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장면들이 있다. 흐름을 뒤바꿔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다.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사한 사건 이후, 2002년 5월 발산역에서 다시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가 발생했다. 20년 넘게 장애인단체에 종사하면서 장애인 권리증진을 위한 여러 투쟁을 지켜봐 왔지만 장애인 이동권만큼 격렬하고 처절한 투쟁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철로 위에서 사슬로 자신을 묶어 절규하던 당사자들을 담은 사진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비장애인만이 정상인으로 당연시되던 시기 소외돼 있던 중증장애인들이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외친 결정적 장면, 장애인권을 사회적 맥락으로 바라보게 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사회복지사무가 국가로부터 지방으로 이양된 만큼의 큰 변화가 있었다.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국토교통부(당시 건설교통부)의 발의로 제정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국토교통부가 장애인 관련 법률을 시행하게 된 것은 이례적이고 전향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이동편의시설 개선이나 저상버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확보는 국토부 사무에 속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장애 관련 경험이 부족한 부처에서 잘할까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이어졌고 교통약자법은 여전히 행정기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로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됐다. 법 시행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다. 교통약자법에 의해 저상버스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등의 확보는 일면 순조롭게 달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중증장애인 사회참여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이동권 정책 발전 속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증차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상버스 이용률도 형편없다. 어딘가 구멍이 있는 것이다.
경기도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는 현재 교통약자법의 주요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당사자에 의한 이동편의시설 적합성 확인업무 대행 미시행’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경기도에서 시작, 현재 전국 유일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센터에서 조사해 본바, 준공된 보도 내 이동편의시설 적정 설치율이 교통행정기관 자체 적합성 확인 심사는 61%에 불과한데 이동편의센터 사전점검 시행 후 98%로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법령에서 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경기도 각 시ㆍ군 교통행정기관이 이동편의센터와 협업 절차를 거치지 않아 장애인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는 도내 대도시로 분류할 수 있는 인구 50만 이상 지자체에 이동편의센터와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는 ‘시ㆍ군 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편의증진법에서처럼 이동편의시설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당사자 관점에서 설치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사후관리까지 할 수 있는 이동편의증진 사업을 통해, 기반에서부터 장애인이동권이 점차적으로 보완되고 확대될 수 있는 경기도의 정책 결단이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집 앞의 보도, 육교, 횡단보도를 거쳐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이를 수 있도록, 또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이동이 원활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이동편의증진 정책을 시행한다면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케어, 탈 시설, 포용사회, 사회통합 등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형이다.
한은정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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