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관료, 구한말 의병장으로 거듭나다
1861년 3월 경기도 여주에서 명성황후 일가로 태어난 선생은 약관 20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이조참판으로 승진하고 정부 내 여러 요직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의 관료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고 그 와중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는 치욕적인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충청도 정산으로 낙향해 국치를 설욕하고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 부심했다. 특히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돼 국망의 위기가 닥쳐오자 본격적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다. 또 1906년 3월 충청도 정산에서 안병찬 등 유생들과 함께 600여명의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봉기의 첫 기치를 올렸다. 1906년 5월에는 충청도 홍산에서 재봉기하면서 의병대장에 추대됐고, 1천여 명에 달하는 의병부대는 화포를 앞세워 홍주성 탈환이라는 큰 전과를 거뒀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의기를 꺾지 않다가 1917년 6월 26일, 56세로 일생을 마쳤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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