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억압에도 우리말 중요성 널리 알려
석인 정태진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어학회 사건의 주동자격 인물로 우리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이였다. 그는 1903년 7월25일 파주시 금능동에서 태어나 경성보통고등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마친 후 192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우스터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대학원 교육학과를 거쳤다.
유학 이후에는 1930년부터 1941년까지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1942년 9월 이 학교 학생의 일기장에서 정 선생의 한글 교육 내용이 밝혀져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함흥 감옥에서 복역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이후 한글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국어학강의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병행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곤궁한 시간이 이어졌다. 1ㆍ4후퇴 당시 <조선말 큰사전> 제3권까지 완성했으나 인쇄 작업을 남긴 상황에서 50세의 일기로 눈을 감고 말았다. 이후 선생은 1997년 11월 국가보훈처로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으며 이듬해에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이달의 문화인물에도 뽑혔다. 파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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