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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수)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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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인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아이디어를 처음 갖고 나서 논문이나 칼럼의 원고를 쓰기 시작하기까지 며칠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로 미루곤 한다. 서론이나 글의 도입부에 무엇부터 써야 할지 첫 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럴 때마다 “논문이나 수필을 쓰는 데에 ‘도’가 통하거나 ‘깨달음’을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자로나 문인으로나 대성할 수 있을 터인데”하는 생각이 든다.

다녀본 절 중에 가장 아늑하였던 곳은 가람의 배치가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마루로 연결되어 있으며 툇마루가 있어 앉아서 메모지에 글도 끄적거릴 수 있었던 봉정사 영산암이었다. 이러한 아늑함 때문이었는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승려를 통하여, 또 산사를 둘러싼 자연 풍경을 통하여 삶과 죽음, 해탈과 자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인가?”는 선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로서, 불법의 요지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제자가 스승에게 이 질문을 던졌으나 스승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 곧이곧대로 친절하게 알려주기는커녕 각각 다르게 대답하였으며, 제자를 서판으로 후려치기도 하였다.

달마는 실존인물로서, 520년경 중국에 도착하여 기존 불교인 교종과는 전혀 다른 선종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번역은 물론 대중설법도 하지 않았지만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이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작성된 여러 종의 『달마어록』이 유포되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성(自性)이 없다. 그것은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그대로 비어 있다. 본래 온 곳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니다.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사라지는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곧 깨달음이다.

그런데 왜 많은 수행자가 이 간단한 깨달음의 길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 달마가 지적한 대로 그들이 깨닫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온전한 체득, 자아의 존재를 말끔히 무화시키는 것만이 해탈의 길, 대자유의 길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만, 깨닫고자 하는 자기의 의지마저 먼저 지워버리는 경지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의사로서 신들린 것처럼 칼춤을 추며 수술을 멋지게 하고 싶었다. 해부학자로서 시신을 해부하여 수술에 필요한 구조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어 유명해지고 싶었다. 논문을 쓰는데 ‘도’가 통하여 서론과 고찰을 거침없이 완성하고 싶었다. 소재만 잡으면 몽테뉴처럼 후대에 남는 수필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고 싶었다.

이제 은퇴가 삼 년도 남지 않은 이때에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최고의 외과의사, 최다 논문의 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먼저 버려야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네가 장황하게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연유는 무엇인가?” 아마 여전히 글을 제대로 다루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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