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로 유명세를 떨쳤다.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 곳서 수도생활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 데 13년이나 걸렸다.
유명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절이 소멸됐다.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를 비롯,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나옹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 등이 있다.
이 사찰은 평지가 아닌 산간지방에 위치하면서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 수 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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