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시인 네 명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거창한 담론 대신 삶을 지탱하는 요소들을 가만히 머금고자 한다.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시인은 각자 지나온 현실 속 시간의 궤적에 저마다의 삶을 그대로 투영했다. 이들의 진심이 담긴 시집 ‘그리움은 희망이다’(문학과사람 刊)가 지난 15일 발간됐다.
책을 펼치면 먼저 독자를 맞이하는 조병기 시인의 눈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자연에 머물러 있다. 다람쥐, 고슴도치, 각종 꽃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선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묻어난다. 이를테면 ‘다람쥐’에서 시인은 산길을 타다 잠시 쉬는 도중 오랜만에 만난 다람쥐에게 말을 걸면서 “모진 세상에 살아있는 게 천만다행이로고”와 같은 표현으로 담백한 마음을 내놓는다.
허형만 시인의 시에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크고 작은 과정이 묻어난다. ‘만나고 싶네’, ‘코로나 블루’, ‘관계’와 같은 시들에선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요즘 들어/이것 저것/생각이 많아졌다//비워야 한다는데/버려야 한다는데/잊어야 한다는데…”(임병호, ‘미련’ 中). 임병호 시인이 모아놓은 시를 보고 있으면, 압축됐다가 피어나는 시적 감흥 대신 일상 언어가 포근하게 곁을 내어주는 느낌을 받는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이나 그가 오고 갔던 장소들, 그가 만나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그의 시 속에 여과 없이 등장해 현실과의 접점을 키워내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챕터에 수록된 정순영 시인의 시에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과 같은 감정들이 시어에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시인은 고향을 떠올리거나, 추억이 얽힌 특정 지명을 매개로 내면을 맴도는 것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임애월 시인(한국시학 편집주간)은 책에 대해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이 우선시되는 시대,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시류에 합류하지 않는 시인들의 마음이 엿보인다”면서 “아날로그의 묵직한 삶을 고집하는 시편들에서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람 냄새가 난다. 순수하고 담백한 위로와 웃음을 공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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