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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6. 부천활박물관

대를 이어 활 만들어온 궁시장 김장환의 아들
부천시에 선친 유품 240여점 기증 박물관 탄생
선조의 얼과 기술 그대로 간직한 ‘복합문화공간

“부천에 활박물관이 세워진 까닭이 궁금하시죠? 부천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활을 만드는 기술이 전수되었던 고장입니다. 장인을 홀대했던 한국의 풍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지요.” 최선희 문화해설사의 이야기가 귀에 솔깃하다. 박물관 운영의 실무를 책임지는 최유리 학예사도 동행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시실 입구에 커다란 사진 앞에 멈춰 섰다. “부천활박물관 설립의 주역 세 분이 활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기록사진입니다.

왼편에 있는 분이 1971년에 초대 궁시장 보유자로 지정되신 김장환(1909~1984) 선생님이고, 가운데 있는 분은 아드님인 김기흥 선생님, 오른편에 있는 분이 제자 김박영(1933~2011) 선생님인데, 궁시장 기능보유자로 활박물관 명예관장을 지내셨지요” 흑백사진 속의 세 사람은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한국 활의 자존심을 지키며 전통을 계승한 이들의 공로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① 부천시 춘의동에 위치한 부천활박물관은 부천에서 활동한 故김장환 선생(국가무형문화재제47호 초대 궁시장)의 유품 240점을 기증받아 2004년 12월에 개관됐다. 부천활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 할아버지로부터 손자로 이어진 경기 활의 전통을 예천 사람이 잇다

할아버지가 활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활과 인연을 맺었던 김장환은 집안 대대로 한 사람씩 반드시 활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도록 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70평생 가업을 이으며 당대 최고의 궁시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대한궁도협회 사범과 이사를 지내며 국궁을 대중화하는 데 힘을 쏟았고, 대한궁술연구원을 열어 우리 활의 역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2004년에 그의 차남 고 김기흥이 시에 선친의 유품 240여점을 기증하여 부천활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연면적 531㎡의 박물관은 전시실과 영상실, 시연 공간, 김장환 선생 기증 전시실,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품인 활은 고 김박영 궁시장이 직접 만든 것이다. 활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은 경북 예천 출신인 그가 고향 예천보다 부천 활이 더 마음에 들어 배우러 왔다가 부천에 눌러 살면서 경기 활의 전통을 이었다. 궁시장 전수조교인 그의 아들 김윤경은 활박물관에서 시연회를 열고, 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부천을 활의 도시로 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부천활박물관은 국궁에 담긴 선조의 얼과 기술을 보존 전승하고 시민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②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초대 궁시장인 故김장환 선생은 3대를 이어 제궁기법을 이어갔고, 1977년 ‘한국의 궁시’라는 책을 저술하는 등 후진양성과 제궁에 생애를 바쳤다. 故김장환 선생의 작업모습. 윤원규기자

■ 동이, 강하고 아름다운 활을 만든 민족

중국이 우리 겨레를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이(夷)라는 글자는 사람[大]이 활[弓]을 메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활이 이웃나라까지 이름을 떨치게 된 비결은 특별한 재료에서 찾을 수 있다. 국궁의 주재료가 우리나라에는 자라지 않는 물소의 뿔이다. 외교 분쟁으로 중국이 무소뿔 반출을 금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조선 초기에는 살아 있는 물소를 중국에서 수입해 날씨가 따뜻한 남쪽 섬에서 기르게 했던 적도 있다. 쇠뿔과 대나무, 농사를 짓는 소의 질긴 심줄을 넣고 자작나무 껍질을 부레풀로 붙여 탄성의 강도를 최대한 높였던 것이 비결인 셈이다. 사정거리가 긴 강력한 활과 정교한 화살을 만드는 기술은 나라의 흥망을 좌우했던 첨단기술이다. 활 한 자루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나라를 지켜낸 무사들의 혼이 담겨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명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 활쏘기의 유구한 전통은 올림픽 종목인 양궁으로 이어졌다. 특히 여자 양궁은 1970년 이래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인의 DNA 속에 활을 잘 쏘는 유전자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인 모양이다.

전국 어느 시나 군에도 국궁장이 있다. 하지만 국궁을 쏘아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활터가 접근성이 낮은 곳에 있는데다 입장도 제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천활박물관은 우리 국궁을 제대로 이해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박물관과 국궁장이 붙어 있어 활 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

③ 말을 탄채 활로 목표를 조준하고 있는 화랑인형의 모습. 윤원규기자

■ 활쏘기는 세계에 내 놓을 고품격 전통문화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발명한 신기전화차는 이야기가 많다. 일찍 나약한 왕처럼 기억되지만 사실 아주 뛰어났던 왕이다. 학교에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문종이 신기전이라는 첨단의 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방아쇠를 당겨 쏘는 노와 석궁도 있다. 활은 오랜 숙련이 필요하지만 노는 겨누는 법만 배우면 쏠 수가 있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여인들도 사용했던 무기다. 신라에서 화살이 1천보(1천200m)가 나가는 노(弩)를 만들어 쓰는 것을 보고 당나라 왕이 이를 가르쳐주기를 요구했을 때 불려간 장인이 끝내 그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조선의 비밀병기로 알려진 편전이 보인다. 일반 화살의 절반 크기라 ‘애기살’로도 불리는 편전은 어떻게 쏘았을까? 학예사가 휴대폰을 꺼내 앱을 실행하자 편전을 쏘는 동영상이 나타났다. “편전을 어떻게 쏘는지 아시겠죠?” 관람객들이 좋아할 것은 또 있다. 야외에 활을 쏠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활쏘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어른도 좋아합니다.”

활쏘기는 공자도. 정조를 비롯한 조선의 임금들도 즐겼던 운동이다. 활쏘기와 관련해 기억할 말이 있다. “발이부중, 반구제기” 즉 활을 쏘아서 과녁에 적중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을 살피라는 말이다. 남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살피며 잘못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한국인의 품격이 분명 높아질 것이다.

깍지는 손가락을 보호하며 시위를 세게 당길 수 있는 도구로 동양 활의 특징을 보여준다. 검지와 중지를 사용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더 멀리 쏘기 위해 엄지손가락 하나로 시위를 당겼다. 검지와 중지 대신 엄지를 사용하면 시위를 5~6㎝ 더 뒤로 당길 수 있어 수십 미터 더 멀리 쏠 수 있다. 활의 사거리는 역사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마루로 된 널찍한 공간이다.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단다. 활을 당겨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활쏘기를 체험해 보았을 텐데, 아쉽다! 활을 보고 직접 쏘아보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이 활물관의 매력이다.

④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의 활과 화살의 변천을 시대흐름에 따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이번엔 화살이다. 궁시장은 활을 만드는 ‘궁장(弓匠)’과 화살을 만드는 ‘시장(矢匠)’을 아우르는 말이다. 과녁과의 거리가 145m. 그 먼 곳의 과녁을 적중하려면 화살 제작 기술 역시 정교할 수밖에. 전시된 화살의 종류가 엄청 다양하다. 새가 입을 벌린 것 같은 화살은 물론 도끼처럼 생긴 촉도 있다. 명적은 쏘면 소리를 내는 화살이다. 뼈나 뿔에 구멍을 뚫어 공기 마찰을 받으면 소리를 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일의 시작, 혹은 처음을 나타내는 ‘효시’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어요.”

시위를 당기는 엄지손가락을 보호하는 암깍지와 숫깍지, 화살의 촉을 끼우거나 빼는 촉도리, 과녁에 박힌 화살을 빼내는 노루발, 소매를 감싸는 팔찌, 화살을 담고 보관하는 전통 같은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대사례를 시작한 영조의 어진과 49발을 쏘아 49발을 적중시킨 정조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도 볼 수 있다. 정조는 작은 과녁을 쏘아 맞히기를 잘했다. 정조는 정신을 통일시키는데 가장 좋다면서 활쏘기를 권장했던 왕이다.

전시물의 쓰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설명문을 읽거나 해설을 들으며 관람하면 훨씬 재미있다. 박물관에서는 우리 활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매년 ‘텍스트로 접하는 우리 생활 속의 활전(展)’과 같은 특별 전시를 열고 있다. 통합 표를 구입하면 부천시립박물관, 유럽자기박물관, 수석박물관, 부천펄벅기념관을 함께 관람할 수 있으니 기억해 두자. 박물관 주변 풍경이 참 아름답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박물관과 이어진 진달래 동산을 느릿하게 산책하면서 초록빛 나뭇잎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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