해준다고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 곳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할 정도면 굳이 여기서 살아가겠냐는 게 답변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기초 수급자 등 각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집을 제공받거나 이곳에서 주거권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기자와 있는 내내 입버릇처럼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하고 상승하는 데 울고 웃는 사이 어떤 이들에게 집은 그저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곳이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판잣집, 움막 등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11만3천704가구, 경기도는 3만109가구로 전국대비 26.5%를 차지했다. 마을 아래 자욱하게 깔린 매캐한 연탄가스를 뒤로 한 채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이 마음 한편에서는 주체를 알 수 없는 부채가 쌓여갔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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